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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이 홍사
개별화물을 운전하는 노는 희한한 청각을 지닌 위인이다.
희한하게도 양파를 까고 있으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비파를 켜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분명히 이명은 아니다. 어린 시절 양파를 처음 접하면서 어떤 동기가 있어 머리에 각인되었는지 자신도 모르지만 지금도 양파를 까면 어김없이 비파소리가 들린단다.
비파를 켜는 여인이 누구인가?
노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비파를 켜는 사람이 여인이라고 생각한다.
노가 양파를 까다가 비파소리가 들려 둘러보면 휭 하니 아무도 없다. 둘러보다가 생각하면 누가 비파를 켜는 게 아니라 노의 귀에서 그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양파는 까도, 까도 끝이 없다. 양파는 껍데기가 알이고 또 알이 또 껍데기에 버금간다. 노가 비파소리에 젖어 양파를 까다보면 손에 남는 것이 없을 때도 있다. 모두 껍데기로 인정하고 손 안에 든 것이 다 소진될 때까지 까버린 것이다. 비파소리에 도취된 까닭이다.
비파의 음색은 기타보다 구성지면서 웅숭깊은 데가 있다. 현이 네 개로 된 당비파가 있고 오 현으로 된 향비파가 있는데 오 현으로 된 향비파가 귀에 부드럽다. 그건 아마도 인위적인 소리가 아니라 자연이 내는 소리를 닮았기 때문일 거다.
노가 아내와 마주 앉아 양파를 까면서 비파의 선율에 따라 고개를 흔들다 보면 아내가 이상한 눈초리로 넘어다본다.
이 양반이 맛이 살짝 갔구먼.......
아내의 눈초리가 그런데도 귀에선 비파의 선율이 가늘게 들린다. 왜 그럴까? 양파의 형태가 비파를 닮았기 때문일까? 둥근 몸통과 짧은 자루. 억지로 형상화시키면 닮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른 일은 돕지 않는데 양파를 까는 일만은 노가 나서서 돕는다. 아마도 그 비파의 선율이 내는 마력 때문에 그러리라.
노의 아내는 양파를 두고 다마네기라고 한다. 양파가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보급되었지 싶은데 일본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다마는 둥근 구슬이라는 일본말이고 네기는 파를 일컫는 일본어인데 조합해서 다마네기라고 불렀던 모양이라고 노는 짐작하고 있다. 아내의 억지주장에 의하면 다마네기하고 양파하고는 맛이 다르단다. 다마네기라고 불러야지만 양파 고유의 맛이 난다는 이상한 여자다. 노의 아내, 김말순 여사도 어렸을 적에는 농촌마을에서 자랐지만 그 동네에는 양파농사를 짓지 않았던 모양이다. 양파는 사서 먹었는데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붓고 데쳐서 양파두루치기를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았다고 말을 할 때마다 침을 삼킨다. 아내는 그걸 다마네기 두루치기라고 하고 가끔 그렇게 조리를 해서 식탁에 올라오는데 노는 손도 대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하니 노가 어릴 때도 다마네기라고 불렀었다.
종식이 자지는~ 다마네기 자지라서 까도~ 까도 끝이 없네.
이런 소리에 가락을 붙이고 친구를 놀려먹던 기억이 나고 그 가락이 지금 양파를 까고 있는 노의 입에서 맴돈다.
노는 아내와 식탁에 마주앉아 같이 같은 반찬으로 밥을 먹더라도 아내는 다마네기를 먹고 노는 양파를 먹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내는 두루치기로 먹고 노는 생으로 먹으니 그런 것이 아니고 아내는 다마네기라고 생각을 하고 먹고 노는 양파라 이름하며 먹으니 그렇다.
노는 양파라는 먹을거리는 생으로 썰어서 고추장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된장이나 쌈장에 찍어 먹는 것보다 생으로 먹는 양파는 고추장과 궁합이 맞는 것이다. 고추장의 달싹하고 매운 맛과 양파의 톡 쏘는 맛이 조합되면 입안이 깔끔한 게 죽이는 맛이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중국집에서 자장면과 함께 나오는 양파는 시커먼 원액 자장에 찍어서 먹지만 그것은 양파의 진미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거기다가 식초까지 뿌리니 양파가 지닌 고유의 맛은 당연히 사라진다. 톡 쏘는 맛에 먹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양파는 오래 보관하지 못한다. 또 왕창 돈이 되는 황금작물이 아니니 비닐하우스나 특수재배를 하더라도 타산을 맞추기가 힘든 작물이라 제 철이 아닐 적에 그렇게 재배하는 사람은 없다. 고작해야 농협의 저리융자를 받아 저온창고를 지어서 보관하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어 오래 보관하지 못해 풍작으로 가격이 떨어지면 수확을 포기하고 그대로 갈아엎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걸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올해도 양파가 풍작이다.
