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화니갤러리, 김일주 개인전
유형 : 대전전시회
날짜 : 2025년 11월 27일~12월 5일
관람시간 : 10:00~18:00
장소 : 화니갤러리, 대전 중구 대흥로 71번길 27(대흥동)
문의처 : 화니갤러리, 042)226-3003
1. The Present-삶의 향기 / 89.4×130.3cm / Acrylic on Korean paper / 2025
이충건 (문예평론가)
김일주 회화에 나타난 물성과 원형의 변증법
김일주 작가의 회화는 동양의 물성적 전통(닥지)과 서양의 회화적 방법론(아크릴 페인팅),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어린 시절 소품)과 보편적인 문화 상징(해바라기, 미키마우스)을 동시에 아우르는 복합적인 구조를 이룬다. 작가 스스로가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의 감성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명시했듯 그의 작업은 인간의 정신적 근원인 ‘기억(Memory)’의 심층을 탐구하는 서정적 고고학에 가깝다. 이러한 탐구의 결과는 최종적으로 관람자에게 건네지는 ‘선물로서의 회화’로 귀결된다.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분석 심리학에서 ‘기억’은 무의식에 처박힌 개인의 억압된 경험뿐만 아니라, 인류 공동의 정신적 유산인 ‘집단 무의식’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영역이다. 김일주의 작업은 개인의 사적 기억을 매개로 융이 말한 원형적 상징(Archetypal Symbolism)을 소환하고, 이 원형을 통해 개인적 서사를 집단적 경험의 차원으로 확장하는 역동적인 변증법을 완성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은 개인의 시간과 집단의 시간이 중첩된 ‘기억의 현장’으로 존재하며, 닥지의 물성, 해바라기의 태양 원형, 그리고 소품들의 아이 원형이라는 세 가지 논점을 통해 관람자에게 치유적 공감을 ‘선물’한다.
물성의 미학 ‘닥지와 축적된 시간의 연금술’
김일주 회화의 근원적 힘은 닥지(한지)라는 재료의 선택에서 출발한다. 작가에게 있어 닥지는 단순히 페인팅이 얹히는 표면으로서의 매체가 아니라 ‘물질의 기억’을 담아내는 그릇이며, 작가 자신의 감정적·역사적 뿌리가 연결된 고리다.
닥지는 섬유질이 얽히고설킨 두터운 질감과 불규칙한 표면으로 인해 시각을 넘어 촉각적 경험을 유발하며, 이는 관람자에게 그림을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도록’ 유도하는 중요한 장치다.
융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감각인 촉각은 원형적 무의식의 심층에 닿아 있는 통로다. 작가가 어린 시절 신문지를 불려 종이죽을 만들었던 개인적 기억에서 닥지를 선택한 행위는 곧 자신의 원초적 경험(개인 무의식)을 가장 한국적이고 역사적인 재료(집단 무의식)에 투영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즉, 닥지는 작가의 개인적인 유년기 기억과 한국 전통의 집단적 시간을 잇는 매개체로서 기능한다.
닥지 위에 스며들고 층을 이루는 아크릴 페인팅의 과정은 ‘기억의 겹쌓임(Layering of Memory)’을 물리적으로 시각화한다. 닥지의 은은하고 전통적인 질감(과거의 경험) 위에 밝고 긍정적인 색채(현재의 경험)를 끊임없이 축적하여 형성되는 방식은 곧 우리의 기억 구조와 같다.
융이 주장한 ‘집단 무의식’은 인류의 오래된 경험과 감정이 쌓인 거대한 저장소다. 닥지의 물리적 깊이감과 그 위에 덧대어진 색채들은 마치 이 집단 무의식의 심층적인 시간을 암시하며, 개인의 찰나적인 감정(페인팅)이 영원한 시간의 흐름(닥지) 속에 담겨 비로소 서정적 깊이를 획득한다. 닥지의 물성은 전통적 유산을 통해 개인의 기억을 집단의 역사적 무게와 연결하는 연금술적 매개체로 기능하는 셈이다.
2. The Present-삶의 향기 / 91×91cm / Acrylic on Korean paper / 2025
태양 원형의 소환 ‘해바라기와 집단적 희망’
김일주 회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상징적 요소인 해바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태양, 희망, 생명력, 충만함을 상징하는 보편적인 아이콘이다.
융의 분석 심리학에서 태양은 ‘자기(Self)’ 원형, 즉 정신의 전체성과 통일성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원형 가운데 하나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행위는 곧 인간의 정신이 자아(Ego)의 혼란을 넘어 자기(Self)라는 중심을 향해 나아가려는 개인화 과정(Individuation)의 은유로 해석될 수 있다.
