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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아버지’라 불린 사람들
‘천사 아버지’라 불린 한 남자가 있었다. ‘장애인들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했다. 그는 ‘가족들도 버린’ 장애인을 하나둘 거둬들였다. 그는 “내가 낳지는 않았지만 내 자식같이 사랑한다”고 했고 “나야말로 이들을 최고로 사랑한다”고 했다.
언론은 그 사연을 ‘미담’이라 칭하며 보도했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누구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돕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그에게 후원금을 보냈다.
익숙한 내용이다. 지난 14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보도된 ‘두 얼굴의 사나이 - 가락시장의 거지목사’ 편의 내용이다. 또한 이는 불과 1년 3개월 전 SBS 궁금한 이야기Y에 보도된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연과도 엇비슷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보도된 강원도 홍천 ‘실로암 연못의 집’의 시설장이자 '목사'인 한아무개 씨는 ‘사랑의 집’ 장아무개 씨처럼 실제 안수받은 목사가 아니었다. 가락시장에서 잡동사니를 팔며 구걸하던 한 씨는, 장애가 있는 자신을 버렸던 세상에 대한 원망을 신앙으로 극복했다며 수년 전 자서전을 썼고, '25년 동안 장애인들을 거둬 키웠다'고 자신을 홍보했다.
그러나 한 씨는 그 규모가 얼마일 지 아무도 알 수조차 없는 후원금 횡령뿐만 아니라 ‘실로암 연못의 집’ 시설에 있던 서유석 씨의 명의로 신용카드를 만들어 유흥주점, 안마시술소, 고급 호텔 등에서 흥청망청 사용했다. 심지어 방송국에서 취재를 위해 찾아간 날에도 한 씨는 태국에 '뱀술'을 먹으러 외유 중이었다.
서 씨는 지난 3월 심한 욕창 등의 증세로 사망했다. 그 과정에서 한 씨는 자신이 욕창 치료의 '대가'라면서 직접 소독 등을 해주는 장면을 한 방송에 찍기도 했다. 그러나 욕창이 심해진 서 씨를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아 죽음을 방치한 의혹도 제기된다. 서 씨가 욕창으로 아파하는 사이 한 씨는 서 씨의 카드로 지역사회의 유흥가에서 유지 행세를 하며 돌아다녔다. 서 씨 사망 후 고인의 유가족들에게는 9천여만 원의 카드 고지서가 청구됐다.
뿐만 아니다. 16일 오전 SBS 러브 FM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선 ‘그것이 알고 싶다’에 사건을 처음 제보한 한 목사가 ‘실로암 연못의 집’에서 서 씨와 같이 죽어간 중증장애인이 3명 더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홍천군은 ‘실로암 연못의 집 입소장애인 조치사항 및 향후계획’을 발표했다.
홍천군은 13일 시설입소자 41명 중 35명은 홍천군 내 정부지원시설 3곳에 분리·보호조치했고 1명은 귀가했으며 5명은 병원에 입원 조치했다고 전했다. 앞으로 개인별 복지 욕구 조사 후 희망에 따라 전원 배치 또는 가족에게 인계할 것이며, 시설장 한 씨에 대해 고발 및 시설에 대한 행정조치(시설폐쇄)를 단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더불어 홍천군은 ‘실로암 연못의 집’은 개인운영 신고시설로 시설 운영에 대해 국고보조금 등은 일절 지원되지 않는 곳이며, 개인시설은 후원금 내역과 지출내역을 파악·통제하는 부분이 현행법상 시설장의 협조가 없으면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홍천군은 “본 시설이 산속에 위치해 있으며 평소 이중문으로 외부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지도점검을 위해 사회복지사가 방문 시 부득이 사전에 통지를 하고 점검에 임하는 과정에서 사실을 은닉해 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홍천군의 대책 발표에도 누리꾼의 공분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방송에 따르면 ‘실로암 연못의 집’은 과거 지자체로부터 시설 폐쇄를 권고받은 바 있다. 또한 이 시설에 지급되는 한 달 수급비는 1800~2000만 원에 달했으며, 해당 지자체는 사용 내역 공개를 청했으나 한 씨는 10년 넘게 공개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리꾼들은 지자체의 관리 소홀에 책임을 물으며 한 씨에 대해 엄중한 조사와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언론들 또한 이러한 누리꾼들의 반응을 전하며 공분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과연 해당 지자체의 관리가 철저해지고 한 씨 개인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일까?
‘문제 시설’이 아닌 ‘시설의 문제’를 봐야 한다
이전에 우리 사회를 공분케 했던 이와 유사한 사건들을 톺아보자. ‘도가니’가 있었고 지난해 원주 귀래 ‘사랑의 집’이 있었다. 이 사건들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었다. 커다랗게 불거진 단발적 사건 아래에는 그것을 가능케 한 무엇이 얽혀 있었다.
그것은 ‘시설’의 존재 그 자체였다. 따라서 어느 책 제목처럼 “문제 시설이 아닌 시설 문제를 말”해야 한다. 도가니, 사랑의 집, 실로암 연못의 집을 잇는 그 이음새를 바라봐야 하고 그것을 지적해야 한다. ‘문제 시설’이 아닌 ‘시설의 문제’로서 접근할 때 이 사건은 더욱 명료해진다.
