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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문 ‘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
간증을 하기 앞서 먼저 이 자리에 설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부끄러워 설수 없지만 제게 일어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신일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또한 감사합니다 .
1. 신천지를 나오고, 간증을 하게 되기까지.
(번호분류와 표제는 옮긴이가 달았습니다.)
저는 2006년부터 2009 년까지 경북 A시에 있는 신천지 다대오지파에 속해 있다가
2009년 1월 하나님의 은혜로 가족들과 제*들교회 김*진 전도사님을 비롯한
헌신된 지체들을 통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000입니다 .
상담을 통해 신천지를 안가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얼마 후 몇 달후에 간증을 해야된다는
전도사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저는 그 말씀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피해가야 겠다는 생각을 굳게 하고 있었습니다 . 간증이라는 것이 제게는 너무도 부담스러웠고
신천지에 안가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될것같았습니다 . 그러던중 경기도 B시에 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A시에서 경주로 출퇴근을 하며 어렵게 혼자 생활하고 있던 남편에게
시댁에서 다니기도 불편하고 2주에 한번씩 A시에서 B시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며 이사를 빨리 해야겠다는 제의가 들어왔고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맡길테니 편한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 혹시 집이 빨리나가면 간증의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겠다고 .... 예상보다 집은 빨리 나갔고 이사날짜도 급하게 잡혔습니다.
저는 내심 이제 간증을 안해도 되겠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전도사님께
남편이 이사를 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
그랬더니 전도사님께서 5 월달에 간증하러 오셔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래야 완전히 치유가 된다고 .... 가슴이 철렁 내려않았습니다 .
그리고 계속되는 전도사님과 사모님을비롯한 여러 집사님들의 권유 ... 저보다 앞선 경험을 통해
얻어진 말씀들이 었기에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 무엇보다 제가 완전히 회복되기를
바라는 남편의 권유가 마음을 많이 움직였습니다 . 모두들 감사를드립니다.
2. 신앙이력
저는 목회사역을 하고 계신 부모님의 1 남 2 녀중 장녀로 태어나 엄마 배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 시골교회로 다니시며 목회를 하신 부모님께서는 고생을 많이 하셨고
일꾼또한 없었기 때문에 교회에 살고 있었던 저는 자라면서 교회의 이일 저일을 해오며 지냈습니다.
그저 아빠가 목사님이니까 .. 해야한다는 의무감도 있었고 힘들때도 있었지만 나름 재미도
있었기에 할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 22 살 때 신학교에 다니던 여동생으로부터 신앙적이
도전을 받고 회개라는것을 했습니다 . 한달을 거의 매일 울었던것 같습니다 . 나를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
얼마 동안은 뜨거운 마음이 있었으나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 그리고 몇해가 흘러 ..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믿지는 않지만 성실한 모습에 끌려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
제마음속에는 전도를 할 수 있을것 같다는 교만한 자신감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
신혼초에는 교회에 몇 번 함께 다녔지만 믿어지지 않는다며 점점 다니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제 신앙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고 교회에 태워주며 도와 주었습니다.
결혼과 함께 삶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생활을 하며 주일만 겨우 지키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가 태어났고 나름 신앙생활한다며 A에서는 제법 큰 교회에서
찬양봉사활동관 주일학교 교사등을 했지만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들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3. 신천지의 모략접근, 복음방 과정
그러던중 2006 년 크리스마스가 지난 12 월 말쯤 .. 초인종소리에 나가보니 청년들 여럿이서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 그러면서 하는말이 연말이 되어 고아원에 아이들을 돕기위해 물품수집을
하고 있으니 작아서 못입는 옷이나 재활용할수 있는 물품들이 있으면 도와 달라고 ...
여러집을 다녔지만 도움을 받을수 없었다고 ...
너무도 고생하고 있는 청년들이 안쓰러워 집으로 들이고 따뜻한 차와 그리고 옷가지와
비누, 샴푸등 ,, 많지는 않지만 몇가지를 챙겨주며 .... 갑자기 찾아와 깊이 있는 옷은 못찾았으니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다음에 전화해보고 다시 오라는 말을 전하며 청년들을 보냈습니다 ...
