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저널 일다> 강선미 <경력 단절이라는 꼬리표는 왜 여성에게만 붙을까? 여성들은 왜 노동시장으로부터 단절을 겪게 된 것일까? 출산과 양육만이 경력 단절의 이유일까?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에서 여성들의 공백(경력 단절)의 문제와 현실을 알아내기 위해 ‘일하는 여성’들과 만나, 여성노동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짚어보는 인터뷰를 일다와 공동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10:1 경쟁률을 뚫고 직업상담 자격증을 따다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거나 회원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갖고 싶은 덕목’이란 게 생긴다. 바로 좋은 목소리이다. 직접 만나면 적절한 손동작과 표정으로 친밀감과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전화로 응대할 땐 사람의 목소리에 따라 더 길게 더 재미있는 통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전화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할 때와 목소리 좋은 다른 활동가가 할 때 통화 길이와 받는 피드백이 다르기도 하다. 이번에 만난 C님(50세)에게 받은 첫 인상은 정말 목소리가 좋은 분이라는 것. 마침 지금 하시는 일이 직업상담사라고 한다. C님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의 차분한 목소리를 가졌다. 상담이란 일차적으로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니까 딱 맞는 일을 하시는구나 생각한 것도 잠시, 목소리만 좋다고 가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듯 상담도 내용과 전문 지식이 기반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걸 배워서 취업하고 싶다거나 이 훈련을 받아보고 싶다, 이런 계획서를 저희가 정한 양식대로 작성해서 가져오시면, 이분에게 적당한지, 취업할 수 있을지 상담해서 가능성 있는 분들에게 직업 훈련을 시켜줘요. 직업상담사가 하는 건 초기 상담이에요.” 초기 상담이라고 해도, 무슨 일이건 첫 단추를 잘 꿰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직업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쳐서 자격증을 따야 한단다.
“1차는 5과목을 20문제씩 100문제를 푸는 거고요. 2차는 주관식 문제를 하얀 종이에다 4과목 18문제를 정한 시간 안에 쓰는 거죠. 합격률이 상당히 낮아요. 제가 시험 보던 해에 1차 지원자가 6천명인데, 1차에 합격한 사람이 1천 명 미만이래요. 2차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은 전에 1차 합격했던 사람들한테 다 줘요. 재수생들이죠. 최종 합격률이 10% 정도래요.” C님은 이렇게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국가공인 자격증이라곤 그 흔한 운전면허도 아직 없는 나로서는 와- 소리가 절로 났다. “사립학교는 쉬고서 복직 보장이 안됐어요” “원래는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한 9년 정도 근무를 했어요. 임신이 될만한 시기가 지났는데도 아이가 안 생기는 거에요. 30대 들어서면서 걱정이 되더라고요. 노력해보자 해서 한약도 먹고 불임클리닉 검사도 했는데 별 문제도 없대요. 인공수정을 해보자 했는데 안됐어요. 다음 단계는 시험관 아기였는데 잘 안됐고. 근무하던 학교랑 병원이 멀어서 병원 스케줄이랑 내 생리 주기에 맞춰야 되는 거라, 학교 다니면서 하기 어렵더라고요. 수시로 지각, 조퇴를 해야 하니까. 사립고였는데 남자 교감선생님한테 일일이 나갈 때마다 얘기하기도 불편하고.”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던 때는 34살이었다. 요즘으로 보면 많이 늦은 나이가 아닌데, 15년 전엔 달랐다고 한다. C님과 남편 모두 건강 상의 이유가 없는 것으로 검사 결과도 나왔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던 상황이었다. 기다리던 임신이 되지 않자 여러 단계를 거치다 시험관 아기까지 시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골똘히 고민해야 할 일이 생겼다. 바로 임신과 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었다. “사립학교는 쉬고서 복직 보장이 안됐어요. 출산휴가만 끝나면 칼같이 나와야 되는 때였거든요. 제가 만약 휴직을 하면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다른 여직원들도 얼마나 쉬고 싶겠어요? 육아 때문에. 그래서 사직서를 냈어요.” 말이 좋아 선택이지, C님에게 온전한 선택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아이를 낳고 산전휴 휴가만 겨우 쓰던 시기였기 때문에, 결국 사직서를 내게 된 것이니까. 그러나 당시에는 아이만 낳고,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때만해도 애기 낳고 나면 새로운 일을 못할까, 임용고시 공부해서 공립학교로 갈 수도 있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2월에 학기 끝내고 퇴직하고 집에서 쉬면서 5월에 애기가 저절로 생겼어요.” 