<제7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수상작>
날 좀 내버려 둬
양 인 자
“채민이 너, 오늘도 안 올까 봐 걱정했잖아. 짜아식.” 선생님이 내 뒤통수를 툭 쳤다. “왜요? 선생님이 우리 아빠도 아니면서 별꼴이셔.” 걱정했다는 말이 싫지는 않지만, 내 입에서는 가시가 쏟아져 나왔다. 늘 이런 식이다. “요 녀석, 말하는 것 좀 봐. 이따 너 달리기해야 돼. 알았지?” 선생님은 왼쪽 눈을 찡긋하더니 하던 일을 계속했다. 무슨 달리기냐고 물어 보려는데 다른 아이가 선생님을 불렀다. 나는 머뭇거리다 교실로 향했다. 오늘은 운동회 날이다. 선생님은 애들과 운동장에서 만국기를 달고 있었다. 먼저 세상으로 나와 걸린 국기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참 알 수 없는 게 저 국기다. 코다리*처럼 줄에 꿰어 거는 건 같은데,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먼지만 날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간다면 난 오늘도 학교에 안 왔을지 모른다. 운동회 날이라 공부도 안 하고, 어제 결석한 것도 대충 넘어갈 거란 계산은 있었지만 교문을 들어서니 사뭇 달랐다. 게다가 선생님은 나한테 달리기까지 하라고 했다. 분명히 달리기 대표를 뽑았을 텐데. 이상하고 또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든 나쁘진 않다. 행진곡풍 음악이 국기와 잘 어울려 무거웠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운동장은 햇빛 찜질방 같다. 때때로 부는 바람이 찬물 역할을 해 주지 않는다면 도저히 참고 앉아 있기 힘들겠다. 아이들도 인상을 쓰고 앉아 흐르는 땀을 연방 닦고 있다. 우리 6학년은 그늘이라곤 조금도 없는 본부석 건너편 운동장 바닥에 그냥 앉아 있다. 스탠드가 아무리 좁아도 서로서로 끼어 앉으면 될 텐데. 더위보다는 질서가 더 중요한 모양이다. 운동회 구경을 온 엄마들은 포졸처럼 우리 뒤를 지키고 서 있다. 5학년 개인 달리기를 마친 다음에 1학년들 단체 무용을 하는데 엄마들이랑 같이 한다. 손등에는 초록색과 빨간색 종이꽃을 달고 빨간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 갑자기 목이 말랐다. 아니, 그보다는 엄마와 같이 못 온 1학년 아이들을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물을 마시러 뒤로 나왔다. 아줌마들이 나를 보고 있다. 직감이라는 게 있다. 눈으로 날 찾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내가 뒤로 걸어 나오는데 ‘쟤가 그 채민이란 애야? 엄마가 집 나가고 학교에 잘 안 온다던?’ 하는 눈빛을 거두지 못한다. 모두 노란색 체육복을 입고 있는데, 나만 청반바지에 토시를 신고 있으니 눈에 더 잘 띄기도 할 것이다. 거기에다 이 노란 머리하며 긴 목걸이까지. 다른 반 애들도 힐끔거리며 쳐다보는데, 어른들 눈에는 내가 별종으로 보이겠지. 아줌마들은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짐짓 아닌 척하며 눈길을 거둔다. 나도 태연하게 모른 척했다. 더 명랑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휴, 더워! 물 좀 주세요.” 아줌마들은 한껏 친절한 표정으로 종이컵에 물을 따라 준다. 물은 무척 시원했지만, 마시고 돌아서는데 집 나간 엄마 생각에 또 목이 메었다. ‘어디서 내 생각이나 하는지.’ 4학년 때까지는 운동회 때 와서 응원도 해 주고 물도 따라 주었는데……. 끝나고 같이 자장면을 먹었던 일까지 아득하게 떠올랐다. 아빠 곁을 떠나더라도 내게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날 보지도 않고 아무 말 없이 나가 버린 엄마. 뭐라고 변명이라도 했으면 지금 이런 기분은 아닐 텐데.
