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몹시 춥고, 배고픈데… 괜찮겠어요?”
대구시 남구 대명동 거리를 걸으며, 며칠 전 수녀와의 통화가 떠올랐다. 대구의 맛집 막창집과 떡볶이집을 뒤로하고 수도원을 향해 걸었다. 거리의 상가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고, 아기자기한 성탄 소품과 산타 할아버지의 미소가 진열대 위에 올려져 있다. 아기 예수 탄생을 준비하며 은수(隱修) 생활을 하는 까말돌리 한국수도원(원장 최성혜 수녀)의 문을 두드렸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 자정에 일어나 저녁 7시 30분까지 기도와 묵상, 침묵, 묵주 기도로 하루 일과를 보내는 수도자들. |
▲ 까말돌리수도회 수도자들은 식사를 위해 하루 한번 요리를 한다. 빵과 샐러드로 차려진 간단한 아침식사. |
▲ 기도하기 위해 기도실에 모인 은수자들. 까말돌리수도회는 전 세계 10개 나라에서 은수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을 통해 1000년의 수도회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
▲ 까말돌리수도회는 은수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의 공동체다. 함께 기도하거나 공동 소임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홀로 조용히 방에 머물며 은수 생활을 한다. |
‘봉쇄구역’이라고 적힌 문을 열기 직전까지도, 패딩 점퍼의 주머니 속 휴대전화에서는 카톡이 울려댔고, 편의점에서 산 커피와 빵의 영수증이 나돌아다녔다.
기도 중이었던 최 수녀는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넸다. 흐트러짐이 없으면서도 부지런한 걸음걸이였다. 안내에 따라 기도실로 갔다. 탄자니아 수녀가 앉아있다. 최 수녀가 복음을 낭독했다. 바깥 온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복음을 듣고 있는데, 발가락 끝에서 냉기가 올라왔다. 코끝이 차가워졌다.
짧은 기도가 끝나자, 최 수녀는 이틀간 지낼 방으로 안내했다. 정갈한 나무 책상과 1인용 침대, 낡은 나무 옷장이 놓여있었다.
최소한의 식사, 자정에 깨어 기도
“우리는 몹시 가난한 식사를 합니다. 저녁은 먹지 않아요. 식사를 위한 요리는 하루에 한 번 합니다. 방문 앞에 음식을 가져다 놓고 종을 칠 테니, 1분 후에 가져다가 방에서 먹으면 됩니다.”
1인용 식탁에 홀로 앉아 창문을 바라보고 수저를 들었다. 생선과 고기를 먹지 않는 수도회 회칙에 따라, 식판은 정갈한 채소밭이었다. 모든 정물은 건조한 직설법처럼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이 방에서 부스럭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건 내 옷깃과 숨소리뿐…. 세상의 소음이 동반되었던 지금까지의 식사와는 달랐다. 브로콜리와 감자, 양파, 밥알들이 침묵과 함께 입으로 거룩하게 들어갔다.
식사 후 하루 일과표를 받았다. 취침 시간은 저녁 7시 30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기상 시간이 자정이었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자정에 일어나 독서 기도와 성체 현시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정이었다. 일과는 기도ㆍ미사ㆍ대침묵ㆍ묵주 기도ㆍ영적 독서ㆍ관상 기도로 채워졌다.
첫날, 저녁 식사를 건너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몸은 침대에 있었으나, 초저녁에 잠이 오질 않았다. 집에서 가져온 온도계를 보니, 방 온도는 17~18℃를 오갔다. 밤 9시까지 뒤척이다 종소리에 눈을 떴다. 자정이었다.
두 수녀는 냉기가 가득한 기도실에 모여 그날의 복음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소성당으로 자리를 옮겨 독서 기도와 성체 현시, 묵주 기도가 이어졌다. 모두가 깊은 잠이 든 밤, 두 수녀는 시간전례서(성무일도서)를 펼치고 기도문을 한줄 한줄 읊었다.
바깥 세상을 위한 기도 소리
두 수녀의 극기와 기도, 희생은 새벽에 뜬 별 같았다. 하느님을 향한 찬미와 기도 소리는 새벽의 고요한 정적을 깼다.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흐트러짐 없는 두 수녀의 찬양을 위한 몸짓과 기도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기도에 동참은 했지만, 깜빡깜빡 잠이 들어 몸이 옆으로 기울 뻔했다.
두 수녀는 묵주 기도를 바쳤다.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과 이형우 아빠스를 비롯한 선배 수도자들의 천상 안식을 위해 묵주알을 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남북 통일을 위해, 이 세상에서 환대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주민과 난민, 병상에서 고통받는 환우들, 젊은 성직ㆍ수도자들,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를 했다. 세상과 단절된 수도원에서 세상을 향한 기도가 흘러나왔다. 세상과 사회,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인간들을 위한 기도였다.
짬짬이 기도를 마치면, 다음 기도 전까지 개인 방에 들어올 수 있었다. 휴대폰의 죽음, 세상과는 단절됐다. 일상의 틈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던 SNS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 공간에 나 자신은 텅 빈 채 온전히 머물렀다.
