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어린 시절에 책을 읽으면서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나는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컸던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병자호란 당시에 어떤 관리의 부인이 오랑캐의 첩실로 들어앉자 사대부라는 남정네들이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그때 그 부인은 “이 땅의 남정네들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였기에 이런 일이 있지 않느냐?”며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죽어 마땅하다.”라는 이야기 였습니다.
1907년 8월1일 대한제국의 군대가 제국주의 일본에 의하여 해산 명령이 내려오자 이에 대한 저항으로 시위 제1연대 1대대장이었던 박승환(朴昇煥) 참령은 위의 말을 남기고 자결하셨습니다.
그리고 박승환 참령의 자결을 뒤따라 중대장 오의선 정위도 뒤따라 자결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장교들의 자결이 뒤따르자, 남상덕 참위는 “윗 장교(上將)가 나라를 위해 죽음으로 의로움을 보였는데, 내가 어찌 홀로 살기를 바라겠는가? 마땅히 저 적들과 결사 항전하여 나라의 원수를 갚자(上將爲國死義 吾安得獨生 當與被賊 決一死戰 上報國讐)” 라는 말로써 부하들과 함께 무기고를 열고 시내로 나가 왜군과 격렬한 시가전을 벌였습니다.
대한제국 군대의 봉기는 박승환 참령의 자결과 남상덕 참위의 궐기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지방에서 해산을 맞은 많은 군인들은 의병전쟁에 참여하여 의병의 화력과 조직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무장 독립운동의 많은 지도자를 키워냈던 신팔균 (申八均) 선생은 당시 강계진위대의 정위로 근무중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을 역임하여 대한제국군대의 법통이 신흥무관학교로 흐르도록 하셨습니다.
어린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죽어 마땅하다.”라는 말이 그 이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가슴에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군인이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사랑하는 여인은 병자호란때의 그 여인처럼 적의 노리개가 될 것 입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항상 잊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합니다.
지난 여름 무더운 날, 모든 국민들이 축구장을 보고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이 먼저 떠난 분들도, 그 분들의 가슴에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하여, 그리고 군인으로서 주어진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한 점 부끄럼없이 이 땅의 남자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대한민국 국군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군인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쏟아지는 땀방울을 닦으며 근무하고 있을 모든 국군 장병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지난 오랜 세월 이 땅의 남자 구실을 위하여, 이 땅의 군인으로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셨던 모든 분들께 거듭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4336 대한민국84년 8월1일 1244 만주국경
추신 : 남대문 부근에 대경빌딩과 상공회의소 사이에 대경빌딩쪽 화단이 박승환 참령께서 자결하신 곳입니다. 화단에는 그 위치를 알리는 작은 비석이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서 그 부근을 지나시는 분은 한 번쯤 나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던 분들을 생각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