750){this.style.cursor="hand"; this.title="원본보기"};'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if(this.width>750){/*window.open*/(this.src)};" src="http://intranet.prooni.com/bbs/data/idea/09_sp_img3.gif" align=right name=zb_target_resize> 엄마가 집을 막 나갔을 땐, 기분 전환 삼아 혼자 피시방에 다녔다. 하지만 어두운 피시방은 마음을 더 답답하게만 했다. 애들이랑 어울려 다닐 때와는 달랐다. 그래서 통장에서 찾은 돈으로 친구들이랑 시내에 다녔다. 환한 불빛이 오히려 좋았다. 애들과 깔깔거리며 옷이랑 신발이랑 액세서리를 구경할 때면 집 나간 엄마도 술 취해 들어오는 아빠도 다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번뿐이었다. 용돈은 금방 떨어졌다. 그 와중에 난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운동장, 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채민아, 밖에서 뭐 사 먹고 오자.” 물을 마시고 돌아서는데 현지가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머릿속의 생각을 떨치고 보니 소은이도 함께였다. “그래!” 나도 경쾌하게 대답하고 팔에 힘을 주었다. 현지와 소은이는 내가 결석을 해도, 학교에 늦게 와도,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럴 때도 여느 날과 똑같이 대해 주어 좋다. 날 위한다며 이것저것 물어 보면 오히려 머리가 아팠을 것이다. 솔직히 다 말하기도 싫고, 이리저리 둘러 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는 지금 담임선생님이 편하고 좋다. 그냥 날 가만 보고만 있다는 느낌이다. 일 주일에 이틀씩 결석했지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해 주었다. 뭘 물어 볼 때 내가 신경질을 막 내도 씩 웃어 주었다. 그래서 학교를 안 올 수 없게 만든다.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의욕 과잉’이었다. 상처를 더 깊게 만들었던 장본인. 몇 달째 급식비가 밀려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담임선생님한테 미안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집에 무슨 일 있냐고 물었을 때, 엄마가 밤에 잘 안 들어오고 부모님 사이가 조금 안 좋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진짜로 사이가 안 좋았지만 그렇게만 말했다. 사실 그 때 엄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화장은 화려해지고 옷차림도 요란스러웠다. 엄마는 새로운 사랑이 어쩌고 그렇게 말했다. 아빠랑은 더 이상 지긋지긋해서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엄마 눈 속에 이미 나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 엄마를 대하는 게 혼란스러웠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등을 토닥이며 알았다고 그래도 힘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 날마다, 어제는 엄마 들어 오셨냐, 연락은 있었냐, 하고 물어 보았다. 아이들이 있으나 없으나 상관 없이. 거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교재 연구실에 들어갔다가 겪었던 그 화끈거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다. “결국 애 엄마가 바람 난 거지. 그 집안은 끝장이고.” 5학년 선생님들이 모두 모인 데서 우리 담임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다른 선생님들은 당황해하며 이야기를 끝내자는 눈치였지만 담임선생님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그러면서 내 등까지 토닥였다. “그래도 잘 살 수 있지? 엄마 없는 애들이 한둘이야? 선생님을 아빠라 생각하고 어려운 일 있을 때 찾아와. 알았지?” 솔직하게 말한 내 자신이 한심했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함께 날 위해 주는 척하는 선생님도 미웠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혼자 빈 방에서 몸을 돌돌 말고 쥐며느리가 되어 웅크리고 있었다. 가끔 전화벨이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혹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는데 뭘 미납했으니 언제까지 내라는 안내였다. 그 뒤로는 일체 전화를 안 받았다. 금방 소문이 퍼졌는지 슈퍼마켓이나 문구점에서까지 나를 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이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알 수 있는 거다. 돌아서면 내 뒤통수가 따가웠다. 자연스럽게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6학년이 되어 학교에 간 까닭은 엄마 때문이다. 혹시 학교로 날 만나러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아빠 때문에 집에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를 아무리 미워하려고 해도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전날 저녁부터 굶고 있다가 점심 시간이 되면 급식실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어쩌다 아픈 날은 배를 움켜쥐고 누워서,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다행히 담임은 내게 크게 관심을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 가면 발표도 시켜 주고 심부름도 시켜 주었다. 날마다 만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날 기다려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물고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아이들이 운동장을 빙 둘러 에워싸고 있다. 