작가는 고흐의 생가를 여행하며 얻은 인상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해바라기를 구성한다고 밝힌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고독과 열망이라는 집단적 문화 기억을 상징한다면, 김일주의 해바라기는 그 고독을 넘어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는 현대의 복잡하고 불안한 현실 속에서 ‘집단 무의식’이 추구하는 근원적인 희망과 치유를 적극적으로 소환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한다. 즉, 작가는 문화적 원형인 고흐의 해바라기를 재해석해 오늘날 인류가 공유해야 할 새로운 차원의 긍정적 집단 기억을 제시하는 셈이다.
해바라기와 함께 사용된 밝고 따뜻한 색감은 융이 정의한 리비도(Libido), 즉 근원적인 생명력과 정신적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표출한다. 이 에너지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관람자에게 위안과 공감을 선사하는 힘이다. 특히 닥지 특유의 은은한 질감 위에서 밝은 아크릴 물감이 펼쳐지는 방식은 마치 역사적 고난(닥지의 뿌리) 속에서도 솟아나는 긍정적 생명력(해바라기)을 상징하며, 이는 인류가 공유하는 트라우마 극복의 집단적 기억과도 연결된다.
문화적 원형의 결합, ‘영원한 아이’와 ‘집단적 순수’
김일주 회화의 결정적 특징은 해바라기라는 자연의 원형과 병치한 어린 시절의 소품들이다. 미키마우스, 장난감, 아이스크림, 무당벌레와 같은 이 오브제들은 김일주 회화의 개인적 무의식 영역을 담당하는 주요 상징체다.
미키마우스와 장난감은 융의 분석 심리학에서 ‘아이(Child)’ 원형, 즉 영원한 아이(Puer Aeternus)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이’ 원형은 순수함, 새로운 시작, 미완성의 잠재성을 의미하며, 인간의 정신이 끊임없이 재생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희망을 대변한다. 작가에게 이 소품들은 순수한 희열을 선사했던 개인적인 추억이지만, 동시에 미키마우스가 상징하는 정의와 긍정은 전 세계가 공유하는 집단적 문화 원형의 힘을 지닌다.
이러한 익숙하고 보편적인 이미지를 작품에 끌어들임으로써, 작가는 관람자에게 자신의 개인적 기억을 통해 집단적 무의식, 즉 미키마우스가 상징하는 ‘보편적 순수’를 공유하게 한다. 관람자는 작품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그 기억 속에 잠재된 순수함과 긍정의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개인의 사적 기억은 보편적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는 집단의 영역으로 승화되며, 이는 곧 공감이라는 치유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김일주의 회화는 개인의 복합체(Complex)를 해체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어린 시절의 소품들은 작가에게 기쁨과 위안을 준 긍정적인 복합체 역할을 하는데, 작가는 이 긍정적 복합체를 의식적으로 해바라기(자기 원형)와 결합함으로써, 현재의 복잡한 현실 속에서 개인화를 향한 긍정적 지향점을 확보한다. 미키마우스의 다소 엉뚱하면서도 정의로운 이미지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통일된 자아가 추구해야 할 명료하고 순수한 가치를 시사한다.
3. The Present-삶의 향기 / 91×91cm / Acrylic on Korean paper / 2025
개인적 구원과 집단적 공감의 ‘선물’
김일주의 회화는 ‘선물’이라는 주제 아래, 전통의 물성(닥지) 속에 개인의 서정적 기억(어린 시절 소품)을 녹여내고, 이를 인류 공동의 원형적 상징(해바라기, 미키마우스)을 통해 집단적 기억의 차원으로 확장하려는 예술적 시도다.
결론적으로 그의 작업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물성의 시간성’이다. 닥지의 질감과 중첩된 색채는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역사적 시간을 하나로 엮어내는 물질적 증거로서 기능하며, 평면 회화의 서정적 깊이를 확장한다.
둘째, ‘기억의 치유적 순환’이다. 해바라기와 어린 시절의 모티브는 태양 원형과 아이 원형을 소환하여 개인의 기억을 긍정적인 생명력(리비도)으로 충전시키고, 이를 통해 개인의 정신적 구원을 모색하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셋째, ‘집단적 공감의 매개’로서의 회화다. 익숙하고 보편적인 이미지를 사용해 관람자에게 친숙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작가의 사적인 기억을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이라는 집단적 기억으로 전환하는 공감의 예술을 실천한다.
김일주의 작업은 현대 사회의 피로와 단절 속에서 관람자에게 가장 필요한 따뜻함과 긍정을 전달하는 진정한 ‘선물’로 자리매김한다. 그의 회화는 우리가 잊고 있던 순수한 희열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그 기억이 곧 현시대를 살아갈 힘과 희망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하는 듯하다.
이충건 문예평론가
·디트뉴스24 대표이사
·문화저널 맥 편집인
·창작공동체 이도의날개 대표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이사
·(전)충남문화재단 미래정책위원
문화가 모이는 곳 "대전공연전시" http://www.gongjeo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