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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설렁 읽고 오십시오
2023.06.26.
5.로미오와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기 희곡이다. 서로 원수인 가문에서 태어난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하게 되고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가문을 화해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이태에서 전해오는 설화가 있었다. 연극 공연에 인기가 대단했다.
셰익스피어는 조연의 개성을 부각시키고 부수적인 플롯을 추가하여 극적 구성을 극대화하였다. 등장인물은 서로 다른 운문 형식을 빌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운명적인 사랑과 죽음을 맞이하는 로미오의 대사는 소네트로 표현된다.
대중의 인기가 아주 높아서 연극, 뮤지컬,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다. 명작으로 분류된 영화도 있다.
6. 말괄량이 길들이기
세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으로, 페트루키오라는 남성이 케이트라는 말괄량이 여성을 길들인다는 내용의 ‘유쾌한’ 희극이다.
패듀어의 부자 밥티스타의 맏딸 카트리나는 이름난 말괄량이였다. 성질이 어찌나 사납고 수다스러운지 ‘말괄량이 카트리나’라고 하면 패듀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아무도 카트리나에게 결혼 신청을 하지 않았다. 페트루치오는 카트리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이런저런 웃기는 짓을 해서)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카트리나의 거만한 기는 완전히 꺾이고 무슨 말이든지 고분고분 따르게 되었다. 루센쇼와 호텐쇼, 그리고 밥티스터는 페트루치오가 카트리니와 결혼한 것을 비웃었다. 그래서 페트루치오는 누구의 아내가 가장 얌전한지 각자 세 사람이 아내들을 부를 때 남편의 부름을 먼저 받고 맨 먼저 달려오는 아내의 남편이 돈을 갖기로 했다.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루센쇼와 호텐쇼의 아내들은 오지 않고 카트리나가 가장 먼저 왔다. 그리하여 카트리나는 패듀어에서 제일 얌전하고 훌륭한 부인으로서 다시 한 번 유명해졌다.
7. 한 여름 밤의 꿈
세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으로 세익스피어의 5대 희극의 하나이다.
연인들의 사랑과 갈등을 초자연적인 힘으로(요정이 등장하는 등 환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내는 내용이다.
즉 부모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초자연의 힘을 빌려 이루어낸다.
여기에 나오는 시구의 일부를 소개하면
아무리 천하고 천하여 멸시만 하는 것이라도
사랑은 훌륭하고, 품위 있는 것으로 바꾸어 주리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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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십이야
일란성 쌍둥이가 벌리는 해프닝이다.
쌍둥이 남매인 바이올라와 세바스찬은 항해를 하던 도중 폭풍을 만나 서로가 서로를 죽었다고 생각한 채 일리리아에 난파한다. 바이올라는 남장을 하고 세자리오라는 가명으로 오르시노 공작의 몸종이 된다.
바이올라는 곧 공작을 사모하게 되지만, 오르시노 공작은 올리비아라는 일리리아에 이름난 아름다운 여자에게 이미 구혼을 하고 있었다.
온갖 해프닝으로 극을 희극으로 이끌고 간다.
결국 그들이 결혼했다는 소식은 공작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아끼던 몸종 세자리오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소식에 공작은 격분한다. 세바스찬 때문에 졸지에 자신이 하지도 않은 결혼, 폭행(토비와 앤드류가 세바스찬에게 시비를 걸다가 얻어맞은 것), 배신을 저질렀다는 누명을 뒤집어쓸 위기에 처하지만 갑자기 세바스찬이 궁정에 나타나 모든 상황이 해결된다. 결국 세바스찬은 올리비아와, 오르시노 공작은 바이올라와 결혼하며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8. 베니스 상인
9. 소네트(Sonnet)는 (세익스피어 소네트 154편)
(세익스피어 소네트는 제가 잘 모릅니다. 예전에 영문학 전공하신 분의 강의를 들은 일은 있는데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유럽의 정형시의 한 가지이다. 단어 자체의 의미는 '작은 노래'라는 뜻이다. 13세기경까지 엄격한 형태와 특정 구조를 갖춘 14줄로 구성된 시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소네트는 엄격히 각운이 맞추어지는 형식이며, 르네상스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으나, 잉글랜드로 전해져, 영국 시를 대표하는 시 형식의 한 가지가 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소네트 작가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로, 154개의 소네트를 남겼다.
