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두를 탈 것이다
노병철
밤새 무당이 북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연신 무당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날이 밝자 외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동촌 어디 바위 밑으로 가서 “엄마”라고 소리치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게 자식을 다른 신에게 파는 행위였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나만 간직하고 살았다. 신동설화 비슷한 이야기를 집사람에게조차 하지 않았다. 이유는 미신을 믿었다는 과거가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경주 어디 큰 바위도 아니고 청송 주산지 옆 신령스런 계곡도 아닌 동촌유원지 바위라는 사실이 쪽팔렸다. 만약 동촌 유원지 바위가 아니고 울산바위나 무릉계곡 영험한 바위였으면 홈플러스 할인권을 지갑에 꽁꽁 넣고 다니는 내 팔자가 바뀌었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칠십을 바라보는 내 인생을 비추어보면 바위는 바위에 불과했고 내 인생을 어찌하지는 못했다고 본다.
장인어른이 궁합을 보니 백호대살이라고 나랑 결혼하면 집사람이 3년을 못 산다고 한 모양이다. 석유 반말 사 들고 가서 결혼 허락을 하지 않으면 죽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최씨 집안 성깔은 대단했다. 장인어른에게 그딴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 무당을 어찌어찌 찾아냈다. 그날 무당은 나에게 맞아 죽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겨야 했다. 온갖 패악질을 다 했다. 무당은 무당에 지나지 않았다. 결혼 3년째 시들시들해야 할 마누라는 더 기가 살았고 30년이 넘게 나를 괴롭히고 있다. 오줌 누다 변기 옆에 튀기 여사이지 그걸 보고 잔소리를 해 댄다. 안 그래도 힘없이 축 늘어진 놈을 말이다. 이 죽일 놈의 무당 낯짝을 한 번 더 보고 싶다. 그 이후 난 무당이란 존재를 그저 한낱 미신에 미쳐 날뛰는 ‘또라이’라고 여겼고 그런 또라이에게 돈 갖다 바치는 인간을 경멸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AI보다 못한 말을 믿는단 말인가.
우리 때는 민비로 배웠다. 명성황후가 누군지도 몰랐다. 고종은 민비보다 다른 후처가 더 좋았던 모양이다. 후궁에게서 먼저 애가 태어났다. 열 받은 민비가 닦달해 아이를 생산하지만 3남 1녀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순종이 된 세자만 병약하게 살아남는다. 이때부터 민비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 수만 냥의 거금을 써서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이기 시작한다. 서원철폐로 흥선대원군에게 불만이 많은 유생들을 이용해 흥선대원군을 탄핵하고 정권을 잡았다가 친정집 부정부패로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충주로 도망간다. 여기서 그 유명한 무당 박 씨를 만난다. 진령군이라는 벼슬까지 내려 궁을 헤집고 다니도록 만들었고 무당의 아들까지 설쳐댔다는 것은 역사에 다 나와 있다. 심지어 무당과 내연관계에 있는 작자까지 법무대신까지 시키는 작태를 벌인다. 한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차례 명성황후를 만난 영국 여행가 비숍 여사조차 그녀의 정치적 수완과 수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미신을 신봉한 민비의 최후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44세의 젊은 나이로 시해당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민비가 시해당한 후에도 고종은 여전히 무당을 찾았다. 진령군이 도망가자, 성강호라는 무당을 불러 벼슬까지 준다. 하지만 고종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아직은 윤석열이다. 그의 부인 김건희는 영부인이다. 이들 부부의 종교가 무엇일까? 교회에도 가고 절에도 가고 심지어 무속인도 자주 만난다고 하니 헷갈려서 묻는 말이다. 대선 토론 과정에서 왼쪽 손바닥에 왕(王)자를 쓴 것이 논란이 되었고 영부인조차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라는 박사논문 제목에서 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영부인은 구약을 다 외울 정도로 신심이 두텁다고 했으니 말이다. 교회에 열심히 성경책 들고 가고 절에도 자주 간다. 그러나 건진 법사나, 심도사 그리고 천공이란 이상한 사람들을 가까이 한 덕분에 세상엔 이상한 이야기가 나돈다. 대통령실 천장에 절간에서나 봄직한 이상한 시조새 두 마리 그림과 벽에 걸린 빨간 매화 그림은 차치하더라도 대통령 관저에 5개의 하수구관을 세우고 포항앞 바다에 5개의 시추구를 뚫는단다. 그게 오방신에 해당한다고 하며 다섯 곳에다가 방패막이를 한다는 말이 들린다. 고구마 열댓 개 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하다.
“윤석렬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3개월 내 상황이 바뀐다.”
천공이란 양반이 큰소리친다. 만약 상황이 바뀐다면 우리나라는 무속인들의 나라가 될 것이다. 나도 집사람이 나 몰래 점 보러 다니는 것을 용인할지도 모른다. 법사님이 매년 내게 보내는 토정비결도 이젠 찢어버리지 않고 차근차근 읽어 볼 것이다. 아니 내가 직접 작두를 탈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딱지를 붙인다는 말 아시죠.
민주당에서 붙인 딱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닐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은 조사해봐야.
정치적인 글이 아닙니다. ㅎ 이제 곧 구정이 도래하면 점쟁이들 호주머니에 현금이 꼽히는 시즌이 도래하겠지요. 그들에겐 최대의 '대목'이랍니다. 한심한 짓을 막고자하는 제 의도가 정치색을 입혀버리면 제 글의 요지는 엉망진창이 되겠지요.ㅎ
조경숙 선생님은 낙인효과와 피그말리온 효과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계시네요.^^
훌륭한 수학선생님이시자 훌륭한 작가님이십니다.
참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