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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잊혀진 독립운동가인 홍재하 선생편- 1919년 프랑스 최초의 한인회인 재법한국민회를 결성하고, 임시정부 활동 지원했던 분이야.
프랑스 생브리외로 홍재하 선생의 후손을 만나러 가는 길.
홍재하의 후손인 장자크씨는 아버지의 유품을 보관해오고 있었어. 그러다 최근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한인 부부의 도움을 받아서 아버지의 유품을 함께 정리하고 공적을 널리 알리게 돼. 그야말로 프랑스 한인 동포들이 찾아낸 잊혀진 독립운동가인 셈이지.
대문 앞에 걸린 태극기로 단번에 이 집이 홍재하 후손이 사는 집이라는 걸 알 수 있지
정다운 미소로 맞아주시는 홍재하의 막내 아들 장자크 홍 푸안씨.
홍재하의 업적을 잠깐 설명하자면, 1차 대전 격전지를 복구하며 번 돈을 임시 정부 파리위원부(대표 김규식)으로 보내서 자금을 지원하고, 프랑스에서 3.1운동 기념식을 개최하기도 해. 하지만 그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어. 그러다 재불 동포 모임에서 한국인 교수 부부를 만나게 되고-
렌 경영대에서 경영전략을 가르치는 김성영 교수는 평소 지역사회의 기업인들과 벤처투자자 등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지역사회에서 엔젤투자자로 이름 높은 장자크 홍 푸안(76)이라는 이름의 노신사를 알게 된다.
프랑스인이지만 영국에서 엔지니어링과 경영학을 공부해 영어에 능통한 이 노인은 잘 살피지 않으면 프랑스의 평범한 중산층 백인 신사로 보였다.
처음에는 성(姓)에 있는 '푸안' 때문에 중국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좀 친해지고 나니 그는 자신이 한국말은 못 해도 한국계라고 털어놨다. 부친의 한국 이름은 '홍재하'.
"1960년 파리에서 작고한 부친이 한국에서 100년 전 프랑스로 왔고 프랑스 여성과 결혼하고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보냈다는 말씀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더라고요."
김성영·송은혜 씨 부부는 한국어를 모르는 장자크 씨가 '아버지가 남긴 자료가 많은데 그 의미를 잘 모르겠으니 도와달라'는 청을 받고 렌에서 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소도시 생브리외의 자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장자크 씨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곧 직감했다.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는데 다 보고 계신다며 반갑게 맞아주시는 중
익숙한 한국사 강사인 최태성씨도 나와!
화기애애한 자리
아버지가 한국의 독립운동가였다는 것을 원래 알고 계셨나?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어릴 때부터 많은 한국인들이 드나들어서 모를 수가 없었을 것 같아.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안하셨지만 애국심과 한국에 대한 사랑은 분명하셨던 분
아버지가 독립 운동가라는 걸 언제부터 알고 계셨나요?
아주 어릴 적부터 알았다고- 아주 똑똑한 아이였기 때문에라며 농담도 하심
아들이 기억하는 홍재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한국인들과 모여 조국 독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시던 아버지
한국인뿐만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시던 분
아리랑을 즐겨 부르셨다며 가사는 잘 모르시지만 음을 흥얼거리셔
항상 해방된 조국에 돌아가고 싶으셨던 아버지. 하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힘.
1950년대에는 돈을 모아서 온가족이 다 한국으로 돌아가려했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무산되고- 해방된 조국에 전쟁이 다시 일어나자 비탄에 빠져 말을 거의 잃으셨었다고... 하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전쟁 구호 물자를 지원하는데에 힘을 쏟았다고 해
아버지가 양복에 채우던 커프스를 유품으로 갖고 계심
아버지의 유품을 보면 마지막까지 한국에 돌아가지 못했던 아버지가 생각나서 후회되신다고..
17살의 너무 어린 나이라 아버지를 한국에 보내드릴 수 없었던 게 너무 슬프다고 해
타계하시기 2년 전인 1958년 홍재하 선생이 대한민국 정부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달라고 편지를 써서 보내
홍재하 선생의 편지는 없고 대한민국 정부의 답변만 남아있어
경제적 지원이 힘들다는 답장. 이 답장을 받고 2년 뒤 암으로 타계하셨다고..
프랑스어를 잘 못해서 마땅한 직업도 없으셨고 2남 3녀로 가족들도 많아서 아마 비용이 상당히 부담됐으리라 보여져.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온가족을 부양한 아버지가 대단하시다며 눈물을 흘림
독립운동가 홍재하는 사후 60년 가까이 독립운동한 사실을 인정받지 못 하다가 한국인 부부의 도움으로 인정받게 돼. 가족들이 아버지 유품을 통해서 독립운동 사실을 조명하려고 대사관에도 접촉하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허사로 돌아가서 포기하고 있었나봐
뒤늦게나마 아버지의 독립 운동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어서 기쁘시다는 언론사 인터뷰를 봤어.
독립운동가 홍재하의 유품 중에는 학계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상해 임시정부 독립신문 호외도 발견되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조사팀이 특파 되기도 해.
백년만에 알게 된 증조할머니의 독립운동 사실 #임성실지사
2대를 거쳐서야 민긍호 의병장의 손주인 것을 밝히게 된 사연
첫댓글 너무슬프다 ㅠ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