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여러분,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목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7-8)
히브리서 3장 1-6절에서는 진리 자체이시고 대사제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는 권면과 더불어
예수님의 존재론적 우월성과 그 사명의 우월성을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와 견주어 설명한
바 있다.
이제 이어지는 3장 7-19절은 3장의 두번째 단락으로서, 모세 당시 이스라엘의 사례를 통한 불신앙의
결과에 대한 경고 및 복음 진리를 견지할 것에 대한 권고이다. 이 가운데 3장 7-11절에서는 우선 모세가
활동하던 시기, 즉 출애굽 이후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말씀은 시편 95장 8-11절인, 이 인용구를 제시하기에 앞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라고 표현한 것은, 인용된 시편 말씀이 성령의 영감(Inspiration)으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인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도구로 사용받은 인간 대신에 성경에 영감을 불어넣으신 성령을 직접 성경의 저자로
언급함으로써, 구약 성경이 성령의 감도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신의 순수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라고 번역된 '카토스 레게이 토 프뉴마 토 하기온'(kathos legei to
pneuma to hagion; as the Holy Spirit says)에서, 성령에 대한 표기로서 본절에서처럼 일반적으로
'거룩하다'라는 뜻의 형용사 '하기온'(hagion)이 사용되지만, '영'이란 뜻의 '프뉴마'(pneuma) 한 단어
만으로도 성령을 지칭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구약 시대에도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에게 역사하셔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또 기록하게 하셨다.
또한 본절에서 '말씀하시는' 으로 번역된 '레게이'(legei)의 원형 '레고'(lego)는 일반적으로
'말하다', '이야기하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에서 기록된 말씀들과 성령의 관계를 알 수 있는데, 성령께서는 주님의 입이 명하신
것들을 예언자들의 영과 가슴에 말씀하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것들을 모아서 인간 저자를 통해 기록으로 남겨 주셨다. 말하자면,
인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뜻을 인간 언어로 기록하게 하신 편집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신 셈이다.
특히 본문에서 '레게이'(legei)는 직설법 현재 시제로서 '말하고 있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말씀하셔서 기록된 성경 말씀이 시대를 초월하여 항상 현재적으로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성경 시대에 예언자를 통하여 혹은 성경 기록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신 성령께서 오늘날에는
우리 각자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그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목소리를 듣거든'
시편 95장 8절의 인용이다. 이 시편은 광야의 출애굽 1세대가 걸어간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본절에서 '오늘'로 번역된 '세메론'(semeron)이 서두에 나와 강조되고 있음을 주목
해야 한다. '세메론'이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에서는 '하이욤'(haiyom)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종종
'오늘'이나 '이날', '어떤 특별한 날'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때로는 하느님에 의해 회개가 권고되고(시편95,8), 하느님에 의해 구원이 부여되거나(시편
118,24), 양자로 채택되는(시편2,7) 구원의 때를 나타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표현이 하느님의
주도적 권세와 관련된 수많은 신학적 주제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본서 저자는 이러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단어를 과거 구약적 상황에서 신약적 상황으로 옮겨 사용한다.
즉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대사제이시라고 한 고백을 확고하게 다지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대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본서의 독자들이 자기 당대에 듣게 될 '그분의 목소리'는 모세를 통해서 들려주신 지난 날의
음성과 대조가 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해 들려오는 오늘의 음성이다. 본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행해야 하는 현재적 책임을 부과하기 위해서 '세메론'이라는 단어를 채택하였음이
분명하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오늘'이라고 하는 시간에 우리와 만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신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음성은 대부분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 심령과 영혼에 울려
퍼진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행진하던 도중에 르피딤에 진을 쳤을 때에 있었던 사건과 관련된
진술이다. 이스라엘은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자 모세와 다투고 주님을 시험하며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며 의심하기까지 했었다(탈출17,1-7).
'반항하던 때처럼'으로 번역된 '호스 엔 토 파라피크라스모'(hos en to parapikrasmo)의 의미를
알아보자. 이 단어의 원형 '파라피크라스모스'(parapikrasmos)는 '격분', '반역', '반항'을
뜻한다. 히브리서 맛소라 본문에서는 '므리바'(mriba)로 되어 있다.
