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정하신 뜻: 작정
미리 아신 대로: 예지.
하나님께서는 미리 계획하신 다음에 아심. 즉 작정에 근거해서 아심.
예정예지: 주의주의 voluntarism. 의지가 앞선다. 미리 정하신다.
예지예정: 주지주의. 천주교. 미리 보고 정하심. 하나님을 조금 더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독재자 같으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 종속하시는 분이 된다.
[지혜: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식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시는 데 적용하시는 그의 속성]
작정: [단일하고 전 포괄적이며 동시적인 행동]
1) 자신의 지혜에 근거하여 정하심. 하나님이 가장 지혜롭고 선하신 뜻대로 이루심.
2) 한번 정하신 것은 불변하다 (하나님의 성질; 불변성)
우리가 계획을 바꾸는 이유; 지혜가 모자라서 계획을 잘못 세움. 또는 우리가 굉장한 계획을 세웠는데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어서.
3) 작정은 영원하다. (창조하기 전부터 있으면서 계속되어 진다)
4) 하나님이 중요한 일만 작정하신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전 포괄적으로 계획하셨다. All comprehensive. 일어날 모든 일을 포괄함.
a. 선한 일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중생)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를 믿는 자는 반드시 선한 일을 하도록 지음 받음.
b. 공로의식이 없어짐. 하나님이 영원 전에 작정하심.
빌 2:12-13: 두렵고 떨림으로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Kierkegaard의 공포와 전율은 여기에서 온 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심.
벧전 4:11 “만일 누가 …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하나님께만 영광: 치유하는 은사가 있다면 알리지 않고 같이 기도하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치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연은 없다. 우연/행운/불운/재수/운수라는 말은 없다.
왕상 22:4-35: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내려감. 대답을 해 놓고 다음에 하나님 뜻을 물어봄. “우연히” 아합을 죽임. 그러나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있었음.
à 우연히 일어난 일이란 없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심
-죄악된 일: 가장 큰 죄악은 십자가 사건. 그러나 미리 정하신 대로 내어주신 바가 됨. 죄악된 일도 하나님이 작정 à 허용.
5) 죄악에 대해서는 허용적 작정
선악과를 먹지마라: 교훈적 의지.
가롯 유다: 작정적 의지.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셔서, 인격적 순종을 하시도록 하셨다. 인격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대하셨다.
자유도 작정에서 나온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상상하시지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작정적 의지
철학적 의미로서는 항상 자유의지가 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이 우리에게 obligation이나 impulsion을 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원해서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으로 볼 때는 작정.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고, 따라서 매순간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은 인간이 하는 것이다. 다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에 하나님이 작정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자유까지도 하나님께서 작정하셨으므로 우리가 어느 길로 가던지 이미 작정은 되어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을 믿고, 교훈적 의지에 따라서 살면 된다.
하나님의 작정은 사건이 일어난 후에 깨닫게 되므로, 무언가를 하기 전에 하나님이 작정하셨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스스로 나를 위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두개의 축을 항상 똑같이 잡고 있어야 한다: 작정(하나님의 주권)과 의무(책임과 자유)
행 27:9. 우리의 사역을 통해 믿게 된 자는 구원키로 작정된 자들이다. 우리는 누가 작정되었는지 모르므로 열심히 전도하여야 한다.
우리는 작정을 모르므로 교훈만을 찾아간다.
초 칼빈주의; hyper Calvinism. 이단에 가까운 사이비. 칼빈주의가 아님. 작정만 강조하여 운명론에 빠진다.
동양 운명론; 사주팔자
서양 운명론; 희랍문학 오리시우스 이야기.
신 29:29 감추어진 일(하나님의 작정)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율법)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창조와 섭리가 이루어 진다. 섭리는 하나님의 작정대로 창조를 이끌고 가는 것. 하나님은 작정하시고 우리는 교훈적 의지에 따라서 매 순간 결단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크신 일을 찬양하고
나쁜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의 불순종에 의해서 일어난 것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 원망하거니 미워해서는 안 된다. 용서할 수가 있다.
