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6-11 롯이
본문에서는 악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악하며 악으로 뭉쳐져서 맥진하여 마침내 그들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자초하게 되는가를 보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그들을 어떻게 처리하심으로 그 중에서도 의로운 롯을 그가 스스로 들어가서 처한 상황에서 구출하여 주시는가를 봅니다.
1. 본문 6-7절은
“⑥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들 닫고
⑦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입니다.
롯이 대접하는 신성한 권리가 얼마나 신실하게 준수되고 있는가는 그가 밖으로 나가서 자기 자신을 직접 위험에 직면케 하는 사실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가 일단 손님으로 모셔들인 분들의 안전과 영예를 위하여 그것을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 보호하려는 사실은 정말로 보기 드문 덕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관용하는 성품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마땅히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의무와 충성이 관련되어 있는 곳에는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않아야 되는 아량을 실천해야 됩니다.
그리고 비록 지금 롯이 그 악당들에게 집을 에워싸임을 당하여 이미 심각하게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드러운 말로 사나운 그들을 달래며 설득시키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간절히 그들에게 호소하여 그들의 죄악을 버리라고 사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들에게 형제들이란 칭호를 붙여서까지 권면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특별한 겸허함으로 권유하는 것도 아랑곳없이 그들이 조금도 감동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의 잔인성이야말로 얼마나 야만적이며 그들의 욕정의 열망이 얼마나 광포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야수적으로 그들의 격노를 묘사하는 것은 그들의 죄악이 최종적인 단계에까지 이르기 전에는 형벌이 가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 해 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잊지 말고 기억해야 될 것은 타락한 자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인하여 소경이 되었을 때는 모든 범죄에 온전히 그들의 마음을 쏟고 몰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범하지 않은 죄가 하나도 없이 다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께와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증오스럽고 가증스런 존재로서 자신들을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2. 본문 8절은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 입니다.
마치 손님들을 보호하려고 그의 생명까지 모험하며 내놓은 그의 초지 일관성이 일반적인 찬사를 받을 가치가 없다는 듯이 지금 모세는 롯이 가진 위대한 덕성에 잘못된 점이 혼합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 결점이 위대한 그 덕성이 불완전함을 뿌려주었던 것입니다. 그가 전혀 조언도 받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일반적으로 복잡한 일에는 그렇게 했듯이 불법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도저히 무마시킬 수 없는 사람들의 노기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자기 딸들을 창녀로 내어 놓을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방법에 의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 백번 죽는다해도 그것을 제외하고 오히려 다른 길을 택했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거룩한 사람에게는 아주 평범한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런 일들에서 그토록 두드러지게 결점이 될 만한 것이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정말로 롯은 극도의 난처한 입장에서 쫓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로서도 이 야수 같은 자들을 다루어서 해결시키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자기의 두 딸을 상관하도록 내어놓겠다고 제안하고 있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악한 수단을 갖고 악한 것을 치유하려고 생각없이 채택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잘못에 대한 정상 참작에 관하여 몇 가지 변명을 할 수 있습니다. 롯이 악을 갖고 악을 막으려 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책망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본보기로 우리는 몇 가지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도저히 침범할 수 없는 견인불발의 정신을 공급해 주실 때 우리는 또한 그분이 우리들을 사려깊은 정신으로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절대로 건전한 환난과 잘 조정된 이성을 박탈당하게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침착한 마음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무엇이 정당하며 무엇을 해야 적절한가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가를 분별할 때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는 면에서 올바로 나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어떤 위험이 당면하더라도 거뜬히 그것을 대처하기 위하여 재빨리 준비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악한 조언이나 의견에 붙들리면 여기 저기로 방황하게 되는 필연성은 우리가 두려움으로 동요되어 방황하는 것에 못지 않은 공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면 결국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피할 길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구실로 롯을 변명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들이 자기 딸들은 원하지 않을 것을 그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롯이 처음에는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의 해결책으로 기꺼이 내놓고 나서 그 다음에는 올바른 길에서 빗나갔다는 사실에는 전혀 의심을 갖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소돔 사람들이 표현적인 면에서는 아직까지 자기들이 불타있는 그런 수치스런 욕망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롯은 그들의 일상적인 범죄들로부터 그들이 그런 것을 요구하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누가 그런 추측은 애매하다고 반대를 제기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그곳의 풍습으로 그런 범죄를 정당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군중들은 몇몇 충동자들에 의하여 쉽사리 동요되었던 것이니 그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구별이 없는 곳에서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롯이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 왔은즉’ 이라고 말할 때 그가 의미하고 있는 것은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보내준 자들이며 그들을 인도하지 않으면 불성실의 죄를 범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3. 본문 9절은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라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입니다.
