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라인을 타고 올라가는 최효진의 호쾌한 질주도, 엔드라인 앞에서 기적처럼 볼을 살려 놓는 박원재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보기도 힘들었다. 따바레즈의 현란한 발재간과 마법 같은 볼 배급은 존재하지 않았고, 교체 투입되는 족족 골을 뽑아냈던 ‘가을사나이’ 이광재의 이름은 대기 명단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새 전설이 되어버린 2007년의 우승 신화. 그와는 전혀 다른 시나리오로 2008년 K-리그를 마감한 포항의 현실이다.
대신 그곳에 조성환이 있었고, 황재원이 뛰어올랐고, 장현규가 몸을 날려 굴렀다. 포항 특유의 섬세하고 매력적인 공격 축구는 빛을 잃었지만 수비수들의 투혼과 몸을 사리지 않는 움직임은 그 아쉬움을 대체하고도 남았다. 포항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갈 때일수록, 상대의 역습이 포항의 골문을 향할 때일수록 수비진의 활약상은 더욱 돋보였다.
22일 울산과의 6강 플레이오프. 울산월드컵경기장은 ‘빅이벤트’에 걸맞지 않게 적막감이 흘렀다. 전반 초반, 양팀 모두 팽팽한 긴장감으로 신중한 운영을 벌인 탓에 이렇다할 공격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분위기에 휩쓸린 포항도 좀처럼 전진하지 못한 채 소극적인 공격을 시도할 뿐이었다. 그때 누군가 큰 소리로 ‘괜찮아!’를 외치며 박수를 쳤다. 동료들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지르며 사기를 북돋우는 그의 목소리는 관중석을 돌아 울린 뒤 2층의 기자석에까지 전달됐다. 조성환이었다.
조성환의 자극은 주의를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이내 주장 김기동이 동조하는 박수를 치며 파이팅을 주문했고, 포항 선수들은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조성환은 이따금씩 서포터들을 향해 돌아서 응원을 유도하기도 했다. 특유의 투지와 승부 근성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은 그의 존재감은 초반 수세에 몰렸던 포항이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했다.
부상에서 돌아온 황재원은 힘과 높이에서 상대를 압도하며 ‘과연’이라는 찬사를 연발하게 했다. 제공권에 강점을 보이는 장신군단 울산의 공격 시도는 중앙에 버티고 있던 황재원 앞에서 무위로 돌아갔다. 루이지뉴, 양동현, 이진호 모두 공중볼 한 번 제대로 따내지 못했다. 정규리그에서 집중력 저하로 잔실수를 보이기도 했던 황재원은 이날 완벽에 가까운 수비력으로 최후방을 통솔하며 만회했다.
장현규 역시 악착 같은 대인 마크와 커버플레이로 몇 차례의 위기 상황을 막아냈다. 알미르와 이진호, 염기훈의 돌파 시도는 장현규에게 통하지 않았다. 뚫렸다 싶은 순간 어느 틈에 상대를 압박하며 코너로 몰고 있는 장현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연장전에서는 이진호와 경합하다 착지하는 과정에서 발목을 밟히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상황을 고려해 교체를 미뤘던 그였지만 정상적인 경기가 어려워지자 결국 절뚝이며 경기장을 나갔다. 고통을 감수하려던 의지만큼은 벌써 승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을 터.
하지만 경기는 이들이 어찌할 수 없는 곳에서 무너졌다. 연장전까지 120분 간의 사투를 벌였지만 득점은 나지 않았고 ‘11m의 러시안룰렛’이라고 불리는 잔혹한 승부차기에 운명을 맡겼다. 울산은 18세 신예 골키퍼 김승규를 깜짝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포항의 슈팅 2개가 김승규의 손에 걸리며 팽팽했던 균형이 깨졌다.
결국 포항은 승부차기에서 2-4로 패하며 올 시즌 K-리그의 막을 내렸다. 공식 성적은 0-0 무승부. 무실점을 지킨 정도가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낭패감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경기장에 드러누운 것도 잠시, 이들은 다시 무너진 동료들을 일으켜 세우고 서포터스석으로 걸어가 손을 높이 들고 인사를 고했다. 열정을 모두 태운 이들은 다소 허탈한, 하지만 당당하고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였다. |
첫댓글 우리 선수들 열심히 뛰었습니다...아직FA컵이 남았으니 다시 힘내자구요~
수고하셨습니다.. 아직 포항의 2008년은 마감한게 아닙니다..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위해 지금부터 다시 달리면 되니까요.^^
황재원............진짜국보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