B. 예정
구원을 위한 작정. Predestination. 예정은 작정의 한 부분. 17세기부터 사용된 말.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엡 1:4 곧 1)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2)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3)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4)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5)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행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두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시는 수단이였다
행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할 자시다.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 이들을 위해 사도 바울이 사역을 한다.
벧후 2:1 거짓 선지자, 거짓교사가 항상 있다. 이러한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
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작정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 유기 된 자. Reprobation.
double-predestination: 유기(선택하지 않은 것)가 없으면 선택도 없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 어거스틴도 믿음.
근데 유기는 빼자. 기분 나쁘니까. 이런 사람들을 single predestination 단일예정.
- Horst Poehlmann: “Abriss der Dogmatik” Guetersloh. 17세기 정통신학을 잘 정리함.
“바울은 은혜로서의 선택을 말하지, 유기를 말하지 않는다. 이중예정의 표상은 비성경적이다. 이중예정은 인간을 모독하는 설”
- Emil Brunner: “Unser Glaube”. 성경이 말하는 불균형을 그대로 놔 두라: 유기는 말하지 말라. 단일예정 주장.
- K. Barth: 우리는 이중 예정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예정론은 다른 의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심.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버림받은 사람. [“Der Einzig Verworfene” 그리스도 혼자서만 버림받았다. 우리는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뉘앙스. 만인 구원론에 가깝다]. 바르트 책은 배울 것이 많다.
- Tom Torens: 그의 제자. 스스로 은혜를 차단하는 사람은 어린양의 진노 가운데서 있다 .
Arminian주의: 예지 예정. 신인 협력설. Semipelagianism(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보다 조금 낫다.
믿음이 좋다는 말은 나쁜 말이다.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 피를 흘렸는가? 자기 백성을 위해서. 피 한 방울도 헛되지 않다. 선택된 자들을 위해서만 피를 흘림. 이들 때문에 불신자들이 덕을 봐서 살고 있다 (일반은총)
17세기 화란의 개혁파 신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논쟁. 표현에 속지 말것.
전택설: “타락이 이루어 지기 전에 선택했다”라는 의미가 아님. 에베소서에서 창세전에 선택했다고 함.
작정의 순서:
모든 인류: 창조(모든 사람 창조/ 아담, 하와), 타락
택자: 구속, 적용(성령)
작정의 순서: 영원전에 하나님의 머리속에서 생각.
시나리오 1
1. 선택/ 유기
2. 창조 작정
3. 타락 허용 작정
4. 선택된 자를 구속하기로 작정
5. 적용 작정
시나리오 2
1. 창조 작정
2. 타락 허용 작정
3. 선택/ 유기 (이유없이 무조건 선택)
4. 구속
5. 성령 적용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 순서이다.
굳이 따질 필요는 없지만 유익을 얻기 위해 따져본다. 무조건 적이 강조되어서 유리하다.
Dort(recht)회의:
알미니안 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란 도르트레히트에서 열린 종교회의. 1619에 끝남. 알미니안 주의 정죄. 이것은 역사적인 선언이다. 그렇게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알미니안 주의는 역사적 이단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알미니안 주의를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웨슬리(자신이 알미니안 주의자라고 밝힘)는 자신에게 일어난 구원을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우리는 판단한다. 물론 그는 이단이 아니다.
구원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즉 구원을 잘 설명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도르트회의는 후택설을 택하고 전택설을 정죄하지 않음. 소수의 사람들은 “시나리오 1”만 선택할 것만 주장. 정죄를 하지 말고 유익한 토론을 하기로 결정.
2. TULIP
Dort회의 내용을 5가지 내용으로 요약한 것. 5가지의 첫 자를 따온 것. 화란은 튤립의 나라이다.
