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시명 : 갤러리메르헨, 한연교 개인전
유형 : 대전전시회
날짜 : 2025년 12월 3일~12월 9일
관람시간 : 10:30 ~18:00
장소 : 갤러리메르헨, 대전 유성구 대덕대로 556번길 87
문의처 : 갤러리메르헨 042-867-7009
기타 : 작가와 대화 12월 4일 17:00
‘한연교’개인전 평론/ 이정희
4편의 시가 있는 28개의 이미지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1)
야생풀꽃처럼-
이미지는 이미지를 불러들인다. 작가 한연교의 사진은 루이스 글뤽(Louise Glück)의 침묵과 상처의 시세계에 닿아있다. 그녀의 사진은 뜨겁고도 서럽다. 근원적인 고독과 트라우마와 상처라는 내면을 파고든 작업이다. 상처와 결핍이 남긴 미세한 균열의 기록이다. 평론을 쓰기 며칠 전, 그녀가 건네준 수필집의 글을 읽었다. “사는 게 안개 속이었고 겨울이었다. 많은 상처와 싸우면서 우울하고 불행했다.”는 그녀의 고백은 이번 전시에서 고스란히 이미지로 드러난다. 흑백 셀프 포트레이트에서 시작해서, 동남아시아 어두운 밤거리와 도시의 뒷골목, 인적없는 쇼윈도우, 목없는 마네킹, 붉은 가면을 쓴 괴인이나 푸른 복면의 사내에 이르기까지- 이 일련의 이미지를 관통하는 정서는 ’쓸쓸함‘이다.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사랑의 관계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계”에 갇혀 서로에게 온전히 도달하지 못한다. 밤거리 빛의 궤적, 강렬한 색상의 대비, 극단적인 콘트라스트, 롱샷으로 잡아낸 어둠 속의 사물들, 그리고 침묵. 그녀의 사진은 인간 저 깊은 곳을 두드린다. 로저 발렌의 영상 일부를 재해석한 이미지 몇 장은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알레고리이자 작가 자신을 반추하는 은유로서 차용한 것이다. 그녀의 사진은 구체적 서사보다 이미지가 남긴 공허와 균열이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고통의 끝에서 하나의 문이 있다.
‘죽음’이라 부르는 그것은 어둡지 않았다.
어떤 목소리들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2)
어둠 속의 목격자
그녀의 사진은 정교하게 계획된 연출보다 우연과 즉흥성에 기댄다. 찰나에서 우연을 발견하는 것이 그가 가진 사진 철학이다. 어디든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주변을 찍는 그녀에게 모든 사물은 하나의 초상이 된다. 매우 평범한 대상이지만 우리를 잠시 멈춰서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이야기다. 이미지의 표정과 시선을 보여주는 공간은 작가 자신의 내적 서사를 암시한다. 공간의 불안과 긴장은 어둠과 그림자에 잠식되는 듯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의 기척, 붉은빛이 빚어내는 감정의 방향성을 통해 심리적인 감정의 결을 입힌다. 어둠으로 숨어든 빛에 일렁이는 그림자는 잃어버린 욕망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고독한 실루엣이 된다. 그녀의 사진은 ‘목격자 시점’이다. 관람자가 현장에서 사건을 우연히 목격하는 것처럼 이미지와 대면하게 된다. 덕분에 그녀의 이미지는 영화적 미장센으로 전환된다. 찢어진 포스터의 푸른 가면을 쓴 괴인, 붉은 복면 위의 낙서는 작가의 또 다른 분신이며 어떤 목소리이다. 그녀 자신을 암시하는 일련의 이미지 앞에 설치된 붉은 사탕 역시 마찬가지다. 결핍된 사랑에 대한 갈망을 상징하는 달콤한 오브제, 관람객은 그것들을 맛보며. 묻는다. 왜 우리는 끝없이 사랑을 갈망하는가?
