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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6-22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계명을 쫓아서 사는 삶을 서두릅니다. 그러나 롯의 경우는 목숨이 경각간에 달려있는 문제를 가지고도 지체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그를 끌어내지 않았다면 그가 거했던 성과 함께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소위 그의 기도 역시 기괘하기 그지 없습니다.
1. 본문 16절은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입니다.
천사들은 처음에 말로 롯에게 독촉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손을 잡고 강제인 것처럼 보이는 수단으로 그를 떠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의 망설이는 것은 정말로 굉장했습니다. 그 이유는 비록 그가 천사들이 하는 위협으로 감명을 받았지만 말로만으로 움직이려 하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는 그 천사의 손에 붙잡혀 그 도시 밖으로 끌려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더 악화된 잘못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육신은 그 자체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영의 열망을 너무도 제압하여 느릿느릿한 망설임으로 그 영이 그 육신과 함께 보조를 맞춰서 나가기가 힘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경험이 이 악에 대하여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신실한 성도들은 보다 큰 열심으로 하나님을 따라 갈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귀머거리와 같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무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면 정말 그들이야말로 자기들의 의무를 수행하는 면에서 넘치게 분발하고 노력하여 집중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그 위기를 당하는 때까지 그처럼 나태하게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모세의 말을 모두 주목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종에게 긍휼을 베풀어서 천사가 그의 손을 붙들고 그 도시에서 급하게 떠나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떠나는 데에 마음이 내키지 않은 장면들에서 우리가 강제로 몰려나가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유나 영예로운 인물이나 또한 그 같은 다른 일들이 누구에게나 방해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구속한다든지 소홀히 하게 한다면 그것은 그의 재산이나 저급한 계급에 몰두되어 있을 때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때는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붙잡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말이나 격려는 그런 상태에 있는 그에게 그다지 충분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훈하는 말씀으로 충분히 효과적으로 교정시키지 못하는 그런 질병들이 과격한 치료 방법으로 치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심하다고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는 여기서 그보다 더 과격한 점을 지적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긍휼이 롯의 나태함과 더불어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에게만 맡겨 둔다면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다가 그만 그도 역시 이미 임박해 있는 그 멸망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롯을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구원하시기로 결심하시고 그의 손을 붙들고 반항을 하는 그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2. 본문 17절은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입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첨가하여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시려고 잠시동안 우리에게 그분의 손을 펴실 뿐만 아니라 한번 착수하신 일들은 미완성품으로 남겨두지 않으시고 끝까지 수행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알 것은 소돔의 멸망이 이미 롯 자신에게 알려져서 그가 모르고 있다가 함께 멸망 당하지 않게 하신 사실 역시 일반적인 은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천사들이 그에게 구원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주었다는 사실도 대단한 은혜의 배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에 이끌려 위험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 역시 보통 일반적인 은혜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부가적으로 여호와께서는 그토록 많은 은총을 그에게 베풀어 주시고도 만족하지 않으셔서 그 후에 해야 될 일들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심으로 그가 안전한 안식처에 이를 때까지 그의 모든 여정을 인도해 주실 분이라는 사실을 증거 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악질과 같은 그의 거주지를 떠나온 것을 알게 하려고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롯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첫째로 롯으로 하여금 그것을 갈망하며 애착심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그가 지옥을 탈출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특이하신 은총만을 더욱 잘 회상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전에 모세는 그 땅이 얼마나 비옥하고 풍요한 곳인지를 묘사했었습니다. 롯은 이제 그곳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파선된 가운데서와 같은 상태에서 자기도 구사일생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돔에 살면서도 그의 마음은 계속적으로 괴롬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깊은 죄악 가운데 잠겨있는 상태로부터 야기되는 부정들을 뿌리치고 전혀 그 습관에 말려들지 말아야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호와로 말미암아 정결함을 입으려는 그는 전에 자신이 누렸던 그토록 많은 쾌락들이 이제는 그로부터 박탈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배워야 될 것은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우리 육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에 기여했던 그런 불필요한 죄들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실 때는 우리 구원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으로 마련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나친 자기몰두를 교정시키려는 목적으로 우리를 그토록 달콤하고 쾌락일색인 곳에서 사막의 황량한 방식의 삶으로 유배시키시는 때에도 역시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 구원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3. 본문 18절은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입니다.
여기서 롯의 다른 잘못이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단순하게 여호와를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에 따라서 자신을 맡기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의 새로운 방법을 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장차 그의 피난처가 될 한 산을 지정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하여 한 도시를 택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므로 롯의 신앙을 지나치게 치켜 올리며 격찬하며 이것이야말로 적절한 기도의 표본이라고 여기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의도는 롯의 신앙이 전적으로 순수하지 못하고 모든 결점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자라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도가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한 그것은 허물 투성이라는 점이 하나의 공리(公理)로 주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롯은 말씀에서 떠나 있을 뿐만 아니라 터무니 없이 그 말씀에 반대하고 자기 자신에게 몰두되어 있습니다. 그런 집요함은 신앙과는 전혀 유사성이 없습니다. 천사들의 명을 받은 후에 갑작스런 마음의 변화는 어리석은 탐욕에 대한 형벌입니다.
