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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 엘로이즈
La Nouvelle Héloïse
요약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의 대표적인 소설로서, 신분의 차이로 인해 결혼할 수 없는 두 남녀가 사랑을 우정으로 전환시키려 하지만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내용의 서한 소설이다.
작가 장-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712년 ~ 1778년)
발표 1761년
장르 소설
사조 전기(前期)낭만주의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56년부터 1758년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1761년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되었다. 처음엔 『알프스 산맥 발치의 소도시에 살고 있는 두 연인의 편지(Lettres de deux amans, Habitans d'une petite ville au pied des Alpes)』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이후에 『신 엘로이즈』라는 제목으로 변경된 것은 이 작품의 구도가 중세의 유명한 수사였던 아벨라르와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엘로이즈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출판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18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책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후대의 소설들에 끼친 영향도 지대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종교적인 담론들은 사랑이 파괴적인 힘이며 덕성에 의해 억제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찬양하는 것은 바로 사랑의 종교이다. 쥘리와 생프뢰의 사랑은 신비적인 사랑의 전통에 속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중세의 궁정시, 그리고 페트라르카의 작품 등에서 연유하는 이 전통의 중심적인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여성의 절대적 권위, 남자 연인의 복종, 시련, 결혼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인 사랑의 승리, 마지막으로 죽음. 연인들에게 핵심적인 것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불태우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들은 루소의 개인적인 감수성과도 잘 맞았다. 그런데 루소의 리얼리즘적인 심리분석은 순수하게 신비주의적인 전통을 거부한다. 그의 연인들은 매우 관능적이다. 생프뢰에게서 복종을 얻어낸 쥘리는 보상으로 그에게 입맞춤한다. 그렇지만 이는 생프뢰의 정념을 폭발시킨다. 등장인물들은 그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충분히 의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미덕이라는 미명하에 자신들의 진짜 욕망을 은폐하지만, 그것은 언젠가 폭발한다. 이러한 구도는 개인의 신비와 무의식에 대한 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중세의 궁정식 사랑(l’amour courtois)의 전통은 낭만주의적 사랑으로 변모한다.
다른 한편 이 작품은 주인공들의 사랑의 이야기를 넘어 루소의 고유한 사상이 개진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서한문이라는 형식이 이론적인 일탈들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아이들의 교육, 자살, 결투, 이탈리아 음악, 조경 예술, 농촌 경제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이론적 논의들이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것은 클라랑에서 보이는 유토피아적인 사회의 면모이다. 루소는 클라랑을 단순히 완벽한 행복이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사회로만 묘사하지 않았다.
쥘리의 남편 볼마르는 클라랑 유토피아의 정신적인 지주이다. 하지만 그는 폭군적인 주인이기도 하고, 최대의 소출을 얻기 위해 기업가처럼 행세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권위주의적인 모델과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이야기한 민주주의적인 모델의 관계는 무엇일까? 루소의 작품들은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주기보다는, 문제 자체의 복합성을 점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모순적인 성격이 오히려 루소의 사유의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신(新) 엘로이즈
등장인물
생프뢰(Saint-Preux) : 평민 출신 가정교사. 쥘리와의 사랑이 불가능함을 알고 편지 왕래로 대신한다.
쥘리 데탕주(Julie d’Étange) : 귀족 집안의 딸. 생프뢰와의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볼마르와 결혼한다.
볼마르(M. de Wolmar) : 쥘리의 남편. 자신만만한 무신론자로서 클라랑의 지역 사회를 이끈다.
클레르(Claire) : 쥘리의 사촌. 쥘리와 생프뢰를 헌신적으로 돕는다.
에드워드 경(Milord Édouard) : 부유한 영국 귀족. 두 연인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다.
작품요약
1부. 쥘리 데탕주는 그녀의 부모와 함께 스위스 베베(Vevey) 지방의 호숫가에서 살고 있다. 그녀의 교육을 생프뢰가 맡게 된다. 생프뢰는 쥘리에게 애정을 고백하고 쥘리 역시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데탕주 남작의 반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들은 직접적인 쾌락을 포기하는 대신 서신왕래로 정신적인 사랑을 이어가기로 한다. 하지만 쥘리가 생프뢰에게 입맞춤을 함으로써 이들의 약속은 깨어진다.
생프뢰는 호수의 맞은편 발레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은 점점 강해지고 결국 쥘리는 그에게 몸을 맡긴다. 쥘리는 그들의 사랑이 순수성을 잃었음을 슬퍼한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에드워드 경이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생프뢰는 에드워드가 쥘리를 사랑한다고 의심하여 결투할 뻔하지만 오해가 풀린다. 에드워드는 데탕주 남작에게 두 사람의 결혼을 제안한다. 남작의 분노가 폭발하고 쥘리에게 생프뢰와 결별할 것을 요구한다. 생프뢰는 클라랑을 떠나게 된다.
