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업 – 거지 같은 고정마인드셋이 잘 안 바뀝니다
질문
스님 법화경은 불자의 법다운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경전이라는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특히 거지와 왕자의 마인드셋에 대한 부분에서 가슴이 턱 막히더군요. 저는 분명히 왕자의 마인드셋을 가지고 싶지만 현실은 거지 마인드셋에 갇혀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신경 쓸 때는 안돼 못해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잠깐만 얼빠져도 나와 타인에게 안됀다고 못한다고 말하며 방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 지긋지긋한 고정마인드셋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요?
변화를 위한 기본기술 – 조율
수행자는 개선하는 존재입니다.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이 고정마인드셋입니다. 왕자의 태도 즉,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개선되는 삶의 시작입니다. <묘법연화경>을 매일 독송하는 이유는 거지 마인드셋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악습의 회귀본능을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개선이란 변화입니다. 개선을 위해서는 두 가지 최소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첫째는 선을 선택하는 지혜이고, 둘째는 삼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조율의 힘입니다. 방향을 알아도 변화시킬 조절능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요, 조율의 힘이 있어도 방향이 잘못되면 개선이 아니라 개악의 결과물이 나올테니까요.
붓다는 성불 후 첫 공식설법의 자리에서 이 자기조절능력인 실천적중도의 가르침을 강조합니다. 사실 당연한 이치입니다. 삼업을 뜻대로 조율하지 못하는 사람이 주도적 변화를 이룰 수는 없으니까요. 붓다는 매일, 매순간, 평생, 완전한 개선이 이루어진 열반에 이를 때까지 이 실천적 중도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수행의 전부입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노력을 할 때도 자기조절감은 중요한 한 축입니다. <행복경>의 38가지 체크리스트 속에서도 이 자기조절은 으뜸가는 행복으로 언급됩니다. 수행자에게 이 조율의 힘은 중요한 자산입니다.
“자신을 올바로 잘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다.”
자기조절감을 높이는 법
선을 선택하는 지혜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습니다. 선을 알아보는 눈이 없더라도 이 선의 지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경전들이 지도에 해당되겠죠?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면 이 지도를 따라 가겠다는 용기로 선택을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와 달리 실천적 중도, 조율은 정직한 훈련의 영역입니다. 감각이 좋은 사람은 빨리 익히기도 하지만, 분명한 점은 훈련 없이는 익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조율의 훈련은 첫째, 자기관찰의 힘이 필요합니다. 둘째, 주의력을 옮기는 힘이 필요합니다. 관찰을 통해 현재의 경험 속 개선해야 할 사항을 판단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주의력을 개선해야 할 곳에 두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세부조율 지속하는 것이 바로 실천적 중도의 훈련입니다.
자기조절감은 자기효능감이 높아질 때 함께 향상된다고 합니다. 서로간에 윈-윈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죠. 자기효능감이란 ‘내가 쓸모 있다’는 느낌입니다. 스스로의 능력과 역할에 자신감이 생길수록 자기조절이 잘 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마인드셋이라는 조건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고정마인드셋을 지니고 있다면 자기조절에 방해가 될 것이요, 성장마인드셋은 조력자가 될 것입니다. <미래의 나를 구하러 갑니다>의 저자는 자기효능 기대가 형성되는 근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기효능 기대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학자들은 다섯 가지 출처로부터 입력된 정보들이 통합된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다섯 가지란 직접경험, 간접경험, 언어적 설득, 가상 경험, 정서적·생리적 상태입니다.”
자존감은 ‘근자감’과 결이 다릅니다. 반드시 근거가 필요하거든요. 사람들은 자존감이 위협받지 않는 상황에서는 양심에 털이 난 행동을 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양심적입니다. 그래서 ‘묘하게’ 양심적이라고 표현하고는 합니다. 자기효능감도 자기조절감도 모두 명료하고 정직한 근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언급한 5가지를 비롯한 다양한 근거를 통해 스스로를 납득시켜야만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개선을 위한 노력은 지극해지는 순간까지 지속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0억을 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끊임없이 정렬하는 노력을 합니다. 목표를 이룰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구상합니다. 확률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지식을 업데이트 합니다. 그리고 실천을 지속합니다. 끝까지.
개선을 하는 이유는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언제까지? 끝까지요. 수행자가 성취하고 싶어하는 목표는 열반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까요? 3아승지겁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수행자의 노력은 초장기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지속가능’이라는 요소가 중요합니다. 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낮은 자존감, 고정마인드셋이라는 거지 같은 마음입니다.
고정마인드셋의 근거
왜 자신을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왜 자동적으로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안됀다고 말하며 자신과 타인을 거지같은 감옥에 가두는 것일까요? 이 고정마인드셋이 유지되는 근거를 알 수 있다면 해결하기 쉬워질 것이기에 <불필요한 생각 버리기 연습>의 저자가 언급하는 13가지 고정관념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렸을 적의 경험이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반쯤 일리가 있습니다. 반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우선 후천적으로도 얼마든지 이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얀 도화지에 처음한 낙서가 차후 그 도화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기에, 유년기의 경험이 강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에 일리가 있습니다. 13가지 고정관념은 대개 부모로부터 들었던 말들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이 말은 부모가 자녀에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모든 것에 해당됩니다. 라면은 먹으면 안 되고, 나쁜 친구 사귀면 안 되고, 게임 너무 많이 하면 안 되고... 그럼 뭘 할 수 있을까요? 금지 사항이 너무 많으면 사람의 목을 죕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감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감이 오시나요? 왜 고정마인드셋의 근거인지가?