얼마 안지나서 그 청년들에게 다시 연락이 왔고 다시 들려도 되겠느냐는 질문에 알았다고하며
약속시간을 정하고 물품을 준비해 청년들을 기다렸습니다 . 처음과 달리 두명만 왔고 ..
자신들을 **대학교 네비게이토 써클을통해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고 ..
기도제목을 알려주시면 기도하겠다는 말과 함께 .. 선교사역을 위한 논문을 교수님과 준비중이라며
많은 영혼을 구하는일에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저 선교자료를위한 논문을 듣고 평가만 해주시면된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에 도와준다고 했자만.
그래도 썩 내키지는 않아 그다음 왔을때는 문을 안열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일을 하는 학생들을 그냥 돌려 보냈다는 죄책감에 다시 연락이 왔을때는
다시 도와준다고 하여 본격적으로 복음방이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듣다가
회가 거듭될수록 성경도 안보고 성구를 찾아내는 열정과 퍼즐맞추듯이
성구를 맞추며 설명하는 것이 신기하여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모르던것을 알아간다는 기쁨속에 점점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말도 있었지만
저를 가리치던 간사는 조금더 지나면 다 깨달아 진다고 했기에 기다렸습니다 .
그리고 앞에것이 맞았으니 맞겠지 하며 제가 깨달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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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유풀이, 네가지밭, 정통과이단, 배도멸망구원, 아담첫못자, 유월절, 영과육, 천국가는조건,
성경에 약속된 영생 등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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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토라는것을 한번도 의심해본적이 없던저는
그와 관련된 선교활동을 위해 새로이 준비하는 시스템이라 생각했고 몇 번의 소속 물음에도
복음방 교사는 그렇게 대답을 할뿐 다른말은 별로 없었습니다 .
복음방 교육을 하며 마음이 너무 힘들어 입맛도없고 잠도 안오고 ... 그것이 마태복음 24 장에
기록되어 있는 영적지진이라며 나를 안심시키는 교육자와 관리자 ....
4. 본격적인 신천지 시작 = 가정불화와 갈등의 시작.
어렵게 유월을 하고서야 그곳이
신천지는것을 알았고 저는 신천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없었기 그저 또 하나의 교단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해 8월에 수료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
신천지 교리를 다 배우고나서 부터는 다니던 교회의 설교듣는것이 너무도 힘들었기에
교회를 나오고 싶다하니 신천지에서는 반대를 했습니다 .
알곡들을 빼내야 하니 조금더 다니라고...
그것이 사명이라면서 . 그렇게 저는 신천지와 교회 이렇게 이중생활을하며 1 년반을 지냈고
그사이 교회와는 별도로 운영되는 추수밭팀에서 활동을하며 지냈습니다 .
그러던 중 같은 전도회 친구와 찬양단에서 함께 사역한 언니를 소개하여 신학원에 데리고 왔습니다.
교육도중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친구는 바로 의심하여 그곳이 신천지 신학원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사실을 교회에 알려 버렸습니다 .
그로인해 저는 교회에서 의심을 받게 되었고 교회 생활을 더욱더 힘들어졌습니다 .
급기야 교회에서 나오게 되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믿으며 그야말로 신천지인으로써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 긴장의 나날들이 시작된 것입니다.
몇주간 집에서 숨죽여 지내고 있다가 .. 재수강을 권유받고 다시 신학원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복음방 교사로서의 훈련과 교육이 시작되어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변화된 저의 생활에 남편은 당황했고 신천지임을 모르던 남편에게 저는 그저 교회를 옮겼고
그곳에서 좀더 열심히 행복한 신앙 생활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해 달라고 말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도 달라진 제 생활에 걱정반 불만반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
처갓집이 목회자집안인데 교회를 가지않고 있던터라 처갓집에도 제게도 강하게 말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몇 달후 다니던 교회 집사님 한분이 저의 집으로 전화를 했고 그 집사님은
저의 부모님께 제가 신천지에 빠져 있으며 교회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걱정이 돼서 전화드리니
잘 알아 보시라 했고 청천벽력 같은 말에 너무도 놀란 부모님은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
저또한 너무 놀랐지만 교회에서 무조건 숨겨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던 터라 아니라고
걱정말라고 말씀드렸지만 조금 수상했던 제 행동들이 부모님의 의심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 었습니다 .