교문을 나갈 때보다 한결 높아진 소리와 함께 어수선했다. “니가 채민이냐?” 내 앞을 가로막는 아주머니. 머리를 아주 짧게 깎아 한 눈에도 씩씩하게 보이는데 날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살이 베일 것 같았다. 나는 곧 주눅이 들었다. 햇볕은 운동장을 달구도록 내리쬐고 있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다. 실눈을 하고 미간을 모았다. 누구냐고 물어 보려는데 현지가 나섰다. “엄마, 언제 왔어?” 현지 엄마였구나. 현지 엄마는 내게 바싹 다가왔다. 인사할 겨를도 없었다. “쬐끄만 게 인상은.” 현지 엄마 말 속에는 거만이 가득 들어 있다. 난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나마 여유가 있다는 몸짓을 보인 것이다. “니가 우리 현지 학원 못 가게 잡고, 피시방 가자고 꼬드기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겨우 그거였나. 그래도 공손하게 목소리를 깔고 대답했다. “아니에요. 현지랑 딱 한 번…….” 내 말을 자르고 현지 엄마가 다시 소리를 높였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다 너 때문이라는데.” “…….” 순간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다시 현지 엄마가 다그쳤다. “너, 끄떡하믄 학교도 안 온다며? 가끔 외박도 하고?” 물론 나도 처음에는 집을 나가 버리고 싶었다. 좁은 방에 혼자 있기 싫었다. 떠돌아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마저 늘 술에 취해서 늦게 들어오는데 나까지 집을 나가면 언제 올지 모르는 엄마를 영영 다시 못 볼 것 같아 나가지 않았다. 집에서 공벌레처럼 웅크리고는 있었지만 외박을 한 적은 없었다. 도대체 나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안다고? “어린 게 벌써부터. 그러니까 같이 놀지 말랬지?” “엄마, 왜 그래? 안 그래도 채민이, 엄마가 집 나가 불쌍한데. 증말.” 현지는 자기 엄마 말을 자르고 나섰다. 짜증이 가득 밴 목소리였다. 그 동안 내가 불쌍해서 같이 놀았나? 그런 거였나? 엄마가 나가고 생긴 상처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덧났는데…… 바로 옆에 또 상처가 생긴다. 가슴이 후벼 파고드는 것 같다. “그래. 계집애야, 나 엄마 없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손을 올렸다. 현지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었다. “뭐야? 너 깡패냐?” 누가 갑자기 내 손을 세게 붙잡고 흔들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우리 담임선생님이다. 눈에 힘이 잔뜩 들어 있고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놔요, 저 계집애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난 몸을 비틀며 손을 빼내려고 했다. 그럴수록 붙드는 힘은 더욱 세졌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잡고 운동장 쪽으로 갔다. 난 못 이긴 척 따라갔다. 학교의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현지를 때리고 현지 엄마한테 악다구니를 쓰고 학교를 영영 그만 두는 것과 너무 억울하지만 그냥 참는 것. “니가 지금 현지 때리면 넌 학교 영영 못 다닌다. 그리고 아무도 네 편이 되어 주지 않아!” 시끄러운 중에도 담임선생님 말은 또렷하게 들렸다. 나와 똑같은 생각. “달리기 하고 나서 이야기하자!” 무슨 달리기냐고 물어 보려는데 담임선생님은 날 본부석 앞에 세워 두고 연단으로 올라갔다. “다음은 6학년 학생과 학부모, 담임선생님 이어달리기가 있습니다. 선수들은 본부석으로 나와 주십시오.” 담임선생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지금 이 순간 낭떠러지가 있다면 뛰어내리고 싶고 땅이 꺼진다면 아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은데. 또 현실은 현실이다. 솔직히 혼자라는 게 무서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학부모랑 담임선생님이랑 이어달리기를 한다니, 여태껏 운동회에서 이런 걸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대영이와 지은이가 있었다. 나는 눈에 힘을 주고 다른 반 애들도 보았다.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애들은 다 친구가 별로 없는 애들이었다. 아니 친구가 없다기보다는 소위 ‘찌질이’라고 놀림 받는 애들이었다. 나도 놀렸던 애들인데. 이젠 저 애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쟤들하고 같이 뛰어야 하나? 순간 머리속이 뱅글뱅글 돌면서 정말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었다. 엄마 없다는 게 이런 순간으로 다가올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나에게 무슨 혜택을 주는 것처럼 웃었던, 손을 잡아끌던 담임을 보았다. 빙글빙글 웃으며 다른 사람에게 뭔가 지시를 하고 있다. 나는 한 눈에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우릴 위해서 준비한 거라고 말하겠지. 공부 못하고 친구도 없는 애들만 이렇게 표 나게 불러 내서 말이다. 이젠 정말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찬바람이 날 정도로 휙 돌아서서 운동장 밖으로 뛰어나가 버릴까 하는데, “얘가 5반, 김 선생님 대신 달리는 거예요?” 하며 옆 반 선생님이 내 팔을 잡았다. “예?” 나는 깜짝 놀라 담임선생님을 쳐다보았다. “빨리 내 옆으로 서라.” 나는 샌드위치 속에 든 햄처럼 몸을 납작하게 하고 옆 반 선생님이 가리키는 곳에 섰다. 담임선생님 대신은 또 뭔지, 온통 모를 소리였다. “너희 담임선생님은 남자고 젊잖아. 다른 반 선생님들은 다 여자고. 그래서 나만큼 잘 뛰는 애가 대신 달리기로 한 거야.” 담임선생님 목소리가 은근하다. 살짝 눈웃음까지 짓고 있다. “2반 선생님도 남자잖아요.” 난 턱으로 남자선생님을 가리켰다. 실은 5학년 때 내 담임선생님. 저 선생님이 또 6학년 선생님들한테도 다 내 소문을 냈겠지만. “배가 너무 나왔잖아. 