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비밀이란 없는법 무덤속까지 안고 들어가려 했는데 결국엔 아들이 39년만에 모든걸 알고 말았습니다 장조카가 암으로 사망하자 사촌끼리 모여 술한잔 마시는 자리에서 그만 제 과거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충격을 많이 받은것 같습니다 지난주 술도 잘마시지 못하는 아들이 잔뜩 취한 목소리로 전화을해 어머니 보고싶으니 집으로 갈테니 만나자해 불길한 마음을 안고 기다렸는데 예감이 적중했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때 학교에서 국군장병들에게 위문편지을 써서 보내는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몆달후 한 공군아저씨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편지 보내주어 고맙고 잘받았다고 그 뒤부터 우린 오빠 동생하는 사이가 됐고 편지도 계속해서 주고 받고 그러던중 여고 2학년 되던해 휴가 나오는데 우리집에 오신다는겁니다 그당시 편지을 주고 받고 오빠가 군에서 선물도 많이 보내주고 또 군인이신 아버지도 오빠가 집에 온다는걸 반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가을날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서는데 큰올케 언니가 제가 왔다는 말을 안방에 대고 크게 말하자 안방에서 사진으로본 오빠가 웃으며 대청마루에서서 저를 맞이 하더군요 첫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그렇게 우린 아버지의 허락아래 오빠는 부대가 강화도에 있어서 주말마다 우리집에 오는날이 많아지고 올때마다 내공부도 봐주며 대학진로에 대해 고민도 같이하고 그러다 어느날 하루는 저에게 고백을 하더라구요 자기의 신분이 대해 제성격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아마 아버지한테도 말씀 드린것 같은데 오빠가 연락이 잘안되고 편지가 안오더라도 걱정말고 믿고 계속 부대로 편지보내고 답장이나 연락기다리고 있으라고요 그리고 대학은 여대로 갔음한다고 하기에 전 약속데로 친구와 둘이 여대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봐도 전화도 편지도 없기에 그오빠는 고아출신이고 친인척이란 8촌누나라고 계시는데 한번뵌적이 있어서 가게에 찾아가 보았더니 그언니 하시는 말씀 그오빠가 북파간첩 활동하시는 분이라 지금 여기 없을것란 말듣고 그때야 오빠의 행동이 이해가 되더군요 그렇게 제 첫사랑의 기다림이었습니다 졸업을 앞든 어느날 편지한통과 선물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졸업하면 너와 결혼하고 제대하여 작은사업하면서 너는 니가 하고 싶은일 하면서 우리 행복하게 살자 하는 편지 읽으면서 마냥 행복했는데 .......
졸업후 전 바로 취업해 직장을 다니게 됐습니다 오빠을 기다리면서요 아버지는 기숙사 생활때는 괜찮지만 다큰여자가 서울서 방을 얻어 지낸다는데 반대하시며 본가인 인천에서 다니라 걱정하시기에 전 반대 무릎쓰고 기여코 분가 회사에 다니다 몆년후 자꾸 어느남자가 차한잔 마시자며 저녁식사 하자며 끈질기게 따라 다니고 또는 퇴근무렴이면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그렇게 몇달을 시달리다 결국 회사 팀장님께 구원을 요청 여러방법을 써보았지만 소용무 자원요청 당분간만이라도 지방으로 발령내달라해서 수원으로 내려와 공군오빠에게 사정애기을 편지 보내고 근무 열심히하며 승진도하고 그러던중.... 전생에 제가 무슨 죄을 많이 지어는지 그인간이 저를 찾아내어 수원회사앞에서 퇴근하는 절 납치 그날 전..... 그사람은 동거하는 여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화하고 만남을 요구했지만 전 강력하게 대처했지만 어느날 한순간 날 무너지게 한사건 임신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시대가 달라졌지만 그땐 여자앞으로 아이을 호적에 단독으로 아빠의 동의 없이 올릴수없었습니다 몇달을 고민후 나름 그사람 손에서 벗어날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임신6개월때 그사람에게 연락 말했습니다 임신했으니 결혼은 나중에하고 우선 아이을 위해서 혼인신고 먼저 해달라고요 그렇게 혼인신고하고 지내다 연말에 회식하다가 진통이와서 동료들 부축받으며 병원에가 혼자 아들을 낳고 아이을 안고 전 이틀을 꼬박 눈물로 지내답니다 그렇게해서 우리아들이 새해 첫날인 84년1월1일 새벽4시 태어났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래 너도 언젠가는 니 눈물에서 피눈물나게 될것라며 저도 모르게 악한 마음마저 들더군요 그때 날찾아와 아이낳으며 내자식마냥 내가 키울테니 제발 마음 바꿔라며 울며 나를 설득하던 오빠 사랑했기에 차마 그러지 못하고 이별을 택했던 나 그때 오빠따라 갔으면..... 