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화엄사는 544년(진흥왕 5년)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현재 연기암이 있는 자리에 창건하였다. 삼국시대 중엽 백제때 인도에서 온 연기스님은 움막에서 지내며 설법하였으나 너무 좁자 마을 사람들이 작은 절을 지었는데 사람들은 "연기사"라고 하려 했으나, 연기스님은 "인도에서 화엄종을 공부하고 바다건너 이 나라에 온 것도 화엄법문을 떨치기 위함이니 <화엄사>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하여 화엄사라 했으며, "이 산은 멀리 백두산의 정기가 흘러 내려와서 이루어진 산이라 하여 두류산이라 부르고 있는데, 내가 이 산에 처음 왔을때 문수보살님이 설법하는 땅임에 틀림없으니 이 산의 이름도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普薩)"의 이름을 택하여 "지리산(智利山)"이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라고 하여 지리산의 이름이 태어난 것이다. 이때가 서기 544년(백제 성왕 22년)이었다. 결국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지리산의 명칭은 인도 사람이 지어준 것이다. 지금도 화엄사 위쪽에 연기암이라는 암자가 남아있으며 연기스님이 올때 가져온 수십 그루의 차나무도 심었다고 한다. 스님께 확인한 결과 화엄사 뒷편 구층암에 오래된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지리산 화엄사 일주문.
지리산 화엄사 돌항아리. 고려시대 초에 만들어진 돌항아리는 풍수리지로 볼때 화엄사 전체적인 형국이 항해하는 배의 모양을 닮아 항해 중에 필요한 물을 담는 항아리를 조성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속리산 법주사에도 돌항아리가 있다고 한다.
지리산 "화엄사성보관".
지리산 화엄사 돌사자상. 1930년대 일본 도쿄 영친왕 신축 저택에 장식할 목적으로 일본인 조각가 "아사카와 노리타카"가 만들었다. 1954년 영친왕 저택이 매각되면서 1959년 한국에 기증하여 현재 화엄사에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 화엄사 구시. 길이 7m로 정유재란떄 사용한 것으로 많은 승병들이 신속하게 밥을 먹기 위해 제작하였다.
지리산 화엄사성보관 "아미타후불도".
지리산 화엄사성보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지리산 화엄사 천왕문.
지리산 화엄사 보제루. 보제루는 사찰의 중심 불전 앞에 세우는 누각으로 "부처님의 법문을 들려주어 많은 사람을 제도하는 법요 의식을 하는 장소"이다. 현재 화엄사 보제루 내부에는 종교관련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뒷쪽 현판 "화장(華藏)"은 1852년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 들러 쓴 글씨다.
화엄사 보제루 뒷편 현판 "화장"은 1852년 백파 "긍선선사"가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 들러 쓴 글씨다.
지리산 화엄사 보제루 내부.
지리산 화엄사 보제루에 전시 중인 김영애 작가 "전능자 그리스도".
지리산 화엄사 보제루에 전시 중인 안성진 작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지리산 화엄사 대웅전, 5층석탑. 오층석탑은 신라 말기 제작한 것으로 동탑과 서탑이 있다.
지리산 화엄사 대웅전 불상.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 국보 제67호. 각황전 앞 마당 석등은 국보 제12호.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 불상. 각황전에는 7분의 불상을 모시고 있다.
지리산 화엄사 영상회괘불탱화 국보 제 301호.
지리산 화엄사 홍매화. 이 홍매화는 조선시대 숙종때 "계파선사"께서 각황전을 증건하고 기념하기 위해 심었다.
지리산 화엄사에서 본 노고단.
지리산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 통일신라시대 건립된 것으로 네마리의 사자가 탑을 받치고 있으며 중앙에는 연기대사의 어머니 조각상이 있으며 맞은편에는 연기스님이 앉아있는 모습의 작은 조각상이 있다. 또 다른 전설은 연기스님의 스승과 제자라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