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애愛
조윤수
어지러웠던 4월의 꽃바람은 오월의 푸른 바람으로 왔다. 5월의 선물, 수수꽃다리 향기가 차 안에 가득하여 코끝이 간지러웠다. 가슴에 고이는 연보랏빛 물감을 캔버스에 그대로 풀어놓을 수 있으면 아름다운 그림이 될 것 같았다.
젖은 시선 안으로 들어오는 오월의 언덕은 화선지에 번져나가는 봄빛 수채화였다. 눈시울이 적셔진 것은 돌아오지 않을 청춘이 그리워서가 아니었다.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과 오월이 짙어가는 언덕길을 대비하면서 신록의 경이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해서인지도 몰랐다. 사무엘 울만은 말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고.
오월은 딸기가 끝나는 달이요, 갖가지 채소 열매가 익어가는 달이다. 이제 풋열매들은 자연의 감성을 잃었다. 그래도 여전히 모란의 달이요, 라일락 향기 퍼지는 달이다. 나의 오월을 더듬어보았다. 미망의 청춘을 접고 결혼의 문으로 들어갔던 달이요, 많은 5월을 잃었고 깊은 산 속의 미로를 헤매기도 했다. 길 아닌 험한 가시덤불을 헤치고 지름길로 오른 산 정상에서 만났던 먼지와 다를 바 없는 ‘나’와 티끌 같은 세상. 마음의 청춘으로 다시 본 실상實相의 세상, 귀한 또 다른 ‘나’와 ‘나’들과 그토록 향기로웠던 오월. 잃었던 옛 오월들도 한꺼번에 몰려왔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기도 했다. 내 언제 나이를 세고 살았던가. 사무엘의 말처럼 “가슴속에 간직할 수 있는 것이 경이에의 애모, 하늘의 별들 그리고 빛나는 사물과 사상에 대한 흠앙欽仰, 앞에 가로놓인 일에 대한 불굴의 도전, 어린아이 같은 끊임없는 탐구심, 인생에 대한 환희와 흥미.” 이런 것들을 잃지 않는다면 청춘이라 했다. 세월이 사람을 늙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이상을 잃을 때 늙는다고 했다.
봄마다 색다른 봄. 젊었을 때 알지 못했던 봄이 지났고, 또 지난다. 마음과 정신은 언제나 청춘이라지만, 정신의 그릇인 몸이 닳아 가고 있는 것을 어쩌랴! 하지만, 이번 5월은 다시 새로운 희망의 가지 하나가 옹이진 옆구리에서 뻗어 나오는 것 같아 가슴이 부풀고 있다.
변덕스러운 4월의 봄바람은 마침내 분단된 한반도에도 불기 시작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시작한 봄기운은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피어났다. 봄바람에 들뜨기 시작한 흥분은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6·12 북미정상회담과 6·13 지방선거까지. 우리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 북미정상회담의 역사적 장면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드디어 극적인 ‘세기의 악수’, 북한의 김정은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을 드라마 정점의 한 장면에 초점을 맞추듯 가슴 조이며 주시했다.
살아 있을 때 우리 자매들은 개성에 다시 가볼 수 있을까? 한국전쟁, 9·28 수복 무렵 온 가족이 부산에서 개성으로 올라갔다. 어처구니없게도 중공군 개입으로 후퇴하게 되어 되돌아오는 동안, 우리 어머니는 치명적인 생의 고난을 겪었다. 언니들께 물었다 “땅속에 묻은 김장독은 그대로 유물이 되었을까?” 김장 뒤에 남은 양념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끼니의 반찬으로 사용했다. 그 당시 무슨 밀폐 용기가 있었던가. 작은 항아리 채로 머리에 이고 개성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틀 동안 걸었다. 밤이면 피난 떠난 빈집의 헛간에서 웅크리고 지내기도 했단다. 어떤 기차역에서인가 뚜껑 없는 기차 칸에 겨우 올라타고 다시 이틀 걸려서 서울에 도착하였다. 길에서 팥죽을 끓이는 광경을 보았기에 동지 무렵 서울을 떠난 기차는 부산까지 열흘 가량 걸렸다. 추풍령 고개에서 기차는 다시 멈추었다. 아버지는 마을에 내려가서 쌀을 구하고, 큰언니는 수통에 물을 받아왔단다. 기찻길 언덕에서 항고(군용 밥통)에 밥을 지었고, 김장 양념으로 비벼 먹은 햅쌀밥의 맛은 말로는 할 수 없었다고 큰언니는 회상했다. 두어 달 동안 살았던 개성의 기억과 피난길을 항상 떠올리는데,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과 이산가족들은 얼마나 애태우며 살았겠는가.
기백이 항상 당당했던 그분은 청년 시절에 함경도에서 내려와서 남한에서 가정을 이루었다. 국군에 참여하여 장군까지 되었다. 퇴직 뒤, 90세가 넘어서 치매가 왔다. 그런데 북녘 고향에서 지냈던 청년 시절까지의 기억만 되살리고, 남한에서 살았던 부인과 자녀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얼마나 사무쳤으면 가정을 이루고 살았던 남한에서의 삶을 송두리째 놓치고 말았을까. 아직도 이산의 아픔과 증오를 치유해야 할 세대가 많이 남았다. 그들의 꿈과 민족의 소원이 이루어질 날이 머지않은 것 같은데….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이 말했다. ‘평양에서 멀리 가져온 냉면…, 아니 멀다고 말하면 안 되겠구먼’, 하면서 멋쩍게 웃었다. 두 시간이면 달려올 수 있는 거리이며 통역도 필요 없이 소통할 수 있는 관계다. 수천 년의 역사를 공유한 한민족이다. 70여 년 동안 건널 수 없는 섬처럼 지냈던 남한 땅,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경계선을 당장 한걸음에 넘어 보았다. 한 발자국만 넘으면 되는 거리를 두고 이제야 만났다니….
꽃향기는 천 리를 가고, 새들에게는 경계가 없는 길, 사실 땅이나 바다, 하늘에 어떤 경계선이 있던가. 사람이 관념적으로 그어 선을 만들고 국경이 만들어졌다. 이제 세계의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은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여는 물꼬가 터졌다. 가로막았던 빗장을 풀었으니 변덕 많은 봄날처럼, 우여곡절을 같이 겪어가며 뜨거운 햇살 아래 땀 흘리고, 번개 치는 여름날도 견디고 태풍도 맞으며 맑은 가을 하늘이 나타나도록 잡은 손 놓치지 않아야 한다.
5월 내내 품었던 부푼 꿈의 결실은 언제 보게 될까. 평화 시대로 가는 연속 다큐멘터리는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연출해 갈 것인가. 꿈같은 현실의 극은 몇 회까지 가서 안전한 쉼표를 찍게 될까. 남북 정상이 판문점 푸른 도보다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눈 것처럼 우리도 개성의 선죽교를 그렇게 밟아보기를 기대한다. 수수꽃다리 향기 퍼지는 오월이면 더욱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