퇴원하고 몸조리도 못하고 저는 바로 출근 계획데로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 해외근무 장기 신청하고 또 아들 여권만들고 비자신청하고 팀장님과 부장님께 부탁 두분이 많이 힘이 되어주시여 저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를 힘들게 하는건 회사내에서 도는 무성한 소문들이 절 아프게 했을뿐 다른건 이겨낼수가 있었으닌깐요 아이을 출산하고 엄마가 되고나니 없던 용기가 생기더라구요 아들이 8개월때 업고 아이아빠 몰래 가방하나 끌고 부장님이 직원 한명과 차를 내주시여 그렇게 저는 한국땅을 떠났습니다 6년의 긴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울고 얼마나 많이 외롭고 그리워는지 그인간으로 인해 친정에서 쫒겨나 40년가까이 얼굴들도 못보고 부모님 돌아 가실때도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승진과 동시에 아들의 입학도 또 회사에서도 복귀하라는 뜻에 돌아와보니 역시는 역시 제 뜻데로 제 예감데로 제가살던 제집에 상관녀을 데리고 살고 있는 아들아빠에게 간통죄로 고발하지 않을테니 조용히 이혼도장 찍어 달라했습니다 그땐 간통죄로 고발하면 자동이혼이 되던시기라 저는 그점을 노리고 계획을 세워던것입니다 이혼조건으로 제가 대신 그사람 빚 5억을 떠안는 조건으로요 회사로 돌아온후 여전히 저에게 따라 붙는소문 미혼모 또는 불륜녀 남자 사원들보다 여자몸으로 먼저 승진하고 인정받고하니 시기하고 질투하는 못난 남자들이 많더라도 전 그 어떤 변명도 설명도 안하고 오직 제 할일만하고 아들을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다 회사 직원들과 지리산종주을하다 그만 하산하다 벼랑에서 추락사고 8년동안 크고 작은수술로 13번 오른쪽 다리와 양팔만 멀쩡하고 전신에 쇠박고 머리를 심하게 다쳐 깨어나니 기억은 초기화 상태... 병원과 재활병원을 오가며 어떻게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아들이 아니었음 전 견디지 못했을겁니다 떠안은 빚도 다 청산하고 집장만하고 이제 행복시작이다 했는데 .... 그런와중에도 아들 대학마치고 영국유학보내고 또 전공을 살려주기위해 이탈리아 유학까지 보내면서 혼자 아들이 독립할수있는 환경이 되면 그때 저는 세상을 그만 살고 싶었습니다 몇년전만해도 저는 개띠방과 화솔방에 모임도 나가고 온라인 활동도 하다가 어느순간부터 그냥 조용히 지내고 있답니다 화솔방에서 강원도 여행가서 밤하늘 별과 파도소리 듣으며 생전 처음으로 여러사람들과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 애기도하고 그때 많은 위로와 지금도 가끔 안부 전화 카톡으로 음악을 보내주시는 벙이오빠께 늘고마운마음 잊지 않고 있답니다 모임과 여행을 함께했던 분들 잘들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들에게는 아빠랑은 성격차이로 이혼했다고 했는데 아들이 모든 사실을 알았으니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달래고 대해야할지 걱정입니다 물론 남자라 잘이겨 내리라 믿지만 상처가 심하고 아빠의 대해 배신감이 심한가 봅니다 절더러 왜 새출발을 안하시고 지금까지 혼자 사셨냐고 묻는데 전 그저 널 사랑하고 너만 있으면 그거로 엄마는 만족했으닌깐....... 제 말은 그것 뿐이었습니다 자기아빠라고 매달 얼마씩 용돈을 보내주는것 같은데 그마음이 어떨지. 오늘밤은 유독 저에게 많은 상처와 아픔만 갖고 떠난 그오빠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죽기전에 딱 한번만이라도 볼수만 있다면 보고 싶습니다 저는 미혼모일까요? 아님 이혼녀 일까요?..... 아직 제자신에게 조차도 해답을 못찾고 있답니다.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세상과 또 한남자와 치열하게 맞싸우며 내젊은 인생을 보낸것 같습니다 지나고보면 원망도 복수도 다소용없고 부질없거만 그땐 저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가 낳은 제아들 오직 최선을 다해 키우자 그것만이 제가 할수있는일이라 생각하고 오직 엄마의 길로만 걸어왔습니다
