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토) 느헤미야 1:4-11 찬송 251장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개역 개정)
어제 말씀에서 예루살렘에 관한 슬픈 소식을 전해 들은 느헤미야가
애통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금식 기도를 한 내용이다.
느헤미야의 기도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①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찬양(5절)
②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고백(6-7절)
③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회고(8-9절)
④ 주의 백성에 대한 도우심 간구(10-11절)로 구분된다.
이러한 느헤미야의 기도는 철저히 언약 사상에 근거한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환난에서 건지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시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한글 성경은 마치 본문에 소개되는 느헤미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 된 것처럼 번역되어 있다.(11절)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느헤미야는 그 이전부터 바사 제국의 주요 관직이라고 할 수 있는
‘술 관원’의 직책을 맡고 있었고
이는 느헤미야를 통해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를 중흥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한 것이다.
이처럼 그가 당시에 이미 고위 관리였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형편을 전해 듣기 전에 그가 이미 바사의 왕궁이었던
‘수산궁’에 머물렀다는 사실(1절)이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이러한 오해를 초래하는 11절의 끝부분은
‘그때에 내가 왕의 술관원이었느니라’고 번역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 본문이 가져다 주는 교훈은
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기도야말로 가장 확실히 응답받을 수 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과 유대 백성들을 위해서 간구할 때
신명기에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했다.(신30:1-8)
한편 우리들은 기도 응답에 관해 예수님의 보증을 받고 있음으로
진정 무엇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요14:13-14절)
② 우리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간구할 때
기도의 동지들과 더불어서 호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과 유대 백성들을 위해서 간구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도를 요청하여 함께 하나님께 호소했다.(11절)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관해 교훈하시면서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18:19)
③ 언제·어떤 상황속에서도 기도야말로 사태 해결을 위한 최상의 비결이다.
예루살렘에 관한 슬픈 소식을 듣게 되자
느헤미야는 세상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다.
물론 다음 장에 볼 수 있는 것처럼,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청원하는
현실적 방안을 강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도 하나님께 먼저 호소하였다.
어떤 이들은 무슨 일을 겪게 될 때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다 사용해 보고 결국 안되면 그제서야 하나님을 찾는다.
하지만 기도란 성도들이 마지막 한 가닥의 희망을 걸게 되는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무슨 일에든지 가장 먼저 시도해야 될 최상의 방책이다.
11절)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느헤미야는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며 자신의 기도를 마무리짓는다.
여기서 ‘이 사람들’의 대표적인 사람은 느헤미야가 모시던 아닥사스다 왕이다.
느헤미야는 이 아닥사스다의 은혜를 입게 하여달라고 기도하였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을 중건할 수 있도록 하여달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느헤미야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재건과 온전한 회복을 위한 도구로 헌신하며
그 일이 형통할 수 있게 하여 달라고 간구한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일에 적임자를 보내주시도록 구하지 않고
자신이 이 일에 헌신할 기회를 주시도록 요청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의 지척에 있도록 이끄신 것이
이 때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아무튼 본문의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하여
느헤미야가 기도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나라의 일을 위하여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 나라의 일에 자원하는 심령을 가진 사람이었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 중에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자신을 드리려고 나서는 이들은 흔치 않은 게 현실이다.
교회안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일꾼이 적은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주님은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길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당부하셨다.(마9:37-38)
이는 하나님께 일꾼을 보내어 주시도록 간구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비단 기도만 하라는 말씀일까?
여기에는 분명 제자들 스스로 추수할 일꾼으로 헌신하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적극 헌신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기도하고 자원하는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가신다.
기도하고 자원한 느헤미야를 통하여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자원하는 심령으로 헌신의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사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