5. 갈등의 심화
그때부터 저와 저의 부모님과의 치열한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 남편또한 제가 다니고 있던 그 교회가 신천지라는 것을 그때서 알게 되었고 ..
저의 부모님이 반대한다는 그 사실이 무척이나 힘이 되었던지 강한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의 상태는 이미 신천지에 물들대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아니면 죽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사명은 곧 생명이라는 문구속에
어떻게든 견디고 이겨야만 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
도와달라고 ... 내가 살고 붙어있어야지만 나를 포함한 가족구원 .. 자손구원 ..
심지어 돌아가신 조상까지 구원받을수 있다고 생각 했기에 절대 포기할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제사장이 되기만하면 내가 가족을 구원할수 있는 구원자가 되는 것입니다 .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 없는 것을 그때는 왜 그렇게 그것이 진리인양 믿어졌는지 ..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울 뿐입니다 .신천지교회 사람들은 제게 핍박이 오면 올수록
진리를 위한 핍박이니 이번만 견디면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시려 연단하는 것이기에
잘 이기라고 격려를 해주며 위로했습니다 . 남편도 남편이지만 친정엄마의 끊임없는
전화가 저를 너무도 지치게 했고 보다못한 남편이 아이들과
저를 제 여동생집으로 보냈고 여동생이 신학을 했고 사역자였기 때문에 여동생이 허락을
하면 신천지에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
남편은 제가 없는 사이에 신천지교회에 찾아가 가정을 돌아보지 않는 다며 교회에서
그런것은 제제를 해야하지 않느냐며 협박아닌 협박을 하였습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남편은 그렇게 하면 저가 신천지에 못 나갈줄 알았답니다.
일주일뒤 저는 다시 포항으로왔고 친정식구들에게 신천지사람들과 안 만나고 교회도 안다니고
기존교회도 당분간은 다니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그 후 몇 달간 외출을 거의
못하며 집안에만 있던 저는 이렇게 있어서는 안된다는 조급함과 붙어라도 있어야 된다는
불안감에 다시 주일날 남편 몰래 예배에 참석을 했고 모임에 나가게 되었으며
전도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이를 알아챈 남편은 완강한 반대를 했지만
신천지에서 핍박이 오면 싸워야 된다는 말을 들은 저는
저의 주장을 펼치며 달려 들었습니다.
말릴수 없다 생각한 남편은 그거 지켜보겠다는 의도에서 절대적으로는 말리지 못했고
친정에도 알리지 못했습니다 . 친정부모님의 걱정은 남편이 생각했던것보다
수위가 높았기 때문 저의 부모님을 걱정시키기 싫었던것 같습니다.
다시 신천지에 나갔을때는 가정의 핍박이 거세기 때문에 강하게 교육받아야하며
교회일꾼도 없고 하니 사명을 맡아야 한다며 여러 가지로 자격이 부족했지만 부녀회 소속
문화부장이라는 직함이 주어졌습니다 . 부담을 느끼며 망설이니 가정사정을
아니 많은 부분을 배려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일을 맡게되었습니다 .
하지만 그것은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 그 해에 신천지에서 내세운 목표는
개인전도가 아닌 구역배가운동 이었고 이에 발마추기위해 A시에서는 제사장훈련이라는
타이틀로 강도높은교육에 돌입했고 주어진 일에 더많은 일들이 가중되며
신천지 생활에 거의 올인하며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다른일들은 신경쓸 여유가 전혀 없었고 다른일들은
당연히 소홀해졌으며 시댁이든 친정이든 가정이든 그때그때일들만
겨우 넘기며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런저를 붙잡고 남편은 어르고 달래고 협박도하고 사정도하고 ..
