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조정
행6
시 작 기 도
‘바다 같은 밤 어둠 속에 서서 고개를 떨구고 두려워하던 때, 오 주여, 주님의 얼굴을 숨기지 말아달라고 기도했었죠, 마찬가지로 내 집을 높게 세우고 내 것이다 하려 한다면 그것은 혼자됨보다 더 못합니다. 주님의 얼굴을 숨기지 마소서. 내 손을 잡아 주소서. 매 시간 매일, 여기에서부터 그리고 그 다가올 미지의 그 날과 그 곳에까지. 그 누구도 혼자 설 수 없는 곳에서 설 수 있도록 내 손을 잡아 주소서.’
본 문 내 용
믿는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는 가운데 교회공동체 내에 한 가지 마찰이 생겼습니다. 구제음식에서 그리스말을 하는 유대인들 쪽에서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인들을 상대로 자기들의 과부들이 홀대를 받는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이에 사도들은 모든 제자들을 불러모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스데반과 빌립을 포함한) 일곱을 뽑고 기도하고 안수하여 이 섬김과 봉사의 일을 위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말씀을 전하는 일과 기도에 소홀히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나가고 제자의 수가 늘어나고 많은 제사장들도 믿음에 순종하였습니다. 스데반은 믿음과 성령과 은혜와 능력이 충만하여 기적과 놀라운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 때 해외출신 유대인들로 구성된 자유민 회당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스데반을 대적하였으나 지혜와 성령으로 충만한 그를 당해내지 못하자,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을 붙잡고 공의회로 끌고 갔습니다. 거짓 증인들은,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여 거룩한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가 이 곳 성전을 헐고 모세의 율법을 고칠 것이다라고 했다면서 고발했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습니다.
주 해
이제 예수님의 증인됨이 예루살렘을 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도의 말씀전파와 기도 그리고 섬김과 봉사의 사역까지 모든 일을 사도들이 맡아서 했기에 말씀전파와 기도의 사역에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사역자는 섬김과 봉사의 일에서 제외해야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여 우열을 나누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로서는 분리할 수 없는 문제이고 둘 다 중요한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은 지도자의 일을 위임하여 가장 작은 단위의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을 가깝게 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거기까지 섬세하게 닿게 하라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장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도자를 뽑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출18.13-20, 신1.9-18)). 모세는 다스리는 일을 위임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지도자를 세워 위임한 후에 시내산 언약 백성으로 드디어 서게 되었습니다(출19.1). 특별히 신1.16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이의 관계를 다룰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내 유대인과 이방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를 그 때부터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11절부터 3장 13절까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사람과 이방사람으로 극단적으로 나뉘었던 배타적 세계관을 무너뜨리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는 평화요 화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사람들과 이방사람들은 이제 공동상속자가 되고 한 몸이 되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 예수님의 기초위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하신 영원한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민족(이스라엘과 이방인)이 하나된 완성체가 되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영적진리는 사도신경의 예수님을 믿는 우주적 교회의 개념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그것을 가르치고 교회를 그렇게 본격적으로 세우기를 시작하고 계십니다. 뒤에 이어지는(7장) 스데반의 순교 설교도 율법과 하나님의 성전을 소재로 바로 이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세계관의 변화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반드시 동반되어야할 과정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사55.8).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때 지금 가지고 있는 좁은 소견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 중심적이고 좁습니다. 이 깊이 뿌리 박은 사람의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신앙에 대한 이해는 날마다 확장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그렇게 정비되기 시작하자 7절에서 제자의 수가 더 늘고 심지어 수 많은 제사장들도 이 믿음에 순종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예루살렘을 차고 넘쳐 이제는 땅 끝으로 퍼져가는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성령으로 충만한 지혜있는 사람을 세워 위임하는 일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으니 엄청난 세계관의 변화가 필요하고 그 변화를 위해 신자 각 사람 한 사람 한 사람모두가 그것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도력을 위임하여 섬겨야된다는 말입니다. 시대를 따르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하여 변화되어야 합니다(롬21-2). 모세가 여는 이스라엘 나라와 언약의 율법이 그랬고 예수님이 여시는 하나님나라 와 새언약과 성령의 법이 그렇습니다.
땅 끝에 이르러 증인이 되는 그 걸림돌은 율법과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편견과 좁은 소견입니다. 스데반은 그 불신 때문에 공회앞에 끌려와 이제 순교의 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동일한 문제로 그들 앞에 섰고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막14.55-64, 마26.59-62, 요2.19-21성전되신 예수님). 이렇게 될 것(나를 박해했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요15.18-21). 예수님과 스데반이 새 시대를 맞아 율법과 하나님의 성전 문제로 대적에 직면했듯이, 교회도 하나님 나라를 맞아 율법과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도전을 받을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 의해 하나님이 보내신 리더들이 도전을 받을 것입니다.
묵 상
신앙함과 하나님 나라에 관해 사람의 생각 편협하고 좁은 생각으로 그 나라와 새 언약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자가 바로 저입니다. 치우친 세계관과 구원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인색하게 이해한 자입니다. 스스로 판단자가 되어 주님의 구원을 제한한 자입니다. 그럼에도 배우려하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지도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고백합니다. 무엇보다도 율법과 하나님의 성전인 예수님에 대해 온전히 알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지 못한 것도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하나님 나라 새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셔서 마음에 할례를 주셔서 그 나라 그 법을 이해하게 하십니다. 나에게 하나님 나라 세계관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위임하신 지도자들의 섬김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이시고 또 친히 기초가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셨고 나도 한 부분이며 동시에 그 성전으로 나아가 주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스데반에게 주신 믿음과 성령과 지혜와 은혜와 능력을 저에게도 주셨습니다.
주님의 나라에 살며 하나님의 법과 성전되신 예수님 안에서 예배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 도
주님이 허락하신 하나님 나라를 제 생각으로 제한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나라 세계관이 깊이 뿌리 박히게 하소서. 마음을 넓히고 손을 펴서 주님의 평화와 회해를 저해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의 법과 하나님의 성전이 어떤 것인지 보게 하소서.
모든 교회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믿음과 은혜와 능력을 내려주소서. 모든 민족이 하나되어 주님의 이름을 아래 한 몸, 성전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