노는 이번 달에 들어서도 양파를 서울로 가락동 농산물시장으로 세 번이나 운송했었다. 농민들은 같은 개별화물이라도 노가 소유한 적재함이 장축인 화물차를 선호한다. 같은 가격인데 짐이 많이 실리기 때문이다. 그런 짐을 실으면 빨간 망에 든 양파를 한 자루씩 얻어오기도 한다. 노는 오늘 그렇게 얻어온 양파를 장아찌를 담기위해 아내와 마주앉아 까다가 전화를 받았다. 비파소리에 취해 하마터면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 뻔했다. 전화를 받자 대뜸 경상도의 억세고 투박한 사투리가 고막을 때렸다
-노기사! 지금 구미에 계시는교? 다마네기 실로 가야 함미더.
화물알선소의 소장의 전화였다. 짐이 들어왔으면 실으러 가야겠지만 노기사라는 호칭은 개별화물을 한 지가 팔 년이나 되었지만 귀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팔 년 전까지만 해도 노기사가 아니라 중소기업이지만 ‘노 전무님’으로 불리었다. 휴대폰에 들어가는 부품회사에 다니다가 말년에 베트남 공장으로 발령을 받아 해외에서 홀로 기구하게 말년을 보내기가 싫어 조기명예퇴직을 했다. 초창기에 들어가서 회사를 함께 키운 공로로 퇴직금과 명퇴금을 왕창 받았다. 사장은 노보다 두 살이 적었는데 그의 퇴직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동고동락을 하며 회사를 키워 베트남지사까지 만들고 노가 퇴직을 선언하자 사장은 몹시 서운해 했다.
노도 아쉬웠지만 퇴사를 하고 그 돈으로 아파트생활을 청산하고 구획정리 지구에 땅을 사서 단독주택을 짓고 남는 금액으로 무얼 할까? 궁리하다가 무작정 개별화물을 웃돈을 주고 사서 역시 무작정 끌고 다녔다. 빈차로 연습 삼아 보름을 끌고 다니니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느니 담뱃값벌이나 한다고 했는데 해보니 일에 차츰 욕심이 생긴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안 된다. 아무튼, 노기사라는 호칭은 도무지 귀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때 회사를 그만두기를 백 번 생각해도 잘했다. 노는 그 생각을 하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옛날 부하직원들과 가끔 한잔하는데 들어보니 지금은 국제경기와 회사사정이 나빠져 퇴직금은 절반으로 줄었고 명퇴금은 아예 없단다. 아무려나 노는 양파를 까다가 알선소 소장이 불러주는 전화번호를 신문 모서리에 적었다.
그때 방에 있던 외손자가 나오며 소리쳤다.
-외할머니! 공부 다 했어.
초등학교 일학년인데 딸 내외가 맞벌이를 한다고 아내인 김말순 여사가 키우고 있다. 맞벌이를 집어치우고 아이나 두엇 더 낳아서 들어앉아 살림이나 하라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이놈의 나라가 어떻게 된 건지 아이를 적게 낳아서 사회를 망치고 있는데, 그걸 설명하려고하면 딸은 제사상에 탕국 냄새가 나는 소리라며 일축하며 아이하나 키우는데 얼마가 드는지 아느냐고 되바라지게 되묻는다. 그 생각을 하니 노는 괜히 부아가 인다.
-야, 이놈아! 공부를 다 한 놈이 어디 있냐? 죽을 때까지 하는 게 공부인데?