그런남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나중에 내가 돈 많이벌어 호강시켜 주겠다며 막무가내였습니다 .
집을 너무 자주 비워 연락이 몇 번씩 안되자 친정에서 눈치를 챘고 또다시
엄마와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 급기야 신천지 교회로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하여
난리를 치고 싸우고 하여 교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것이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
그럴때마다 제게 연락이 왔고 핍박받는 것이 복이라며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혜롭게 처신하지 못해서 그런것 같다며 교회에 피해를 준다며 충고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즉 모략을 잘 써야 핍박도 피해 갈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가정에서 남편과의 대립,
친정과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의 나날들 , 이런일들로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감당 못하는 사명 때문에 교회에 보이는 눈치 ,, ,,,,, 점점 조여오는 쇠사슬처럼
모든 환경은 나의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했습니다 .
6. 삶과 가정 극단적 파탄의 직전에서.
급기야 남편의 폭탄 선언 ... 이혼하자 . 저는 이혼만은 안된다면서 울며 매달렸고
그런저를 억지로 데리고 남편은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 그 말을 하면 제가 신천지 안간다고
할줄 알았답니다 . 그렇지만 제 입에서는 끝까지 그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울면서 집으로 왔습니다 . 나중에 안일이지만 남편은
그날 오후에 혼자서 법원에갔고 서류를 취하했다고 합니다 .
그당시 저의 상황은 교회에 보고가 되었고 이문제또한 보고를 했습니다 .
교회에서는 이혼하는 것이 신천지 신앙을 지킬수 있는
길이 아니겠냐면서 말했습니다.
신천지 신앙이 곧 생명이었으니까요 .
이 소식을 들은 친정아빠가 한걸음에 달려 왔고 저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
저는 너무 지쳐 있었고 빨리 아빠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조금의 언쟁을 하다가
신천지에 안갈테니 걱정말라는 거짓말로 아빠를 안심시켰습니다 .
너무도 좋아한 아빠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남편은 아빠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그렇게 아빠는 가셨습니다 .
아빠가 가신뒤 저는 남편에게 절대로 신천지 신앙은 포기할수 없고
아빠에게 그렇게 말한것은 빨리 아빠를 보내기 위해서 한말이라고
내 신앙을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의 절제력은 한계에 다다랐고 제발좀 정신차리라며 안하던 손찌검을 했습니다 .
너무도 두려워 꼼짝못하고 울기만하고 있을 때 . 이것이 다 신천지 때문이라며
남편은 저를 차에 태우고 신천지 교회로 향했습니다
신천지에 도착한 남편은 교회문을 바로 차고 소리지르고 ...
교회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내려왔고 서로가 대립된 상황에서 몇분이 흘렀을까 ...
경찰차가 교회앞으로 왔고 .. 저와 남편 교회의 관계자 몇사람이 함께 경찰서로 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이미 친정식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A시로 내려오던 중이 었습니다.
얼마간의 실강이 끝에 친정부모님을 보고가라는 남편을 뒤로 한 채 저는
신천지 사람들과 함께 경찰서를 나왔고 교회에 있으면 안된다는 말과 함께 신천지 관계자는
저를 시내 한 찜질방으로 데려갔고 제 손에 얼마안되는 돈을 쥐어주고는
연락할 때 까지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가버렸습니다 .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고
제 상황이 너무도 기가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
심신이 모두 지쳐있었던 저는 깊은 잠에 빠졌고 얼마를 잤는지 깨어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습니다 .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몸과 맘을 추스르고 교회로 향했습니다 .
그리고 아이들도 볼겸 몇가지 옷도 챙겨 나올겸 교회집사님과 함께 집으로갔으나
아이들은 없었고 문도열수없도록 보조키의 비밀번호마저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
몇 번의 통화 끝에 큰 아이가 많이 아프다는 말과 함께 아이들이
여동생집으로 보내진것을 알았습니다 .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몇 년처럼 느껴졌던 몇일 후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싶다는 아이들 말에 마음이
아팠던 동생에게 전화가 왔고 아이들을 데려왔습니다 .