Total Deprevity
Unconditional Election
Limited Atonement
Irresistable Grace
Perseverance of the Saints
Total Deprevity: 완전타락. 인간에게 타락으로 물들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다.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 Inability가 함의됨. 스스로 구원으로 결정할 수가 없다. 자유의지 부인. 이에 알미니안 주의는 인간은 복음적 순종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침. 즉 복음을 듣고 결단 할 수 있다고 à 부분타락.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적 선택: 하나님의 선택에는 조건이 없다. [무조건적인 선택을 조금 약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안들이 있음] 알미니안 주의는 Conditional Election. 즉 하나님의 예지예정으로 구원 받을 자들만 선택하심. Saumur(소뮈르)는 가정적 보편구원설 주장. 그는 원래 칼빈주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생각하심. 그러나 실제로 택함을 받은 사람들만 구원.
Limited Atonement: 제한구속. 예수님은 선택된 자들만을 위해서 돌아가심. 예수님의 피는 헛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함. 알미니안 주의는 보편구속. 십자가는 만민을 위한 것.
Irresistable Grace: 저항할 수 없는 은혜. 하나님의 중생의 은혜는 우리가 저항할 수가 없다. 100%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 그러나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는 잘못된 확신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Perseverance of the Saints: 성도의 견인. 구원은 취소가 안 된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붙들고 계신다. 영원가운데서 나를 선택한 은혜. Our great salvation! 만약 우리가 다시 타락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불안해진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너무도 작다.
Once saved, eternally saved. 한번구원, 영원구원.
[이 말은 튤립을 짤막하게 설명한 말이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을 비난하는 말로도 사용됨. 실제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에 대해 칼빈주의자들은 구원 받은 자들은 반드시 성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 주의 사이에 지나친 다툼이 일어나거나 서로 정죄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구원을 설명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본회퍼의 값싼 은혜: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도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구원을 잃을 까봐 두려워 하라는 말이 아니다.
알미니안 주의의 3가지 문제:
인간의 전적타락을 부인함
하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들을 결과적으로 다 못 구원하심: 하나님의 무능.
하나님의 구원을 확실하게 붙잡지 못함.
튤립은 성경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사람은 100% 노력을 해야 함. 항상 회개를 해야 함. (simul iustus et peccator: 의인인 동시에 죄인. 루터의 말) 최선을 다해서 복음 전파. 인간에게 책임과 자유가 있지만 단지 구원은 하나님이 하신다.
Monergism: 독력주의.
Synergism: 신입협력주의 (알미니안 주의)
C. 창조
* 서론적인 문제들
창조와 섭리는 영원 전에 하신 작정을 이루어 나가시는 방법.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세상의 모든 지식은 많은 부분이 믿음으로 안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은 일일이 검증해보지 않고도 믿음으로 안다. 불신자들은 검증을 요구.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검증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검증이 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세상에는 믿음으로 아는 지식이 상당히 많다. 20세기 종교철학자들은 이것을 Basic Belief(근원적 신념)라고 한다. 하나님의 세상 창조의 믿음도 이와 같은 원리이다.
현대인의 언어구사:
안다 – 정확히 아는 것.
믿는다 - 불확실한 지식. 확신이 조금 없는 것.
의견 – 내 생각.
기독교: 믿는 것은 아는 것보다 훨씬 분명한 것(칼빈: 믿음은 "확실한 지식").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천지창조를 역사책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배웠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사실과 그 의미까지 성경에서 배웠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알아야 한다.
자유주의자: 사실은 안 받아 들이지만 의미는 받아들인다.
사실을 믿지만 의미는 불신하는 사람들과, 의미는 믿지만,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사실과 의미를 동시에 받아들여야 한다.
천지창조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
공자쪽; 이 세상의 일도 모르는데, 하늘의 일을 어찌 아리요.
철학/과학자; 잘 모르겠는데, 큰 폭발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창세기에 관한 생각
자유주의신학; 창조의 사실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장르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 1-11장은 신화다.
1-11장을 보수적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잘 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Albright(약간 자유) 역사 고고학자. 그는 아브라함 얘기부터는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1-11은 믿지 않는다.
