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집회서의 말씀 27,30―28,7
30 분노와 진노 역시 혐오스러운 것인데도 죄지은 사람은 이것들을 지니고 있다.
28,1 복수하는 자는 주님의 복수를 만나게 되리라.
그분께서는 그의 죄악을 엄격히 헤아리시리라.
2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3 인간이 인간에게 화를 품고서 주님께 치유를 구할 수 있겠느냐?
4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자비를 품지 않으면서 자기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느냐?
5 죽을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분노를 품고 있으면 누가 그의 죄를 사해 줄 수 있겠느냐?
6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파멸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명에 충실하여라.
7 계명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분노하지 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약을 기억하고 잘못을 눈감아 주어라.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 14,7-9
형제 여러분,
7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의 맑고 푸른 드넓은 하늘처럼 우리 마음이 너그럽고 맑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드넓고 한계가 없는 무한한 용서를 입었으니 너희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인간이 죄인을 용서해주면 하느님께서는 용서하는 그 사람의 죄도 용서해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용서하는 것이 용서받는 길임을 말해줍니다.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집회 28,2)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셨기에,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8) 라고 고백합니다.
곧 주님의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마태 18,21)
사실 베드로의 이 질문은 오늘 복음의 앞 장면에서 예수님께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8)라는 말씀을 듣고서 하는 것이기에, 하느님 자비와 용서를 한계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 18,22)
‘일흔 일곱 번’이라는 이 말씀이 ‘용서’에 대한 베드로의 시각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에서 ‘일흔 일곱 번’이라는 말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카인을 죽이는 이는 누구든지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받았던 것보다 일곱 배나 더 큰 벌을 주겠다고 위협하셨는데, 이는 카인에게 내리는 자비의 표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 그를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를 보호하기까지 해 준다는 큰 자비의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카인의 후손 라멕은 자신에게 가볍게 상처를 입힌 사람과 막대로 자신을 건드린 사내아이를 무자비하게 살해했다고 두 아내 앞에서, “나를 조금이라도 해치는 이는 누구든지 일곱 배가 아니라 ‘일흔일곱 배’로 앙갚음을 할 것이다!”라고 자랑삼아 떠벌립니다(창세 4,23-24).
여기서 보듯이, 사람은 악하기 때문에 되갚고 앙갚음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악함이 클수록 앙갚음도 더 격렬해서, 눈에는 눈, 손에는 손으로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에 더하여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 반면에, 하느님은 자비롭고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용서는 그 한계를 두지 않는 데서 더 잘 드러납니다.
그러니 ‘일흔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은 상대방의 악함보다 항상 더 큰 선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단지 용서할 뿐만 아니라, 끝까지 무한히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를 보호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를 도와주고, 그가 잘 되도록 기도하고, 돌보아주라는 말입니다.
곧 용서를 넘어서는 용서, 용서한 다음에 거기에 더하여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이를 산상설교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44)
예수님께서는 이를 설명하시기 위해, 오늘 복음에서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에는 대조적인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곧 ‘조금만 참아달라는’ 종의 간청에 대해 단지 참아 주는 것을 넘어서, 청하지도 않은 빚을 아무런 조건 없이 ‘먼저’ 탕감해주는 ‘자비로운 왕’과 '동료의 간청을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버리는'(마태 18,30) 카인의 루손 라멕과 같은 ’무자비한 종’이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용서'는 빚진 종을 왕이 '가엾이 여겨, 그를 놓아주고 빚을 탕감해주는 것'(마태 18,26)으로 드러납니다.
곧 '자비'로 드러납니다.
그 자비는 단지 놓아줄 뿐만 아니라, 빛을 탕감해주고 잘 살아가도록 도와줍니다.
더구나 그것은 청하기도 전에 미리 헤아려 먼저 베풀어지고 선사되는 자비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왕은 종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마태 18,33)
이는 우리가 왜 용서해야 하는지, 용서의 이유를 밝혀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기도 전에, 고백하기도 전에, 아니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당신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사랑하기도 전에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구원을 청하기도 전에 ‘먼저’ 우리를 구원해주신, ‘먼저’ 베풀어진 자비와 용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용서에 더하여 선으로 앙갚음되는 더 큰 은총의 사랑과 자비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역시 하느님의 ‘호의’(헤세드)의 마음으로 형제를 용서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마치시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태 18,36)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십시오.”
(에페 4,32)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골로 3,13)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 18,22)
주님!
용서하기에 앞서 용서받았음을 깨닫게 하소서.
이제는 더 큰 사랑으로 용서하겠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끝까지 용서하셨으니
이제는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선으로 사랑하고, 그가 잘 되도록 기도합니다.
이제는 먼저 용서하고 용서에 사랑을 더하고,
아무리 꺾이어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으신 주님처럼,
저 역시 당신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으렵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내가 평화롭고 감사하며 살아갈수있으려면
용서하며또 용서해야겄네요.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 멘 !
감사합니다 ^^
아멘!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