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87]잘 쓰는 글은 어떤 것인가?
얼마 전 조정래 작가의 『황금종이』를 빌리려 임실군립도서관에 갔다. 반납코너에서 눈에 확 띄는 책을 발견해 함께 빌렸다. 군립도서관이 좋은 건 한꺼번에 5권도 빌릴 수 있고, 대출기간도 보름이나 된다. 『기자의 글쓰기』(박종인 지음, 2023년 8월 와이즈맵 발행, 343쪽, 18500원)가 그것인데, 순전히 저자이름을 보고 호기심이 바짝 일었다. 저자는 조선일보 기자로 <이 땅의 역사> <흔적> 등 대형 기획기사를 연재하는데, 직접 알지는 못해도 그의 내공이 녹록치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속 신문사의 제작방향와 결부시킬 이유는 없다.
이 책은 저자가 ‘조선일보 저널리즘 아카데미’에서 진행한 ‘고품격 글쓰기’강좌를 재구성한 것이다. 실제 강의에서 첨삭 지도했던 글들을 예로 들면서 <원칙과 팩트>에 충실한 글의 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명색이 ‘생활글 작가’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참조할 사항이 많았고 유익했다. 그가 강조하는 ‘좋은 글이 가지는 일곱 가지 특징’에 대해 백프로 공감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 무슨 글이든 글에는 팩트fact(사실)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팩트의 중요성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수도 없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팩트가 없으면 글이 아니며, 이는 ‘진실truth’과 또다른 말이다.
둘째, 글에는 파도처럼 기승전결 등 굴곡(구성)이 있어야 한다. 구성이 없는 글은 지루하기만 하고 영양가가 없다. 글을 설계하고 디자인해야 한다는 말이다. 디자인은 글쓰기에도 아주 중요한 키워드이다.
셋째, 글의 힘은 첫 문장과 끝 문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글의 시작이 독자로 하여금 그 글을 계속 읽게 만드느냐 여부를 결정하고, 끝 문장을 읽고는 그때까지 자기가 들인 시간과 읽는 수고를 생각게 한다.
넷째, 리듬이 없으면 절대로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는 것. 비문non-sentence(문법에 어긋난 문장)이 하나도 없고 유려하며 품격이 있는 글일지라도, 쉽게 읽히지 않고 읽으면서 계속 막히면, 그것은 그 글에 리듬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맞다. 백퍼 공감.
다섯 째, 입말을 아시는가? 가장 좋은 글은 술자리나 차를 마시며 친구들과 쑥덕대는 바로 그 형식 그대로 쓴 글이라는 것. 글과 말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결코 안된다. 글은 문자로 옮긴 말이다. 재밌게 들은 말은 재밌게 쓰고, 슬프게 들은 이야기는 슬프게 옮겨 적으면 된다. 팩트와 입말, 두 단어만 기억하고 글을 써도 중간 점수는 됨을 명심하자.
여섯 번째, 수식어를 남발하면 젬병이다. ‘너무’ ‘굉장히’ ‘매우’ 등이 문장에 많으면 읽을 때 거추장스럽다. 수식修飾를 많이 하지 않고 단순, 담백하게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일곱 번째, 많은 독자는 글을 읽고나면 여운이 남는 글을 좋아한다. 여운이 남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줄임표로 줄이면 안될 말이다. 여운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불명확하거나 결론이 없는 글은 독자를 짜증나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라.
위의 일곱 가지 원칙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무조건 쉽게 써야 한다. 전문용어나 자기의 현학衒學을 자랑하지 말고 우리가 쓰는 입말을 사용해 짧은 문장으로 리듬감 있게 쓰면, 독자는 당연히 글을 읽으며 감동을 받게 마련이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서 감동을 주라. 감동을 떨어뜨리는 불필요한 수식어를 남발하지 말라. 질색이다. 또한 독자들은 ‘너무 예쁘다’가 아닌, 왜 예쁜지 구체적인 팩트를 원한다. 마지막으로, 명확한 팩트로 구성된 명쾌한 글이 독자에게 여운을 준다는 것을, 최소한 글쓰는 사람이라면 각골명심하라.”
글을 쓴 후 20-30분 지나 소리내어 읽어보라는 조언도 훌륭하다. 글쓰기 강사답게 일목요연하고 알아듣기 쉽게 ‘이론’을 정리해 놓아 좋았다.
여기에서 이 글을 쓰는 나의 글을 좀 해보자. 나는 기자였지만, 외근(취재)이 아니고 내근(편집, 교열 등)이었기에, 솔직히 쪽팔리지만 글쓰기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따라서 글을 쓴다는 생각을 하면 덜컥 겁부터 났기에 써본 적도 거의 없다. 그런데 나이 45살이 되어서야 일기 형식의 생활글을 거의 날마다 쓰기 시작했는데, 고교 동창친구들로부터 “글 잘 쓴다” “재밌다”는 말을 듣고부터 자신감(?)이 붙었다고 할까? 아니다. 그냥 내 삶의 이런저런 얘기와 생각들을 글로 남기려 생각했던 것이다. 친구들이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여기는 것은, 아마도 내가 살면서 좋은 글이 담긴 책을 많이 읽고, ‘글파’들의 세상인 신문사에서 20년 동안 듣고 보고 읽은 것 때문이고, 그런 글들이 저절로 몸에 배인(체화體化) 것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글쓰기의 이론과 실제도 모르면서, 지난 20년간 엄청난 ‘생활글’을 써왔는데, <기자의 글쓰기>를 읽으면서, 용케도 그 이론과 실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내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님을 알 것이다. 저자가 말한 이론과 실제는 대부분 옳다. 물론 보충해야 할 이론도 소소하게 있겠지만 많이 있지는 않다. 강사가 다듬어준 글(완고完稿)들을 원래 쓴 글(초고草稿)과 비교해보면 많이 다르지만, 퇴고가 왜 중요한 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도 이 책은 나에게 제법 도움이 되고,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기日記조차도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홀로 쓴다고 아무렇게나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기 만족의 글을 쓰지 못하면 불만족하게 마련이다. 솔직하고 담백하고 쉽게 쓰는 게 1차 정답이지만, 일기라 해도 한번 써놓고 읽어보시라. 자기가 쓴 글에 자기 얼굴이 후덕거려지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이제 ‘제2의 삶’을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배우자를 비롯하여 2세나 3세 등)에게 당신의 생각이나 기억을 들려주거나 물려줄 필요성을 한두 번 느낀다면,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겨보면 어떨까?
시중 서점에는 글쓰기와 관련한 수십 종의 책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만 집중적으로 읽어봐도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자의 글쓰기>나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