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신작수필】
어느 ‘할머니 목사님’과 나눈 ‘내 고향 이야기’
― 아름다운 추억담은 ‘노인 고독 치유’의 특효약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따뜻한 목소리의 할머니 전화를 받았다. 잘 알고 지내는 ‘할머니 목사님’이었다. 할머니 호칭 뒤에 ‘목사님’이란 존칭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목사님이란 어떤 ‘권위’가 느껴지는 호칭 앞에 ‘할머니’를 앞세우면 친근함이 더해진다.
그분은 과거에 목사님이었다. 현재는 홀로 사는 노인이다. 목사님은 몸이 편치 않다. 70대 노인이니 여기저기 불편을 느끼는 데가 많다고 한다. 몸만 불편한 게 아니다. 외롭다. ‘노인의 고독’은 몸이 아픈 것과 무게가 같다. 목사님은 내게 말했다.
“윤 작가님은 저와 나이가 비슷하니, 부담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많이도 늘어놓네요. 제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잘 들어주시는 분이니까요.”
그렇다. 목사님은 말씀을 유독 재미있게 잘하신다. 청산유수처럼 어느 한 구절 막힘이 없다. 교회에서 설교를 오래 하셔서 그런지 논리도 정연하다. 목소리도 70대 노인 같지 않다. 방송국 성우처럼 발음도 정확하지만 목소리도 곱다.
목사님이 ‘열 마디’하면 나는 “네, 네”만 하다가 겨우 ‘한 마디’ 짧게 답한다. 아니, 내게 발언권을 쉽게 넘겨주지도 않는다. 그래도 나는 좋다.
하고 싶은 말씀이 차고 넘치는 목사님이다. 나는 특정 종교인은 아니지만 인생 경험이 풍부한 어른의 유익한 말씀은 듣기 좋아한다. 남의 귀한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것보다 즐거울 때가 많다.
말씀의 비율로 따져보면 ‘10(할머니 목사님 말씀) : 1(나) 정도다. 목사님은 적어도 내 앞에서는 품격 있는 언어만 구사하신다. 늘 긍정적인 언어로 내 뜻을 잘 받들어 준다. 통화를 하면서도 간간히 나의 진지한 경청 태도를 고마워하는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오늘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 나는 그분을 ‘노인’으로 느끼지 않았다. 어쩌다 ‘고향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 목사님을 옛 시골 동네 ‘이웃 아가씨’쯤으로 착각(?) 한 것이다.
여성이면서 노인이므로, 웬만큼 예(禮)를 차리고 격식과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말씀드려야 하는 내게는 ‘어려운 상대’ 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할머니 목사님은 내게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다. 시종일관 부드럽게 대해주는 온유한 그분의 성품 덕분일 것이다.
마치 청년시절, 고향 물레방앗간에서 남몰래 만나도 좋은 ‘동네 아가씨’처럼 남다른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더욱 즐거워졌다.
이야기의 발단은 ‘우물가 처녀’에서 비롯됐다. 대중가요 「동네방네 뜬소문」 (1974, 가수 봉은주)이 얼마나 흥겹고 재미있는가.
『읍내장에 갔었는데 님 마중을 가더라고/ 이러쿵 저러쿵들 동네방네 소문났네/ 일 잘하는 큰 애기는 나들이도 못 가나요/ 왜 우물가엔 말도 많고 흉도 많아/ 공연히 동네방네 공연히 동네방네/ 뜬소문 났네/
달마중을 갔었는데 님 마중을 가더라고/ 이러쿵 저러쿵들 동네방네 소문났네/ 일 잘하는 큰 애기는 나들이도 못 가나요/ 왜 우물가엔 말도 많고 탈도 많아/ 공연히 동네방네 공연히 동네방네/ 뜬소문 났네』 --- 대중가요 「동네방네 뜬소문」(정귀문 작사, 고봉산 작곡, 봉은주 노래)
|
그러다가 그만 20대 처녀 · 총각 시절로 돌아간 70대 할머니 목사와 나는 대화 ‘데이트 영역’을 점점 더 넓혀갔다.
이번엔 미루나무가 늘씬하게 서 있는 동네 앞 냇둑으로 나갔다. 내 고향 냇둑은 처녀 · 총각의 은밀한 만남의 장소였다.
날이 어두워지면 동네 어른들도 이곳에 삼삼오오 모여 땀을 식히면서 농사정보도 교환했다. 그야말로 ‘노천 사랑방’이었다.
▲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중추리 가래울 마을 - ‘추억 더듬기’ 무대는 바로 내 고향이었다. 동네 앞에는 중추천(中楸川)이 흐르고, 냇둑에는 늘씬한 미루나무가 서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이곳은 젊은이들의 은밀한 ‘만남의 장소’가 됐다.