노는 외손자에 한마디를 던지고는 신문 모서리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다. 화물은 김천 지례에 있는데 지금 트랙터를 이용해서 농로로 꺼내고 있으니 네 시까지 오라는 주문이다. 네 시에 가서 상차를 하는데 두어 시간 걸리면 오늘도 올빼미 운전이다. 가다가 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녘에는 가락동에 도착해야 할 것이다. 회사에 다닐 적에는 불면증으로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개별화물을 하니 웬 잠이 그렇게 쏟아지는지, 이상한 일이 아니라 환장할 일이다. 노는 시계를 본다. 지금이 두 시이니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여도 무방하겠다.
노는 아내에게 한 시간 후에 깨워 달라고 말을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며 노는 인생도 양파처럼 새로 까면 매끈한 속살이 두세 번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환갑을 넘은 나이라면 양파로 치면 한 꺼풀을 걷어낸 나이인지도 모른다. 아니, 회사를 그만두고 개별화물을 시작하면서 그때 한 꺼풀을 벗겨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내는 올빼미 운전이 위험하다며 이제 그만하고 쉬라고 했지만 엊그제 환갑을 넘겼으니 이제야 말로 한참 일할 나이라고 노는 생각한다.
-이제 길이 났어. 한참 일할 나이야.
노는 아내의 말에 매번 그렇게 일축한다.
밤새 운전을 하고 내려와 충혈이 되어 벌건 눈으로 집에 들어와서 오전 내내 자는 모습이 아내가 보기에는 짠한 모양이었다.
친구들 중에서 뒷전으로 물러난 인간은 아직 아무도 없다. 모두들 자신의 일을 가지고 생업에 열중하고 있다. 아직은 쉬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쉬는 게 더 곤혹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다.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으로 일하는 친구도 있는데 개별화물이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존심 상할 일도 없다. 관광버스나 택시처럼 손님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 볼 일이 없고, 정기 노선버스처럼 정류장마다 정확하게 시간을 맞출 일이 없으니 맘이 편한 직종이다. 그리고 집에만 박혀 있는 게 아니고 이틀이나 사흘에 걸러 한 번씩 서울이나 다른 도시로 유람삼아 다녀오는 것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방법이다.
산~~노을에 두둥실~~떠도는~~ 유랑별처럼~~
누구의 노래인지 모르지만 유행가 가사가 불쑥 떠오른다. 뽕짝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고. 유행가 가사도 새겨들을 일이다. 시가 노래가 되는 것이다. 뽕짝가사라고 생각하지 말고 시라고 생각해야 한다. 유랑삼아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아내는 둘러댈 핑계가 없으니 이젠 우울증을 들먹인다. 노가 야간운행을 나가고 없는데 혼자 자니 우울증이 온다는 말이다. 그러나 노에게는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우울증?
-이런?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건 등 따시고 배가 불러 오는 병이다. 배가 부르고 바쁘지 않아서 그렇다. 배가 고프거나 바빠 봐라. 우울증이 걸린 짬이 있나? 노는 항상 그런 소리로 무시한다.
우울증을 생각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던가?
아내가 깨워 일어나니 세 시다.
잠깐 자고 일어났지만 몸이 훨씬 홀가분하다.
아내는 이미 식탁에 밥을 차려놓았다. 저녁이라고 하기에는 이르고 점심이라고 하기에는 늦은 식사다. 어중간한 시간에 나갔다가 저녁을 굶기가 십상이라는 걸 아내는 알고 있다. 노는 넘어가지 않지만 아내의 눈을 의식해서 찬물에 말아서 한술을 뜨고 집을 나왔다.
김천 지례에 도착을 하니 예상보다 조금 일렀다.
여기저기 농지에서 트랙터로 양파 포대를 실어서 꺼내 농로 가장자리에 쌓고 있었다. 한창 수확기라 온 들판이 다 그런 풍경의 일색이었다. 지례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양파의 산지다. 노의 화물차 말고 얼른 보아도 열댓 대의 화물차가 큰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양파를 실으러 온 화물차들이다. 양파를 화물차에 적재하는데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그러니 빨라도 여섯 시는 되어야 출발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앞에 기다리는 차들이 같은 농지의 양파를 실으러 왔다면 더 늦을 수도 있다.