화란 방문 시 바르트는 “뱀이 진짜로 말을 했습니까”라는 질문에 “당신은 매우 화란적인 질문을 한다”고 답변함. 독일에서는 믿는 사람들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1-11장과 12-50장이 떨어져서 생각될 일이 아님으로 historical narrative 역사적 서술로 보아야 한다.
1장 본문 해석에서 배제해야 할 부분.
1. gab theory(간격이론).
1절과 2절 사이에 갭이 있다. 성경 어느 곳에도 천사가 타락한 시점이 없으므로 그 사이에 그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혼돈을 창조하실 리가 없다. 천사타락으로 창조가 황폐해짐. 그 후에 다시 창조하신 것이다. 중조설(restitution theory). 그러나 성경에 그러한 이야기가 없다.
2. 바빌론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
1860년대 이후로 바로 전에 발견된 앗수르 제국(장소: 니느웨)의 토판들을 해독하게 됨. 그 문서 가운데 Enuma Elish가 있다. (예전에는 문서제목을 그 글의 첫 단어들로 정했다)
바벨론 사람들의 창조설화가 기록: 아직 하늘이 하늘로 불리우기도 전에, 땅도 그러하기 전에 신이 둘이 있었다. 아빠신은 단물신이고, 엄마는 짠물신이다. 티아맛(Tiamat)은 엄마신. 아빠신이 낮에는 빛(≠햇빛)이 비춰서 못자고, 밤에는 애들이 떠들어서 못자겠구나. 애들신들은 아빠가 자신들을 죽이려는 것을 알고 힘을 합하여 아빠를 죽였다. 엄마신이 화가나서 Kingu를 총사령관으로 일해서 전쟁을 벌린다. 애들신의 총사령관은 마르둑. Marduk이 킹구를 죽여서 세상을 창조함. 엄마신을 반으로 갈라 죽이고 윗물과 아랫물을 나누어 하늘에 빗장을 쳐서 윗물이 내려오지 않도록 함.
네번째 토판: 마르둑이 해를 만들었다.
ANET(모음집)에 신화들이 모아져 있음.
1860년부터 이러한 관점으로 성경을 보았다. 차차로 창세기 1장은 바빌론 신화를 토대로 쓰여졌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 됨.
창 1:2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물)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 1: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깊음= 히브리어로 태홈. 이 말이 티아맛과 비슷함. “물과 물이 나뉘다”라는 것도 바빌론 신화와 유사함,
Jean Astruc:
루이 14세의 주치의. 당시는 일반대학을 졸업한 후에 신학, 의학, 법학을 공부함. 일반대학에서 헬라어, 히브리어등 기본적으로 신학을 공부함.
그는 하나님 명칭이 1장의 “엘로힘”과 2,3장의 “여호와”와 다른 점에 착안하여 창세기를 서로 다른 두 가지 문서로 나눔. 문서가설의 시초(Quellentheorie)
문서가설이 진전됨: J-E-D-P은 오늘날의 콘센스.
하나님의 이름대로 분류.
창2(J문서): 사람을 고운 흙으로 만듬. 물이 없는 건조한 곳으로부터 영향. 기원전 850경에 남유다에서 발생.
창1(P문서): 물이 많은 곳으로부터 영향. 바빌론 신화의 영향.
성경을 믿는 사람들: 복음주의, 정통주의(루터파, 개혁파) '성경은 문서가설처럼 쓰여지지 않고, 모세가 썼다.'
Martin Noth 야곱의 열두지파가 아니라 12 동맹체가 있었다.
Von Rad 아브라함 얘기가 다는 아니지만 있을 수 있다. 전승사를 받아드림. Dirrks 보수적인 편.
창세기는 사실이 아니라 의미만 던져준다.
Geschichte와 Historie의 구분.
Historie: 역사가가 자신의 역사관을 가지고 사실을 서술한 역사.