셰익스피어 소네트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적 소네트에서 벗어난 파격에 있다. 페트라르카(Petrarch) 이후 거의 모든 소네트에 등장하는 인물은 시인과 그가 시를 바치는 이상화된 여인이었다. 그녀는 물론 빼어난 미인이고 신분이 시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높은 귀부인이었다. 그러므로 시인의 사랑은 인간의 약점을 뛰어 넘어 신을 바라볼 정도로 시인을 고양시켜 준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소네트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 젊은 귀족에 대한 사랑을 이상할 정도로 모호하고 고통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남성을 찬미하기 때문에 심지어 동성연애자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소네트의 운율을 매기는 법은, 8개의 줄을 한 묶음으로 놓는 방식과, 네 줄씩 세번이 나온 후 두 줄이 추가되는 방식이 있다. (14행이 된다.)
소네트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페트라르카, 셰익스피어, 존 밀턴, 워즈워스 등이 있다.
** 현대적 해석
오늘까지 영향을 주는 이유는 어느 시대를 산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인간의 본성, 즉 야망, 사랑, 배신, 그리고 죽음을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읽기를 할 때도 이 관점에서 읽어 봅시다.
바로크 미술
바로크의 예술적 표현 양식은 르네상스 이후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서양의 미술, 음악, 건축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예술적 경향에서 보면 후기 바로크 시대는 곧 로코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균형과 조화에 반하여, 최소한의 질서 안에서 우연과 자유분방함이 강조된다.
*바로크 이전의 르네상스 시대는 고전적인 가치를 받드는 시대이다.(르네상스가 그리스-로마로 되돌아가자는 운동이다.) 이런 이유로 고전적인 가치에서 벗어나는 것은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바로크라는 말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의미는 형태가 불규칙한 진주라는 뜻으로 경멸의 의미이다. 미술사학자들은(특히 뵐플린) 미술이 고전주의 양식과 바로크 풍 양식이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질서와 무질서이기도 하고, 요즘의 말로는 보수와 진보로, 우와 좌로 왔다리 갔다리 한다는)
바로크 화가는 역동적이고, 개방적이다. 정적인 고전주의 양식의 틀을 깬 것이다. 고전주의자들은 강인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면, 바로크 화가는 파토스(연민의 감정)를 선호하여 고통과 감정, 죽음과 삶을 표햔히려고 했다.
이 시기의 유럽의 여러 나라는 자기의 정체성을 나타내려 자기들에게 적합한 예술 형식을 찾아나셨고, 가장 풍부한 표현력을 나타낸 시기이다.
바로크는 뒤 이어 로코코 양식으로 이어진다. 18세기에 들어와서도 바로크는 로코코 양식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배경
1. 반종교 개혁운동
종교개혁으로 인해 약화된 지상의 가치, 인간이 지닌 감정, 상상력 등에
대한 가치를 반종교적인 입장에서 받아들였다.
2.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으로 인한 정치 체계의 변화
수공업과 상업에 바탕을 둔 부르주아들이 과거 귀족들의 경제적 수준에
버금가는 부를 이루었고, 이들이 절대 군주를 지지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바로크 예술 형태를 권력의 상징으로
간주하였다.
회화
바로크 미술은 역동적인 형태를 포착하는 것과,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대화시키는 데에 중점을 둔다. 흔히 바로크 미술의 시작 지점은 로마이고, 최초의 바로크 미술가는 카라바조라고 간주되고 있다. 미술사에서 바로크는 미술의 모든 장르와 하나의 시대를 한꺼번에 포함하는 마지막 양식이다. 바로크 이후로 미술사에서는 동시대에 여러 가지 미술 사조가 등장하며, 각각의 장르에 따라 서로 다른 양식을 보이기도 한다.
카라바조
루벤스
렘브란트 반 라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안토니 반 다이크
베르니니
벨라스케스
루카 조르다노
바로크 미술의 특징
(미술이 과학을 만나면서 수학적 법칙성을 적용하였다.)
1) 색채를 풍부하게 사용하였다.,
물감의 연구와 새로운 기법을 발견하므로 투명한 물감의 칠하기에서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Impasto) 법을 터득하므로 원하는 색을 마음대로
낼 수 있었다.
2) 빛을 이용한 극적인 대비(밝음과 어둠)로 주제를 드러내고,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빛의 개념이 신성(神性)에서 자연과학의 발달(지동설)로 실재하는
자연과학상의 실상일 뿐이다 라고 믿게 되었다.
3) 근본적인 미술사조는 자연주의이며, 사실주의이다.
르네상스의 고전주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지 않으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을 하였다.
*크롬웰 -- “초상화를 그릴 때는 흠 하나 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라.”
4) 미술가는 자신의 공방을 “사업체 규모”로 확장하여 많은 제자를 두고
고객의 주문에 따라서 그려 주었다. 대가의 모사. 모방도 흔히 하였다.
아직 창작이라는 개념이 모자랐다.
5) 감상자가 작품에 직접 참여하는 느낌이 들도록 그렸다.
