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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병자호란(1636~7)을 다룬 영화 < 남한산성>을 보았습니다. 딱 일 년 전인 2017년 10월 3일 개봉한 영화인데 당시 관심 있게 보지 않았지요. 이미 여러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다룬 영화들이 사실 왜곡이 심했기에 굳이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갈등과 연관 지어 보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골 사는 일개 필부/匹夫에 불과하지만 제 나름의 생각을 거칠게나마 적어보니 비교적 한가한 개천절 휴일을 맞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하 편의상 경어체가 아닌 평어체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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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되는가? 세부적으로 같을 순 없지만 대체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작년 가을과 올해 가을이 똑같진 않지만 지금을 가을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가을이 가진 속성 때문이니까. 강대국 틈에 끼어있는 한반도의 지리적 여건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지금의 가을이 추운 겨울로 이어질 수 있기에 좀 두렵다. 아니 솔직히 아주 무섭다.
애초 나는 미중 무역갈등이 서로 윈윈(win-win)하는 차원에서 올해 안에 종결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은 내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해야겠다. 내가 큰 그림을 보지 못했기에 이런 오판을 했다.
현재의 미중 갈등은 단순히 무역뿐만 아니라 신구 패권국 간의 본격적인 갈등 양상을 보여주는 긴 역사적 사건의 한 자락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북핵과 사드 갈등이다. 중국이 북핵 개발의 후원자이고 미국은 북핵을 명분 삼아 사드 설치로 중국을(북한이 아닌) 견제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한한령/限韓令이라는 경제적 보복을 한국에 가했고 미국은 다시 은둔의 지도자 김정일을 싱가포르로 불러와서 북미정상회담으로 반격했다. 다급해진 중국은 친북한 외교를 강화하여 김정은을 자국 영향권 아래에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난리통에 북한 김정은만 꽃놀이패를 쥔 셈이다.
먼저 영화 <남한산성>의 세 장면을 살펴보고 앞으로 미중 갈등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관해 내 생각 몇 가지를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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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주화파/主和派 최명길(1586~1647)과 함께 후금 장수 타타라 잉굴다이(용골대. 1596~1548) 진영을 방문한 척화파/斥和派 영의정 김류(1571~1648)가 후금의 조선 출신 역관/譯官 정명수/鄭命壽(?~1653)에게 온정을 호소하는 장면
(후금의 역관 정명수/배우 조우진) 이보시오, 영상/領相. 나는 부모가 노비라 태어날 때부터 노비였소. 조선에서 노비는 사람이 아니오. 다시는 나를 조선사람이라 부르지 마시오.
흔히 조국을 버리고 외적에게 붙은 자를 매국노라 부른다. 조선을 버리고 후금 측 역관이 된 자는 과연 매국노인가? 조선은 소수의 양반을 위한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양반은커녕 중인이나 상민 등의 양인도 아니고 노비 출신에게 애국심을 바랄 수 있을까?
오히려 조국에서 혜택은 다 받고도 외적에게 봉사하는 자가 진짜 매국노 아닌가? 지금도 이런 부류의 매국노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사회든 그 조직의 최하위 수준의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수준도 결정된다고 볼 때 조선에 대한 정명수의 많은 악행과 비참한 말로에도 불구하고 나로서 섣불리 그를 나무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장면 2] 척화파/斥和派 예조판서 김상헌(1570~1652)이 남한산성의 대장장이로 사는 정묘호란(1627)의 피난민 출신 서날쇠에게 목숨을 걸고 왕의 격서를 성 밖으로 보내주기를 부탁하는 장면
(대장장이 서날쇠/배우 고수) 제가 이 일을 하는 건 주상전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전하와 사대부들이 청을 섬기든 명을 섬기든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저 같은 놈들이야 그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어 겨울을 배 곯지 않고 날 수 있는 세상을 꿈 꿀뿐입니다.
김상헌은 존명양이의 명분론에 충실한 사대부였다. 성리학 교과서에 충실하게 살아온 그에게 뭐라 탓할 수 있겠냐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를 비롯한 척화파들이 남긴 비극적 결과물과 특히 최대 50만 명에 이르는 피로인/捕虜人의 한 맺힌 사연들은 어찌할 것인가?
최근의 미국과 중국의 권력 갈등기에 더 생각이 많아진다. 아직도 미국을 사대하는 것만이 지극히 당연한 도리라고 여기는 친미 척화파들과 새로이 떠오르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친중 주화파의 갈등 양상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미래가 달려있으니 나로서는 난감할 따름이다.