Geschichte: 의미로서의 역사. 해석한 역사. 내 존재를 변화시켜주는 것.
바르트가 이것을 구분하여 사용.
Urgeschichte(원역사)는 발생한 역사가 아니다.
Mythos 신화. 우리 존재의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 하나님의 이야기를 쓸때 하는 말. 이것은 의미를 주는 역사이다. 바르트는 미토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음. 사화라는 말을 사용함(Sagen, Saga). 미토스는 전혀 발생하지 않은 이야기. 사화는 실제로 발생한 어떤 일을 후세 사람들이 불려서 만든 이야기.
다른 사람은 의미를 찾지 않지만 그나마 바르트는 창조기사에서 의미를 찾아내고자 함.
3. 창 1.1. 브레쉿(태초에)…. 이 문장의 해석 방법.
1) 연계형;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라고 해석하는 것. 그렇다면 세상 창조전에 공허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하나님은 이미 있는 것으로 만드셨다. 조성자 일뿐. 철학에서의 신 Demiurgos.
2) 절대격; 현제 대체로 번역되어 있는 것.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에는 난하주에 연계형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고 되어 있음.
유대인들은 절대격으로 읽음. 맛소라 사본에는 모음+엑센트(분리형 엑센트)로 되어 있다.
11, 12세기에 이븐 에즈라가 연계형으로도 불 수 있다고 주장함. 그 이후에 그렇게 읽는 사람들이 등장.
* 본론
1. 창조는 Creation ex nihilo(무로부터의 창조).
외경에서 빌려온 용어. 이 말은 성경에 없으나 개념은 있다.
a) 하나님의 전능성;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b) 바르트 ' Nihilichkeit' 무성. Chaos가 아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존재도 있고, 무로부터 온 존재도 있다. 후자는 죽음으로 이끄는 성격이 있다.
2. Creatio per verbum Dei.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창조.
a) 하나님의 전능성 Omni-Potencia. 내 영혼이 죽어가다가도,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살아나야 한다. 주일날 설교 때 마다 말씀이 살아나야 한다.
b) 성자를 통한 창조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골 1:15-19: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 모든 피조물 보다 먼저 나신다. 히 1:2: 아들로 말미암아 창조.
„빛이 있으라“는 하나님께서 히브리어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말씀이신 예수님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3. Trinitarian Art of creation
시 104:29-30 온 세상이 겨울에 꽁꽁 얼어붙었는데, 주께서 영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사 새롭게 하시나이다. 성령님의 작용. 하나님의 창조는 삼위일체적 창조이다.
* „창조하실 때에 혼돈하고 공허함“의 해석 문제.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이 전체에 대한 선언이면서, 동시에 뭔가를 창조하셔야 된다. 원물질 창조(뒤섞여 있음)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 원물질이 뒤섞여진 상태. 물과 비슷.
신 32: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운행)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운행: 메라헤페트.
하나님 말씀은 창조의 객관적 원리. 성령은 주관적 원리.
4. orderly creation 질서 있는 창조
첫째 날: 어두웠었는데, 빛을 만드니.
어둠-빛
둘째 날: 궁창(창공)창조. 윗물과 아랫물 구분.
셋째 날: 물아 모여라. 뭍이 들어 남
넷째 날: 태양, 달, 별 창조. 날고 밤을 주관하시게 함. (새 하는 새 땅에서는 태양이 필요없다. 하나님이 빛이시다)
다섯째 날: 물고기, 공중 새.
여섯째 날: 동물. 인간
5. after each kind. 그 종류대로 지으심.
말과 나귀가 교배하여 노새가 나온다. 같은 종 내에서는 교배를 통해 다른 생물이 나올 수가 있다.
그런데 사람을 만들 때는 after God's image(인간은 전혀 다르다)
1859 다아윈의 종의 기원.
6. very good 선한 피조계.
딤전 4:1-5. 참 믿음에서 떠나서 미혹케 하는 영. 귀신의 가르침. 금욕주의를 영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것. 우리의 삶 전체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로 인해 선한 것이다. 혼인도 선한 것이다. 인간이 피조계를 잘 다스려야 한다.
