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
공자와 살구나무
입력 : 2022.06.21 03:00 수정 : 2022.06.21 03:02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며칠 전 마트에서 살구를 만나니, 마치 오랜 친구를 본 듯 반가웠다. 좀처럼 전통 과일을 보기 힘든 요즘, 특히 앵두와 살구는 도시는 물론 시골에서도 찾기 어렵다. ‘나에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중국이 고향인 살구나무는 <산해경>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역사가 오래다. 요염한 꽃과 달콤한 열매가 일품이며,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고사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살구나무 단의 행단(杏壇)을 어떤 이는 은행나무 단이라 한다. 이런 논쟁이 요즘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미 조선시대에도 이수광과 정약용은 행단의 나무를 살구나무로, 이규경과 허목 등은 은행나무라고 주장했다. 최근 중국 칭화대학의 팽림(彭林) 교수는 공자의 행단에 심긴 나무가 살구나무였음을 몇 가지 근거를 들어 입증했다. 그는 공자의 45대손인 공도보가 북송 천희 2년(1018)에 행단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북송시대 이전의 문헌에는 은행이라는 명칭 자체가 사용되지 않았고, 남방 지역에서만 자랐다고 한다. 진(晉)나라 때는 은행을 평중, 송나라 때에는 압각수라 불렀고, 은행이라는 명칭은 1054년 구양수의 시에서 처음 등장하였다고 하니 꽤 설득력 있다. 팽림 교수는 은행나무가 한국과 일본으로 전래된 것은 당나라 때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서원과 향교에 살구나무 대신 은행나무를 심은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은행나무가 크게 자라며 장수하고, 이름도 ‘은빛 살구(銀杏)’인 데다가 중국에서 왔으니, 행단을 은행나무 단으로 짐작했을 것이다. 또한 살구꽃이 핀 마을인 행화촌이 술집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기도 하여 살구나무의 부정적 이미지도 강했으리라. 이런 까닭에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공자와 관련된 나무는 은행나무’로 각인된 것은 아닐까. 서울 성균관뿐 아니라 아산의 맹씨행단에도 은행나무가 심겨 있다.
우리와 달리 중국에는 살구꽃이 ‘과거 급제화’라는 별칭이 있다. 과거 합격자들의 축하 파티가 산시성 시안 곡강 인근의 살구꽃 명소 행원(杏園)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산둥성 취푸현 공자를 모신 공부(孔府)의 행단 주변에는 은행나무가 아닌 살구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런데도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행단의 나무를 은행나무로 믿고 있다.
공자가 말씀하신다.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저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