아마 너한테도 질 걸? 너 달리기 잘한다며?”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날 마냥 불쌍하게만 보지 않았구나 싶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잘 달려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대영이랑 지은이도 각각 나온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뒤에 있던 대영이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대영이랑 4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는데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혼자서 히죽이며 다녀서 애들이 ‘4차원’이라고 하는 애다. 그런 애가 날 보고 웃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난 그냥 모른 척했다. 대영이는 대표가 되어서 달리기는 게 좋은 모양이다. “너희 중에 채민이가 제일 나중에 달리면 되고, 채민이는 대영이한테 바통을 받아라.” 이번에는 우리 반 누군가의 엄마인 듯한 아주머니가 날 보고 말했다. 난 고개만 끄덕였다. 본부석 쪽에서 달릴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건너편으로 갔다. 운동장 반 바퀴를 돌고 바통을 받으면 된다. 지은이 뒤에 서 있는데 햇볕이 따가웠다.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달릴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제일 먼저 엄마들이 달릴 준비를 했다. “채민아, 잘 해!”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현지랑 소은이를 비롯한 우리 반 다른 아이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현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활짝 웃고 있었다. 활짝 웃는 얼굴에다 대고 무표정하게 서 있기가 뭐해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쟤들이 속으로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잠깐 두렵기도 했지만. “지은아, 너도 잘 해!” 지은이는 손은 흔들지 않았지만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지은이의 작대기처럼 큰 키가 운동장에 내걸린 만국기를 받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총소리가 나고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이어달리기를 할 때는 늘 그렇듯 아이들이 운동장을 빙 둘러 쌌다. 열심히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기도 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크게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어쩜 아이들은 날 의식하지 않는데 나만 혼자 괴로워한 건 아닐까? 달리고 나면 좀 달라지려나, 머리가 온갖 생각들로 빙글빙글 돈다. 파도가 모래를 밀고 올라오는 것처럼 한꺼번에 생각은 밀물이 되었다. 어느새 파란 바통을 쥐고 대영이가 달려오고 있다. 이를 앙다물고 있다. 볼 살이 마구 흔들린다. 난 옆걸음으로 터치라인을 넘어 바통을 받으러 갔다. 팔을 뻗었다. “박채민! 여기여기!” 대영이 목소리는 간절했다. “이리 줘. 자, 자.” 나도 소리를 지르며 손을 뻗었다. 닿을 듯 닿을 듯 겨우 바통을 잡았다. 그러고는 대영이 팔을 잡고 뛰었다. 놔야지, 혼자 달려야지 생각했지만 놓으면 넘어질 것 같았다. 한참을 달렸다. 대영이도 내 손을 뿌리치지 않고 같이 달렸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달랑거리던 목걸이가 얼굴을 때렸다. 확 잡아채서 던져 버렸다. 내 마음에 있는 상처도 이렇게 버릴 수 있다면. 다리가 공중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다리를 더 쭉쭉 뻗어 앞으로 내달렸다. 함성 소리가 들린다. 본부석 앞에서 한 쪽 어깨를 휘두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우리 담임선생님이다. 이 달리기가 끝나면 난 또 어두운 방에서 늦게 돌아오는 아빠를 혼자 기다려야 한다. 엄마가 집을 나갔다고 사람들은 여전히 손가락질 하겠지. 그래도 좋다. 모든 게 휙휙 지나가는 지금 이 순간,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달리고 싶다. 날 보고 수군거렸던 저 사람들, 비웃었던 아이들. 모두 날 잊게 만들고 싶다. 다리에 더 힘이 들어간다. 중심을 잃고 쓰러질까 봐 넘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발을 구르고 있는 아이들, 함성 소리. 운동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데 엉켜 있는 것 같다. 만국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날 좀 그냥 내버려 두라고, 일제히 소리치는 것 같다.
* 코다리 : 명태를 15일 정도 반쯤 말려 코를 꿰어 파는 것
양 인 자 1967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났으며, 전남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한 뒤, 광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있다. 2009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천왕봉」이 당선되었으며, 현재 동화 모임 ‘손바닥발바닥’ 회원으로 활동하며 논술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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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쌤, 채민이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해요. 아무 말 않고 어깨 한 번 토닥여 주고 싶네요.
당선 소식 듣고도 사실 걱정이었어요. 세상에 선 보일 작품이 영 자신 없어서. 앞으로 더 잘 쓰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