임시 거주하고 있는 대명동 신학원 건물은 오래돼 비가 샜다. ‘가난의 영성’을 사는 수녀들은 천장을 고쳐 짓지 않고, 대야를 갖다 놨다. 수도원의 작업실과 주방 문을 열 때마다 찬기가 뿜어져 나왔다. 서랍장과 수납장, 거울까지 모두 인근 주민들이 쓰다 버린 물건이었다.
수도원 밖 세상에서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에 허덕였다면, 수도원에서는 자고 싶은 욕구와 싸워야 했다. 누군가 잠을 준다면, 그 무엇과도 바꾸겠다는 확신이 섰다. 부족한 잠 앞에서 배고픔은 참을 수 있었다. 최 수녀는 갓 입회한 수녀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도 잠이라고 했다. 밤 기도를 하면서, 내일 아침에는 짐을 싸서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수련자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춥고 배고파 보니, 따뜻하고 배부른 것에 절로 감사해졌다. 감사하는 마음은 욕심과 미움, 판단으로 가득했던 생각들을 가볍게 밀어냈다.
고생과 인내, 자기 낮춤이 믿음
2000여 년 전, 예수께서 태어난 베들레헴의 마구간 같은 수도원을 나왔다. 동방의 세 박사는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찾아 엎드려 경배했다. 이들이 가장 값진 귀중품을 예물로 바쳤듯 수녀들도 아기 예수께 최고의 귀중품을 매일 같이 바치고 있었다. 그것은 아기 예수를 진정한 왕으로 알아보았다는 뜻의 ‘황금’, 기도를 상징하는 ‘유향’, 슬픔과 고난을 상징하는 ‘몰약’을 매일 정성스레 봉헌하고 있었다. 그것은 현대판 극기와 기도, 희생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최 수녀가 했던 말이 맴돌았다. “사람에게 고생과 인내가 없으면 겸손함을 배우지 못해요. 가난하고 고생해야 고개 숙이는 걸 배웁니다. 겸손해진다는 것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에요. 자기 낮춤은 곧 믿음이거든요.”
하느님은 ‘자기 낮춤’을 통해 인간이 되셨다.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인간들을 위해….
까말돌리수도회
1012년 로무알도 성인이 이탈리아 아레초 까말돌리 지역에서 설립한 최초의 은수 수도회다. 수도회 설립 1000주년을 맞은 2012년에 한국 파견을 결정했다. 2016년 1월 한국에 들어와 대구 대명동 신학원에 임시 수도원을 마련해 은수 생활을 하고 있다. 전 세계 10개 나라의 460여 명 수도자가 은수 생활을 통해 1000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원장 최성혜 수녀
“가톨릭 은수자들이 해야 할 의무는 주님을 찬미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는 거예요. 모두 잠든 시간에 우리의 기도가 세상으로 흘러가는 게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지 몰라요.”
침묵이 깨졌다. 절제된 걸음걸이와 규칙적인 생활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 적 없던 최성혜(마르타, 까말돌리 한국수도원장) 수녀가 휴게실에서 입을 열었다. 그는 한국어가 서툰 탄자니아 수녀와 둘이서 수도원을 지키고 있다.
“생리적으로 몹시 피곤해요. 수도자가 적으니 나태해지고, ‘각자 방에서 기도하자고 할까?’ 하는 유혹도 와요.”
홀로 한국수도원을 책임지는 수녀의 한탄만은 아니었다. 인간에게 고통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를 들어준 답변이었다.
고통과 어려움 통해 주님께로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어려움을 하나씩 주십니다.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주님이 내게 오라고 손짓하는 겁니다. 고통을 주시는 이유는 내 안에 씻어야 할 게 있기 때문이에요. 하느님이 고통을 도구로 나를 당신께 이끄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아플수록 감사해져요.”
최 수녀는 “주님은 우리에게 인간적인 아픔, 육신의 피로를 주시지만, 목숨을 달라고 하진 않으셨다”며 “예수님은 죽음의 고통을 실천했다”고 말했다.
“못사는 사람일수록 고통을 잘 견딥니다. 잘사는 사람에게는 편안함의 습성이, 못사는 사람들은 불편함의 습성이 몸에 배어 있거든요. 그래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23)고 하는 거예요.”
그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왜 밤에 깨어 기도하느냐”는 것이다. 본능적인 육체의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인간적으로 잠을 자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려운 극기이다. 수도회 회칙에 따라, 요리를 하루에 한 번 하는 이유는 음식의 절제는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영적인 삶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저녁은 먹지 않는다. 단, 성령으로부터 오는 선물이 있을 때만 제외하고.
44년 독수 생활한 나자레나 수녀 원의로
주민등록등본을 말소시키고 이탈리아 까말돌리수도회에 입회한 최 수녀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44년간 이탈리아의 독수처에서 독수(獨修)생활을 했던 미국인 나자레나(1907~1990) 수녀가 세상을 떠난 후, 까말돌리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하기를 바란다는 나자레나 수녀의 원의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는 까말돌리가 한국에 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까말돌리 한국수도원은 새 수도원을 지어야 한다. 성 로무알도 은수 규칙서에 따르면, 수도원에서 세상의 불빛이, 세상에서 수도원의 불빛이 안 보이는 곳에 수도원이 있어야 한다. 수도원에서 세상의 불빛을 보면 인간적으로 그리워진다. 또 해발 600~700m의 산속이어야 한다. 은수자는 춥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