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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
[K 생각] ㅡ 똥 이야기
명품똥 싸놓고 도망가 잠적해버린 김00,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까치발 들고 휘젓고 돌아다니는 한00, 입으로 똥가루 뿌리며 똥싼바지 입고 돌아다니는 윤00, 잼버리 때처럼 갑자기 나타나 변기 닦는 쇼하는 한00. 똥독 올라 격리돼 있는 최00, 비행기 타고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똥 묻히고 다니는 이00, 캐비넷에 똥 모아놓았다 들킨 서00.
2. 2023
[K 생각] ㅡ 가세연의 개논리
가세연의 변명이란 게 너무나 어이가 없네요. 극단적 비유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먹는 밥에다 독을 일부만 넣었어. 밥알 수에 비하면 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야."
"된장찌게에도 똥은 겨우 한 숟갈 정도밖에 안 풀었어."
어이가 없죠? ㅋ
이런 걸 '논점일탈'이라고 합니다.
허위사실이 일부냐 전부냐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은 허위사실이 얼마나 악의적이었고 고의적이었냐 하는 문제입니다.
* 영상 : MBC뉴스 (2:36)
http://blog.naver.com/oflife2000/223058196166
3. 2023
[욕망(desire)에 관하여 : 라캉]
스피노자 : 인간의 본질은 욕망이다.
자크 라캉 : 이때의 욕망은 의식적이 아니라 무의식적 욕망이며, 완벽하게 성적인 것이다.
라캉의 욕망(désir)은 프로이트의 소망(Wunsch, wish)에 해당된다.
욕망의 진실은, 소리 말 행동 등으로 욕망을 밖으로 표출(발화)할 때 알게 된다.
그러나 욕망의 진실은 발화로서 어느 정도 나타나지만, 발화는 욕망에 대해 완전한 진실을 결코 말할 수 없다. 항상 발화를 초과하는 나머지와 잉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help me!"의 뜻으로 아이가 소리내어 울 때, 옆집 아줌마가 우유를 줌으로서 아이의 욕구가 충분히 만족된 건 아니다. 생리적 욕구 말고도 사랑(애정)의 욕구 충족은 부족할 수도 혹은 넘칠 수도 있다.
욕구는 생물학적 충동이자 신체의 요구에 따라 등장했다가 충족되면 일시적으로 약해지는 것이다.
무기력의 상태에서 태어난 어린 아이는 욕구를 스스로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도움을 필요로 한다.
옆집 아줌마는 어린 아이가 욕구하는 대상을 줄 수는 있어도 아이가 갈구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는 없다.
욕구 요구 욕망
욕망은 만족에 대한 욕구도 사랑에 대한 요구도 아니다.
[욕망 = 사랑에 대한 요구 - 만족에 대한 욕구]
욕망(desire)은 요구(want)로 욕구(need)를 분절할 때 만들어지는 잉여이다.
충족(충분한 만족)이 가능하고, 다른 욕구가 새로 생길 때까지, 주체가 멈추게 만드는 욕구와 달리,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
억압하더라도 욕망은 계속된다. 욕망의 실현은 충만에 있는 게 아니라 욕망 자체를 재생산하는 데 있다.
나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에 대한 욕망'이다.
다른 남자들이 욕망하는 여자를 가리켜 "이 여잔 내 여자야!"라며 타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욕망이다.
욕망은 '다른 무언가'에 대한 욕망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욕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잡은 물고기에 더 이상 미끼를 던지지 않는 이치다.
욕망의 대상은 계속 연기되는데, 그래서 욕망은 '환유'다.
환유(metonymy)와 은유(metaphore)
단일한 의미화 연쇄 속에서, 환유는 수평적으로 결합되고, 은유는 수직적으로 대체될 수 있는 방식을 가리킨다.
은유와 환유 모두 의미화가 만들어지는 방식을 구성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어떻게 어떤 비유로서 표현될까?
영화 <간신>에서 연산군이 사랑(성)에 허기진 듯, 이 여자 저 여자 또 다른 여자의 성을 갈구하며 찾아다니는 건 환유의 모습이 된다. 마치 성을 사랑과 동일시 하려는 듯.
"딩신은 내 마음의 호수요"라는 싯구를 선물하거나, "라면 먹고 갈래?" 등과 같은 건 은유의 표현들이다.
* 욕망을 표현하는 단어들
desire, wish, hope, want, linging, lust
* 사족
“순이가 환기를 원하고 창문을 엶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순이는 그 창문을 열 것이다”
창문 열기를 바라고 : need (욕구)
환기를 원해서 : want (요구)
답답함의 해소 : desire (욕망)
창문을 엶 ㅡ 욕망의 완벽한 충족은 아님
4. 2022
오늘의 생각...!