퇴직을 하면서도, 원래 하던 교직 일이든 새로운 일이든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임금노동시장으로 들어오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출산 후 10년의 공백 “답답했어요” 첫 아이 출산하고 거의 바로 둘째 아이를 임신해 낳고 양육에만 몰두했던 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찾아온 건 무력감이었다. “둘째가 걷기 시작하면서 무능력한 느낌도 들고.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에요. 남편도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도 빨리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고. 그래서 집에서 과외 같은 거 공부방 형식으로 애들 지도해주고 이러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그랬는데 집에서 과외 하는 게 재미없더라고요. 인정을 못 받는다는 생각도 들고 어느 순간 답답하더라고요.” 우연히 과외 일을 하게 되었지만 답답함이 해소되진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가며 찾아본 일이 보육교사이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되게 고민했어요. 인터넷도 뒤져봤는데 제가 가정교육 전공자라서 보육교사들이 취득해야 할 것들을 대학에서 다 배웠더라고요. 그래서 보육교사 자격 심사하는 곳에 의뢰했더니 보육교사 1급 자격에 해당이 된대요. 그렇다면 보육교사로 경력을 쌓으면서 시설 운영을 목표로 한 번 해보자. 그 때가 한 44살이었어요. 경력을 2,3년 쌓아야 시설장이 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시설을 운영하려면 돌아가는 걸 모르면 안 되니까. 다행히 처음에 아무 것도 모르고 들어갔던 어린이집 원장하고 뜻이 맞아서 잘 운영을 했어요.” 차곡차곡 새로운 경력을 만들던 중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출장을 갔던 남편이 사고로 운명하신 것이다. 남편과 사별 후 어린이집에서 다시 일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큰 상실감을 안고, 아이들을 밝게 웃으며 지도하는 것은 누구라도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두 아이의 보호자로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당장의 필요에 의해 일자리가 시급했다. 남편의 사업 빚으로 인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등 자영업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얼른 마음으로 추스르고, 주변에서 지인이 해줬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유망직종이라더니 현실은 ‘빚 좋은 개살구’ “남편 후배 말이, 자기가 아는 구청 공무원한테서 요즘 직업상담사가 뜨는 직업이라고 들었대요. 교직 경력도 있고 하니까 상담 쪽 잘 하실 것 같다고 권유를 받았어요. 알아보니까 자격증 따면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사실 머리에 공부가 들어오는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이대로 손 놓을 순 없는데, 식당 나가서 설거지하는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한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싶었죠. 직업상담 일이 급여도 150만원에서 잘 하면 200만원 수준이고, 경력이 더 생기면 학교 상담실로 들어갈 수도 있다 하고. 핑크빛 희망을 갖긴 했어요.” C님은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핑크빛 희망’으로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유망하다고 알려진 것에 비해, 취업은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었다. “말이 좋아 직업상담사지, 구청 같은 공공기관에 들어가는 건 정말 바늘구멍 같은 경쟁이라 너무 어려운 거에요. 경력자들을 요구하는데 뭐 일할 기회가 있어야 경력이 생기죠. 자격증 따면 다 될 것처럼 얘기하더니 아니구나. 운이 좋게도 고용센터에 취업이 되긴 했어요. 6개월 좀 안 되는 계약직이긴 해도, 고용센터에 있었다고 하면 어딜 가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죠. 정말 다 계약직이에요. 하나같이. 시작은 무조건 계약직으로 하더라고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일이에요. 어렵게 공부하고 자격증 딴 거에 비해선 처우가 안 좋죠. 급여가 100만원이라 생활하기 어려운 금액이지만, 공부한 게 아까우니까…”
▲ 올해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에서 펴낸 <주부재취업 도전직업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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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고용정보원에서 펴낸 <주부재취업 도전직업 60>에 보면 주부, 경력단절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잘 취업할 수 있다고 소개된 일자리 60개 목록이 나와있다. 독서논술지도사, 요양보호사,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고객상담원 그리고 C님이 하는 직업상담사도 있다. 문제는 이 일자리들 대부분이 저임금의 계약직이거나 프리랜서(특수고용)라는 점이다. 양육과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인 경우, 고용된 시간제 일자리보다는 기본적으로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취업 알선을 하면서 C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요즘은 시간제 일자리가 화두이긴 한데, 실제로 파트타임 일자리는 별로 없어요. 