2부. 고향에서 쫓겨난 생프뢰는 절망에 빠진다. 에드워드 경은 쥘리에게 생프뢰와 영국에서 결혼하라고 권고하지만, 쥘리는 부모를 저버릴 수 없다. 기운을 차린 생프뢰는 파리의 사교계에 드나들며 파리의 풍속에 대해 묘사하는 편지를 쓴다. 쥘리는 그의 편지 어조가 너무 신랄하다며 나무란다. 그녀는 그에게 초상화를 보내고 이에 생프뢰는 황홀해 한다. 그는 실수로 어떤 화류계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 한다. 예기치 못하게 이들의 편지가 쥘리의 어머니에게 발각된다.
3부. 딸의 비밀을 알게 된 어머니는 몸져눕고, 클레르가 생프뢰로 하여금 서신왕래를 중단하게 한다. 쥘리의 어머니가 죽고 어머니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 쥘리는 아버지가 추진한 볼마르 씨와 결혼을 받아들인다. 천연두에 걸린 쥘리는 열병에 시달리고 생프뢰는 즉시 달려온다. 덕분에 그녀의 병세가 호전된다. 쥘리는 볼마르와 결혼을 하고 자신의 새로운 처지에 충직하게 살기로 맹세한다. 그리고 서신왕래를 끊고 필요한 경우 클레르를 통해서 안부를 전하자고 제안한다. 생프뢰는 자살을 생각하지만 포기하고, 에드워드의 제안에 따라 세계 일주를 떠난다. 쥘리는 엄마가 된다.
4부. 4년의 시간이 흐르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쥘리는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생프뢰와의 과거 때문에 남편에게 떳떳하지 못하다. 그녀는 클레르에게 자기 곁으로 와 달라고 부탁한다. 때마침 생프뢰도 세계 일주에서 돌아와 클레르에게 편지를 쓴다. 그는 쥘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이제 우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쥘리는 결국 볼마르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볼마르는 생프뢰를 초대한다.
쥘리의 정원 ‘엘리제’는 휴식의 공간이자 정신적인 재생의 공간이다. 볼마르는 생프뢰를 사랑의 열정으로부터 치료하려 한다. 그는 생프뢰가 사랑한 것은 처녀시절의 쥘리이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된 쥘리는 아니라고 확신한 나머지 생프뢰를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볼마르는 며칠 간 자리를 비운 사이 호수에서 함께 배를 탄 생프뢰와 쥘리는 격렬한 유혹을 느낀다. 그들은 가까스로 저항한다.
5부. 클라랑의 이상적인 모습이 묘사된다. 볼마르 부부가 이끄는 클라랑에서는 소박하고도 풍족한 자급자족이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자연의 가르침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렇지만 쥘리는 그녀의 남편이 무신론자라는 사실에 은밀한 슬픔을 느낀다. 클레르가 도착하고, 포도 수확 장면이 목가적으로 묘사된다. 생프뢰는 스스로 치료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에드워드 경이 그를 이탈리아로 데려갔을 때, 그는 쥘리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느낀다. 꿈속에서 쥘리의 죽은 모습을 보고 클라랑에 돌아온 그는 쥘리가 클레르를 생프뢰와 결혼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고 돌아온다.
6부. 하지만 클레르는 생프뢰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며 결혼을 거부한다. 에드워드 경의 소식이 전해진다. 그는 성마른 귀족 여성과 화류계의 정부 사이에서 망설인다. 클레르는 제네바의 풍속에 대해 묘사하는 편지를 보내온다. 클레르와의 결혼 제안에 생프뢰 역시 거부 의사를 밝힌다. 쥘리는 점점 종교에 심취하여 신비주의에 빠진다. 그러다가 파국이 온다. 쥘리는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고 물에 들었다가 병에 걸린 것이다. 쥘리는 생프뢰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기고 죽는다. 그녀는 생프뢰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결코 치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품 속의 명장면
내가 후회하는 것은, 사랑에 너무 많은 것을 바쳤다는 것보다는 사랑이 가장 큰 매력을 상실해 버렸다는 겁니다. 미덕의 감미로운 환희는 꿈처럼 사라졌어요. 우리의 열정을 정화하는 동시에 활기를 주던 숭고한 열의가 그 열정 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지요. 우리들이 쾌락을 추구하자 행복은 멀리 달아난 거예요. 우리가 서로를 더 존경하는 만큼 더욱더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던 순간, 정열이 과도해지면 자제력이 생겼던 순간. 또 순결에 대한 자부심이 속박을 달래주던 순간, 명예를 찬양하니 모든 것이 사랑에 유리해지던 순간, 그런 감미롭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세요. 그토록 매혹적인 상태와 우리의 현재 상황을 비교해보세요. 마음이 얼마나 동요하고 있는지! 얼마나 심한 공포감인지!