[장면 3] 남한산성 공격을 예고하는 후금 칸 홍타이지(숭덕제. 1592~1643)의 외교문서를 받고 대책을 논의하는 어전회의 장면
(인조/배우 박해일) 나는 살고자 한다. 그것이 나의 뜻이다.
조선의 임금 스물일곱 중 최고의 암군/暗君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만큼 무능했던 인조(1595~1649)는 누구인가? 그는 별 생각 없이 대의명분에 사로잡혀 삼촌 광해군을 왕좌에서 밀어낸 인조반정(1623)으로 임금이 된 자이다.
군주가 되기 위해 미리 준비된 자조차 국정에 임하여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는데 인조처럼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자가 어찌 임금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었겠나? 인조는 53년이 넘는 그의 생애의 약 절반가량을 비루하게 임금 노릇을 했지만 그는 역사에 무엇을 남겼는가?
지금 감옥에 있는 전직 대통령 박 모(1952~)가 21세기 대한민국의 암군이라면 그는 400여 년 전인 17세기 조선국의 암군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임금이 되어선 안 되는 자가 그 자리에 오르면 만백성이 고달픈 것은 변하지 않는 역사의 진실이다.
임금이 된 이후에도 존명양이/尊明攘夷의 명분론에 집착했고 그 결과 한반도와 백성을 도탄에 빠트린 임금이 이제 자기가 살아야겠다는 생존본능을 드러내니 할 말을 잃게 된다.
최고지도자인 자신의 잘못된 정세 판단과 대응으로 환란을 당하여 만백성이 고초를 겪고 있는데 자신의 안위를 먼저 찾는 것을 보면 한탄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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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관련 글들을 쭉 읽어보고 여기에 내 의견을 더해 본다.
우선 과격하지만 '트럼프 미국(명) vs 시진핑 중국(후금=청)'과 함께 '남한 친미파(척화파) vs 북한 친중파(주화파)'라는 두 가지 대립 구도를 가정해본다. 물론 남북 내부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논의의 편의상 이렇게 간다.
또한 인조는 암군/暗君이라는 차원에서 박 모 대통령에 비유할 수 있겠다. 나는 촛불혁명만이 박 모를 권좌에서 밀어냈다고 보지 않는다. 그 전에 한국의 지배엘리트 일부가 박 모를 손절매한 것이다. 더 이상 박 모라는 암군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에!
이제부터 '중국몽/中國夢 vs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큰 구도 아래서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만 간단히 정리해본다.
- 어쩔 수 없이 G2(미국과 중국)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우리는 미중 패권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다.
- 미중 패권전쟁은 무역전쟁을 시작으로 상당 기간 계속된다. 최소 문재인 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 해결이 불가능하다.
- 중국은 사드갈등 이상의 압력을 한국에 가한다. 여기에 미국이 가세한다면 이것은 한국에 사드갈등 이상의 경제적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
- 시진핑이 필요한 것은 명분(중국 체제 안정을 의한 장기 집권)이고 트럼프가 필요한 것은 실리(중국의 금융 개방을 통한 경제적 이익 추구)다.
- 양국 지도자 모두 서로에게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이것이 경제 위기 10년 주기설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다.
지난 오바마 시기는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하느라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약했지만, 이제 트럼프 시대는 이전과 전혀 다르다. 양측의 힘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에 한바탕 큰 소란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것이 고대의 스파르타와 아테네처럼 전쟁으로 결판이 날지 아니면 20세기의 영국과 미국처럼 평화로운 패권 이양으로 끝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지금의 미중 갈등이 한철 소나기를 넘어 지루한 장마로 변한다면 이 엄한 시국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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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저의 허접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너무 희망적으로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는 의미에서 공부한 것들을 거칠게 나열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화 <남한산성> 꼭 보세요. 저는 영화를 보고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를 믿는 대신(믿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저 혼자라도 유능한 항해자가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
힘없는 나라의 비극은 아닐까 싶네요
훌륭한 고견 잘 봤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친중이신 느낌이 드네요.
잘 봤습니다. 어쨋든 힘이없는건 어쩔수없는 현 상황이지만 우유부단한 지도자는 파탄을 가져오는듯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남한산성' 이란 영화를 상당히 의미있게 보았습니다. 김상헌과 최명길의 대사가 촌철살인급 이었죠.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