17살짜리 여학생이 자기 학교 동료 여학생의 얼굴을 면도칼로 긋고, 중학교 남학생이 지하철에서 할머니의 멱살을 잡고 쓰러뜨리고, 데이트 상대 여자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발로 차고, 유치원교사가 만 3, 4, 5세의 아이를 학대하고, 부모가 3살 된 자식을 발로 밟아 죽이고...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의 일들이 점점 늘어만 갑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여의도와 서초동에서, 그 어느곳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이해를 거부하는 일들이 빈번합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곧 설명조차 안 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오염된 현실을 설명해주는 언어조차 오염되었기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오히려 '보복'을 말하는 지경이 된 것이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합리적'이란 말은 '논리적'이란 것이 전제되는데, 논리의 가장 취약점은 상대가 승복을 안 하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논리란 결국 약속이고 합의이기 때문에, 약속을 안 지키면 그만인 것처럼요.
그러다보니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이나 법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많아졌습니다. 걸핏하면 고소하고 고발하는 게 단적인 예입니다.
법도 일종의 폭력(강제력)인데, 그나마 .'정직한 폭력'이었기에 믿고 쓸 수 있었습니다만, 이젠 그 법도 정직하지 못하다는 많은 사례들이 폭로되면서, 신뢰감이 떨어졌습니다.
오래전에 혹자는 주먹 쓰는 사람들을 두 종류로 구분했었는데, 양아치와 건달이 그것이며, 양아치는 불의를 위해 주먹을 쓰고, 건달은 정의를 위해 주먹을 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96만원 검사들을 보면 오히려 건달 깡패만도 못한 양아치들이라는 걸 우리 모두는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양아치 검사들 뺨치는 임정엽 같은 양아치 판사들도 보시지 않았나요?
이러니 우리의 이해력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다가 아예 이해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른 겁니다.
명백한 사실에 입각한 증거와 논리적 추론을 제시해도, 상대가 승복 안 하는데 어쩌겠습니까.
오세훈 후보와 박형준 후보는 자기말을 정면에서 뒤집는 증거가 나왔어도 오리발을 내밀지 않습니까.
사실을 부인하고, 기억력 탓을 하고, 말로서 장난을 하는데 무슨 수로 당합니까.
이렇게 우리는 이해불가의 요지경 세상에 살면서 삶의 가치와 의미에서 다운그레이드를 겪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라다운 나라, 사람다운 사람을 보고자 하신다면, 뜯어고쳐야 합니다.
논리에 굴복케 하고, 정의의 심판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힘으로 맞서면 더 큰 무서운 힘으로 눌러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을거면 그냥 이방인처럼 지켜보면서 박수 부대에 동원돼서 돈 몇푼 얻어쓰는 걸로 만족해야겠지요.
그리고 귀인을 귀인으로 못 알아본 죄는 스스로가 달게받아야겠지요.
kjm / 2021.3.28
5. 2022
[썩은 기레기들]
딥ㅅㄲ들
윤석열에게 '프리 패스'를 달아준 언론들은 뒤에 그 많은 죗값들을 어떻게 치룰려고 그래?
거짓말도 좋아, 학력위조도 좋아, 경력위조도 좋아, 주가조작도 좋아, 고발사주를 해도 좋아, 검언유착 수사방해도 좋아, 배신을 때려도 좋아, 봐주기 수사를 해도 좋아, 수사를 덮어줘도 좋아, 땅투기를 뒤에서 봐줘도 좋아, 무속도 좋아, 피의자와 성상납 거래해도 좋아, 국가 1급기밀을 공중파로 까발려도 좋아, 직권 남용해도 좋아, 월권해도 좋아,
ㅅㅂ 너무 많아서 이젠 기억하기도 짜증난다.
후회도 반성도 사과도 변명도 뭔가 썩은 동아줄 하나라도 남겼어야 가능한 거잖아. 용서해줄 실오라기같은 뭔가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 거잖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잖아.
각자 주머니에 몇십억씩 챙겨주는 것도 아니잖아. 자식들 하버드 유학 가는데 전액 장학금 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강남에 아파트 한 채씩 안겨주지도 않는 거잖아. 평생 뒤에서 뒷배 봐주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김치찌개에 환장해서도 아니잖아.
도대체 왜들 그러는거야? 뭐 잘못 먹었어? 김건희가 매년 신상 명품백 챙겨준대? 그래도 그 정도로 넘어갈 그대들이 아니잖아.
5천만 국민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서 그대들이 얻는 게 뭐야? 5천만 국민을 좌절을 빠뜨려서 얻는 게 뭐야? 절반은 아니라고? 그대들이 진실을 알려줬어봐. 그래도 그 절반이 그대들 행동이 옳았다고 칭찬해줄까?