**바로크 미술의 여러 특징는
1) 장식성이 강하다.(색채)
2) 비논리적이다. -- 르네상스 고전이론에서 벗어 났다.
객관적인 미이론 보다는 주관적인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
3) 부자연스런 인체 동작 -- 무대 연기같다. (표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1) 17세기 이태리
A) 로마(이태리)
1) 교황청이 로마 건설을 주창하면서 미술의 강력한 후원자가 된다.
2) 유럽 예술가들이 모여들어서 정착하였다.--다양한 사조가 집합하였다.
3) 풍부한 고대 유물, 미켈란젤로, 라파엘 등의 대가의 작품이 자극을
주었다.
4) 로마 이외의 도시 -- 페스트로 황폐화하여 로마가 중심이 되었다.
5) 3종류의 양식이 추세가 되어서 발전하였다.
a) 카바라지오의 자연주의
b) 귀도 레니의 고전주의
c) 베르니니, 피에트로 다 코르트나의 진짜 바로크 주의
6) 카라바지오 양식이 17세기 유럽 미술 양식을 지배하면서 유행한다.
a) 엄격한 사실주의
b) 빛으로 어둠과 밝음을 극적으로 대비하여 주요 인물이나 주제를
강조한다.
c) 예술가로서의 삶과, 야성적이고 난폭한 삶이 카리스마를 형성하여
유럽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7) 1620년대가 되면 카바라지오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르네상스식
고전주의가 부상한다.
볼로뉴 미술학교를 설립한 카라치가 주요 역할을 한다. -- 고전적인
데생을 가르킴
8) 고전주의가 유행을 한다.
미술학교(Academy) 설립 --교과목이 고전미술의 기법이다.
(뎃생, 원근법 등)
9) 진짜 바로크 미술
a) 카톨릭 교회의 종교주제 미술을 주문(예수이트 회 등)하므로
종교적 경건성과 보수적 그림 양식이 나타난다.
(이런 경향은 라틴 아메리카까지 )
b) 회화만이 아닌 총체적인 예술로 나타난다. 즉 건축, 조각, 회화 등이
어울려져서 전체적으로 통일하여 종교적이고, 열정적인 표현을 하게 된다.
c) 대표적인 예술가 -- Gian Lorenzo Bernini.
10) 이태리가 경제적으로 쇠퇴하자 미술의 주도권도 다른 나라로 넘어간다.
스페인, 프랑스, 플랑드로
키라바지오(1571-1610)
이태리 북부의 작은 농장주 아들로 태어나서, 그림을 배웠다. 삼촌이 카톨릭 사제로 밀라노에 있어서 밀라노와 고향을 왔다리 갔다리 했다.
6세 때 아버지가 18세 때 어머니가 죽었다. 작은 포도밭은 상속받았으나, 재산을 탕진했다. 로마로 갔으나, 자리 잡지 못하고, 뒷골목 생활을 했다. 이때 그린 그림들이 초기 작품이다.(카드 사기꾼, 점쟁이 등)
델몬트 추기경을 만나, 후원을 받으면서, 생활이 조금 풀린다.그러나 분노 조절이 잘 안 되는 성품이어서, 고소고발을 자주 당한다.
1600년 경에 그리 ‘마태의 소명’과 ‘마태의 순교’로 무명의 설움을 조금 탈피하고, 생활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1606년까지 고소를 11번이나 당한다. 운동 경기에서 시비가 붙어 상대로 칼로 찔러 살해하면서, 로마를 야반도주하여 벗어난다. 나폴리에 갔다.
이후로 나폴리로 도망가서 그의 말년 작품을 남긴다. 떠돌이 생활에서 죄도 사면받고 로마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1610년에 나폴리에서 사망했다.
그의 작품은
섬세하고, 사실주의 양식의 그림을 그렸다.
빛을 이용하고, 화려한 표현을 최대로 이용했다.
카라바지오 작품은 감상자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림의 부분이 되는 느낌
그림
과일 바구니 1598
극도로 사실적이다.
2. 바쿠스 1. 2 — 아주 사실적이다 라고 평한다 1594, 98
3. 카드 놀이 사기꾼(cardsharp) 1594
로마에 와서 떠돌이 생활을 할 때 뒷골목 풍경을 그렸다.
4. 병든 자화상 —22세 때 자신의 처지를 그렸다.
5. 점쟁이 1593
로마 뒷골목의 집시 여인 모습이다.
6. 이집트 피신 중의 휴식 1598
7. 마태의 소명 1602
8. 마태의 순교 1602
동물적 잔인함을 표현하여 극적 효과를 노렸다.
7, 8의 작품으로 명성을 얻고, 무명에서 벗어났다.
