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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지만, 옛 모습 그대로 돌아온 건 아니다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작업 중 몇몇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67년 전통의 랜드로버 디펜더를 현대적인 차로 대체하는 디자인 역시 그런 예 중 하나다.
로버에서 1948년부터 생산한 랜드로버 시리즈는 전설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로버의 가장 진한 흔적으로 영국 자동차 산업 전체의 통합과 소멸의 소용돌이를 견뎌냈다. 1885년 로버는 앞뒤 바퀴 크기가 같은 현대식 자전거를 발명했다. 이후 1902년에는 모터사이클, 1904년에는 자동차 생산으로 범위를 넓혔다.
품질로 명성을 얻은 로버는 가스터빈 자동차를 처음 만든 회사였고, 1970년 내놓은 레인지로버로 오늘날 럭셔리 SUV의 초석을 마련했다. 로버가 보유했던 브랜드들은 결국 BMW와 포드에 각각 나뉘어 팔렸고, 이후 아시아계 회사로 넘어갔다. 승용차 부문은 중국 SAIC로, 다목적 차는 인도 타타로 넘어가면서 로버라는 회사는 이제 소멸됐다. 랜드로버는 여전히 영국에 기반을 두고 있고 숙련된 제품개발 연구원들도 그대로지만, 새로운 디펜더는 솔리헐이 아닌 슬로바키아에서 생산한다.
원조 랜드로버, 즉 윌리스 지프 섀시에 로버 세단 엔진과 평평한 알루미늄 패널로 만든 차체를 올린 차가 촌스럽다고 말하는 건 지극히 절제된 표현이다. 그러나 랜드로버는 점차 진화하며 대단히 유용한 차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촌스러움은 그 자체로 상징이 됐다. 몰기 쉽고,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야전에서 수리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며, 망가뜨리기도 쉽지 않은 내구성을 모두 겸비했다. 다재다능함을 타고난 이 차는 어디서든 큰 사랑을 받았지만 2015년 생산을 마쳤다. 수요는 여전했지만, 최신 환경 규제에 대응할 수 없는 차를 존속시킬 방법은 없었다.
디펜더는 완전히 현대적인 차가 됐다. 구형 모델이 갖췄던 기능 대부분을 능숙하게 해내면서도 골프장을 드나들 수 있는 고급스러운 교통수단이다. 랜드로버 애호가들은 새 디펜더가 세련됐다고 느끼면서도 사라져버린 단순함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나는 기계적인 부분을 설계하고 미학적인 부분을 디자인한 팀들이 완전히 새로운 이 버전을 아주 잘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새 모델은 마지막 클래식 디펜더의 앞모습 분위기를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커다란 사각형 부분이 차체 앞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아우디나 렉서스가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트인 부분을 최소화한 것을 보면 그렇다.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모서리를 비스듬히 다듬고 위쪽을 곡선으로 부드럽게 처리한 건 공기역학적으로 분명 이점이다. 보닛 위 검은 부분이 체크플레이트를 연상시켜 그 위에 올라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제 그럴 순 없다. 보행자 안전을 위해 얇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차가 사람을 들이받으면, 치인 사람의 머리는 단단한 보닛 끝에서 100mm쯤 위쪽에 부딪힐 거다. 기능적으로나 스타일로나 좋은 디자인이면서 견고한 이미지까지 불어넣는다. 이 특별한 차에서 그런 이미지는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글_Robert Cumberford
1. 2열 머리 위 채광창은 기본으로 들어가지만, 사진에 나온 숏휠베이스 모델(90)에 들어간 글라스 루프는 선택 옵션이다.
2. 꽤 둥글게 다듬은 지붕의 끝단은 어디서든 정면에서 본다면 곧게 뻗은 직선으로 보인다.
3. 운전자에게는 중요한 시야를 일부 방해하는 이 패널은 옵션으로 제공된다. 추가 비용을 내면서까지 패널을 선택하는 건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선택할 것이다.
4. 어두운 체크플레이트 스타일의 이 플라스틱판은 유럽 보행자 안전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넣었지만, 그 자체로도 장식이다.
5. 범퍼 바 옆에 자리한, 구멍이 잔뜩 뚫린 날개는 시각적인 흥미를 돋우면서 앞모습 구성을 멋지게 완성한다.
6. 작은 사진의 차와 똑같은 번호란 사실에 신경 쓰지 말자. 그저 여기저기로 옮겨 달 뿐이다.
7. 위쪽 끝을 잘라낸 형태로 기교를 부린 이 원형 헤드램프는 이미 다른 많은 차들에 사용된 바 있다. 언제나 멋지게 제 역할을 한다.
1. 디펜더는 18~22인치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휠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본 디펜더의 휠 모두 꽤 매력적이지만, 이 휠은 특히 더 멋지다.
2. 내가 보기에 이 연료 주입구는 눈에 띄는 디자인 오류다. 둥글게 만들어도 얼마든지 면을 자연스레 이어지게 할 수 있다.