Black과 Blue, Red, 근원에서 오는 색
한연교의 이미지는 세 개의 색을 반복해서 불러들인다. Black, Blue, Red는 그녀의 심리적 컬러다. 물론 색 외에도 그녀는 셀프포트레이트를 통해 자신의 심리적인 내면세계를 전한다. 전시장 입구에서 시작되는 첫 셀프포트레이트는 내면으로 조용히 침잠되어있지만. 전시장 중반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몸 셀프 포트레이트는 과감한 몸짓을 보여준다.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변형이 시작된다. 3) 그녀에게 사진작업은 존재의 회복이며 치유의 과정이다. 내면 저 밑바닥에 숨어있는 통증을 이미지로 변형시키는 과정이다. 그래서 때로 그녀의 이미지는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미세한 폭력성과 감각적 서정이 함께 하는 모순된 아름다움이다. 음악을 몹시 사랑했던 아버지, 파란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혀두고 모퉁이를 돌아 떠나던 무심한 어머니. 전시장 모퉁이에 걸린 이미지 하나가 있다. 사진은 어머니와 그녀의 상징적 관계를 보여준다. 흔들리는 커튼 아래 벌거벗은 두 개의 발이 있다. 어린 그녀의 발이다. 오랫동안 그녀에게 어머니는 지속되는 상처의 근원이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결핍과 상실감은 그녀의 반복적 모티프가 된다. 한 사람의 정체성 형성과 고통의 근거가 되는 개인의 상처는 이미 오래전부터 신화적 모티프로도 작동되어왔다. 사투르누스와 메데이아와 바리데기의 서사가 그러하다.
신이시여, 저는 어린아이처럼 다시 당신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 안의 어린아이를 조용히 눕히고,
대신 침묵을 배웠습니다.〈Matins〉 (『The Wild Iris』 中)
한연교의 멜랑콜리
한연교의 사진에는 그레텔의 목소리가 있다. ‘어둠 속의 그레텔’은 그녀의 심연에 깃들어 오랫동안 괴롭혔던 정서였다. ‘헨젤과 그레텔’의 불안과 상실은 부모의 무관심과 배신, 세상과의 격리를 경험하면서 아이의 내면에 근원적 트라우마로 각인된다. 아이는 생존과 정서적 안정을 부모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신뢰 대상에게 상처를 입으면 단순한 사건도 그 이상으로 불안과 결핍이 형성되어 장기 기억과 무의식에 각인되며, 사건 자체가 과장되게 뇌리에 남는다. 그러나 상처는 또 다른 힘이다. 그녀의 사진에서 근원적 고독과 가족 트라우마는 상호작용하며 이미지의 아우라를 강화한다. ‘외로움’은 유한자인 실존 자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고독과 상처는 단순히 부정적 경험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예술적 창조의 원천이 된다. 루이스 글뤽의 시와 루이스 부르주아의 놀라운 예술작업이 그러한 깊은 상처에서 나왔다. 다시 그녀의 사진을 보자. 그녀의 사진은 여전히 서럽다. 한쪽 눈이 가려진, 사진 속 아버지, 쇼윈도우 앞을 질주하는 오토바이 탄 젊은이들과 소외된 거리. 고립된 공간에 박제된 사물들의 그림자- 모든 장면마다 그레텔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다.
우리를 죽이려 했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그러나 나는 아직도 숲속에서 불빛을 본다.
내 귀에는 그날의 불타는 소리,/내 몸에는 아직도 그날의 연기 냄새가 배어 있다.
나는 살아남았지만/밤마다 그 집을 다시 불태운다.〈Gretel in Darkness〉 4)
마무리하며
한연교의 이미지는 색과 빛을 심리적 도구로 사용한다. 블랙과 블루, 레드는 고독과 불안을, 노란 조명빛은 잠시의 위안을 전하며. 그녀의 사진은 내면의 정서를 시각화하여 강한 몰입감을 준다. 더욱이 어둠이 가져오는 실루엣으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흐리게 하여 결국 내면의 심리와 외부 세계가 공명하는 초현실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때문에 그녀의 이미지는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이다. 특히 밤의 고요는 정서적· 심리적 ‘분위기’를 유발한다. 하이데거가 규명한 멜랑콜리는 단순한 우울이 아니라 실존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기분 또는 분위기(Stimmung)이다. 5) 기분은 사소한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며 오래전부터 내면에 잠재된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목소리다. 존재론적 고독의 경험은 결국 자기 고유성을 마주하는 순간이며. 불안을 통한 자기 복귀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연교의 사진은 ‘언어’로 해독하지 못하는 사태들을 예민하게 수신하고, 반응하고, 해석해낸 멜랑콜리 미학의 구현인 셈이다.
1) 김소월, ‘산유화’,『진달래』,2020
2) Louise Glück,‘’The Wild Iris‘,1993.