'다툼', '논쟁'으로 번역되는 이 히브리어 명사는 '싸우다', '다투다', '경쟁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리브'(rib)의 파생어인데, '리브'(rib)의 일차적 의미는 육체적 의미에서의 '싸우다'이다. 이것이 후에
'말다툼'이라는 의미로 변화되었고, 더 나아가 법률적, 사법적 의미까지 취하게 되었다.
또한 흔치는 않지만 '불평하다'(complain)라는 의미로도 나타나는데, 특히 이것은 본문의 맥락과
관계된 이 동사의 핵심적 의미 가운데 하나이다.
르피딤에서 있었던 이 사건은 그들이 모세와 육체적으로 치고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불평을 늘어
놓으면서 격렬하게 따졌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떄문이다. 그들이 취한 이러한 행동은 하느님을 향한
격분, 하느님께 대한 반역과 반항으로 규정되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과 순종인데, 그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기들을 구원하신
그분을 분노케 했던 것이다. 그분은 그들의 이러한 태도를 모반(rebellion)으로 받아들였다.
당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모세를 방해하고 해하려 한 일체의 행위들을 당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반역으로 받아들이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께 대한 불순종 역시 그렇게 받아들이신다.
즉 본서 저자는 그리스도를 버리고 과거 유대교로 돌아가는 행위가 하느님께 대한 반역임을, 본서의
일차적 수신자들인 당시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이러한 과거의 사건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카타 텐 헤메란 투 페이라스투 엔 테 에레모; kata ten hemeran tu
peirasmu en te eremo; the time of testing in the desert)에서, '시험하던' 으로 번역된
페이라스무(peirasmu)의 원형 페이라스무스(peirasmus)는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에서는 마싸
(massa)로 되어 있다.
이 단어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물건의 질을 검토하거나 또는 누군가를 믿지 못해 시험해 보는 것을
의미하는 '나싸'(nassa)에서 유래하였다. 본문에서는 후자의 의미와 연관된다.
이스라엘이 르피딤에서 취한 행위는 하느님께 대한 시험이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이집트에서 건지시고 홍해를 건너가게 하신 전능하신 분임을 체험했으면서도 일시적으로 당하는
어려움 가운데서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고 시험하려 했던 것이다. 그것은 구원자 하느님께 대한 모독과
다름이 없었다.
'므리바'와 '마싸'의 두 지명은 인간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면, 하느님의 임재와 축복을
상실하고, 마음이 완고해져서 멸망하고 구원받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실증된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마라'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시험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해졌기 때문이었다. 본서 저자는
현재 히브리서 독자들 역시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메 스클레뤼네테 타스 카르디아스 휘몬'(me sklerynete tas kardias hymon; do not harden
your hearts)이 본문인데, 여기서 '굳게하다'를 뜻하는 '스클레뤼노'(skleryno)의 가정법이 부정어
'메'(me)와 함께 쓰여, 금지 명령법 구문을 이룬다.
'스클레뤼노'가 본절에 인용된 시편 95장 8절의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에는 '타크슈'(thakshu)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단어의 원형 히브리어 '카샤'(qasha)는 완고하고 고집이 세어 하느님의
인도하심(신명10,16; 2열왕17,14; 느헤9,16)이나 성령의 인도(시편7,51)에 대해 무감각했던
이스라엘의 심령 상태를 나타낼 때에 쓰인 말이다.
본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경계하기를, 마음에 하느님 모시기를 싫어함으로써, 그 마음이 완고하게 되는
불행한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일의 위험성은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스'(kardias)의 원형 '카르디아'
(kardia)의 의미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일반 희랍어에서 이 단어는 생명의 중심을 지칭하며 인간 전체의
지적, 영적 중심 자리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히브리어 대응어인 '레브'(leb)도 마찬가지다.
출처: 피앗사랑 / 글쓴이: rigel
첫댓글 하느님,감사합니다.🙏
하느님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