3. 예비 타이어는 최상의 이탈각을 보장하기 위해 테일게이트에 달았다. 안타깝게도, 그것 때문에 다른 차들의 보닛이 산산이 부서질 수도 있겠다.
4. 뒤쪽 머리 위 채광창은 롱휠베이스 모델이나 숏휠베이스 모델이나 똑같다. 참고로 롱휠베이스 모델이 먼저 출시된다.
5. 이 중심선의 윤곽은 공기역학을 고려해 뒤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우아한 형태로 다듬어졌다. 주의를 바짝 기울여 보지 않으면 절대 알아채지 못할 거다. 정말 훌륭한 솜씨다.
6. 이 검은색 플라스틱 그릴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실제 공기가 통하는데 엔진 흡기로 흘러 들어간다. 앞 측 모습을 참조하자.
7. ‘개집’이라는 별명이 붙은 보닛 위 돌출부는 인공적이긴 해도 시각적인 견고함을 살짝 더한다.
8. 휠아치 검은 테두리 위의 이 작은 홈은 기발해 보인다. 랜드로버의 다른 모델들에서도 멋져 보였다. 다만 확실한 건 굳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이다.
9. 뭉툭하고 우뚝 선 모습의 차를 염두에 둔 디자인치고는 차체 윤곽이 놀랄 만큼 공기역학적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다시 말하지만, 세부 디자인이 아주 영리하다.
1. 범퍼의 날개 부분 아래 있는 단순한 형태의 사분원은 더 많은 공기가 차체를 흘러 지나가도록 한다.
2. 범퍼의 날개 부분 안에 있는 램프는 차체 뒤쪽에서도 반복되는, 모서리마다 램프를 네 개씩 배치하는 디자인 테마를 돋보이게 한다.
3. 앞 유리 맨 위에는 앞으로 멋지게 튀어나온 부분이 실재한다. 하지만 정면에서 보면 양쪽 가장자리를 무심하게 직선으로 이은 것 같다. 적절한 디자인이다. 원조 모델만큼 각진 형태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4. 뒤로 난 공기구멍을 틀어막은 듯한 가로 막대 위에 배지가 한쪽으로 치우쳐 자리했다.
5. 살짝 층을 이뤄 배치된 램프들이 헤드램프 형태를 돋보이게 한다. 그러면서 바깥쪽에 각을 줘 차체 뒤쪽과 반복되는 테마를 이룬다.
6. 이 램프들은 원조 랜드로버에 들어간 헤드램프를 연상시키지만, 단순히 형태만 반복하는 게 아니다.
7. 앞모습에 이런저런 무늬가 많이 들어갔다. 가운데 그릴은 달걀판 모양이다. 날개에는 커다란 램프 자리와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렸다. 아래는 살짝 큰 구멍들이 숭숭 뚫렸다.
8. 더불어, 맨 아래에도 자그마한 틈새가 있다.
1. 모든 디펜더는 테일게이트 경첩이 오른쪽에 있다. 경첩이 들어간 쪽 구조는 당연히 보강됐다. 이 멋진 손잡이가 그런 점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2. 지붕 패널과 뒷유리를 구분하는 이 볼록한 부분은 후방 시야를 좀 더 넓히는 동시에 시각적인 흥미도 돋운다.
3. 휠 지름에 관계없이 디펜더는 모두 예비 휠&타이어를 바깥에 달았다.
4. 차체 앞뒤 양쪽 끝에 각각 두 개의 램프와 두 개의 반사판을 배치하는 ‘네 개의 사각형’ 테마에 주목하자.
5. 아랫단을 위로 멋지게 치킨 범퍼 안에 수평선 형태의 반사판이 있다.
6. 측면 패널과 차체 뒷면 사이에 아주 날카롭게 꺾인 부분이 90°라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큰 각도를 이룬다.
1. 암레스트가 들어간 저 가운데 자리에 실용적인 제3의 좌석을 넣을 수 있다. 물론 무척 불편할 거다.
2. 문짝 안쪽 패널은 머리가 뭉툭한 육각 렌치용 볼트를 드러낸 채 간단히 고정해놓았다. 강인함이라는 주제에도 걸맞고 보기에도 멋지다.
3. 운전대 스포크의 소재는 단조 마그네슘이다. 칠하기만 했을 뿐 아무것도 씌우지 않았다.
4.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자동변속기 레버는 영국용 전기 소켓만큼이나 보기에 거슬린다. 뒤쪽에 있는 방아쇠 모양 레버를 조작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5. 대형 디스플레이는 자리를 잘 잡았다. 크기도 충분해 편리하다. 그리고…
6. …앞유리 바로 아래 가로로 길게 뻗은 이 크고 튼튼하지만 가벼운 빔에 잘 들어맞고, 그 자체는…
7. …랜드로버 사람들이 ‘차를 밀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고 하는 이 커다란 주조 마그네슘 부품으로 덮여 있다. 다만 홀로 2270kg이 넘는 차를 밖에서 밀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설명은 없었다. 형태는 멋지게 다듬었고, 빔 위는 부드러운 소재로 깔끔하게 마감했다.