한 씨가 명의를 도용한 서 씨는 왜 시설로 갈 수밖에 없었나. 방송 보도를 보면 서 씨를 돌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80세가 넘은 그의 아버지가 서 씨를 돌봐야 했다. 올해 3월 사망 당시 서 씨 나이가 51세였으니 2006년 시설 입소 당시 나이는 44세였을 것이다. 40대 중반의 중증장애인 부양을 70~80세의 노모가 짊어지고 있었다. 서 씨는 누군가 체위를 바꿔주지 못하면 홀로 체위도 바꿀 수 없을 정도의 중증장애인으로 알려졌다.
아들을 더는 돌볼 수 없던 아버지가 택한 최후의 방법은 시설이었다. 방송을 보면 서 씨 아버지는 어느 시설에 아들을 맡길지 고심한 끝에 한 씨의 자서전을 모두 읽고 이 사람이라면 아들을 맡길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고 한다. 그는 시설 입소 비용으로 한 씨에게 1300만 원을 지급했다. 그 후 아들이 병원에 몇 차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때마다 병원비와 개인 간병비를 따로 챙겨 보냈다.
‘실로암 연못의 집’ 현장에 동행했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강원 팀장은 “시설은 차를 타고 한참 들어왔다고 생각한 이후에도 비포장도로로 20분은 더 가야 했다. 휴대전화도 터지는 않는 곳”이라며 “그런 곳에 시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설령 철문을 열고 나온다 한들 거기선 어디도 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있는 시설의 물리적 공간 배치 자체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장애인은 장애를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방적이고 집단적으로 사회에서 배제된다. ‘장애’는 무능력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이기에 장애가 있는 사람(장애인) 역시 부정된다. 즉, 시설은 장애(인)을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맥락에서 탄생한 곳이다.
지난해 ‘사랑의 집’ 사건 발생 당시 탈시설정책위원회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은 사회복지서비스가 권리가 아닌 시혜, 은혜라는 관점으로 집행될 때 어떤 문제를 발생시키는지 보여주는 아주 극단적인 예”라며 “그래서 사회복지서비스가 권리로 보장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장애인을 거둬들인 한 씨가 ‘천사 아버지’로 불리고 ‘사랑’과 ‘미담’이라는 이름으로 칭송되었던 것은 장애인이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에게 인권이란 말은 적용되지 않았다. 인권 대신 시혜와 동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이 사회에서 장애인이 자신의 몫을 다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시혜와 동정, 천사 아버지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을 필요로 하는 언론이 존재했으며 그 미담을 소비하는 사회가 있었다. 그리고 지자체는 자신의 지역에서 일어나는 반인권적 부패 행위에 대해 침묵하고 방치했다.
따라서 사회복지서비스가 시혜와 은혜가 아닌, 권리로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도 보편적 권리가 있는 '인간'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설은 없어져야만 하며 그 흐름 위에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이 존재한다.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을 하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임소연 활동가는 “탈시설 자립생활운동이란 근본적으로는 더는 시설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지자체는 시설 문제가 발생한 뒤 장애인 자립생활에 대해 고민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 시설에 들어가려는 그 시점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시설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지 지원체계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임 활동가는 “시설 인권침해가 발생한 다음에 대응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면 이미 늦는다”라면서 “정부가 탈시설 정책을 뚜렷이 가져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살았던 지역사회에서 지속해서 살 수 있게끔 지자체가 한두 개의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라며 지자체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임 활동가는 “사망한 서 씨의 경우, 시설 입소 전 일흔의 노모가 홀로 서 씨를 돌봐야 했다. 이 경우 지자체는 가정도우미 파견, 활동보조서비스 추가 지원 등으로 서 씨의 시설 입소를 막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강원 팀장 역시 시설 거주인들이 가지고 있는 탈시설에 대한 강한 욕구를 언급했다. 김 팀장은 “‘실로암 연못의 집’에서도 자립생활을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라며 “그러나 기초생활수급비, 장애인연금, 활동보조서비스, 주거지원 등 이러한 사회복지 서비스가 있다는 것 자체를 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고 이 사실을 안 후에 굉장히 분노했다”라고 전했다.
김 팀장은 이번 사건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 입소자들이 다른 시설로 급히 옮겨간 부분을 지적하며 “이들이 시설에서 나와 다른 시설로 간다 한들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팀장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거주인들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데 (사건이 터지면서) 매우 급하게 진행됐다. 그래서 거주인 중엔 아무리 잘 이야기해도 현장에서 나오길 두려워하며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라면서 “이후에 가는 시설이 ‘더 나은 시설’이라고 하지만 그래봤자 시설이다. 시설은 삶의 주도권을 타인이 갖고 누군가로부터 통제당하는 생활을 해야만 하는 곳”이라며 이번 조치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팀장 역시 지자체가 장애인 자립생활을 앞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장애인자립생활을 아무리 요구해도 지자체는 중앙정부에 공을 미루고, 중앙정부는 해당 지자체에 모든 책임을 미루고 있다”라고 꼬집으며 “이번 사건에 대해 형사 고발, 당사자 피해 배상 등 법률적 대응과 더불어 지자체 차원에서의 정책적 마련 등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강원도 원주 귀래 ‘사랑의 집’에 이어 올해 홍천에서도 또 시설 문제가 터졌다. 연달아 시설 문제가 불거진 강원도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떠한 계획을 하고 있을까. 확인한 바로는 강원도는 아직 ‘아무런 계획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