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20분경 광화문 서울신문사 앞
“옷 갈아입고 A그룹 물품보관 차량 앞에서 만나자”는 새벽님의 말씀에
왠지 골인전 까지는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예감에 순간 쓸쓸한 마음이 든다
덕산님 새벽님 쇠바람님과 헤어지고 나서
B그룹 친구인 일행과도
“옷 갈아입고 나서는 만나기 어려우니 여기서 헤어지고 잠실에서 만나자”
“그럼 잘 뛰라” "화이팅!" 으로 인사를 나눈 후
마침내 나는 혼자가 된다
C그룹은 나 혼자라 외롭다
이동식 화장실 볼 일을 다시보고
길에서 옷을 갈아 입는다
준비해 간 연양갱 하나 까먹으며 결의를 다져 보지만
어느새 추위에 난 물품보관 가방을 들고 다시 서울신문사 건물로 들어선다
앾은 사람들 실내에서 스트레칭 하느라 분주하다
장외 아나운서는 빨리 짐 맡기고 자기 그룹으로 가라는데도 그냥들 버틴다
7시45분쯤 물품 보관을 끝내고
충무공 장군 동상 앞 엘리트선수들 출발 대기선에 머물며
이봉주 선수 몸 풀고 출발하는 것까지 다 보고서야 C그룹을 찾는다
조금이나마 추위를 피해보려
C그룹 대열 중간으로 파고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전철역에 내려 두 개씩 나눈 파워젤을
20키로 지점에서 먹을 하나는 장갑 속에
30키로 쯤에서 먹을 또 하나는 팬티 주머니에 단단히 고정 시킨다
옆 사람이 몇 시인지 묻는다. “8시23분”
드디어 출발!
올 겨울 연습이 불규칙하다 보니
허벅지 앞뒤로 근육통이 남아 있던 터라 불안감이 그지없다
평상시 훈련 때 만큼만 달릴 수 있었으면.....
남대문을 돌아 한국은행, 중앙우체국, 롯데백화점을 지나
을지로입구 사거리에서 시계를 보니 어! 제로다
그 양반 때문에 스타트 버튼을 빼먹었나 보다, 제기랄!
다시 맞추고 열심히 달린다
을지로5가를 돌아, 오던 길로 다시 달린다
을지로 길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아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진 않는다
다시 을지로입구 사거리를 우회 할 무렵
대한체육회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젊은 시절이 스친다
한 때 생활의 주 무대가 이 부근이었던 때가 있었다
출근해서 일하고 친구들 만나고 저녁엔 술 마시고
무교동 명동 북창동-추억이 있는 곳이다
청계천이다
길은 좁아도 달릴만 하다
오른쪽 길가로 붙어 뛰면서 적당한 골목을 살핀다
미안하지만 세운상가 옆 골목에 소피를 해결하고 가볍게 다시 달린다
출발 때부터 30키로 정도 까지는 100-200미터 간격을 유지하려 했던
3:50분 페메의 초록색 고무풍선이 저 만큼 멀어져 있다
조바심에 속도를 내 본다
10키로 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42분
대략 55-56분 걸리지 않아나 생각한다
고산자교를 U턴하여 청계6가, 5가를 지나
센츄럴호텔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저 위에 나이트 클럽
새벽 통금이 풀리면 우루루 몰려나와
모닝커피 다방으로 향하던 기억이 난다.
그 땐 팔팔 했었다
종각을 끼고 도니 종로2가다
여기에는 양지다방 있었고
2층에는 결혼 전 양가 상견례 하던 태극당 제과점이 있었고
저 쪽 뒷골목에는 친구들과 자주 가던 로젠켈러 맥주집이 있었는데...