창조 함의; 창조를 진짜 믿는다면
1) eco friendly: God is green.
이 세상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잘 보살펴야 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계. 돌보시는 건 예수님. 몰트만 God in Creation
2) 우리 삶 영역 전체에 대해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의식. 영과 몸이 하나님의 피조물.
잘못된 형태의 영육이원론을 막는다. 식사, 성관계, 직장일과 기도, 예배 등을 영적이고 육적인 것으로 구분하면 안 된다. 어떠한 태도로 하는가에 따라서 영,육으로 가려짐.
영지주의들이 영육이원론을 주장. 영혼만 구원.
3) 삶 속에서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을 드러내야 한다. Creativity 창조성, 창조의 능력을 우리의 삶 속에서 잘 드러내야 한다. 주어진 은사에 따라서 살 것.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은사에 따라서 삶을 살아야 한다.
창1:1: 천지창조. 하늘과 땅, 그 안에 있는 것을 모두 창조. 영의 세계도 포함함. 이 말씀은 대 전제이면서도 원물질도 창조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영적 세계의 창조”는 시간 관계상 다음 학기로 미룬다.
D. 섭리
요 10:25-30.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따른다.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 성도의 견인. 아무도 예수님의 양을 예수님의 손안에서 빼앗을 수 없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셨다(창세 전에) – 내 백성.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자유주의; 뜻이 하나다)
아버지와 아들이 처음부터 하나시며 사역을 함께 하신다.
섭리. Providentia: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을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섭리하심.
아일랜드 비숍 Usher: "하나님께서 BC 4004에 세상을 창조하셨다"
왜 4004년? 족보의 모든 연대를 더함. 그러나 족보는 쉽사리 계산되지 않는다. 창조의 시기를 알 수가 없다.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다.
칼빈주의의 유명한 원칙: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멈추는 데서 멈춘다.
인간의 궁금증. 상상의 나래가 성경 밖으로 인간을 데려간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
섭리란? 창조하신 것을 목표지로 향하여 끝까지 이끌어 가시는 것
1) Preservation
conservatio 보존. 하나님이 보존하셔야 한다.
이신론자. Deist: 하나님이 창조한 후 내버려 둔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음. 섭리 부인. 창조는 믿음. 세상은 시계와 같이 정교하다. Intelligent Designer. 그들의 하나님은 blind watch maker와 같다(비판해서 하는 말).
그러나 하나님은 매순간 창조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끌어 가신다. 세상을 만들어 놓으시고 지속해서 보살피심. 이 세상을 놓으신다면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뉴턴: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계에서 자연의 법칙을 찾아냄. 기독교적 과학 발전.
2) Govermment
Gubernatio. 정해진 목표를 따라 이끌어 가심.
Telos를 향해. 이 세상의 역사는 유목적적이다.
히 1:2-3
요 1:4-5: Logos의 작용이 영원 전부터 계속된다.
'예수를 믿었지만, 역사를 보니 무의미하다.' - 신앙이 없는 사람.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끌어 나가시기 때문에 세상은 의미가 있다.
니체, 까뮈: "실존은 무의미하다" "그러니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인간에 대해 절망을 덜했다
시지푸스 신화: 삶을 표현.
삶에 대해 비관적이면서 동시에 낙관적.
신자: "하나님 없이 무의미". 이 사람들보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훨씬 더 잘 알지만, 이 세상을 다른 측면으로 보면 이 세상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
개인이나 역사는 나선형을 그리며 하나님의 목표, 역사의 목적지를 향해 간다.
Cooperatio: 하나님께서 이 역사에 협력으로서 개입하심.
비상 섭리, 이적: 제 2의 원인(causa secunda) 이 없이 직접 관여하실 때. 일반적으로는 제2원인과 협력하여 사역하신다.