3) Louise Glück, 『Averno』,2007
4) Louise Glück, 『The House on Marshland』,1975
5) 김동규,「하이데거 철학의 멜랑콜리:『존재와 시간』에 등장하는 실존론적 유아론의 멜랑콜리」
현대유럽철학연구, 한국하이데거학회,vol., no.19, pp. 83-122,2009 .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1, 150x100cm, pigment print, 2025 (3)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1, 150x100cm, pigment print, 2025 (4)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1, 150x100cm, pigment print, 2025 (5)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1, 150x100cm, pigment print, 2025 (6)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Whoever you are, no matter how lonely)
오랜 풍경 속에서 잊힌 채 잠들어 있던 내 안의 기억들을 만난다. 바람에 닳은 풍경 속에서 풀려나온 기억의 한 끄트머리가 낡은 추억을 재현해낼 때, 나는 문득 잃어버린 시간과 마주 선다. 회억의 정서란, 결국 외면하고 싶은 상처와의 대면이기도 하다. 사춘기 시절의 외로움과 혼란, 엄마의 불안한 눈빛, 아버지의 낯선 그림자, 숨 막히던 결혼생활, 능력의 부족함, 그리고 사랑받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
그리운 것들은 언제나 저 너머에 있다. 나는 이따금 그 풍경 속에서 슬픔의 그림자를 더듬으며 뒤척인다. 유난히 외롭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어디에서 오는 슬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만이 고독하고 세상에서 소외된 존재처럼 느껴졌다. 현실로부터 한 뼘쯤 떨어진 채, 영혼이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그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막막한 상태 속에 오래 머물렀던 것 같다.
“내게 당신의 상처에 대해 말하라. 그러면 나의 상처에 대해 말하리라.”
어릴 적 나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슬픈 영화의 OST, 쓸쓸한 클래식의 선율 속에서 인간의 내면에는 누구나 건드릴 수 없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 안에는 수많은 바람이 불었다. 흐리고 어두운 바람이 불면 울고 싶었고, 괴로운 바람이 불면 아무 데로나 떠나고 싶었다. 예측할 수 없는 바람에 휩쓸려 즉흥적인 행동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순간이 결국 삶의 깊이를 만들어주었다.
이제 나는 셀프 포트레이트(Self Portrait) 속에서 과장되지 않은 내 얼굴을 마주한다. 욕망과 허기가 안개처럼 얇게 드리워져 있고, 그 안에는 침잠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시선은 더 이상 바깥을 향하지 않는다. 내면으로, 내 안의 바다로 향한다. 그 얼굴 앞에서 느꼈던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쩌면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비로소 나를 연민으로 끌어안는다. 덧칠하지 않은 표정 위로 맑은 슬픔이 어린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나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투명한 눈물이다.
I meet the memories that have long slept, forgotten, within me. When a fragment of the past escapes from an old landscape and begins to recreate a weathered moment, I find myself standing face to face with lost time. The sentiment of recollection is, in truth, an encounter with wounds one once wished to avoid.
The loneliness and confusion of adolescence, my mother’s anxious eyes, my father’s distant shadow, a marriage weighed down by silence, the ache of inadequacy, the hunger for love and attention —
The things I long for are always somewhere beyond reach. At times, I wander through those familiar scenes, tracing the faint outline of sorrow that lingers there.
It was an especially lonely and difficult childhood. I did not know where the sadness came from, only that it clung to me like air. I felt as though I alone were condemned to solitude, drifting slightly apart from reality, my soul suspended somewhere above, in a state that words could never fully describe.
“Tell me about your wounds, and I will tell you about mine.”
When I was young, I grew up listening to the music my father loved — melancholic film scores, quiet pieces of classical music. Through them, I came to understand that within every human being lies a deep, nameless sorrow. Many winds blew within me. When the wind was dark and heavy, I wanted to cry; when it was restless and cruel, I wanted to leave everything behind. Sometimes, caught in those unpredictable winds, I acted on impulse — but even that taught me something of life’s depth and fragility.
Now, in my Self Portrait, I confront myself without embellishment. Desire and hunger drift across my face like a thin fog. There, beneath the mist, lies a quiet wish to sink inward, to look deeper. My gaze no longer turns outward — it moves toward the interior, toward the sea within me. The emotions that once swirled in front of that unguarded face were not meant for others, but for myself.
At last, I embrace myself with a gentle compassion. Over an unpainted expression lingers a clear, tender sadness — not despair, but the kind of sorrow that makes one truly alive.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1, 90x100cm, pigment print, 2025 (1)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105x70cm Pigment Print 2025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90x90cm Pigment Print 2025 2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90x90cm Pigment Print 2025
문화가 모이는 곳 "대전공연전시" http://www.gongjeo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