하나님께 자신들을 복종시키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동요가 생기게 됩니다. 그들이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 즉시로 다시 새로운 상태가 그들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생각을 고치도록 강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언급한다면 롯이 자기가 살 곳을 도시로 정해 주시라고 원한데 대해서는 절대로 책망을 면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그렇게 원함으로 두 가지의 사실을 대두시키고 있습니다. 첫째는 순종이 그의 의무인데도 하나님의 명령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그가 분명히 떠나야 될 그런 쾌락들을 아쉬워 하며 거기 남아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마치 병든 자가 취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병든 환자는 의사가 지시한 수술이나 쓴 약을 그대로 따르고 먹어야 되는데도 거절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처방을 거절하고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롯의 기도가 전적으로 신앙이 결여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록 그가 옳은 길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믿음에서는 멀리 떠나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음 속에 그것을 계속 지켜 가려고 의도되어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뢰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한가지 특별한 일에서 그 말씀으로부터 떠났습니다.
그것은 안 된다고 거절된 곳을 자기에게 주시라고 계속 간청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거룩한 사람들의 경건한 소원들에게서도 이와 같이 불결하고 짙게 혼합된 것이 가끔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때로는 성령의 현저한 충동으로 강요를 받아서 외관적으로 말씀을 떠나 있으나 사실은 그 한계를 범하지는 않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롯의 부당한 육신적인 애착이 그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그가 미련 없이 버려야 될 그 쾌락들로 인하여 휘말려 엉켜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더욱이 그가 곧 자기가 한 일로 인하여 몹시 불쾌하였기 때문에 그것으로 보아서 그의 비일 관성은 경솔함의 증거입니다.
4. 본문 19절 상반은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입니다.
비록 롯이 두 사람을 보았지만 그의 대화는 한 사람을 향하여 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그가 천사들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천사들이 자기들 자신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구원이 그들의 손에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또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분들의 임재를 거울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거울에 사람이 비치는 것처럼 그들 안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롯은 하나님의 은총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보다 더 많은 것을 부탁드리려고 그분의 은혜를 증거 하여 호감을 사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그의 진심으로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다른 사람에게 줌으로 고갈되지 않고 빈약하게 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것을 바라는 면에서 더욱 더 확신을 가지고 소망하게 되면 그만큼 더 풍성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말로 과거의 기호를 경험하는 데서 나와서 그것은 미래를 위하여 용기를 갖는 데에 믿음의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롯은 이 점에서 잘못을 범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만족을 채우려고 성급하게 말씀을 떠나가는 경솔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도가 믿음의 근원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육신적인 애착의 수렁에서 나온 혼란 된 것이라고 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고 그분에게서 모든 것이 공급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소명하는 데에 절대로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그분 자신이 약속하셨으며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허락하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기대해야 될 것입니다.
5. 본문 19절 하반절에서 20절 까지는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⑳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입니다.
그가 여기서 각오된 악한 의지로 하나님을 대항하여 반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악한 자들이 곧잘 하는 짓인데 그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금 빗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멀리 떠나가는 상태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보호해 줄 것이 분명한데 산에서 멸망하게 될까봐 왜 이렇게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그러면서 소돔과 가까운 곳이며 소돔의 죄악과 불결함으로 인하여 똑같은 하나님의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는 그곳에서 안전하게 거하게 되리라고 왜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성을 따르게 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하늘 나라보다는 지옥에서 그들이 안전하게 쉴 곳을 찾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들의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에 전혀 감염되지 않은 산에서 도망하며 그 산을 의혹하고 있는 데에 롯은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죄악이 넘치고 있는 도시를 택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에게 증오거리가 되는 것 뿐 입니다.
그는 그럴 듯하게 변명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작은 도시라고 하는 구실을 붙여 자기 청을 더 쉽게 허락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말에서 마치 자기가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한 쪽 모퉁이만 원한다는 식으로 요청하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도피처를 싫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다른 곳을 경솔하게 모색하지만 않았다면 그 말이 옳았을 것입니다.
6. 본문 21절은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입니다.
어떤 자들은 이 말씀에서 무식하게 주장하기를 계속합니다. 그들은 롯의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그의 요청을 들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가 원하는 것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때로는 관대하심으로 그분이 인정하지 않으신 것도 허락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허락이 비단 여기서 새롭게 대두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부터 롯이 자기 어리석음을 고치고 바로 되도록 유도해 가십니다. 한편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의 악한 소원들을 그렇게 친절하게 그리고 온후하시게 참아 주셨는데 우리는 그 분의 영의 순수한 지시에 의하여 규제를 받고 그 분의 말씀에서 나오는 기도를 한다면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인들 못해 주겠습니까? 그러나 천사가 그것에 관하여 집착되어 있는 롯의 소원을 허락한 후에 그는 다시 빨리 가라고 재촉함으로 그의 태만성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7. 본문 22절은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입니다.
천사가 소돔을 멸망시키려고 파송되었습니다. 또한 롯을 살려 두라는 명령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천사는 후자의 일이 전자와 연결되지 않으면 전자의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연결시켜 놓으신 일들을 나누는 것은 종의 선택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천사들이 하나님의 인격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추측하는 자들의 설명에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비록 외관상으로는 그 언어가 조금 심한 표현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을 구원시키지 않고는 타락한 자들을 멸망시키실 수가 없다고 말한다고 해서 거기에 전혀 애매한 점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런 것이 필요하시다고 해서 절대로 우리는 그분의 권능을 제한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그분의 자유와 그분의 권위에 관한 어떤 것이라도 그분이 자원하여 그리고 자의적으로 자신을 속박하실 때 그것이 축소된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특별히 기억해야 될 것은 그분의 권능이 그분의 은혜와 그분의 약속들을 믿는 신앙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자신의 의도하시고 약속하신 것들만을 하신다는 것으로 결론 내리는 것이 사실인 듯 하며 적절한 듯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되고 유일한 교리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 말씀을 천사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지적한다면 꺼림직한 근거가 적어질 것입니다. 이 천사들이 적극적인 명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명령에서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삭제하는 것은 절대로 불법적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