옛어르신들이 그러시죠 사람의 팔자는 타고난다고요 아마 제팔자가 그런가 봅니다 처음엔 세상이 왜 나한테 이런가하며 비탄해하고 절망에 빠져 죽고도 싶었지만 그럴때 옆에서 초롱초롱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들을 보며 오직 일에만 몰두하고 살아왔기에 오늘날 제가 견디어내지 않았나 싶어요
그땐 어쩔수없었어요 저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기에 양육권 권한 자격이 없다하더라고 요 아이아빠랑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아이데리고 도주한 거라구요 완전 개법이죠 더군다나 아들이 그집안 2대 독자라고 더더욱 막무가내로 나오는데 저혼자 싸우는데 지치고 돈때문에 제 약점을 노리는 인간들하곤 더이상 말하기도 싢고 아이 양육권만큼 절대 줄수없어 아파트팔아 주고 모자란 돈은 회사에서 대출받아주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휴가을 얻어 한달동안 아들과 여행하며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그때 그순간 전 후련하고 개운하여 못먹는 술 맥주한병 마시며 자축했답니다^^ 제가 아들에게 비밀로 했던것은 행여 출생의 비밀을 알아서 상처을 받을까봐 비밀로 했던것인데 역시 심성이 착한애라 그런지 엄마의 대한 미안함 자신으로써 엄마가 불행하게 살아오신것 아니냐며 자신을 자책하는데 저는 그게 더마음이 아파 견딜수가 없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제글을 끝까지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이젠 세월이 지난만큼 상처도 치유됐고 아들이 받은 상처가 빨리 치유가 되길 바랄뿐입니다 이제는 엄마모시고 같이 살고 싶다고 하지만 저는 혼자사는게 편하고 아들과 절대 합가는 안한다했죠 이다음 세상을 떠나기전 나이가 많아 움직일수 없다면 그때 요양원에 가면 되구요 그전에 소풍을 끝내면 행복이죠 ~^^
너무나 사실적으로 쓰여진 글이라 그냥 단숨에 읽히는군요. 재미있다고 하기에는 한사람의 인생을두고 할말은 아닌것 같고 저랑 같은 개띠고 첫애가 같이 84년생이라 살아왔던 시대가 유추되어 대단한 캐리어우먼으로 살아오신.것에 박수까지 드리고 싶습니다. 아들을 위해선 훌륭한 삶인데 본인을 위해선 희생이 크네요. 앞으로는 좋은 삶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알지도 못하면서 생각없이 하는말이 비수가되여 아프게 하는지 너무나 많이 알아서 지금도 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아요 사고었는데 저에겐 정말 사고라 생각하고 싶었는데 정숙하지 못한 여자취급 불륜으로 임신했다는등 말들이 듣을때 함구하고 지내던 시절 지금 생각해도 아직도 흘리 눈물이 남았는지 눈물이 나네요 ㅎ
어긋난 인연으로 보냈을 모진 시간들 아들이 버팀목이 되어 견디셨네요. 읽는 내내 시절인연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듬직한 아들로 잘 키워 내셨으니 위대한 모정에 존경을 드립니다. 수고하셨어요. 행운의 여신이 님의 소원을 들어주시라 비는 맘 보태봅니다. 꼭 그 첫사랑이 아니더라도....남은 시간을 속깊게 포용해줄 분이 분명 있을거라 믿습니다....^^
첫댓글 소설같은 인생이네요
우선은 정말 치열하게
사신 인생에 박수를
보내고 아들님도 시간이
조금 지나고나면 엄마를
이해하고 고마워 할겁니다~~
정말 치열하게 세상과
싸우며 살아온것 같습니다
잠자다 눈뜨고 일어나믄 가끔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건지
아닌지 하며 혼동을 느낄때
그럴때가 있는데 아마 사고
트라우마가 겹쳐서 그럴거라
생각하고 노력중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꽃대를 올리는 꽂은 없대잖아요 그 흔들림에 첫사랑 만나던 설레임과 달리
다들 첫 사랑과는 인연이
잘 안 이루어 진다 카더라고요
네 맞아요 그런 속설이 있지만
제 간절한 마음이 그오빠을
너무나 사랑했던 첫사랑이었기에
잊지 못하고 있는가 봅니다
이제 저도 나이가 점점 들어감에
담생에나마 다시 볼수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땐 배신하지 않고 꼭
결혼 해주겠다고요
소설같은
얼마나 힘드셨나요
남은인생 즐겁게 ~~~
힘든삶이 아니었다면 거짓이죠?