노가 화주에게 전화를 하니 큰길에서 두 번째 있는 농지란다. 노는 차를 큰길에 세워두고 양파작업을 하는 두 번째 농지로 가서 둘러보았다. 어지간히 다 꺼내간다. 노가 다가가가 인사를 하니 밀짚모자를 쓴 양파주인이 차를 먼저 농로로 밀어 넣으라고 손짓을 했다. 첫 번째 농지의 차가 먼저 들어가면 길이 막힌다. 농로는 포장되어 있지만 돌릴 곳이 없어 차는 후진으로 들어가야 했다. 노가 차를 후진으로 밀어 넣으니 첫 번째 농지의 양파를 실으러 온 차도 후진으로 따라 들어왔다. 노를 기다렸던 차인 모양이었다.
양파를 다 싣고 결속을 마치는데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결속은 노가 직접해야한다. 잘못 묶었다가는 가다가 짐이 기울면 그런 낭패가 없다. 단단히 쟁여서 결속을 마치고 나니 앞에 있는 차도 적재를 마치고 결속을 하고 있었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차는 출발할 수가 있겠다. 양파는 운임을 먼저 받고 가락동 상인에게 넘겨만 주면 된다. 양파 값은 바로 밭주인의 계좌로 송금이 되는 시스템이다.
이 시간에 출발하면 가다가 차에서 좀 자도 무방하리라. 아주 작지만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공간이 운전석 뒤에 있는 화물차였다. 그곳에는 차의 전열을 빼서 스위치를 켜면 자동으로 히터가 들어오고 작은 베개와 담요도 한 장 실려 있다. 한사람이 누우면 딱 맞은 공간인데 올빼미운행을 하는 화물차에는 필수공간이다.
곧이어 앞차가 빠지고 출발을 하니 짐이 어지간히 실린 모양이다. 빈차보다 운전대가 무겁고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김천까지 국도로 나와서 고속도로에 올릴 수가 있었다. 고속도로에 올리니 라이트를 켤 시간이 되었다. 지금부터 야간운전인 셈이다. 승용차야 가락동까지 서너 시간이면 족하겠지만 화물을 실었으니 다섯 시간을 잡고 가면 넉넉할 것이다.
지방의 화물차들은 내려오는 짐을 잘 차야한다. 올라가는 운임만으로는 타산을 맞추기가 힘들다. 화물을 싣고 올라가서 빈차로 내려오면 남는 게 없다는 얘기다. 올라가면서 화물 알선소에 전화를 넣어 순번을 받아야 한다. 구미나 김천, 좀 멀면 대구로 내려오는 짐을 실어야 그게 남는 것이다.
-개별화물 재미가 있어요?
류 과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귀에서 풀어진다. 며칠 전에 류 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류 과장의 전화를 받고 보니 그도 이제 갈 때까지 간 모양이었다. 오십이 다 되어 철이 드는지 개별화물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조언을 구했다. 그의 입에서 개별화물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류 과장의 성격은 진취적이고 저돌적이다. 허나 뒤처리를 해줘야하는 사람을 하나 붙여야 한다. 언제나 뒤처리가 깔끔하지 못한 게 흠이다. 류 과장의 전화를 받고 속으로 외쳤다.
그대 이제 보이는가? 그대의 찢어진 가랑이가. 내가 그렇게 말렸지? 멥새가 황새 흉내 내다가 찢어진 그대의 가랑이가 이제는 보이는가?
류 과장은 회사에 있을 적에 부하 직원이었다. 류 과장은 부장으로 명예퇴직을 했지만 노는 부장이란 직함보다 류 과장이라고 불러야지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전화의 요지는 개별화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노가 회사를 그만두고 밑에 있던 류 과장이 부장으로 진급하면서 또 베트남으로 발령을 받자 베트남으로 가서 일 년 남짓 버티다가 들어와 명예퇴직을 하고 다른 휴대폰 부품업체에 납품을 하는 이른바 이차밴드를 설립했다. 퇴직금과 명퇴금 그리고 대출을 왕창 내어서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한 비산동에 있는 작은 정밀공장을 사서 다 헐어내고 기계를 들여 넣고 사람을 넣어 공장을 차린 것이다. 노가 그렇게 말렸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기어이 저지르고 마는 성격을 이기지 못했고 류 과장 사장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거였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공장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헌데 휴대폰이 스마트로 진화하면서 거의 두 달 걸러 모델이 새로 나오니 겨우 인건비 따먹기를 하는 이차밴드에서는 그때마다 바뀌는 모델에 맞추어 설비를 할 능력이 없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제가 몸담고 있었던 공장의 사장과 비교를 하는 못된 버릇이 류 과장에겐 있다. 그렇게 비교하다가 종내에는 손을 든 것이다. 달리 말하면 멥새가 황새 흉내를 내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격이다.
