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11월 1일 맑음
대구경북지부 잔디회 창립총회를 하는데 참석했다.
웅동생하고 나 최현숙씨 이길자씨 북부정류장까지 28000원에 택시로 갔다.
먼저 이발을 하고 있다니까 봉고차를 몰고 오신분이 나를 씻어주고 업고 태워서 문화회관에 도착했다.
이문출판사에서 오신 모든 분들과 인사를 했다.
점심도 먹고 회의를 마치고 저녁도 먹었다. 여관으로 갔다.
여장을 풀고 여러분들과 대화도 하고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느낌을 받았다.
부회장님 정철영씨 가르침을 자세히 들었다.
내가 찾으며 기도하던 분이 바로 부회장님 같은 분이였다.
이제는 한국 근육병환우들이 혼자가 아니고 여러 사람이 같은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 연락을 하고 투병생활에 대하여 정보도 서로 나누며 빛을 보개 될날이 머지안타는 것을 느끼며 한편 기분 좋았다.
그동안 참고 살아온 보람을 느끼며 행복하기까지 했다.
종교이야기 내가 살아온 고행과 부회장님이 살아온 고행을 나누며 광배 총무와 기락이와 4명이 함께 잤다.
86년11월2일 맑음
동생 오건이도 왔다. 나 목욕 시켜주었다.
김도형이 부모와 신선생님 내외분도 오시고 저녁진지 한 후에 부회장님 이야기를 듣고 광배총무도 모두 불교도였다.
광배씨 하고 새벽 3시까지 한의학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고 잠자리에 들었다.
낮에 오건이도 운동하는 방법설명을 듣고 갔으며 오전에는 최경희 최현숙씨 신정희씨 모여서 사과도 깍아 먹고 점심겸 아침겸시켜 먹은 식대는 내가 9000원을 냈다.
11월 3일
아침을 먹고 김기락이와 봉사자들이 모여 창립발족을 하고 나서 다음에 할일 심의 한후 갔다.
이낙원 엄마 낙원이를 대리고 왔다. 그 아이들은 너무 심한상태였다.
혼자는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다. 한약 보약은 우리 몸에는 안조타고 생각한다.
우리 병은 야위는 편이 났다했다.
낙원 엄마 낙원 이를 데리고 간후 지경원사장님이 오셨다.
나는 경북의대 이수영지부장님을 정회장과 함께가서 뵙고 오려다 차가 비좁아서 그냥 오기로 하고 모든 분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신정희는 우리와 함께 택시타고 북부정류장 까지 왔다.
차안에서 오며 잠깐 종교이야기 엄마는 절에 정희는 기독교를 믿으나 아직 아무것도 느끼고 아는 것이 업다 하며 겸손했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은 진리를 깨닫기 위함이니 종교를 초월하여 잘 해달라고 당부하였다.
여성봉사로는 대구에서 재일먼저 자원했다며 주소를 적어주었다.
곳 안동나라시 택시를 타고 오는대 칠곡을 지나올 무렵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는 데 오다가 빵구가 나서 잠깐 타이어 갈아 끼워서 왔다.
안동오니 한시 반 군 보건소에 들려 이빨을 뽑았다. 소장님 소견서 받아 성소 병원 내과 간기능과 당뇨검사를 하고 오려고 하루 입원을 하기로 하고 동생은 수속을 발바주고 집으로 갔다.
나는 저녁을 먹고 오늘은 피곤해서 일찍 잤다.
86년11월4일
퇴원하여 해동사로 올라가서 기도하고 김광섭 삼계국민학교 교감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눈 수술을 하시고 신경과민으로 잠을 못 이룬다고 했다.
6일 날
아침에 해동사에서 자고일어 나니까 지회장 청산스님이 곁에 주무시고 있다.
일어나서 변소에 갔다 오시 길레 누워있다 일어나서 회장님 오셔 습니까. 안녕하셔 습니까? 하니까 오윤이 왔는가 몸은 좀 괸찬코 이렇게 말씀 하신다,
대구 잔디회 창립 발족 설명을 자새히 하니까 아무도 원망 말고 기도로서 아는 길 업던가 아직 확실히 아는 길 없으며 우리 병은 기도 밖에 할수업습니다.
유전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선진국에서 연구는 하고 있다지만 언제 치료할 수 있는 날이 오려는지 알 수 업는 일이옵니다.
건강한 부모 밑에 자식이 우리 같은 병을 가지고 태어난 이유를 말하니까 과거세로부터 인연이 모두 정해져서 시작대고 있으며 가정에 앞으로 건강한 자손이 태어나서 밝아지게 해달라고 암축하고 기도 열심히 하라는 당부 말씀이 계셨다.
집에 와서는 무사히 왔다고 신정희 박광배 강월스님 한태 전화를 드렸다.
11월 10일
오늘 제수씨는 인계 정준영 경운기에 술과 장보기 한 것을 싣고 아들 데리고 왔다.
라면 삶아서 먹여 보냈다.
부처님 저는 어떻게 새로운 인생목표를 정해야만 합니까?
무엇에 관심을 기우리며 나에 앞날을 밝혀야 합니까?
왜 이렇게 허망한 생각이 들며 무엇을 할 수 없을까 대구 창립총회를 보고 와서 나는 어느 길을 가야할지 답답하다.
부처님 저를 도와 주소서 지혜를 주소서 삼촌은 내일 아부지 생신이라고 암탉 한 마리 준다고 그러더니 안고 오셨다.
고맙게 받았다. 아부지도 기쁘게 생각 하신다.
부처님 새로운 가피력을 주소서
11월 11일
맑음 아부지 생신날이다.
반민을 안 밖으로 모두 초대하여 펴 먹었다.
오후에는 고추상인이 점촌에서 왔다. 1150원에 모두 팔았다. 615000원이였다. 농협에 빚내 쓴 돈을 갚았다.
12일 마늘 심을 논에 아부지 거름을 실어 너엇다
13일 오늘은 신정희 강찬이 한태 편지를 써다
14일 은 마늘을 심엇다 어제 써둔 편지를 발송 해다
16일 사과부사 17상자 모두 9000원 씩 안동 강정 아제 한태 팔았다
17일 은 대구 전신 전화국에 근무하는 신태식씨 한테서 안부 전화가 왔다
21일 오늘은 광배 이길자 최경희 한테 편지를 써다
22일 은 경운기로 오준 오환 금화 해숙 하고 기사1 리 볏짚 사놓은 것 실으로 갔다
오환이가 저녁때 경운기를 욱환네 집 앞에 쳐 밖앗다 한다
나는 오늘 편지 6통을 우송했다. 경운기 사고 소식에 놀랐다. 옥신이가 저녁을 차려 주엇다
24일 오늘은 금화가 구인사 간다고 첫차로 갔다.
26일 제수씨 메주 쑨다
27일 무릉 권영일 모친 오셔다 예기하시고 놀다 가셨다. 나는 김장고추를 다듬었다.
영월안혜자 영양 선생님께서 편지가 왔다.
29일 장날 예기하다 울고 불고 했다. 오건이 한태서 전화가 왔다. 김장을 가저오지 마란다
30일 오늘은 재종질 여 정자가 대구에서 결혼식 하는데 아무도 안 갔다.
부조는 만원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