하지만 다행히 아들이 속한번
썩이지 않고 잘커주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
@다솜이. 다행이네요 ~♡
힘드셨지만 현명하게 대처하고 잘 하셨는데
지금도 훌륭하신 아드님과 행복하게 사시기만하면 미혼모돈 이혼녀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글쎄요?
지금도 저는 가끔씩 생각하믄
미혼모라면 수치 스럽고
이혼녀라면 남들이 생각할때
적어도 사랑해서 결혼했다가
이혼하지 않았나?하는,....
제 수치스럼을 감추고 싶은
그런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산다는 것이...내가 선택하고 원하는 삶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나고보니 열심히 살았느냐가 문제이지 어떻게 지나왔느냐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세상과 또 한남자와 치열하게
맞싸우며 내젊은 인생을 보낸것 같습니다
지나고보면 원망도 복수도
다소용없고 부질없거만 그땐
저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가 낳은 제아들 오직 최선을
다해 키우자 그것만이 제가
할수있는일이라 생각하고
오직 엄마의 길로만 걸어왔습니다
영화같은 어려운 인생을 잘견디시고 열심히 사셨네요 다성장한 아드님도 어머니를 이해할거라 믿네요 앞으로 멋진 꽃길에 응원의 박수를보냅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아들이 빨리 견디고
제자리 찾기 바라고 있습니다
아들이 먼저 전화하길 바라면서요
앞으로는 늘 행복한 삶으로 이어가시길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젠 더이상의 고통도 시련도 없겠죠??
드라마틱한 인생이군요
우린 그냥 살 뿐 인거 같아요
거대한 인생의 펼침은 우리 몫이 아니에요
단지 그래도 성실하게 사랑을 배풀면서 살아야 될것 같아요
힘내세요
옛어르신들이 그러시죠
사람의 팔자는 타고난다고요
아마 제팔자가 그런가 봅니다
처음엔 세상이 왜 나한테 이런가하며
비탄해하고 절망에 빠져
죽고도 싶었지만 그럴때 옆에서
초롱초롱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들을 보며 오직 일에만
몰두하고 살아왔기에 오늘날
제가 견디어내지 않았나 싶어요
소설 같은 인생살이를
사셨군요
중간 중간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을
나 스스로 참을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빚 5억은 왜 떠 안으며
지금에서 그 사실을 아들이 알게 됐다고
왜 다솜이님이 겁내 합니까?
물론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이제라도 모든걸
다솜이님 위주로 펀안히 사시길 바랍니다
내가 없으면
이 우주도 존재하지 않아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바로 나 자신이랍니다
그땐 어쩔수없었어요
저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기에
양육권 권한 자격이 없다하더라고 요
아이아빠랑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아이데리고 도주한 거라구요
완전 개법이죠 더군다나 아들이
그집안 2대 독자라고 더더욱
막무가내로 나오는데 저혼자
싸우는데 지치고 돈때문에 제 약점을
노리는 인간들하곤 더이상 말하기도 싢고
아이 양육권만큼 절대 줄수없어
아파트팔아 주고 모자란 돈은
회사에서 대출받아주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휴가을 얻어 한달동안
아들과 여행하며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그때 그순간
전 후련하고 개운하여 못먹는 술 맥주한병 마시며
자축했답니다^^
제가 아들에게 비밀로 했던것은
행여 출생의 비밀을 알아서 상처을 받을까봐 비밀로 했던것인데
역시 심성이 착한애라 그런지
엄마의 대한 미안함 자신으로써 엄마가 불행하게
살아오신것 아니냐며 자신을
자책하는데 저는 그게 더마음이 아파
견딜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이렇게도
살아 오셨군요
장문의 글
안타가운 마음으로
끝까지
천천히
읽어내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수 있는것 처럼
늦게나마
엄마의 일생을
아들이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 입니다
그 많은 한이
가슴에 엉켜 있음인데
훌훌 털어 버렸으니
이제는
얼마 남았을 삶..
