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을 잘 모셔야 - 제사 의 의미
어느 날 공자에게 마을 사람이 찾아와 “선생님 우리 집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제사를 지내도 좋을까요?”하고 물었다. 공자는 흔쾌히 “제사를 지내도 좋다”고 했다.
며칠 후에 또 다른 마을 사람이 찾아와 “선생님 우리 집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제사를 지내면 안 되겠지요”하고 물었다. 공자는 얼른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제자가 “선생님 어찌 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그리 의견을 달리 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공자는 “모름지기 제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거늘, 전자는 그럼에도 제사를 지내려는 마음이 있기에 그리하라 일러준 것이고, 후자는 핑계 삼아서 제사를 지내려는 마음이 없음이니 마음대로 하도록 일러준 것이니라.” 라고 했다.
이제 열흘쯤 뒤면 “설날”이다. 벌써부터 명절을 맞는 사람들의 마음도 뒤설레고 바쁠 것 같다. ‘설’은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1년 중 첫 명절이며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옛 문헌에 따르면, 의례·민간신앙, 복식과 음식, 놀이 등 설 명절에 관련한 세시풍속 또한 풍성했다. 이와 함께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 의미가 컸지만 이제는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것만 남았고, 세시풍속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설날에는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제사(차례)를 지낸다. 그리고 더러는 산소도 들린다. 제사는 효(孝)를 바탕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의 산물로, 후손들이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고 은혜에 보답하는 작은 정성이요 또한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는 의식이다.
춘추시대 노나라 대부를 지낸 맹의자(孟懿子)가 “효란 무엇입니까?” 라고 공자에게 물었다. 이에 공자는 “어기지 않는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살아계실 때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서 장례하고 예로써 제사하라는 것이다.” 라고 했다.
공자는 또 “제사는 마치 조상이 앞에 계신 듯이 정성을 다해 모셔야한다.”고 이르고, “귀신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따라서 제사도 귀신이 있기 때문에 제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후손으로서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추념의 예식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제사는 반드시 자신이 직접 드려야 하는 것이다. 자신은 참여하지 않고 남에게 시켜서 대신 하게 하는 것은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은즉, 정성이 실질이고 예는 허상이다.”(논어) 라고 했다. 옛 선비는 유배지에서도 제사를 지냈다. 제사는 웬만한 집안에서는 4대 봉사로 고조할아버지 까지 지냈다. 그러나 주자(朱子)의 가르침에 따라 4대 봉사는 대체로 3품 정도의 벼슬을 하는 집안에서 전래되어왔고, 벼슬이 없는 집안은 부모, 조부모까지 제사를 모시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변화에 따라 오늘 우리의 제사 풍속도 많이 변하고 있다. 조부모 제사는 사촌이 모이기가 어려워 장손이 혼자 지내거기가 일쑤인데다 많은 이들이 조부모에 대한 깊은 정을 간직하고 있지 않아 자연스레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안이 늘어나 1대 봉사(부모)로 바꾸는가 하면, 자정에 지내 던 기제사를 초저녁에, 따로 지내던 기제사를 한날에 함께 모시고 지내기도 한다. 또 종교(기독교)를 믿는 이들은 추모예배로 대신하거나, 아예 추모예배마저도 드리지 않기도 하고, 또 해외로 이민한 많은 이들도 제사들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고 안 지내고는 각자의 마음일 것이다. 또한 제사하는 형식도 각자의 형편에 따를 것이다.
그러나 조상을 추모하는 제사는 수천 년을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부모가 있고 조상이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형태도 바뀌고, 관심도 멀어져간다 해도 부모에 대한 추모는 바뀔 수 없다. 따라서 학자들은 우리들에게 가장 익숙한 의례인 제사를 통한 부모의 추모는 면면히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어버이의 사랑보다 더 크고 넓은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조상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이는 ‘조상을 욕되게 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또 옛말에 ‘조상 잘 섬겨 잘못되는 사람 없다’라는 말도 있다. 이는 조상을 잘 섬겨야 잘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채근담에서는 ‘이 몸이 오늘 세상에서 받아 누리는 것이 모두 조상의 덕택이니 자손을 위하여 조상의 무릅쓴 그 곤란을 생각하여 감사해야할 것이요, 결코 모자람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