9. 그리스도 체포 1602
10. 베드로 순교 1601
11. 예수의 매장 1603
12. 이삭의 희생 1603
13. 유디트 1599
전설적 이야기에서 극적인 장면을 그렸다.
14.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트리느 1599
15.엠바고의 저녁 식사 1601
16. 로사리의 마돈자 1607
나폴리 시대의 그림이다.
17; 로테르의 마돈나(1605)와 묵주의 마돈나(1607)
18. 마태와 천사 1602
19. 성모 마리아의 죽음 1607
20. 채찍질 1607
21. 세례 요한의 참수 1608
22. 다비드
23. 예수
2. 아버지(오라지오 젠틸리스키 1563-1639)
이태리 바로크 화가이다.
24. 다이아나 1623 (스캔 파일 5.4)
26. 수태고지 1623
3. 아르테미스 젠틸리스키(1593-1652)
카라바지오의 화풍을 가장 충실하게 따른 이태리 바로크 화가로,
카라바지오 화풍을 후대에 전했다. 여성화가이다.
화가인 아버지 젠틸리스키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17세 때 아버지의 지인이면서 화가인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법정에서 — 아주 깊은 심적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그린 그림, 유디트는 아주 유명하다. 흔히 카라바지오가 그린 유디트와 많이 비교한다.
서양미술사에서 최초의 여성 화가로 꼽히며
오늘날의 여성주의자들이 아주 높이 평가하는 화가이다.
(이 화가도 여자이어서, 수 백 년을 거의 잊혀지다시피 하였으나
여성주의 운동이 불 붙은 현대에 와서 재조명 받았다.)
27. 유디트(스캔 파일 5.3에 있다)
28. 유디트와 적장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하녀
29. 자화상
4. Annabale carraci (1560-1609)
안니발리 카라치 -- 고전주의에 입각한
활동시기는 카라바지오보다 조금 앞이다.
a) 1620년 경이 되면 미술 사조가 카라바지오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카라치의 르네상스로 회귀하는 고전주의 미술이 펼쳐진다.
b) 미술학교(아카데미)를 설립하여 고전주의 양식을 가르쳤다.
고전주의 양식이 아카데미즘이 되어서 서양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c) 푸생과 같이 외국 생활을 하였다.
d) 그리스-로마 신화를 주제로 그렸다.
1) 후기 르네상스 및 매너리즘에서 초기 바로크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2) 처음으로 잘 조직된 예술학교를 설립하여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순수 예술 아카데미의 근거가 되고 있다.
회귀하였다.
4) 티치아노와 코렛지오 기법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 그림의 선이 우아해지고, 부드러워졌다.
5) 1590년에 로마로 가서 귀도 레니에게 영향을 주었다.
6) 1595년 파로네세 추기경의 주문으로 페로네세 천정화를 그렸다.
30. 페로네세 천정화
--> 르네상스의 전성기에 그리던 고전적인 기법으로 그렸지만 다양한 환상적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서 비로크 미술의 시작을 알려주고 있다. 그의 그림은 푸생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페르네세 천정화를 두고 최후의 이태리 르네상스 천정화인 동시에 고전적(신화적) 주제를 도입하여 새로운 장(바로크 미술)을 열었다는 평도 듣느다.
따라서 카라치는 최후의 르네상스 화가이면서, 바로크 회화에 서광을 비춘 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31. 수태고지 1588
32. 피에타(1599-1600)
색상을 조절하여 전체적으로 유연하게 보이게 표현하였다.
매너리즘 양식(장식성이 강함)에 주제도 분명히 함으로(바로크 양식으로)
5. 귀도 레니 1575 –1642
카라치가 세운 아카데미 학생으로, 카라치를 따른 화가이다.
라파엘의 양식으로 그린 고전주의 회화의 단단함과 엄격함을 보인다.
34. 아틀란타와 히포멘스 1625
역동성(운동감-서로 대비되는 옆 모습ㅇ로)과 고전주의 양식을 보여준다.
36. 헬렌의 유괴 1631
6.코르토나(1595-1669)
코르토나는 전통 고전주의 양식과 바로크 양식을 절충하였다. 고객이 많았다. 화려한 장식성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르베리니 궁전의 ‘천국의 승리’는 그의 대표작이다.
37. 신국의 승리 1619
38. 사바니 여인을 강탈
39. 로무로스와 로무스 1643
7. 베르나르드 스트로지(1581-1644)
제노아에서 바로크 회화를 공부하였다. 그러나 플랑드로 화가인 루벤스의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그의 그림에는 루벤스의 화풍이 많이 들어있다.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40. 마돈나, 예수와 세례 요한 1620
41. 성 세실라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