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일 시집 가난한 화가의 캔버스(2021.12.14.)
한국작가출판부 동행(2010)
강영일
충남 금산 출생
문학세계, 한국시 신인상 수상
성남문학상 우수상 수상
성남예총 공로상
경기문학 공로상
성남문인협회 사무국장
경기도문인협회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홍보위원
문학시대 동인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전 태원고 교사
현 효양고 교사
시집 겨울을 떠난 새 외 다수
머릿글
일상탈출을 꿈꾸며
산 너머 작은 마을엔 하늘빛 닮은 호수가 하나 있다. 잔잔한 소슬바람이 핥고 지나간 자리엔
항상 은어들이 뛰놀고 수정처럼 맑은 물빛은 기름먹인 유지처럼 흐느적거리며 자신보다 큰 하
늘을 담아낸다.
호수 속에 드리워진 자화상을 볼 때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만 진다. 뿌연 안개 속에서 이름
표 하나씩 건져들고 지난 생을 반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앞만 보며 달리다보니 어
느덧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섰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인생을 신기루라 여기며 어린애
처럼 살아왔다. 불혹을 지난 요즘 도회지 생활에 염증을 느끼거나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할 때
면 귀소본능처럼 남대천 연어로 돌아가곤 하던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이다.
내 고향은 금산 읍내에서도 멀리 떨어진 하늘 아래 첫동네이다. 뒤편으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
러쳐져 있고 마을 앞을 흐르는 시냇물의 종착역쯤에 호수가 하나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낚시꾼들이 즐겨 찾고 호수 위로 나무다리를 놓아서 지나가던
객들이 쉬었다 가면서 마음 한 자락이라도 잠시 건네주고 가는 명소 아닌 명소가 되었다.
심신이 피로할 때 가끔 길손이 되어 마을 뒷산을 오르곤 한다. 산에 오르기 전까지는 힘들고
지쳐 포기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정상 정복 뒤에 느끼는 기쁨과 뿌듯함, 그리고
용서, 세상 사람 모두를 이해하고 포용할 것 같은 너그러움이 솟아오르곤 한다.
아등바등 살지 말고 산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살아가자며 수없이 다짐도 해본다.
가끔 거미줄처럼 얽힌 세상일을 뒤로 하고 일상적 파시즘으로부터 탈출한다. 울창한 숲속을
지나 산엘 오르면 어느새 우거진 소나무 터널과 마주한다.
소나무, 잣나무, 도토리나무, 상수리나무, 칡넝쿨, 굴참나무, 떡갈나무, 이름표를 채 달지 않은
이름 모를 꽃과 나무들. 소나무 터널이 끝나는가 싶더니 붉은 단풍나무 숲이 얼굴을 붉히며
나타나고 눈 시린 가을 노화는 어서 오라 손짓 한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산 문턱을 내려서면 단아한 푸른 보리밭 물결, 그 속을 걷노라면 유년
시절의 기억이 허연 포말로 피어오르고, 꾀꼬리 울음소리만이 적막한 들녘을 흔들어 깨우던
어느 날, 보리밭을 매러 가시는 어머니 치마폭을 부여잡고 떼를 쓰던 일, 운동화 한 켤레 사
오겠다며 장에 가신 어머니를 머리 쭈뼛하도록 밤 마중하던 성황당 길...
그러나 그 먼 길을 걸어갔다 오시는 어머니께 수고하셨다는 말보다는 손에 들린 신발과 과자
에 눈길이 먼저 갔던 철없던 시절, 잡수시라는 말도 없이 꾸역꾸역 먹기만 하던 나. 겨우 살
아갈 만하게 되어 뒤돌아보니 머리 새하얀 낯선 할머니 한분 서 계셨다.
주렁주렁 딸린 식구 뒷바리자하느라 당신의 나이도 몽땅 잊어버리시고 매일매일 지난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지워가고 있다. 끝없이 베풀 줄만 알았지 받을 줄 모르시는 당신, 유년 시
절의 동화 같은 기억 속에서 당신에 대한 향수는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아, 언제나 돌아가 쉬
고 싶은 영원한 고향으로 살아 있다.
일상의 걸음을 멈추고 푸른 보리밭을 가로질러 찔레꽃 덤불, 구절초꽃, 밤꽃이 반겨주는 곳,
산꿩이 울고 멧비둘기, 청솔모도 뛰어 놀던 오솔길, 노란 달맞이꽃 무리위엔 나비들이 화려한
춤을 추고 봄이면 산철쭉이 가슴에 불을 지르는 계절, 이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몇 년 전만 해도 소달구지가 겨우 비켜갈 만한 도로가 있었을 뿐 아무도 살지 않는 산간 오지
마을이었다.
그후 불과 몇 년 사이에 아스팔트길이 놓이고 도회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등산로가 되었으며,
마을 뒷산인 국사봉과 은행나무로 유명한 영국사는 널리 알려진 관광명소로 수려하기 그지없
다. 이제 외지 사람들의 명소가 되어버린 고향 아닌 고향!
가을녘 허수아비가 그리운 계절이다. 황금물결 넘실대는 가을 들판은 우리들의 마음을 풍성하
게 한다. 어린 시절 가을 소풍을 떠나던 설레던 기분으로 시와 인연을 맺은 지 10여년! 때늦
은 졸작의 편린들 조각조각 시침질하여 허수아비마저 길 떠난 가을 산에 채알로 둘러두고 삶
의 무게 봇짐으로 풀어놓고 지팡이 하나 길동무삼아 일상탈출을 꿈꾸고 싶다.
2010년 가을
효양골에서 저자
1 가난한 화가의 캔버스
가난한 화가의 캔버스
들꽃을 위한 노래
질화로 한 점
비의 연가
한 잔의 차를 마시며
꽃그늘 아래에서
풍경이 있는 오후
고목나무의 사랑법
산정호수에서
풍각쟁이
아름다운 추억
상사화
이방인의 하루
기억의 유년
금강 수위
가을녘 허수아비
난파선
2 거리 풍경
거리 풍경
겨울 풍경
구름 속에 핀 연꽃 한송이
선인장 기르기
그루터기의 추억 만들기
봄의 정원
추억의 강을 건너
5월의 신부
맷돌을 돌리며
다림질하는 사내
휠체어
신호등
과속방지턱
4월의 벚꽃
의자의 일생
사랑의 뫼비우스 띠
산다는 것은
조약돌
3 안개비
안개비
섬돌
기차
8월 한가위
동전 한 닢
구절초
가을비
담쟁이덩굴
개망초의 화려한 외출
물레방아
당신은 나의 안경입니다
거울
채송화
하루살이 인생
선풍기
풍경소리
가을의 문턱에서
4 이별과 사랑
이별과 사랑
세월
시계
슬픈 거울
북소리
추석 명절
달동네 이야기
하양빛고을 축제
우울한 겨울의 아침
영등포역에서
녹동항에서
시간여행
장터 풍경
낚시터의 하루
꺼풀 속 베일
내 안의 우물
가을날의 수채화
꼭두각시 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