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8oJQefNzvQ8
호세아서는 12권의 소선지서 가운데 첫 번째 나오는 예언서입니다. 선지서라는 말은 분량이 적다는 말입니다. 본문 1절에 보시면 호세아가 활동하던 배경을 말씀하고 있는데 시대적인 배경으로 남유다 왕 네 명이 나오고 북이스라엘 왕 한 명이 나옵니다. 사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인데 남유다 왕은 네 명, 북이스라엘 왕은 한 명 등장시키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의 정통성은 남유다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둘이 같은 조건에서 합의로 나뉜 것이 아니라 원래 남유다역사가 진행되던 중에 북이스라엘이 가지치기를 한 것입니다. 마치 대기업 삼성에서 불만을 가진 임역원 한 사람이 여러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서 새로운 기업을 차린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정통성은 삼성에 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 정통성이라는 것이 일반 세상에서도 중요하지만 성경에서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성경에서 정통성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쪽이 정통성을 가진 것이고 하나님이 책임져주시고 넘어진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 6절과 보시면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신 반면에 7절에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하나님의 여호와로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이 상대적으로 남유다에 비해 많은 죄를 짓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남유다에는 있지만 북이스라엘에는 없기 때문임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남유다는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있지만 북이스라엘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남유다도 나중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지만 70년만에 다시 돌아온 반면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망한 후에 회복되질 못하고 완전히 망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은 현재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붙잡고 있는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믿고 말씀 앞에 순종하고 말씀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진 자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호세아가 활동하던 때 북이스라엘의 왕은 1절 후반부에도 나오지만 여로보암이었습니다. 이는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과 동명이인인지라 보통 여로보암 2세라고 말합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호세아에게 임했는데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음란한 여인을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지자가 음란한 여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혹은 범죄하는 행위에 해당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를 행하라고 하신 이유가 북이스라엘이 음란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음란은 영적인 음란, 즉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호세아는 일종의 역할극을 맡은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햄릿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햄릿의 부친이 숙부에게 암살을 당하고 숙부가 모친을 아내로 삼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자 잔치날에 숙부 앞에서 연극을 통해 숙부의 범죄행위를 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악을 고발하는 것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로보암 때 범죄가 더욱 깊어진 것은 경제가 발달하고 국력이 강해진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왕하 14: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본문의 배경이 되는 여로보암 때에 영토를 회복하는데 상당히 넓은 영토를 회복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이 잘되니까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자기자랑하고 우상을 섬기는데 더욱 열심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질의 축복이 은혜인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하게 말고 가난하게도 말고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부유해서 하나님을 모른다 할까 하오며 가난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게 하여 달라는 기도를 우리 신앙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오직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수 있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말씀붙잡고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를 부르시고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사오니 말씀을 날마다 붙잡고 약속된 백성으로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