아들과 행복한, 건강한 삶..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부족함이 많은 제글을 끝까지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이젠 세월이 지난만큼 상처도
치유됐고 아들이 받은 상처가
빨리 치유가 되길 바랄뿐입니다
이제는 엄마모시고 같이 살고
싶다고 하지만 저는 혼자사는게
편하고 아들과 절대 합가는
안한다했죠
이다음 세상을 떠나기전 나이가
많아 움직일수 없다면 그때
요양원에 가면 되구요
그전에 소풍을 끝내면 행복이죠 ~^^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맙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제글 끝까지 읽어주시어
인앵의 긴터널속을 빠져 나온느낌?
이젠 사고의 트라우마에서도
조금씩 벗어나고 있고
안정도 되찾고 있답니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쓰여진 글이라
그냥 단숨에 읽히는군요.
재미있다고 하기에는 한사람의 인생을두고 할말은 아닌것 같고
저랑 같은 개띠고
첫애가 같이 84년생이라
살아왔던 시대가 유추되어
대단한 캐리어우먼으로 살아오신.것에
박수까지 드리고 싶습니다.
아들을 위해선 훌륭한 삶인데
본인을 위해선 희생이 크네요.
앞으로는 좋은 삶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생에서의 제삶은 여기까지고
다음생이 있다면 그때에는
여고시절부터 돌아가
오빠을 만나고 싶네요
그런것 같아요
남과 다른 길을 가면 주위에서 힘들게 하죠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한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오셨다면 된겁니다
나의 삶을 남의 평가에 의해 흔들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알지도 못하면서
생각없이 하는말이 비수가되여
아프게 하는지 너무나 많이
알아서 지금도 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아요
사고었는데 저에겐 정말 사고라
생각하고 싶었는데 정숙하지
못한 여자취급 불륜으로
임신했다는등 말들이
듣을때 함구하고 지내던 시절
지금 생각해도 아직도 흘리 눈물이
남았는지 눈물이 나네요 ㅎ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인생을 잘 견디고 이겨내신 님께 큰 응원에 박수을 보내고 싶습니다.
수고 하셨고 애 쓰셨습니다.
그래도 절 믿고 도움을 많이 주신
직장 상사분이 계셔서 용기을 갖고
오늘까지 살아온것 같습니다
지난날을 토해내신 다솜님용기의
큰위로가되길바랍니다
앞으로 꽃길만 걸으시길요!
이유없이 그자식잘키워서
효도받으시길~
간절히바라는 일인입니다
이제 절대루 상처받지 마세요
살날이얼마 없잔아요!
고맙습니다
살아온날보다 앞으로
살아갈날이 얼마 남지 않은인생
그냥 편안하게 소풍길
떠나기 바라뿐입니다
긴세월 참 잘 견뎌 내셨내요
존경스럽습니다
건강히 남은 여생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기 를 우선 순위로 놓으심 좋겠습니다~!!!
내나이 50대만 됐어도
아마 새로운 도전을 시도을
해볼수 있을텐데 이젠 꿈도
용기도 없는 그런 나이네요 ^^
@다솜이. 정말 좋은 인연 꼭 있으리라 믿으셨음 좋겠내요!!!
어긋난 인연으로 보냈을 모진 시간들
아들이 버팀목이 되어 견디셨네요.
읽는 내내 시절인연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듬직한 아들로 잘 키워 내셨으니
위대한 모정에 존경을 드립니다.
수고하셨어요.
행운의 여신이 님의 소원을 들어주시라
비는 맘 보태봅니다.
꼭 그 첫사랑이 아니더라도....남은 시간을
속깊게 포용해줄 분이 분명 있을거라
믿습니다....^^
열정우먼으로 우뚝 섰음이니
미혼모 이혼녀란 단어는 개나 줘버리세요.
오늘 또 읽어봐도 눈물이 나네요.
힘든세월 잘 이겨내신 다솜이님 응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