치명적인 근심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많은 무절제한 감정이 최초의 감미로움을 잃었는지!
아마도 생프뢰와 쥘리가 처음으로 육체관계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사건 직후에 쥘리가 생프레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쥘리는 쾌락의 만족을 추구하는 정열에 지배되지 않는 신비적인 사랑의 매력이 사라졌음을 슬퍼한다. 물론 이는 부분적으로 충격적인 사건 이후에 한쪽으로 치우친 그녀의 감정을 반영한다. 이후에 그녀는 관능적 사랑의 감미로움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신비적 사랑의 이상이 깨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정열과 자제력 중에서 어떤 것이 사랑의 행복을 가져오는 것인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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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이즈
프랑스 수녀, 철학자, 작가, 학자 및 수녀원장
엘로이즈(Héloïse, ? - 1164년 5월 16일)는 프랑스의 수녀원장이자 저술가겸 학자이다. 피에르 아벨라르와의 사랑이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여성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엘로이즈의 서간은 근대 이후 여러 교양 소설 작가들의 소재가 되었다.
장미 이야기에 묘사된 엘로이즈와 아벨라르
엘로이즈의 이름은 Helöise, Héloyse, Hélose, Heloisa, Helouisa, Eloise, 그리고 Aloysia 등의 여러 철자로 전해져 오는데 이는 게르만어파의 조어인 Hailawidis에서 파생한 것으로 성스러운 나무(Holy wood)를 뜻한다. 엘로이즈는 라틴어와 히브리어에 조예가 깊은 학자였다.[1] 귀족 출신이었던 아벨라르는 엘로이사의 집안을 성당 참사회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엘로이즈는 성당 참사회원이던 삼촌 풀베르투스의 집에서 살았다.[2]:30 중세 시기 성당 참사회원은 성당으로부터 일정한 급료를 받고 일하던 의전사제 직군으로 귀족은 아니었다. 엘로이즈의 부모가 누구였는 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3]
당대의 파리에서 가장 명망있는 철학자였던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의 집에 하숙하면서 엘로이즈의 교육을 담당하였다.[2]:31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에게서 철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을 배웠다. 그 때 배운 의학적 소양은 훗날 수녀원장이 되었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4]
사랑
아벨라르는 1132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내 불행의 내력》(라틴어: Historia Calamitatum)에서 자신이 엘로이즈를 만난 1115년 당시 엘로이즈가 15세의 소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엘로이즈가 1100–01년 무렵 태어난 것으로 본다.[5] 그러나 콘스탄트 뮤와 같은 역사가는 당시 엘로이즈가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근접한 나이였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후 둘 사이에 오간 서간에서 둘 모두 장성하여 만났다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뮤는 엘로이즈의 출생년도가 1092년까지도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6][7]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유혹하고 때로는 강압하면서 관계를 가졌다.[2]:32-33 둘은 사랑에 빠졌고 소문이 파다했지만 엘로이즈의 삼촌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가장 늦게 알았다. 둘이 사제 지간이 아니라 연인 지간으로 지내는 것을 알게 된 풀베르투스는 아벨라르는 내 쫓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엘로이즈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의 임신 소식을 듣고 결혼을 결심하지만 엘로이즈는 삼촌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였기 때문에 반대한다. 그러나 아벨라르는 결혼을 강행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엘로이즈를 데려가 출산하게 한다. 풀베르투스는 이들의 비밀 결혼을 폭로하였고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의 안전을 위해 잠시 수녀원에 들어가 의지하게 하고는 화해를 할 목적으로 풀베르투스와 만난다. 그러나 풀베르투스는 아벨라르가 엘로이즈를 버리기 위해 수녀원에 집어넣었다고 오해하고 아벨라르를 잡아 거세하여 버린다. 이 일로 둘의 결혼은 파탄이 나고 엘로이즈는 진짜 수녀가 되어 수도 생활을 하게 된다.[2]:34-46[8]:179-181
수도 생활
풀베르투스의 복수로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사랑은 결국 파탄으로 끝났다. 둘은 별 다른 연락 없이 20년 동안 각자의 수도 생활을 하며 살았다. 아벨라르는 주변의 많은 적을 피해 옮겨다니다가 트루아 지역에 파라클레투스(라틴어: Paracletus, 성신)라는 기도처를 마련하였다. 그 사이 엘로이즈는 아르장퇴유 수녀원의 원장이 되었다.[8]:181-182 둘이 다시 연락이 닿게 된 것은 엘로이즈가 곤경에 처했기 때문이다. 엘로이즈가 이끌던 수녀원은 1127년 무렵 생드니 수도원과 토지 소유권 마찰을 겪었고 결국 재판에서 패소하여 오갈데 없는 처지가 되었다.[8]:182 이 즈음 엘로이즈는 아벨라르가 쓴 《내 불행의 내력》을 읽게 되었고 그에게 여전히 사랑을 간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하다는 편지를 쓴다.