그런일이 있었음에도 교회일은 진행되었고 그것이 핑계가 될수 없었습니다.
직책이 있기 때문에 다른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
아이들과 교회에서 생활하던중 일하는데 도움이 안되고 눈치가보여
아이들을 시댁에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어른들을 뵐 자신이 없어 아이들만 대문으로 밀어 넣은채
도망나와 같이간 집사님차를 타고 멀리와서야 전화를 드렸습니다 .
아이들을 좀 부탁드린다고 아버님 어머님밖에 믿을 분이 없어 이런다며
뵙고가지못해 죄송하다며 이럴수 밖어 없는 저를 이해해달라고 전화로
울면서 사정하고 우는 아이들을 뒤로한채 교회로 와버렸습니다 .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행동이었습니다 .
다리에 힘이풀리고 내마음이 내마음이 아니었습니다 .
시댁에도 모든 것이 알려 졌고 저는 혼자서 남편 시댁
친정과의 전쟁을 해야한다는 생각과 사명을 감당해야한다는 압박감에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
오직 이세상에 홀로 버려졌다는생각 .. 하나님 제발 도와주셔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만 해달라고 울면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이래서는 죽을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남편에게 전화했습니다 .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집으로 갈거니까 나좀데리러오라고 .. 몸도 맘도 너무 아팠습니다.
7. 벼랑끝의 방황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교회러 데리러왔고 저는 남편을 보는 순간 저도모르게 도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두려운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 신천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한 집으로 들어간다한들
또다시 반복될것같은 악몽같은 나날들에 대한두려움 ... A시를 벗어나고 싶었던 저는 그길로
서울로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고 열흘간의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 낮에는 여기저기 다니며 걷고 ..
걷고 또 걷고 .... 밤에는 지친몸을 이끌고 근처 찜질방에서 겨우 눈을 붙이며 거의 먹지고 못하면서
깊은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 핸드폰은 꺼놓고 그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 간간히 아이들이
보고 싶으면 한번씩 전화하고 신천지에 있던 열매였던 언니에게와 아버님께 살아있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화를 하는 정도 였습니다 .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때 .. 저는 생각의 결론을 내리고
A시로 돌아왔습니다.
“과연 신천지의 삶이 천국의 삶이 맞는것일까 .. 진리를위해 고난받는 나는 그렇더라도
주위사람들은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 각자의 열매와 사명감당을 위해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수 없는 여유 없는 삶 .. 나는 어떻게해야 할까 . A시를 떠나 다른곳에서
신천지 생활을 한다한들 똑같이 돌아가는 시스템은 거기서 거기일테고
그렇다고 바벨론인 기존교회는 돌아가기가 정말싫고 ..
생각과 고민 끝에 A로 돌아가 어떤 활동도 안하고 말씀이 맞으니 신천지 교회에서
예배만드려야 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
A시로 돌아온 저의 모습은 너무도 처참하여 모두가 놀랬고
열흘동안 거의 물만먹고 걷기만했으니 너무도 말라버린 제 모습에
가족들이 너무도 마음 아파했습니다 . 발바닥은 여기저기 물집이
잡혀 있었고 굳은살이 된곳도 있었고 ... 기가막힐 노릇이었습니다 .
8. 상담소에 가기까지.
돌아온 저를 통해 신천지와 가족들과의 전쟁이 한번 있었고
저는 가족들의 사랑속에 병원과 시댁에서 몸을 추스르고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에 남편과 가족들은 저를 상담소에 보낼것을
비밀리에 추진하였고 그 기간에 남편은 평생하지 않던
설거지 및 집안 청소를 해주었고 몇 년만에 우리 가족은 강원도로 여행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 저를 안심시켜 상담소로 데려오기위한
남편의 노력이었고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저는 저의 생각대로
주일날만 가서 예배를 드리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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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상세하고 감동적이고 도움이 많이 되는 간증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읽으셨겠지만, 다시함께 나누고 싶어 공유합니다.
* 문단분류와 표제는 옮긴이가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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