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훈아
여러분 나 훈아 아시죠?
나 한테는
형 뻘이고
병아리 누이들에게는
오빠가 되고
그는 데뷰 곡
사랑은 눈물의 씨앗으로
벼락 스타가 된 라(나) 훈아
신 성일 삼촌이
처음 본 라 훈아의 모습은
대게 껍데기를 뒤집어 씌운
여드름 덕지덕지
참으로 못생긴 얼굴이었다고
회고했지요
1969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10대 가수 페스티벌(쑈)이 열렸는데
신성일 삼촌은 쑈의 흥행을 위하여
특별 게스트로 출연을 하였지요
대기실에서 출연을
기다리던 신 성일 삼촌앞에
라 훈아는
엉거주춤 게걸음으로
다가와 인사를 했데요
아니 너
라 훈아 아니냐?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났구나
여드름 없애는 법
알려줄까?
라 훈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선생님! 알려주면 고맙죠
삼촌의 장난질에
라훈아는 정색을 하며 반겼데요
훈아야!
나이든 여자와 연애를 해 봐
여드름이 감쪽같이 없어질거야
그 후 라 훈아는 김 지미와
결혼 발표를 하고 결혼을 하고...
여드름도 없어지고
성일 삼촌은 연예계에서
버릇이 없거나
선후배를 알아보지 못하면
혼줄을 내주는
군기반장으로 알려져 있었지요
특히 조 영남의
버르장머리 고친 사건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지요
라 훈아 형 만큼은 열외로...
훈아 형을
나도 엄청 좋아했었지
사랑은 눈물의....
시작하여
물레방아 도는데
고향역
내 사랑 순이
이루 헤아릴수 없는
훈아형의 노래
모정에 세월
물레방아 도는데
애정이 꽃피는 시절
청춘을 돌려다오
가라지
홍시 오매 영영
테스형
空
삶
가시버시
끈
무심세월
인생을 해탈한 듯한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들
내 인생 역시 어쩌면
훈아 형이 부른 노래들 속에
여물어 간 여정같지
그의 버라이어티 한 인생은
옥에 티 겠지만
최고의 스타에게
그만한 결점이 없다면
재미가 없겠지
특히 훈아형의
오매 사랑은 지극했지
아버지는 마도로스로
한번 출항하면
빨라야 6개월 길면 1년 이상을
바다위에서 보내야 했고
어머니는 훈아형을 데리고
절에 가 치성을 드리고
어린 훈아 형은 저절로
스님들의 염불소리에 녹아있는
범패 소리에 익숙해 졌고
트롯에서 귀신도 내기 힘든
꺽기의 고난도 소리를 너무쉽게 내는
훈아형의 노래를 듣고
반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지
깔끔하게 은퇴를 하고...
친구야!
훈아형의
모정에 세월은 한 때
나의 십팔번이었지
홍시 어매도...
손 태진이 부른 백만송이도
(원곡자 러시아 국민가수 알라 푸카체바)
오늘 진종일 들었다네
소중한 우리나라 트롯에
색을 칠하고 옷을 입히고
춤사위를 캐낸
훈아형에게
고맙고 또 고마움을 느끼지
참! 우리 큰녀석이
노래를 참 잘하여
대한민국 가수협회에서
가수 라이선스를 발급받아
한때는 가수로 활동했는데
트롯 가수는 하지않고
발라드 가수로만 활동한다고 하여
나와 마찰도 있었지만
무명 가수의 설움과
배고픔을 느끼고
지금은 일반 소시민으로
자식을 셋씩이나 낳고
알콩달콩 살고있지
친구야! 우리
참으로 멀리 왔지?
청소년기 나 훈아 남 진
노래에 푹 빠져
지내던 그 시절
오늘 자네가 나를 다시
그 때로 소환했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고
사랑을 하며는
가슴이 아프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일깨워 줘
고맙다 철규야!
羅 勳兒(라 훈아)의
본명은
崔 弘基(최 홍기)여
나와
氏가 같제
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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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훈아
새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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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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