당신의 명령에 따라 나는 성의로 갈아 입고, 마음도 다른 마음으로 바꿔 가졌습니다. 당신 만이 내 마음과 몸의 유일한 주인이심을 보여드렸던 것입니다. …… 내가 당신 이외에 다른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은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 첫번째 편지[2]:99
이 편지를 받은 아벨라르는 자신의 기도처를 아르장퇴유 수녀원에 기증하였다. 이후 엘로이즈는 여러 차례의 편지를 통해 지난 사랑을 되새기고 수녀원의 운영에 대한 여러 자문을 구한다. 아벨라르는 1142년 사망하여 수녀원에 안치되었고, 1164년 엘로이즈가 사망하자 둘은 합장되었다.[8]:184
서간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열두차례에 걸쳐 편지를 주고 받았다.[2]:7-8 둘의 서신에 대해서는 진위를 의심하는 입장도 있고 후대에 그럴듯한 목적에 따라 재편집 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대체로 사실로 인정된다.[3] 서간에서 아벨라르는 자신이 욕정에 의해 엘로이즈를 범했으며 그로 인해 정신과 육체 모두에서 벌을 받았다고 여기지만, 엘로이즈는 첫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만남이 부도덕한 것이었더라도 자신은 스스로 그 사랑을 선택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고 고백한다. 엘로이즈는 사랑과 욕정을 구분하면서 자신이 과연 욕정으로 그러했는 지를 의심하지만 그저 아벨라르를 사랑했을 뿐이라고 고백한다.[8]:186-187 한정숙은 이러한 엘로이즈의 사상이 여성 스스로가 사랑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밝힌 것으로 중세인 당시 사회에서는 이례적인 것이었다고 지적한다.[3]
영향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이야기는 중세 시대 동안에도 널리 알려진 사랑 이야기로 《장미 이야기》의 모델이 되었고[9], 근대에 들어서는 장자크 루소가 《신 엘로이즈》를 발표하였다.[10][
https://naver.me/5l6h1six
2.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12세기 중세 프랑스에서 연인이던 39세 철학자와 17세 소녀가 각각 수도자가 된 후, 둘 사이에 오고 간 사랑의 편지를 엮은 서간체 에세이.
# 피에르 아벨라르는 중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림"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명성을 날리던 학자로, 엘로이즈라는 여제자와 사랑을 했지만 아들과 함께 수녀원에 숨겨놓고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자 엘로이즈의 가족들이 달려들어 그들이 증오하던 자신의 신체를 잘랐다고 한다. 그 이후 생이 끝날 때까지 둘은 플라토닉 러브를 했다고 한다.
3. 신 엘로이즈
La Nouvelle Héloïse
신(新) 엘로이즈
프랑스어로는 누벨 엘로이즈라고 한다.
소설가이자 철학자로 유명한 장 자크 루소가 1761년에 위 작품을 원용해 지은 첫 소설로 서간체 연애 소설이다. 당대의 소설은 천박한 문학으로 분류되었기에, 루소는 이 소설을 쓸 때 자신은 순전히 편지를 편집한 편집자이며, 이야기들은 모두 실화라고 밝혀두었다. 루소의 신 엘로이즈는 당대 귀족층 부인은 물론이고, 하층에까지 널리 읽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후대의 소설들에 끼친 영향도 지대하다.
아름다운 귀족의 딸 쥘리 데탕주(Julie d’Étange)와 평민인 청년 생 프뢰(Saint-Preux)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는데, 부모의 반대로 쥘리는 울며 불며 생 프뢰를 단념, 볼마르(M. de Wolmar)라는 지주와 결혼한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볼마르는 관대하게도 아내의 옛날 애인 생 프뢰를 가정교사로 집에 불러 들인다. 쥘리와 생 프뢰는 서로 죄, 즉 불륜을 범하지 않으려 괴로운 이성의 싸움을 계속한다. 마침내 죽음을 맞게 된 쥘리는 생 프뢰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천국에서 맺어질 것을 기도하며 신의 부름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