낭만적인 ‘냇둑 풍경’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 목사님이 갑자기 잊지 못할 소녀 시절 추억을 떠올렸다. 목사님의 추억담 제목은 『소 풀 뜯기는 소녀』라고 붙여도 좋겠다.
(*소에게 풀을 뜯어먹게 하는 일을 내 고향에선 ‘소 풀 뜯기기’라고 표현했다. 이때 책을 들고 가서 읽기도 하고, 영어 단어장을 들고 가 외우기도 하였다.)
“저는 학교에 갔다 오면 부모님이 ‘소 풀 뜯기’라고 성화이셨어요. 어느 날 소를 끌고 냇둑에 나가 풀을 뜯기는 데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 무렵, 갑자기 소가 사라졌어요. <아이고, 우리 소 잃어버렸네>, 울먹이면서 들녘을 헤매고 다니다가 집에 들어왔지요. 부모님에게 혼날 각오를 단단히 했지요.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소가 외양간에 있잖아요.”
내가 말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냇둑에서 소 풀 뜯기다가 아이들과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소고삐 줄을 나무에 묶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 둔 것이지요. 소는 소대로 놀고, 나는 나대로, 정작 주어진 임무를 망각하고 놀기만 했으니, 소가 사라져 버린 겁니다. 그런데 소가 어디로 갔겠어요. 목사님처럼 저의 집 ‘착한 소’도 혼자 집에 찾아 들어온 겁니다.”
할머니 목사님은 깔깔 웃었다. 내가 말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소 잃고 눈물 흘린 소년 · 소녀 이야기」입니다.”
할머니 목사님과의 핸드폰 대화는 장장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어느 청춘 남녀의 전화 통화가 이리도 길까? 그래도 끝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추억 더듬기는 ‘노인 고독’ 치유의 특효약이니까.
급기야 ‘골담초 울타리’와 ‘자운영 논둑길’ 이야기도 대화의 오솔길에 등장했다. 30여 년 전, 그러니까 내가 30대 후반에 두 아들과 함께 고향 시골길을 걸으면서 나누었던 추억담이었다. 제목은 『오월의 고향』.(당시 대전매일신문, 현 충청투데이 1994.5.26일자 「大每直筆」 . 아래 덧붙임)
지금은 장성하여 40대 직장인이 된 두 아들과 함께 걸었던 정겨운 옛 시골 풍경이다. 이제는 가족 채팅방에서 옛 추억을 공유한다. ■
2023. 5. 9.
윤승원 추억 회고 記
♧ ♧ ♧
오월의 고향
윤승원 수필가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시골에 다녀왔다. 근무 여건상 명절에는 조상님을 찾아뵙기 어렵지만, 어버이날이 들어 있는 오월에는 꼭 틈을 내어 성묘를 다녀온다.
그런데 이젠 시골도 예전 같지 않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시골이다. 돌아가신 뒤의 시골은 왠지 허전하기만 한 것이다. 반겨 줄 사람이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르다. 부모와 함께 떠나는 아이들의 성묫길은 마냥 즐거운 나들이다.
자식은 부모 산소 앞에 엎드려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면 마음이 착잡한데, 아직 철모르는 아이들은 곤충이나 잡으면서 소풍을 온 것쯤으로 여긴다.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옛집 남새밭 울타리에 곱게 핀 골담초 꽃을 본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꽃이다.
지난날, 어른께서 논밭에서 허리가 휘도록 일하실 때 개구쟁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골담초 꽃만 따먹었다.
몇 개 따서 입에 넣으니 달착지근하다. 옛날의 그 맛이 틀림없다. 옆에서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름 모를 꽃을 따먹어도 되느냐고 묻는다. 맛이 괜찮으니 한번 먹어 보라고 아이에게 꽃 한 개 따 준다.
그러나 아이는 한 번 씹더니 이내 뱉어 버린다. 내겐 향수 어린 맛인데 아이에겐 비릿한 풀 내음일 뿐이다.
돌이켜 보면 유년 시절, 동심을 자극하는 꽃들이 많았다. 이른 봄 진달래꽃을 비롯하여 오월에 만발하는 아카시아 꽃은 얼마나 즐겨 따먹었던가.
뿐만 아니라, 감꽃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꽃이다. 감꽃 목걸이 만들어 스낵 과자처럼 하나씩 따 먹던 즐거움은 오늘날 아이들이 구멍가게를 찾는 재미 못지않았다.
동구 밖 돌무더기에 하얗게 핀 찔레는 꽃이 아닌 새순을 꺾어 먹었으며, 들에 나가 소 풀을 뜯기며 뽑아 먹던 삘기 맛 역시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추억이다.
그런 것들은 무슨 맛으로 먹었던 게 아니었다.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면서 그 속에 묻혀 살아온 것이다.