“네가 아니어야 했어”
자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부모가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난 애교 있는 딸을 원했었는데...”
이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의 자존감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언급했듯 언어적 설득은 자기효능의 근거가 되는데, ‘너 말고 다른 존재가 필요해’라는 이 말은 엄청난 폭력이 되어 아이의 마음은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이 말들을 들을 때마다 끝없이 설득 당하는 것입니다.
“어린애처럼 굴지 마”
이제 다 컸으니, 동생이 생겼으니...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에도 아이는 설득 당합니다. 이런 고정관념에 속박당한 마음은 즐거움을 누려야 할 순간에도 이것저것을 책임지는데 사로잡힙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성장하지 마”
이는 부모가 과잉보호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책임감이 과한 것과 반대로 지나치게 의존적인 마음이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마마보이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느끼지 마”, “생각하지 마”, “가까이 오지 마”, “성공하지 마”, “원하는 것을 말하면 안 돼”, “건강하면 안 돼”, “중요한 사람이 되면 안 돼”, “소속돼선 안 돼”, “존재하지 마”에 이르는 13가지 폭력적 언어를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듣고 자라난다고 합니다. 반복해서.
언어는 일종의 마인드코딩입니다. 두뇌는 내 소유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두뇌라는 컴퓨터에 명령어를 입력할 수 있는 권한은 완전 공개입니다. 그렇기에 듣는 말들은 모두 두뇌에 명령어로 입력됩니다. 특히 소중한 사람, 중요하게 여기는 누군가의 말은 더욱 강렬하게 두뇌에 각인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마음을 물들입니다. 기간이 오래되면 영혼에 새겨집니다. 우리의 마인드셋은 이렇게 형성된 것입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는 명상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손톱 아래에 낀 가시를 빼듯, 마음의 고정관념을 뽑아내는 것이 명상이다.”
고정마인드셋은 오직 잘못된 고정관념의 디톡스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금강경>에서는 이런 고정관념을 상相이라고 표현합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법상, 비법상의 육상으로 세분화하여 설명합니다. 이 만상의 실체를 꿰뚫어보는 것이 바로 반야의 지혜이고, 이를 통해 고정관념의 감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공식 하나를 제공합니다.
“즉비시명”
나를 속박하는 고정관념이라는 족쇄를 풀어내야 마인드셋이 변화합니다. 조율을 방해하는 유일한 장애물인 고정마인드셋에서 벗어나 오히려 조율의 힘을 증장시키는 성장마인드셋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속박되어 아무것도 못하는 거지의 마음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왕자의 마음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즉비시명의 공식을 숙달해야 합니다.
즉비시명은 즉비+시명의 구조입니다. 즉비란 부정으로서 발견한 고정관념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인가?’ -> ‘NO!’
이렇게 즉비의 힘으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세요. 그런데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무작정 근자감으로 ‘나는 쓸모가 많은가?’ 이렇게 말해봐야 허망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근거가 없어서 설득이 안되니까요. 시명이란 즉비 이후의 적극적 관찰을 의미합니다. 내가 쓸모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능력을 높이고 역할을 다 할 것인지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현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어떻게 효능을 높일지에 대해 목표를 세우고, 이를 세분화 하여 계획하며, 전략을 가지고 정직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오직 이런 근거가 쌓일 때, 스스로를 설득하여 마인드셋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을 공부하는 수행자들이 이런 오해를 자주 합니다. 즉비의 논리에 사로잡혀 <금강경>은 실체를 ‘부정’하는 경전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는 과정만 보고 진정한 목적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비는 그저 사로잡혀 눈이 멀게 한 고정관념을 제거한 것 뿐입니다. 감았던 눈을 뜨는 이유가 있습니다. 시명의 힘으로 다시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입니다. 즉, 대상을 긍정하기 위해 부정했던 것입니다.
즉비시명의 힘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게 만듭니다. 더불어 즉비시명은 고정관념을 생산하는 것을 막아주는 힘도 있습니다. 즉비시명의 이런 측면을 조언의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급히 결론 내리지 말라”
엄밀히 말하면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 자체로 어리석음입니다. 왜냐하면 고정된 결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이러한 조건과 상황 속에서 찰라간에 적절한 결론일 뿐입니다. 다음 찰라가 되면, 1시간 뒤, 내일, 조건이 조금만 바뀌어도 그 결론은 오답으로 변화합니다. 그런데 결론이 곧 계속 결론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집착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고정관념을 양산하는 것입니다.
즉비의 이치는 결론 내리지 말라는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명의 이치는 그 순간 적절한 결론을 내리기를 권장합니다. 그래서 즉비시명을 붙여서 생각하면 ‘임시적 결론’을 내리도록 지침을 주는 것입니다. 되도록 결론을 내리지 않아야 하고, 만약 결론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임시적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전제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밝은 눈으로 관찰을 지속하여 결론에 대해 업데이트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정관념의 감옥에 갇혀 타인에게 어리석음을 강요하는 꼰대를 벗어나는 길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고정관념이 근거로 고정마인드셋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이는 자기를 조절하는 개선의 길을 방해하는 유일한 장애물입니다. 만약 수행자로써 삶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손톱 밑의 가시를 뽑아내듯 즉비시명의 족집게를 활용하여 못해! 안돼!라는 고정관념들을 모두 제거하는 명상에 몰두하셔야 합니다. 자존감은 결코 근거 없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선의 근거를 쌓아가는 정진에 게으리지 마시길_()_
첫댓글 명상하는 시간을 더 늘려 나가겠습니다.
밝게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