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9.5(월)
그렇게 어리목계곡에서 상쾌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습니다.
훤히 날이 밝자 계곡은 온통 새들의 날개짓과 지저귐의 기분 좋은 소란으로 가득합니다.
어제 저녁 목욕을 하며 물가 여기저기 새똥과 깃털이 잔뜩 널려있길래
여긴 새들의 놀이턴가 보다고 우리끼리 이야기한게 눈앞에 실제로 나타난 것입니다.
아침 식사준비를 하고 있던 참인데 저기 다리위에 한사람이 나타나더니 우리를 부릅니다.
공원 관리인으로 보이는데 신고를 받고 왔다네요.
국립공원밖이라 야영해도 되는줄 알았다니까 여기도 공원내부고 야영금지랍니다.
별다른 시비는 않고 얼른 정리하고 계곡에서 나오라 한마디하고는 휙 가버립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버스 한대가 다리위에서 멈칫하다 가더니 그 버스기사가 신고한 모양입니다.
이 도로는 차도 드물게 다니고 다리위에서는 아래쪽이라 승용차에서는 보이지 않을 장소인데
차체가 높은 버스에서 우릴 본 모양입니다.
하긴 텐트와 침낭,매트를 말리느라 계곡에 잔뜩 널어 놓았더니 사명감 불타는 기사에게 들키고
말았네요.하하.그럴줄 알았으면 아예 한구비 더내려가서 안보이는 곳에 있을걸.
다른 국립공원같으면 벌금매긴다 어쩐다하는 불편한 일이 벌어졌을텐데 고맙게도 간단한 주의만
듣고 그만입니다.
그러고도 느긋하게 아침식사며 야영지 정리까지 마치고 버스 정류장에는 10시쯤 올라갑니다.
제주에서는 일단 시외버스터미날로 가야 어딜가든 갈 수가 있습니다.
터미널거쳐 모슬포로 이동하니 점심때가 됩니다.
선착장 부근 솔밭에서 우럭 2마리(1.3kg,3.3만)로 회뜨고 나머지는 매운탕, 훌륭한 점심거리가 됩니다.
물결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데 기상악화로 마라도와 가파도행 배는 뜨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선착장입구에 걸렸습니다.
올레길인지 뭔지하는 열기 내뿜는 도로를 한짐이나 되는 배낭메고 이 뙤약볕 아래 걷자니 도저히 꾀가 나서
싫습니다. 버스로 나머지 서쪽 해안을 돌아보자 하는 생각으로 알아보니 해안도로를 일주하는 버스는
드문드믄 있어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다시 제주시로 바로 가는 버스를 탑니다.
제주시내의 탑동이라는 동네에 가면 방파제따라 난 멋진 산책로가 있습니다.
탑동에서 용두암지나 해수찜질방까지 아름다운 해변에서 서쪽 바다를 장엄하게 물들이다 사라지는
저녁노을 바라보며 걷는 즐거움도 제법 쏠쏠합니다.
여태 4박을 하면서 한데 잠만 잤으니 오늘밤은 땀에 찌든 몸도 뜨거운 물에 담가야겠습니다.
찜질방 휴게실 넓은 유리창 너머 저멀리 밤바다를 밝히는 어선들의 불빛을 바라보며,
미리 준비해간 고급와인과 치즈로 제주의 마지막 밤을 자축한다면 줄곧 풍찬노숙의 프롤레타리아적이던
이번 여행에 그나마 그럴싸한 품위가 좀 보태질까 그런 허황된 기대도 품어 봅니다.
첫댓글 ㅎㅎ 재미있었겠습니다. 저렇게 인생을 즐기며 살아야하는데...
혼자 가셨나봅니다.그래도 산행도 아니고,여행겸 가셨는데~~~와인과 치즈라~~저도 한 번 흉내를 내보아야겠습니다.
덩달이님 두명 갔습니다.
제 로망은 세계일주 그것도 도보 아니면 자전거 여행이거든요.
저렇게 야영위주로 다니면서 미리 야전생활 연습을 해두자는
생각입니다.
전 만리장성을 걸어서 끝까지 한번 가보고싶은데요..ㅎ
두분이서 좋았겠습니다. 도보아니면 자전거로 세계일주. 편안한 여행보다 훨씬 의미가 있겠네요
음 이런 여행도 정말 멋지겠습니다....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