황금 쏟아내는 도깨비 방망이라도 만들어 준대? 그래도 윤석열은 아니잖아.
명분도 이득도 없는데 왜 그런 짓을 했을까. 5년만 살고 말건가? 비싼 밥 얻어먹어도 똥으로 나오면 그만인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한 번 생각은 해봤어?
그대들의 그 손익계산서 한 번 보고싶다.
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고, 큰 욕심도 없고,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하게 살다가 가고 싶었던 사람이야. 근데 목숨걸고 생각지도 않던 투사가 되게 생겼어. 내가 왜 이래야 돼? 모든 게 그대들 덕분이지.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이건 광기야. 미친짓인 거지. 그대들이 저지른 짓이 이제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쌓아올린 공든탑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거야. 죽어서도 그 죗값을 다 못 갚아.
진실은 밝혀지게 돼 있어. 그때가 되면 그대들은 가진 모든 걸 잃게 돼. 도저히 용서가 안 될 거야. 인두겁의 탈을 쓰고선 그런 짓 못하지. 양심이 한 톨이라도 있다면 그렇게는 못하지.
그대들 덕으로 참 ㅈ같은 세상이 됐다. 내일 전쟁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이 악몽에서 빨리 깨고 싶다.
6. 2020
[의료진들에게 '보국훈장'을 주자!]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해서, 연일 의료 현장에서 하루 한 시간 자며 목숨걸고 희생, 봉사하는 의료진들과 간호사들 및 질병관리본부의 직원들에게 보국훈장을 내려 주자.
물론 지속적으로 딴지를 걸면서 방역을 방해해왔던 '의협'의 사람들은 제외시키자.
그리고 이참에 '의료연금기금'을 설립해서 장차로 이들의 생계와 건강 유지에 만전을 기하자.
이들은 현재 누가 보아도 나라의 보배다. 그것을 전 세계가 증명해주고 있다.
말로만 생색내지 말고 확실히 보상해 주자.
7. 2020
[세계는 지금, 신의 조율인가?]
하늘이 분노했습니다. 신은 코로나19로 反지구적 세상의 조율을 시작했습니다.
유럽이 지금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국도 뚫렸습니다.
인종차별의 벽도 함께 뚫릴까요?
아시아인이면서 유럽인 행세를 했던 일본도 곧 침몰합니다.
경제의 황폐화와 정신적 공황은 더 큰 조율입니다.
하늘님의 조율은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코로나19로도 안 되면 더 큰 벌을 내리실 겁니다.
신은 교회도 교회인도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안전 장치마저도 풀어버린 인간들에겐 이런 조율이 꼭 필요했었던 거겠지요?
"하늘님이시여, 조율 한 번 해주세요."에 이제야 비로소 응답하시는 까닭입니다.
* [안전장치가 필요한 사회]
ㅡ 생각노트 2017/02/21 04:20.19
현재 수많은 시민들이 안전으로부터 방치되어 있다. 가장 극적인 방치를 드러낸 건 세월호 참사였다.
흔히들 '안전불감증'이라는 한 마디의 말로 설명하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며 판단을 내리는 듯한 우스개에 지나지 않는다.
안전으로부터 거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 시민들은 일단 안전을 책임질 국가와 정부에 대한 신뢰를 거두어 버렸다.
국민들은 안전불감증은 커녕 안전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안고 살고 있다.
경제주체로서의 박탈감과 끊임없이 따라붙는 생계비 걱정이 산 만큼 크다.
오죽하면 학업에 전념해야 할 대다수의 학생들이 알바 전선을 배회할까?
40대에 정년을 맞은 사람들이 갈 곳이 치킨집 이외에 또 있는가?
맞벌이가 아니면 살 길이 없는 30대 주부들이 식당과 노래방을 전전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디로 가야만 할까?
선택받은 자들, 즉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쳐서 서로 밀어주고 땡겨주는 몇몇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지옥(헬조선) 속에서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오늘을 견뎌낸다.
사회적 안전장치가 있다면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문을, 길을 열여 줄 것이건만.
그동안 크게 의존했던 의료 서비스의 안전장치도 점차 허물어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의료민영화'란 이름으로. 보험업계만 신났다.
경제 시스템과 의료 시스템만 문제겠는가.
개성 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 문제로 북한과 중국으로의 길을 막아 놓음으로써 정치경제적 구조의 경직성을 불러와 헬조선으로부터 빠져나갈 '구멍'조차 스스로 막아버리면서, "국가 안보 차원"이라고 설레발을 친다.
트럼프에 숨죽이고, 아베에게 농락당하고, 시진핑에게 협박 당하면서, 안전은 커녕 '불안'을 증폭시키는 정치외교는 또 어떤가?