어떤 제품이든 완성업체는 절대로 하청업체에 대한 배려가 없다. 소비자에 대한 배려만 있지. 헌데 하청업체의 하청을 받아야하는 이차밴드야 오죽하겠는가. 류 과장이 공장을 차리고 다 말아먹는데 오 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장 직함을 달고 베트남에 있을 적이 그의 전성기였다. 대출받은 이자가 밀리자 공장은 팔 사이도 없이 경매로 넘겼다는 소리를 들었다. 다행히 그 땅은 공장부지로서는 요지이고 그 사이에 지가가 올랐으니 경매로 넘겨 은행대출과 이자를 다 갚고 남는 금액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노가 알기로는 그 금액이 퇴직금과 명퇴금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넣기에는 늦은 나이이고 그 돈으로 무얼 할까 고민 하다가 노를 전범으로 생각해서 개별화물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류 과장이 개별화물을 들먹이자 노는 언제 시간이 나면 소주나 한잔하면서 찬찬히 얘기하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개별화물 이것도 쉬운 게 아니다.
노는 개별화물의 선수가 되는데 꼬박 오 년이 걸렸다. 운전을 배우고 길을 익히는데 그 기간이 걸린 게 아니고 짐을 차는 방법을 찾는데 그 기간이 걸린 것이다. 거듭되는 말이지만 내려오는 짐을 잘못 차면 남는 게 없다. 적은 짐은 두세 군데 것을 합쳐서 내려와야 한다. 그러니 짐을 실을 때도 배송위치를 감안해서 내릴 순번을 생각하고 실어야하는데 그것도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런 건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 터득해야하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류 과장은 성격상 개별화물 타입이 아니다. 또 마음을 굳혔다면 어떻게 말려야할지 모르겠다.
류 과장을 생각하며 추풍령을 넘고 옥천 휴게소로 차를 밀어 넣었다. 옥천 휴게소는 화물차 전용휴게소라 승용차가 그리 많지 않다. 가끔은 화물차 기사들끼리 정보를 교환해서 배송을 고려하여 작은 짐은 바꾸어 싣기도 한다. 노는 화물차 주차구역에 차를 세우고 차를 한 바퀴 둘러보며 적재상태를 살폈다.
적재상태는 양호하다. 적재상태가 양호하면 농산물중에서 이런 양파야 도난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고가의 전자부품이나 귀중품을 실었을 적에는 분실 및 도난에 신경이 쓰여 화장실을 다녀오는데도 불안한 경우가 있다. 사고가 나더라도 적재물건의 손괴에 대해서는 자동차 보험이 적용 안 되는 보험회사로서는 면책사항이다. 운송업자가 책임을 져야한다. 같은 값의 짐을 싣더라도 적재에 시간이 좀 더디지만 이런 물건이 속 편하다.
밤 열 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노는 화장실을 다녀와서 운전석 뒤의 간이침대로 들어가 누웠다. 휴대폰의 알람은 새벽 두 시로 맞추어놓고 누운 것이다. 빈차로 운행하는 것보다 적재물이 실리면 확실히 몸이 피곤하다. 자신도 모르게 용을 쓰이는 모양이다. 아내 말처럼 언제 그만 두어도 이 개별화물은 그만두게 되겠지. 넘버값이 있으니 실컷 쓰다가 팔아도 폐차비가 상당히 나오는 셈이다. 언젠가는 그만 두게 되고 이 차도 언젠가는 폐차가 될 것이다.
모든 대상은 소멸을 전제로 존재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 지구도 종말이 올 것이고 몇 억 광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주계도 소멸이 될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되리라. 하물며 이런 화물차야 오죽하겠는가. 그렇더라도 폐차가 될 때까지 아껴가며 운행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의 나락으로 빠져 들었다.