어느덧 동대문이다
여전히 초록색 고무풍선은 적당한 거리 앞에 있다
다리에서 신호가 오는 것 같다
조금 오버했나 싶다
속도를 늦추고 파워젤을 꺼내 먹는다
다른 사람들도 이쯤에서 먹나보다, 비닐 껍질이 도로 바닥에 즐비한 거 보니
20키로 지점을 넘어
신설동 오거리를 지나 옆 골목에 또 한 번 실례를 한다
지나던 여자 행인이 고개를 돌린다
미안하다고 생각만 한다
다시 달린다
어라! 고무풍선이 점점 멀어진다
신답지하차도 오르막에 느낌이 안 좋다
양 쪽 뒷다리가 뻐근하고 통증이 시작 된다
맨소래담 도우미에게 듬뿍 도움을 청 한다
나는 장안평을 뛰고
고무풍선은 멀리 군자교위에서 살랑대며 아른 거린다
세종대 길에 들어서니
연도에 응원해주는 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이 정말 고맙다
뚝섬 서울의숲 입구 30키로 지점 급수대에 다 달으니
시원한 물 한 모금에 쉬어가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바로 전 남은 파워젤을 먹긴 했지만
공짜로 주는 초코파이를 기꺼이 다 먹는다, 뛰면서...
성수동 인도에는
걸터앉아 쥐를 잡는 사람들
가로수 끌어안고 근육 늘리는 사람들
그리고 걷는 사람들 꽤나 많다
누가 30키로 중후반이 레이스중 가장 고비라 했던가
그래도 나는 참 다행스럽고 고맙다고 생각하며 하염없이 달린다
마침내 잠실대교
맞바람이 거세다
우측 저 너머에 운동장이 보인다
이제 남은 거리 6키로 남짓
고무풍선은 이미 내 시야를 벗어난지 오래다
마지막 힘을 내본다
허벅지는 통증이 더 해오고 발은 무겁다
배명고 사거리
2-3키로를 너무 과속한 덕분일까 몸이 이상하다. 앞으로 안 나간다
나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평상시 훈련 때는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든, 남의 가게 유리창에 비친 모습이든
자세 신경 써가며 연습도 했다
수리산님 처럼 카메라 앞에선 어떻게 폼을 잡을까
골인때 포즈는 어떤 콘셒이 좋을까
생각 많이 했었다
그러나 이 모두가 부질없는 소리다
폼이고 나발이고 그냥 빨리 들어가서 쉬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나와의 고독한 싸움을 하다 하다
마침내 운동장에 들어선다
허리를 펴본다
아! 이젠 살 것 같다
시간은 관계없다
최선을 다했다
천천히 여유 있게 들어가자
드디어 골인!
아치에 걸린 시계엔 4:15를 가리킨다
보조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에
그 이가 서있다
바로 그 놈이다.
초록색 고무풍선 달고 내 앞에 아른거리다 먼저 튀어나간 놈이다
후속 주자들에 떠밀려서 “수고했다” 인사도 못하고
물끄러미 보다가 길을 빠져 나온다
오늘 나는 2009년도 동아마라톤을 이렇게 힘들게 시작하고 끝냈으나
뛸 수 있는 건강에 감사하고
나를 아는 가족과 이웃에 감사하고
감사 할 줄 아는 마음에 또 감사하며 이렇게 일기를 쓴다
훗날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길 기대하면서
당분간 나는 동아마라톤 무용담에 취해 술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
첫댓글 심마니 형님! 을지로 무교동 종로통을 무쟈게 헤매고 다니셨군요. 심마니님의 홀로서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불낙지 먹으로 무교동 한번 갑시다.
두번의 볼일만 없었어도 40분대...ㅋㅋㅋ 이제 그만 쉬고 LSD하러 가야죠???
혼자서 힘든 105리를 뛰시느라 수고많이하셧어요.
고생했습니다. 파이팅!
제목도 멋있고...내용도 아름답고...심마니님의 노력도 감동적입니다. 멋진분들이 백마클에 있어 행복합니다.
심마니님의 감사하는 마음에 감동했어요. 무엇보다 저도 늘 뛸수있는 건강에 감사하고 있답니다^^
늦게나마 멋지게 동마 완주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얼릉 회복 잘하시고 다시 주로에서 멋진 모습 보여주세요~~힘~!!!
축하드립니다.. 또 단축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