롯이 그의 모든 간절함으로 그들의 악한 분노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여 모든 것을 다 동원해 봤으나 수그러지지 않고 냉혹하게 배척 당하고 있는 사실은 이 사람들의 도저히 굽힐 줄 모르는 거만성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째로, 그들이 위협하기를 만약 롯이 중간에 끼어 들어 고집을 부린다면 그 손님들보다는 그를 더 심하게 다룰 것이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둘째로, 그들은 타국 사람인 그가 감히 그곳의 재판관처럼 행세를 한다고 하는 트집을 잡고 그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말들이 한결같이 그들에게 가득 차 있는 교만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이 많은 대중을 거역하는 자로서 세우고 마치 ‘네가 무슨 권리로 독불장군으로 나서 이 도시 전체를 잡고 세도를 부리려고 하느냐?’ 는 식으로 말한 것처럼 추측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셋째로, 그들이 그 고장의 출신이며 롯은 한갓 나그네며 외국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기들 스스로 뽐내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을 향하여 카톨릭 신자들이 뽐내며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수많은 무리들과는 상대가 안 되는 적은 숫자로 자기들을 반대하고 있는 불명스런 적은 무리들이라고 우리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이 오랫동안 계승되어 온 것을 그렇게 자랑하며 교만을 부리고 있으며 ‘새로운 사람들’ 에 의하여 책망을 받는다는 것은 도저히 자기들로서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이 이성에 복종하지 않고 제 아무리 외고집을 부리며 발버둥치더라도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들이 파멸로만 더욱 가까이 가고 있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4. 본문 10-11절은
“⑩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들 닫으며
⑪ 문 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 입니다.
모세는 여기서 다시 사람들이 아닌 자들에게 사람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났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늘나라의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라고 선언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모세는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세가 교훈하고 있는 사실은 그 신실한 롯이 사람들과 승강이를 벌이고 몰두해 있을 때는 그 천사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절대로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천사는 말하자면 가장 절정적인 비난의 순간에 손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롯을 보호하면서 그 사태가 최극단에 이르기까지 그의 도움을 연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숙한 마음으로 그분의 섭리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신 소명에 속한 것을 또한 그분이 명령하신 것을 담대하게 따라 가야 합니다. 비록 그분이 우리를 위험에 직면하게 하실지라도 절대로 우리에게서 시선을 돌리시거나 관심을 떼고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지금도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롯은 자기의 손님을 위하여 그들을 보호하려고 자기 집 문을 닫았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롯이 그것에 대한 보답을 받고 있으니 그 천사들이 그 열려진 문으로 그를 다시 받아 들였을 뿐만 아니라 신적인 능력의 장애물을 그들에게 놓음으로 그 불경건한 자들이 그에게 접근해 오지 못하게 예방하고 있습니다.
그 천사들은 그들에게 인간적인 도움을 제공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입혀서 도울 수 있게도 하였습니다. 때문에 모세는 말하기를 그 사람들이 모두 봉사가 되어 버렸다는 해설을 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마치 그 말을 그들이 실명(失明)한 것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단지 그들의 시력이 희미해져서 전혀 아무것도 분간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이 기적은 그들의 눈이 완전히 빠지는 것이나 소경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뜬 눈으로도 마치 소경과 다름없이 느꼈으며 전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모세는 그들의 딱딱한 무쇠 같은 외고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롯의 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에서 그들이 찾으려고 열심히 더듬거리지만 찾지 못하고 도리어 그런 방법으로 그들은 더욱 격렬한 전쟁을 하나님을 대항하여 일으키는 결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이번뿐만 아니고 또한 비단 소돔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들의 매일 생활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그들을 그런 광적인 마음으로 매혹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그들을 칠 때는 마침내는 그분을 대항하여 그들의 외고집을 부리며 대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예를 구태여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놀라운 형벌을 방황하는 육욕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내리시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세상은 필사적인 열망으로 그들의 눈앞에 있는 분명한 멸망을 향하여 그치지 않고 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