Adolf von Harnack: 이적은 없다 "당신과 나 사이의 문제는 오직 이적에 관한 견해 차이다"
Adolf Schlater 중도 보수주의자. 이적을 믿는다 "이적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이다.". 상호간에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다른 것“이 문제라는 것을 지적함. [이 두 사람은 베를린 대학 교수였음. 하르낙은 황제로부터 귀족의 칭호를 받았으며, 정치에도 간접적으로 참여함. 당시에 그는 최고의 석학이였으며 쉴라터의 학문을 높이 평가함]
비상섭리를 잘못 이해한 경우; 이적은 매일 일어나는 게 아니다. 이적의 일반화 금지.
이적과 이적이 아닌 것을 구분해야 한다.
하나님이 동정녀 마리아를 제 2의 원인으로 사용하여 이적을 행하심.
인간이 태어날 때는 제 2의 원인인 부모님을 통해서.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이적이 아니다.
주의: 신앙이 좋은 자들은 이적을 많이 경험해야 한다? 신앙이 좋으면 이적이 없어도 된다. 이적은 하나님이 원하시면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manupulation 하려 한다. 우리가 주문하는 대로: 자동판매기.
대표적 이적:
예수님 탄생: 초자연적으로 아기가 생겼으나, 열 달 동안 사람들처럼 자연적으로 자라다가 탄생하였다. 시작은 초자연, 그 다음은 자연적.
출 14:15 홍해사건. 이적은 제 2의 원리(동풍이 밤새도록)를 사용.
섭리를 믿는 자의 자세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창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형들은 죄를 지었지만, 이것 조차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있다. 하나님의 허용하심.
이 사건은 결국 요셉의 가족의 생명이 구원된다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서 이적이 행해진 사건.
요셉의 가족사나 이스라엘의 민족사가 아니라, 구속사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우리의 삶도 구속사의 일부분이다. 우리도 구속사적인 인물이다.
하나님의 구속사가 아직도 진행중이다.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본다.
일차적: 구속사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이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구속사적으로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되어지는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전에 받았던 계시의 말씀에 근거해서 산다.
창50:24ff: 요셉은 계시를 근거로 해서 앞날을 알았다(우리의 계시는 성경이다). 애굽에서 400년 고생하다가 가나안에 들어갈 것을 알았음. 자신의 해골을 갖고 갈 것을 부탁함. 26절: 미이라로 만듦.
50:2: 야곱도 미라로 만들었다. 미이라로 만드는 데 40일이 걸림.
섭리로 사는 사람들의 태도:
1. 감사.
2. 용서: 보복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죽게 되어도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심.
50:15. 형들은 요셉의 진정한 동기를 못 믿음.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 그렇다. 또 하나의 잔 머리를 만듦. 그러나 요셉은 진짜로 용서하는 사람이었다.
순교자: 죽을 때까지 억울함. 그들의 삶에 하나님이 역사를 안 하신 것 같지만 역사에서는 선으로 바꾸심.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를 하실런지 모르므로 따져볼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의 대속: 용서. 스테반도 예수님과 같은 말을 하고 죽음. 그들의 용서를 빔.
하나님께서 개인을 통해 역사 전체를 섭리하심.
3. 인내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인내해야 한다. „참고 선을 행하라!“
우리의 삶은 이 세가지로 구성됨. 섭리를 믿는 사람은 „감사, 용서, 인내“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산다.
보디발의 아내와의 경우에서: 말씀대로 하면 어려워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춘다. 요셉은 말씀 순종하다가 감옥에 가게 됨.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며 열심히 살았다. [말씀대로 살면 잘 풀리는 경우보다 안 풀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이다. ]
히 11:39: 우리기 마지막 주자이다. 우리가 제대로 살아야 그들의 사역이 완성된다.
히 12:1-2: 이것을 의식하면서 죄를 벗어 버리고 죽을 때까지…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님은 믿음의 주시며, 시작하신 분이며 완성하실 분이다.
고난의 복음: the gospel of suffering. 그 앞의 즐거움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