노는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휴대폰 액정의 시계를 보니 정확히 새벽 두 시다. 언제 출발을 했는지 바로 옆에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던 화물차들은 떠나고 난 다음이었다. 내려서 보니 휴게소 주차장은 썰렁하고 한적했다. 주위에 띄엄띄엄 화물차 몇 대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고 있었고 승용차 주차구역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노는 수건을 챙겨들고 휴게소 마당을 가로질러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에 묻은 잠을 말끔히 씻어내고 나오면서 커피자판기에서 밀크커피를 한 잔 뽑았다. 지금쯤 출발하면 도로도 한산하고 가락동까지는 여유 있는 시간에 도착하리라. 커피를 뽑아서 조심스레 들고 차가 있는 곳으로 오니 웬 아가씨가 차 뒤에서 나왔다.
야심한 시간에 웬 아가씨?
노는 조금 생경스럽다고 생각했다. 짧은 스커트에 하얀색 얇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아직은 쌀쌀한 밤이라 좀 추워보였다. 얼른 보아도 말로만 듣던 고속도로의 꽃뱀은 아닌 것 같다. 차를 놓친 아가씨다. 하긴, 요즘은 꽃뱀이 사라졌다는 소리도 들은 터라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저씨! 아니, 사장님! 차에 실린 게 뭐예요?
-양파인데 왜 그러시우?
노는 들고 있던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고 되물었다.
-그럼 가락동으로 가시겠네요? 저 좀 태워주세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아가씨가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있어요? 혹시 심야버스를 놓쳤어요?
-아니에요. 가면서 얘기해요. 저쪽으로 타면 되죠?
아가씨는 조수석을 가리켰다. 화물차는 승용차와 달리 그런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바로 올라가지 못한다. 노는 문을 열고 차에 올라가 반대편 문을 열고 조수석으로 아가씨의 손을 잡고 끌어올렸다.
-차가 보기보다 되게 높네요. 우와! 높은 게 전망 좋고, 이 차를 타고 가면 되게 재밌겠다.
조수석에 자리를 잡은 아가씨가 조수석 의자의 쿠션을 테스트 하는지 엉덩이를 굴리며 쾌활하게 감탄을 했다. 노는 운전대를 잡고 유연하게 휴게소를 빠져나와 고소도로에 올리며 속력을 냈다. 운전을 하면서 힐끔 보니 아가씨는 입술이 도톰하고 콧대가 선명한 게 밉지 않은 인상이었다. 차가 정속이 되고서 아가씨에게 물었다.
-대체 이 시간에 아가씨가 왜 거기에 있었어요?
-저 오늘 찢어졌어요.
-찢어지다는 뭐가 찢어졌다는 말이오?
-사장님 연세가 올해 얼마예요?
노의 물음에는 대답이 없이 아가씨는 느닷없이 노의 나이를 물었다.
-이제 환갑이 지났는데.
-그럼 말씀을 낮추세요. 듣기가 송구스럽고 거북해요. 아버지뻘인데....... 저 오늘 남친과 헤어졌다는 말이에요.
-남자친구?
흥미로웠다. 노는 야간운전을 하면 고속도로의 황제라 불리는 나운도의 노래를 들으며 운전을 한다. 그의 노래 뽕짝부터 민요까지 약 120곡 정도가 USB에 담겨 카 오디오에 꽂혀 있다. 노는 그 무명가수를 개별화물을 하며 알았다. 화물차운전자에게 인기를 모아 유명세를 탄 그는 전자오르간의 달인이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노래까지 다한다. 전자오르간만 있으면 정말이지 혼자서 하루 종일 신명나게 놀 수 있는 가수다. 특이사항이라곤 자신의 노래는 한 곡도 없다는 점인데 남의 노래를 신명나게 부르는 가수다. 항상 야간운전에서는 잠을 쫒으려고 그의 노래를 들으며 따분한 시간을 보내며 다녔는데 오늘은 그런 노래를 듣지 않고 젊은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갈 수가 있겠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거 하고 그 시간에 거기에 있었던 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사장님은 화물차 운전이나 하실 분 같지가 않아요. 일찍 명퇴하고 아르바이트 삼아서 하시는 거죠?
아가씨는 또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소리를 했다.
-거, 아가씨 참 귀신이네. 그런데 화물자운전수라고 마빡에 써넣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았어요.
-사장님,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꼭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같은 분위기예요.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아저씨라고 불러요. 듣기가 거북하구만요.
-좋아요. 아저씨라고 부를 터이니 말씀을 낮추세요. 그러면 되겠네요. 제 이름이 진솔이예요. 류진솔! 진솔아! 그렇게 불러도 돼요.
상당히 쾌활한 목소리로 제의했다.
