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이라는 것은 변화의 역(易)을 말하는 것이다. 역(易)이라
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역 개물성무(夫易 開物成務)이다. 우리가 완
전히 되도록 수년 간을 두고 연구해서 점점 잘 살게 된다. 물건이 점점
열리(開物)게 하려는 이 세상이라는 것을 생각하자는 것이 개물성무
(開物成務)이다. 이것을 말하여 모천하지도(冒天下之道)라 한다.
역(易)의 천하에 불역(不易)이라는 말이 있다. 변치 않는다는 뜻이
다. 변치 않는다는 것은 진리(眞理)를 말한다. 여기에 대하여 교역(交
易)이라는 말이 있다. 교역(交易)은 서로 바꾼다는 뜻이 아니라 자꾸
변하는 것을 말한다. 신학(神學)이니 철학(哲學)이니 하는 것은 역
(易)이 아니라 불역 (不易)을 찾는 것이다.
불역(不易)의 반대말이 교역(交易)이다. 여기에 무엇이 있는데 이것
을 더 알아보려고 개물성무(開物成務)에 힘쓰자는 것이다. 이 '개물성
무'의 규명이 오늘날 물리학의 기초이다. 천하의 모든 현상과 물건의
이치와 그 뜻이 변하는 것을 규명하는 것이 '개물성무'를 가지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도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은 불역(不易)이다. 바뀌
지 않는 영원절대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날아가
고 변하는 천하의 일은 하지 않는다. 오직 바뀌지 않는 얼나(道)에 뜻
을 둔다. (成人以道 天下之志).
그러나 세상에서는 개물성무(開物成務)를 업(業)이라 한다. 이정천
하지업(以定天下之業)이다. 그러나 '개물성무'가 자꾸 끊어지면 끊어
지는 대로 의심이 생긴다. 의심이 생기면 이것을 풀어보게 된다. 의심
을 풀면 또 달라진다. 이 역(易)이 주역(周易)이다. 주역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과학(科學)하자는 것이다. 요새 말로 일종의 물리학
이 아니겠는가?(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