8. 심지어 목재 장식 조각에도 볼트가 드러나도록 결합했다.
1. 차체 앞쪽 가운데 부분은 다른 어떤 차보다 뭉툭하다. 앞에서 보면 사각형이다.
2. 보닛 위에 살짝 솟은 이 ‘개집’은 패널 강성을 높이는 동시에 디펜더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신하게 만든다.
3. 가운데 사각형 바깥쪽과 모서리 부분은 공기 흐름을 개선하고 와류를 줄이기 위해 뒤로 기울였다.
4. 이 패널은 시각적인 속임수지만,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다. 체크플레이트 무늬를 넣어 발판처럼 보이지만 유연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5. 차체가 평평한 패널로 이뤄진 1948년형 랜드로버를 많이 닮아 보이게 만들었지만, 측면 패널은 솔직히 풍만해 보일 수 있다.
6. 뒤쪽 상단에 들어간 채광창은 기분 좋은 특징으로 모든 차에 적용한다.
7. 뒤쪽 모서리는 공기 흐름이 깔끔하게 떨어지도록 날카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90˚로 확 꺾진 않았다.
8.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지붕 뒤쪽으로 갈수록 안으로 상당히 좁아지는 것에 주목하자.
인터뷰
앤디 휠, 제리 맥거번, 닉 로저스를 만나다
오해 방지 차원에서 말하건대, 디자인이 훌륭한 모델도 있지만 네바퀴굴림 SUV는 내가 좋아하는 차종이 아니다. 그러나 재규어 랜드로버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은 내가 좋아하는 부류임이 틀림없다. 그들은 유능하고 다재다능하며, 심혈을 기울여 일한다. 일도 잘하지만, 어울리기에도 좋은 사람들이다. 신형 디펜더 출시와 관련해 외장 수석 디자이너 앤디 휠과 랜드로버 총괄 디자이너 제리 맥거번, 제품기술 총책임자 닉 로저스와 이야기를 나눴다.
명함에 이름이 앤드루, 제라드, 니컬러스가 아니라 앤디, 제리, 닉인 것이 눈길을 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일하며 업계 대부분의 영역을 경험해왔다. 그 과정을 통해 지나치게 잘 알게 된 사실은 이 업계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기회주의자란 것이다. 자동차의 아름다움이나 복잡한 구조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한다. 대가가 주어지지 않으면 떠난다. 나는 수석 디자이너가 은퇴한 뒤 가구 판매상이 된 경우도 알고 있다. 그는 분명 페블비치 행사에는 방문한 적이 없을 것이다.
영국 중부지방에 위치한 디자인 스튜디오를 방문해 이 친구들을 직접 만났다. 자신의 일을 즐기고 그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골수 차쟁이’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휠과 나는 그의 이름과 지난달에 인터뷰했던 러셀 카의 이름을 놓고 이름에 뭔가 운명적인 면이 있진 않았는지 궁금해했다. 휠의 친척을 아무리 뒤져봐도 자동차와 관련된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휠은 디펜더 보닛 위에 있는 체크플레이트 무늬 플라스틱 패널의 기능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것을 당연히 싸구려 가짜라 생각할 수 있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절대 싸구려는 아니다.
로저스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며 랜드로버에서 35년 동안 일했던 사람치고는 “놀랄 만큼 젊어 보인다”며 즐거워했다. 그는 확실히 좀 젊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 아래 이뤄진 성과나 결과물의 질을 따져본다면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닉은 재규어와 랜드로버가 알루미늄 구조에 관해서는 다른 모든 주류 및 중견 자동차 회사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가벼운 금속으로 만든 랜드로버가 그렇게 무거운 이유를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았다. 물론 대답은 분명하다. 원조 모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최첨단 장치가 엄청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맥거번은 차체 표면과 세부 요소, 장식이란 관점에서 랜드로버를 단순화하는 데 크게 관여했다고 한다. 내가 현재 출시 중인 모델의 보닛 끝에 굵직한 글자를 가로로 넣는 게 약간 지나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동의하면서도, 글자와는 별개로 모델들 간 뚜렷한 관계를 고려하면 글자를 넣는 게 정체성에 걸맞은 신중하고 적절한 작업이라 말했다. 그건 회사에 긍정적이다. 랜드로버의 존재 자체는 물론 이를 드러내는 일마저 뭔가 특별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GM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할리 얼의 눈에 띄어 GM 디자인실에 입사했다. 하지만 1세대 콜벳 스타일링 등에 관여했던 그는 이내 GM을 떠났고 1960년대부터는 프리랜서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약했다. 그의 디자인 영역은 레이싱카와 투어링카, 다수의 소형 항공기, 보트, 심지어 생태건축까지 아울렀다.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한 그의 강직하고 수준 높은 비평은 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1985년 <모터트렌드> 자매지인 <오토모빌>의 자동차 디자인 담당 편집자로 초빙됐고 지금까지도 매달 <오토모빌> 지면을 통해 날카로운 카 디자인 비평을 쏟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