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모든 일정 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격 없는 자, 주님의 보혈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오니
아버지 품속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9.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10.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13.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14.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15.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16. 아사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17.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18.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19.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20.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21. 바아사가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디르사에 거주하니라
22.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명령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23. 아사의 남은 사적과 모든 권세와 그가 행한 모든 일과 성읍을 건축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그는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더라
24. 아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조상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본문 주해)
9~15절 : 아사가 엄청난 개혁을 한다.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찍어 불살라버리다.
심지어 태후인 마아가가 아세라 상을 만들었다고 그 자리를 물러나게 하고, 그 음탕한 우상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린다.
할머니 마아가를 왕대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것은 우상 숭배의 진원을 뿌리 뽑은 것과 같다. 왜냐하면 마아가는 르호보암 때부터 줄곧 우상을 섬김으로써 남 유다에 우상 숭배를 만연케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사는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은과 금과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다.
그런데 아사는 산당은 없애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기까지는 여러 산당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지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고 나서도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다고 산당에서 여전히 제사를 지낸 것이다.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 사무엘도, 솔로몬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문제는 전국에 산재하여 있는 산당들에서 드린 제사가 여호와의 제사와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제사가 혼합이 된 것이었다. 말로는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다고 하지만 그 속 내용은 우상숭배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산당을 다 제거한다는 것은 민간신앙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이기에 전 국민적 반발이 일어날 것이었으므로 개혁을 하여도 산당만은 남겨둔 것이었다.
그러나 열왕기 기자는 아사 왕에 대해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11절),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14절) 라고 평한다.
16~22절 : 아사와 북이스라엘의 바아사 사이에 일평생 전쟁이 있었다. 북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 유다로 가는 길목을 막기 위하여 예루살렘 위의 라마라는 교통요충지에 자기들의 요새를 건설한 것이다.
르호보암 왕 때에도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 송아지를 섬기게 하자 남으로 내려온 자들이 있었는데, 아사의 대대적인 개혁을 들은 북이스라엘 사람 중에 남쪽 아사 왕에게로 온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아사가 라마에 요새를 건설한 것이다.
이러한 바아사의 행동은 아사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었다. 바로 턱 밑에 기지를 건설하고 요새화를 시작하니까 위기의식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 아사가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한 것이 아니라, 아람 왕에게 성전의 은금을 보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한다. 그래서 아람이 북이스라엘을 공격하니 바아사는 물러가게 되고 아사는 바아사가 라마를 건설하려던 재료를 가지고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게 된다.
한편 역대기서에서는 이러한 아사왕을 선지자가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대하16:7~10)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한 것을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니가 책망을 하자 아사가 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어 버린다.
하나니의 지적에 아사 왕은 화가 났다. 작전은 성공했고 결과는 잘 끝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방자한 선지자가 감히 왕의 정책에 대해서 반기를 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형편없는 것으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차 없이 하나니를 옥에 가두고 그와 연루되어있는 백성들을 학대하였다는 것이다.
23~24절 : “아사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아사가 왕위에 있은 지 사십일 년 후에 죽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자기를 위하여 파 두었던 묘실에 무리가 장사하되 그의 시체를 법대로 만든 각양 향 재료를 가득히 채운 상에 두고 또 그것을 위하여 많이 분향하였더라”(대하16:11~14)
아사 왕이 늘그막에 발에 병이 났다고 한다.
역대기에는 바아사와의 전쟁에 이어 이 문제도 아사에 대한 아쉬움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사 왕은 그의 통치 39년에 발에 아주 심한 병이 들었던 것이다. 심한 병이란 죽을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사왕이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만 의지했다고 한다. 의원들을 의지한 것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의원들만 의지한 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아사왕이 죽고 여호사밧이 왕이 된다.
(나의 묵상)
열왕기에는 아사왕에 대한 기록이 16절 정도로 짧지만, 역대기에는 세 장(대하14장~16장)에 걸쳐 아사왕에 대해 기록한다.
할아버지 르호보암이나 아버지 아비얌과는 달리 아사가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한다.
할머니를 왕대비 자리에서 폐위시키는 등 혈육의 정까지 이길 만큼 우상 숭배하는 것을 척결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역대기의 기록(대하14:8~15)에 구스인들이 공격해 오자 58만대 100만의 싸움에서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하여 전쟁에서 이긴 아사왕이었다.
그래서 열왕기 기자는 아사 왕에 대해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11절),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14절)고 평한다.
그런데 찝찝한 부분이 있다.
바아사와의 전쟁 이야기(16~22절)와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다(23절)는 이야기이다.
본문에는 이 사건들을 사건으로만 나열하고 그에 대한 평을 하고 있지 않지만, 병행구절을 역대기에서 찾아보면 아사왕의 잘못으로 표현된다.
눈으로 보기에는 좋은 결과로 끝난 바아사와의 전쟁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했다고 하나니 선지자가 꾸짖는 것이다.
이때 아사 왕은, 바아사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바아사가 라마를 건설하려던 재료를 가지고 자기들의 게바와 미스바까지 건축하였으니 참으로 금상첨화인데, 이 시건방진 선지자가 왕의 불신앙을 들먹이니 그를 감옥에 처넣고 만다.
또 23절에 ‘그러나 그는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더라’는 짧은 구절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늙으면 병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렇게 꼭 집어 표현한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대하16:12)
아사왕이 의원들을 의지한 것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의원들만 의지한 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아사 왕은 41년을 왕위에 있다가 죽었다.
그의 믿음에 물음표를 주었던 바아사와의 전쟁이 아사 왕 36년째이고, 발에 병든 사건이 39년째이다.
재위 35년까지 영적으로 짱짱하던 그였는데, 말년이 위태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열왕기 기자는 아사 왕에 대해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11절),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14절) 라고 평한다.
찝찝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안심이다.
인생 중에 실수가 없는 인생은 없겠지만, ‘한결같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한다.
거창하게 시작한 솔로몬의 인생이 용두사미(龍頭蛇尾)-용이니 뱀이니 하는 이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가 되고,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닮지 않은 아사가 멋지게 등장했는데 또 그의 말년이 흐지부지하니 너무도 안타깝다.
하지만 그 누가 자신의 말년까지 장담할 수 있을까?
은혜충만했던 목사님들이라도, 말년에 노화 증세로, 그 영적 뜨거움을 잃어버리고 안주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늙음이 자기 합리화가 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분들이 그러했다면 나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구한다.
육신을 입은 자가 주님 앞에 한결같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십자가를 붙들 때이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언제나 말씀 앞으로 나아가 나의 죄를 들여다볼 때 더욱 굳게 붙들 수 있다.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그럴듯한 소리로 내 삶을 합리화하는 늙은이가 되기 전에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묵상 기도)
주님,
주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처럼 늙은이 행세를 할까 두렵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주님 앞에 한결같이 어린 아이이기를 원합니다.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십자가를 꼭 붙드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저의 마음이 일평생 주님 앞에 온전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