후쿠시마 원전 참사를 목격하면서도 아무런 안전장치도 꾀하지 않는 무감각은 또 어떤가?
국민들은 이런 안전에 대한 무감각에 지극히 분노하고 있을 뿐이다.
더불어 이 변변한 안전장치 하나 존재하지 않는 헬조선을 가뿐히 헤쳐나갈 수 있도록 누군가 안전장치를 마련해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일자리 만들기 내지는 늘리기, 최저임금제, 기본소득제, 노동시간 확정, 의료보험료 적정 부과, 간접세 줄이고 직접세 늘리기, 부자증세와 복지 확대, 투자하지 않는 기업 보유금에 대한 과세, 고용 창출 없는 기업에 대한 시장 퇴출, 노동 착취 기업가에 대한 처벌 강화, 탈세에 대한 징벌적 배상, 상벌제도의 선명성 강화, 법률적 제재의 공정성과 형평성, 교육 현장에서의 비교육적 언행에 대한 처벌 강화, 갑질 공직자에 대한 법률적, 행정적 제재, 그리고 기타등등..
우리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지하게 획일적이다. 다양성의 사회가 전혀 아니다.
어떤 사람의 혈연, 지연, 인맥, 재산, 학력, 직장 등 몇가지만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나 능력, 식견, 문화적 소양, 미래의 가능성 등과 관계 없이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가 빤히 보인다. 나아가 그 사람의 사고와 행동까지도 내다볼 수 있다.
각 인간 유형들을 감히 열 손가락만으로도 분류해 낼 수도 있겠다.
현재의 우리 사회는 그만큼 다양성이 매몰된 획일화된 사회로 빠져버렸다.
각종 안전장치로 도배된 상류층 사회도 마찬가지고, 안전장치 하나 없이 헬조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서민층도 또한 마찬가지다.
생활패턴들이 지독히도 천편일률적이다.
이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따라서 뭔가 '변화'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상류층들의 불법적, 비인격적 안전장치들을 파쇄하고,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에게 될수록 많은 안전장치들을 고안해내고 또 마련케 해주어야 한다.
https://v.daum.net/v/20200328164617200
8. 2020
['코로나 블루'이거나, '코로나 미저리'이거나]
세계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 '코로나 블루'(corona blue)에 휩싸일 것 같다. 어쩌면 '시대의 우울'로 남게 될 지도...
그러나 한편에서는 '코로나 미저리'(corona misery)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일본에서 말이다.
'미저리'는 1990년에 등장한, '샤이닝'과 히치콕의 '사이코'의 뒤를 잇는 공포 호러 영화다.
지금 일본 도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미저리'를 떠올렸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미저리'의 애니같은 인물이 일본에도 있어, 아베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이 아베의 간호 아래 일본인들은 지금 '미저리(misery 고통, 아픔, 비참)'를 겪고 있다.
우리 한국은 '코로나 블루'에서 멈춰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코로나 미저리'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 [코로나 블루스 '19] (2020.3.11)
정치와 버무러져 난장을 벌이고 우울 모드로 들어서는 2019와 2020은 후일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우한 블루스에서 시작되어, 신천지 블루스로 옮겨 붙더니, 대구 블루스에서 폭탄을 터뜨리고, 구로 블루스에, 이란 블루스에로 번져, 이탈리아 블루스에서 절정을 이루다가, 마침내 도쿄 블루스와 뉴욕 블루스에서 불타오릅니다.
이렇게 코로나 블루스는 '세계 대유행(팬데믹)'이 되었다가 경제 공황(panic)으로까지 치닫습니다.
채플린 얘기로, 가까이서는 비극, 멀리서는 희극으로 보여지는 요지경의 세상은 지나왔던 모든 것들을 바꾸고 '새로운 세상(신천지)'을 열어제낍니다.
광기로 번득이는 마스크 위 눈빛, 가려진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한숨, 깊어가는 의혹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암울한 미래 모습에, 서로가 핑계거리와 비방의 대상 찾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크게 실망되는 건, '돈이 안 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안 되는 세상의 도래는 '그들'에겐 좌절이고 절망일 뿐입니다. 학교도, 병원도, 은행도, 백화점도, 모두 문을 닫습니다. '갈 곳이 없어진 세상'입니다.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폐허 뿐이듯이, 코로나 블루스가 유행을 타고, 한참 뒤에 코로나 백신이 나왔을 땐 이미 폐허의 자리에 공허함만이 남아 있던 것입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모두가 튀어나간 뒤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희망'이 오직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지금 우리는 단지 코로나 블루스에 장단 맞춰 흔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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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m.net/v/20200328132426125
K / 2026.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