-그렇게 합시다. 헌데 야심한 시간에 왜 거기에 있었지?
진솔이라는 아가씨는 진솔하게 자신을 밝히고 오늘 있었던 일도 진솔하게 밝혔다. 진솔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서울에서 작은 전자회사의 경리부에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자친구와 사귄 지 겨우 팔 개월이 되었는데 남자친구의 고향이 대구라고 했다. 오늘 그러니까 어제 대구에서 남자친구의 고등학교 동창들 모임이 있어서 거기에 가자고 하도 졸라서 오전 일을 하고 조퇴를 해서 따라갔단다. 헌데, 그 모임에는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여친을 데려오기로 했던 모양인지 여자 친구들이 많이 따라왔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들 모임인줄 알고 따라갔는데 가서보니 전문대학의 과모임이었다고 했다. 첫 번째 남자의 거짓말이 탄로 난 것이었다. 어느 전문대학 건축과를 나왔다고 했다.
-그 자식이 나에게는 지방이지만 국립대학 출신이라고 했거든요. 거기 모인 놈들 다 노가다꾼이었어요.
노는 아가씨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거짓말은 그것 하나뿐이 아니었어요.
지금 다니는 회사 정규직인줄 알았는데 임시직이라는 것이 친구들과 주고받는 대화에서 탄로 났고, 직책이 대리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자격증도 없는 건축기사이고 대구의 빵빵한 집안이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딴살림을 차려서 나가고 어머니는 변두리에서 작은 식당을 한다는 것을 다른 친구들을 통해서 들었다고 했다. 심지어 그 자식이 타고 다니는 차도 할부라는 것을 오늘 알았다고 했다. 밤 열 시에 모임을 마치고 그 자식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아! 바가지 좀 그만 긁어!”
-내가 쫑알대니 글쎄 이 자식이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내가 제 마누라예요? 기가 차서 입을 닫았어요. 그리고 결심했죠.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 자식아!
종내에는 진솔이가 헤어지기로 결심을 하고 입을 닫았는데 같이 동승해서 서울까지 올라가려니 갑갑해서 미칠 지경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옥천 휴게소에 들렀을 적에 화장실 간다며 백을 들고 나와서 노의 화물차 뒤로 숨어버렸다고 했다. 숨고 나니 커피를 다 마신 녀석이 줄기차게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서 휴대폰 배터리를 빼버렸다는 것이었다.
-진솔씨라고 했나? 그 친구 지금까지 휴게소에서 찾는 거 아니야?
-상관없어요. 차라리 잘 되었어요. 지금부터 공부할 건데 방해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진솔씨는 어느 대학 출신인데?
아가씨는 서울 어느 여자대학을 나왔고 수학을 전공했는데 곧 회사를 그만두고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할 거라고 묻지 않은 말까지 했다. 노는 밤새 잠을 못자서 아침에 출근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진솔은 곧 그만둘 회사인데 상관이 없다고 했다. 집안사정이 안 좋아져서 서울에 체류할 수 있는 돈만 모으면 회사를 그만 둔다고 했다. 고시원에 들어갈 생각인데 그 목표치를 거의 다 벌었다는 말까지 했다.
-지금이라도 눈 좀 붙이지?
-상관없어요. 제가 자면 아저씨가 심심하잖아요? 무슨 말이든 자꾸 할게요. 근데 이 양파 어디서 싣고 오는 거예요?
-김천 지례. 거기가 양파의 산지지. 아주 거대하게 농사를 짓고 있어.
-우리 고향하고 가깝네요.
-아가씨 고향이 어딘데?
-구미요.
-구미? 구미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를 간 거야?
-왜 그렇게 놀라세요? 서울로 이사를 간 게 아니고 아직 남동생과 부모님은 구미에 계세요.
-구미 어디?
-시청 앞 송정동입니다.
노는 자신의 집도 구미라고 했다.
-아! 그래서 차가 경북넘버였군요.