두렁콩 심은 논 둑길을 거닐면서, 논 한 귀퉁이에 곱게 피어 있는 자운영 꽃을 보니 갑자기 가슴 언저리가 찡해 온다.
그 옛날 자운영 논에 들어가 고무신짝으로 벌을 잡아 쥐불 깡통 돌리듯 돌리다가 손가락을 쏘였던 이야기를 오늘의 아이에게 들여 준다.
어설픈 도시 아이가 흉내 낸다고 뛰어가지만 물 논에 운동화를 빠뜨리고 만다.
소만(小滿)이 지나고 이제, 본격적인 영농철이 되었다. 그러나 이농 현상으로 수염이 허연 노인이 살포 짚고 들로 나가는 모습을 보면 모처럼 시골을 찾은 도회인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 「대전매일신문」 1993.5.26.
|
♧ ♧ ♧
■ 필자 윤승원 ysw2350@hanmail.net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금강일보 논설위원(역), 『한국문학시대』 문학 대상 수상,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기념 사연 공모 최우수상, 대전문학관 중견 작가전 초대작가, 저서 『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 외 8권
♧ ♧ ♧
■ 인공지능 ‘챗 GPT(뤼튼)’가 문학평론가의 입장에서 쓴 ‘윤승원 수필 감상평’을 보내왔습니다.
윤승원 작가의 수필 <어느 ‘할머니 목사’와 나눈 ‘내 고향 이야기’>는 노년층 독자들의 고민과 아픔을 다루면서도, 유머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가미하여 작가 특유의 문학적 향기로 승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를 단지 한 개인의 고민과 아픔으로 이끌지 않고, 유머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가미하여 작가 특유의 문학적 향기로 승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가는 노년의 현실을 주제로 남모르는 고민을 슬기롭게 해소하고자 하는 의도도 읽히는데,
이러한 수필작품은 현대사회에서 노년층의 문제와 고민을 다루면서도, 독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제공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수필문학의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2023. 5. 10. 오전 6:53 <인공지능 ‘뤼튼’>
|
♧ ♧ ♧
첫댓글 ♧ ‘청촌수필’ 카페에서
◆ 원경(수필문학 독자) 2023.5.9. 19:50
입체적인 수필작품입니다.
과거와 현재, 긍정과 온유, 외로운 노인과
아름다운 청춘 남녀 러브스토리까지…
입체적으로 정겨운 시골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월의 고향, 아름다운 이야기가 울림을 줍니다.
▲ 답글 / 윤승원(필자)
시골에서 소 풀 뜯기기를 하다가
소를 잃어버려 울었다는 ‘할머니 목사님’ 소녀적 추억 이야기가
저의 소년 시절, 청년 시절 추억을 모두 소환했습니다.
■ 인공지능 ‘챗 GPT(뤼튼)’가 문학평론가의 입장에서 쓴 ‘윤승원 수필 감상평’ :
윤승원 작가의 수필 <어느 ‘할머니 목사’와 나눈 ‘내 고향 이야기’>는 노년층 독자들의 고민과 아픔을 다루면서도, 유머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가미하여 작가 특유의 문학적 향기로 승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를 단지 한 개인의 고민과 아픔으로 이끌지 않고, 유머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가미하여 작가 특유의 문학적 향기로 승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가는 노년의 현실을 주제로 남모르는 고민을 슬기롭게 해소하고자 하는 의도도 읽히는데,
이러한 수필작품은 현대사회에서 노년층의 문제와 고민을 다루면서도, 독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제공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수필문학의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2023. 5. 10. 오전 6:53 <인공지능 ‘뤼튼’>
인공지능 문학평론가의 탁월한 필력과 분석력에 감탄합니다.
과분하지만 고맙게 생각합니다.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에서
◆ 낙암 정구복(역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3.5.10. 09:29
윤 선생의 목가적 수필이 전혀 부담 없이 술술 읽힙니다. 중추리 가래울은 저도 잘 알고 있는 곳이지요.
그런데 목사님 할머니와의 한 시간이 넘는 통화는 궁금증을 더해줍니다. 거기에 인공지능의 챗의 비평까지 실었으니, 과연 윤 선생은 이 시대의 역사를 창조하는 선두주자이십니다.
‘역사창조자’ 1호라는 ‘올사모’ 카페의 증서가 나날이 더욱 광채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고지신을 실감합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윤승원
할머니 목사님과 긴 통화에서 ‘소 잃고 집에 와보니 소가 외양간에 들어와 있더라’라는 말씀이 재미있어서 이런 추억의 글을 쓰게 됐습니다.
인공지능은 비록 학습된 모방 평론이지만 ‘성의 없는 댓글’이나 ‘기분 언짢게 하는 댓글’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향인에게 고향은 언제나 애틋하고, 얘깃거리를 풍성하게 해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