고용률은 상승시킬 수 있겠죠. 그런데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난 것 같지는 않아요. 30대 분들은 육아 문제가 있으니까. 50대 고령층은 건강 문제 때문에 종일 노동이 힘드니까 짧게 일하고 싶다고. 충분히 이해가 되거든요. 제일 대표적인 시간제 일자리가 요양보호사, 재가보호사에요. 엄청나게 처우가 안 좋죠.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만들자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반듯하게 가능하면 좋겠어요.” 역시 일선에 있는 분답게 중요한 분석을 해주신다. 실제로는 시간제 일자리가 많지도 않고, 처우 개선 없이는 현실적으로 ‘반듯함’을 담보할 수 없다는 문제들을 짚어주셨다. 경력이 쌓이는 만큼 나이도 든다는 위기감 자격증을 따고 막상 일을 하며 알게 된 ‘유망직종’ 직업상담사의 현실은 핑크빛이 아니라 산 넘어 산이었다. 현재 모 센터에서 C님은 계약직으로 세금 떼고 110만 원정도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계신다. 가장으로서 두 아이들과 생계를 꾸리기에 턱없이 적은 액수인데다, 계약이 만료되면 ‘단절’ 없이 일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과 불안도 있을 것이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면 아무리 경력은 쌓인다고 해도 50대 직업상담사보다 30,40대를 더 선호하지 않을까. 관리자 입장에서 편할 수도 있고. 그런 자격지심이 더 생기는 거에요. 쌓이는 경력만큼 나이도 드니까, 경력 쌓이는 게 일면 마이너스가 될 수 있겠다는 위기감. 제가 30대 중반이나 40대 초반이면 한 해 한해 경력 쌓이는 게 즐거울 텐데.”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비슷한 경험이 교차되는 걸 느낀다. 나이로 인한 차별 문제를 제기했던 K님의 경험은 C님의 이야기 속에서도 드러났다. 경력이 쌓일수록 자신감도 붙고 전문성을 더 기르며 일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지만, ‘늦게’ 일을 시작하면 경력과 함께 나이도 든다는 것에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이든 여성에게 노동시장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많은 회사에서 경력자를 요구하니 경력을 쌓으려고 문을 두드려도, 첫 번째로 열어주는 곳은 정작 많지 않다는 점. 그리고 경력이 있으면 있는 대로, 나이가 많은 노동자는 또한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 이런 딜레마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년까지 일할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저한테 가장 최고의 관심사는 고용보장이에요. 정년만 보장해준다면 급여가 그리 높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고. 정년까지 일을 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예 일을 못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빠듯한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긴 하지만 C님이 원하는 건 간단했다. 월급은 조금만 오르더라도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이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청소년기에 있는 두 아이들과 앞으로의 미래를 짤 수 있다. 큰 아이가 대학에 가고 졸업 후에 일을 하게 돼서 돈을 벌면, 둘째도 공부 시키고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다는 C님의 계획은 소박하다. 꼭 계획대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센터는 좀 위압적이라서 ‘뭐 뭐 쓰세요.’ 하면 못쓰시는 분들 많으세요. ‘구직등록 컴퓨터로 해서 오세요.’ 이러면 잘 못하시거든요. 복잡한 절차가 있기도 하고요. 젊은 분들은 다 하지만. 그러면 저는 같이 컴퓨터에 붙어서 해드리죠. 제가 그런 입장이 아니었더라면 못했을 수도 있는데 나도 비슷한 입장이었으니까. 저는 마음 쓰는 것뿐 아니라 구체적인 일자리를 드리고 싶어요. 너무 일자리가 없어요.” 사람이 당황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도 지레 겁먹고 주저하게 된다. 서류를 작성한다거나 컴퓨터로 뭔가를 신청해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공백’을 이미 경험한 입장에서 C님은 이해를 기반으로 마음을 써주신다. 이런 마음 씀씀이로, 일하고자 하는 많은 여성들이 공백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직업상담사인 C님의 마음이 보다 많은 여성들에게 가 닿으려면, 일단 C님의 일자리가 안정적이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실제 일자리도 많아져서, 상담뿐만 아니라 신나게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일을 해나갈 수 있게 되길 나 역시 바란다.
※ 이 기사는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womenlink1987.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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