진솔은 휴게소에서 숨으면서 옆에 있는 전남넘버의 차보다 경북넘버의 차가 있기에 부탁을 하면 들어주실 것 같아서 그 차 뒤에서 기다렸다고 하며, 전남넘버를 단 기사가 출발을 할 적에 얼른 보니 기사가 너무 젊어서 위험하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그냥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가 내려서 씻으러 갈 적에 얼굴을 보고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같이 생겨서 마음을 놓았다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구미에서 나왔다고 하며 현재 직장 때문에 서울에 혼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느냐고 묻자 도량동에 있는 G여고를 나왔다고 했고 노는 자신의 딸도 그 학교출신이라고 했다. 따님이 몇 살이냐고 진솔이가 물었고 노는 나이가 많다며 시집을 가서 아이가 초등학교 일학년이라고 했다.
-그 G여고를 나왔다면 공부를 잘 했던 모양이네?
-따님도 공부를 잘하셨던 모양인데 우리 선배님이 되네요. 반갑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진솔이가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쾌활한 처녀였다. 노는 운전대를 잡은 한 손을 풀어서 뻗어 악수를 했다.
-아버지는 구미에서 뭐하시는 분인데?
-우리 아버지요?
-작은 공장을 하다가 망했어요. 지금은 쉬고 계시는데 개별화물을 하실 생각인가 봐요. 아저씨! 이 차도 개별화물이죠?
-개별화물은 맞는데 개별화물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아버지가 공장을 오래하셨던 모양이지?
아니라고 했다. 회사 생활을 오래하다가 진급을 하면서 베트남지사 본부장으로 갔다가 못 견디고 일 년 반 만에 들어와서 공장을 직접 차렸다고 했다. 영판 류 과장과 같은 케이스이구먼! 노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가씨의 말을 자르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다니던 그 공장에 납품을 하는 게 아니었고 다른 공장에 납품을 하다가 경영난으로 대출금과 이자를 갚지 못해 공장이 경매로 넘어갔다면서 자신의 아버지는 경영에 소질이 없는 모양이라고 했다. 경영에 소질이 없는 게 아니고 납품업체에 접대를 하는데 소질이 없는 모양이라고 고쳐서 말하고는 혼자서 소리 내어 웃었다.
-납품을 해서 단가를 제대로 받으려면 납품업체 담당자를 불러내서 술 먹이고 아가씨 붙여주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게 먹이사슬의 원칙이죠. 그렇죠? 아저씨!
-나는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그렇겠지? 근데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돼?
-류 덕기씨예요.
-류 덕기?
노는 놀라지 않았다. 그 이름이 대답으로 나올 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 처녀가 바로 그 아이였구나.
-왜요? 아저씨 아시는 사이세요?
-아니, 이름은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노는 속으로 저어기 놀라면서 내색하지 않았다. 류 과장은 결혼초기에 아기가 들어서지 않아서 애를 태웠다. 그 때가 아마도 류 주임시절이었지 싶다. 결혼 십 년이 넘어도 아기가 들어서지 앉자 그의 아내와 다니는 절의 스님을 통해서 대여섯 먹은 딸아이 하나를 어디서 입양한 것으로 들어서 알고 있다. 그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느지막하게 아이가 들어서서 낳아보니 아들이었다. 그 때가, 노가 짐작하기로는 류 과장이 대리로 진급하면서였지 싶다. 생남과 진급을 함께 축하한다면서 회식을 걸쭉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얼추 십오 년이나 이십 년이 다 되어가지 싶다. 노가 퇴사한지가 팔 년이다. 지난 세월을 속으로 짐작하니 그 정도가 되었겠구나, 확실하다. 노는 운전대를 잡고 고개를 주억였다. 그때 입양한 아이가 바로 이 처녀다. 노는 처녀에게 나이를 물었다.
-지금 스물넷이요.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죠?
-남동생은 몇 살인고?
지금 중학교 이학년이라고 했다. 그 정도 되었겠구나. 헌데 이 처녀가 자신의 출생비밀을 알고 있을까? 노는 그 점이 심히 궁금했으나 입을 뗄 수가 없었고 류 과장이 참 정성들여 출중하게 키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생각하니 류 과장은 성격은 그래도 참 고마운 사람이구나, 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조금 가면 휴게소가 있는데 거기서 커피나 한잔하고 갈까?
-좋아요. 제가 사드릴게요. 피로회복제로 마시죠.
-그거 좋지.
노는 처녀를 돌아보고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가 엔진소리 부드럽게, 유연하게 나간다. 양파를 실어서인지 또 어디서 비파소리가 노의 귀에 들린다. 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에 또 고개를 빼서 끄덕이며 장단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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