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골목 / 천양희
길동 뒷길을 몇 번 돌았다
옛집 찾으려다 다다른 막다른 길
골목은 왜 막다르기만 한 것일까
골과 목이 콱 막히는 것 같아
엉거주춤 나는 길 안에 섰다
골을 넘어가고 싶은 목을 넘어가고 싶은 골목이
담장 너머 높은 집들을 올려다본다
올려다볼 것은 저게 아닌데
높은 것이 다 좋은 건 아니라고
낮은 지붕들이 중얼거린다
나는 잠시 골목 끝에 서서
오래된 것은 오래되어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래된 친구 오래된 나무 오래된 미래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나무가 미래일까
오래된 몸이 막다른 골목 같아
오래된 나무 아래 오래 앉아본다
세상의 나무들 모두 無憂樹 같아
그 자리 비켜갈 수 없다
나는 아직 걱정 없이 산 적 없어
無憂 무우 하다 우우, 우울해진다
그러나 길도 때로 막힐 때가 있다
막힌 길을 골목이 받아적고 있다
골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고
옛집 찾다 다다른 막다른 길
너무 오래된 골목
1942년 부산 출생, 1965년 박두진 추천 시 ‘정원(庭園) 한때’로 ‘현대문학’등단
1966년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 1983년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으로 작품활동 재개,
시집으로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사람 그리운 도시」「하루치의 희망」「마음의 수수밭」「오래된 골목」「너무 많은 입」등이 있고,
짧은 소설 「하얀 달의 여신」,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등을 출간했다.
1996년 소월시문학상을,
1998년 현대문학상
2005년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