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다녀갔다
스케치 떠나기 전날에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땅에는 상처가 남기도 하지만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두둥실 구름들이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내 마음을 유혹하곤 한다
어느때는 동물의 형상으로 어느때는 천국이 있을 듯한 풍경으로 구름위로 올라가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정말 아름다워 미치겠는 날, 하늘이...
그런생각도 했던적이 있다, 저정도로 아름답다면 생을 끝내는 날 서럽게 울지 않아도 될것 같다고...
비와 태풍으로 말끔하게 씻기운 도로는 매끄럽기 그지 없다
들을 지나고 산을 넘어 오는 가을 바람에는 가을 향기가 가득하다
향기속에는 나뭇잎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어 있고
온갗 들판의 이야기들이 주절주절 들어있는 것 같다.
오래전 아주 오래전 친구들의 웃음소리까지
바람에 굴러가다가 혼자는 외롭다고 이것도 주워담고
저것도 주워담아서일까
상큼함의 향이 입안 눈안에 가득차 오르고 있었다.
옛 집 마루아래 덕구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었다
주인이 신발을 신을라하면 저부터 이뻐해 달라고 살랑 살랑 꼬리치던 덕구
그 덕구가 하교길에 자전거 뒤에 실려 팔려가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무거운 가방이 메달린 내 자전거와
덕구를 비롯해 몇 마리의 개가 실린 개장사의 자전거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약간 싸늘함이 느껴지는 이맘때즈음이었는데
싸늘함과 어둠이 함께 내려버린 집 마당을 들어서기가 싫었었다
굳이 팔아야 했을까 싶은 생각에 엄마가 참 밉기도 했던 시절
그 가을날이다.
덕구대신 다른 강아지들이 짖어대고 있는 마을 마당에 앉았다.
새벽부터 울집 거실과 안방은 자박 자박 고양이의 잰 발걸음소리가 이어졌다
식구이고 가족이지만 ..최대한 조용 조용....마치 유령인듯이 그렇게....
침을 꼴깍 삼키는 순간마저도 미안함이 가득한 시간
현관문을 닫고 나서야 비로소 날개를 단듯 내달렸던 아침이
어느덧 해가 머리 정수리에서 내려 쬐이고 있다
비싼 시간이다, 오늘이란 이 시간은, 다른 어느 날에 비해서.
명덕리라는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우와..입구부터 감탄이 막....심장 폭발 직전까지였던 듯....흥분 그 자체였다
감탄사는 다 갖다 대입해봤다
옴마야...어머나...세상에...어쩌믄.....별별 감탄사를 다 갖다 붙여봤지만
어울릴만한 단어는 없었다
깨끗하다 말끔하다
그런 마을에 붉은 감들이 주렁 주렁 열려있다
감 색에 머문 마음도 온통 붉은 색과 노랑색에 물들어 버렸다
하얀 화지에 동화같은 마을이 그려질 것이다, 오늘은.
고무신 소리가 들려올것 같은 골목에
개 짖는 소리만 들릴뿐이다
몇 페이지 넘어가야 강아지도 우리에게 짖지 않고 반겨줄까?
빨리 빨리 넘겨봐야 겠다
바스락 바스락 바람이 먼저 넘겨 버리지만.
동화책 삽화보다 더 동화같은 세상이 나타났다
친구네 아버지도 보이고
돌아가신 어르신들도 보이고
해넘어간줄 모르고 메뚜기 잡던 오래전 시간들이 그려졌다
돌멩이에 걸려 넘어져서 무릎을 까였던 그 골목길
깡통이라도 하나 걸리면 뻥 차서 화풀이를 했을듯한......
주인공들은 쏘아 올려져 사라졌지만
한작품 한작품에 동화속세상이 펼쳐졌다.
그곳에 앉아있으니 많은 점수를 주었겠지만
아무리 봐도 아무리 냉정하게 한다해도
난 그림이 더 이쁘고 더더더 정겹다 말하고싶다, 실제 풍경보다..더더더....
어찌 이 풍경화를 보며 행복을 모른다 할수 있을까?
남들에게는 휴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유일하게 동화책속으로 소풍을 떠나는 날이다.
마음의 김밥을 싸고 꿈속으로 걸어들어갈수 있는 날.
감이 먼저 반겨서
감나무가 먼저 손 내밀어서
이미 모든 감각들은 붉은 감에 녹아 들었다
명덕리는 감나무고
명덕리는 가을동화였다
아름답고 또한 슬픈 사랑이 공존하는 가을동화.
병아리같은 색이었나 하면 연두색이 뾰족히 심술을 부리고
붉은 빛이 감돌았나 하면 노란 황금색이 불쑥 튀어 나오는 색채들의 다툼이 하루종일 보여졌다.
먼산 아래 초록이 아직이구나 싶다가도
초록아래 붉은 단풍색이 눈동자를 흔들어 놓고
동화속은 온통 가을이 물들어 넘겨도 넘겨도 잔잔한 가을 수채화 작품되어 버리곤 했다.
담을 타고 오르는 가을 꽃잎에는
풍요로움속에 여유로움이랄까 왠지 묵직하면서도 듬직한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봄꽃은 잠깐이라는 순간을 유혹할듯한데
가을꽃은 영원히 유혹할듯한 느낌.
봄은 잠시 외도일수 있으나 가을은 나무처럼 뿌리박힌 사랑인듯 하다.
왠지 완성도에서나 모든 면에서 봄을 이겨 버릴듯한 ....
독야청청 혼자 으시대는 봄에 비해
가을 꽃들은 어울렁 더울렁 어우러짐에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도 모른다.
봄꽃 찬란할때 시인은 그랬었다
환장할 날이어서 미치겠다고...너무도 화사해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가을꽃에는 어떤식으로 말할수 있을까?
그정도로 가을꽃들은 화사하진 않다..침착함과 고요함과 깊은 색감으로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 어우러짐에
나 또한 어울려보자고 헤치고 들어가도
내가 보이지 않는다
메뚜기로 변했는지 영혼은 멀쩡한데
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어울림인지도 모른다
있는지 없는지 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 찰나.
몇시간 놀았다
그림자가 길어지고
바람에서도 찬기가 뿜어져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어깨가 움츠러 들고 산 그림자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때쯤이 클라이막스일것이다
무서운 산 그림자는 가라고 쫓는 손길일테니까.
아이들이라면 작은 손 모으고 기도하는 그 순간일것이다
하산해야 하는 시간이 돌아 오는 것일테고
버스라면 내려야 하는 시간이 돌아 오는 것일게다
막바지 동화책속을 거닌다
언제 다시 돌아 와 이 순간을 기억할까 싶은 마음으로
이곳 저곳 골목 골목으로 시선이 멈춘다
빛은 더 요염해졌고 더 높아졌다
사이가 넓어지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가
더 놀다 가라며 가랑잎이 데구르르 굴러와 신발에 앉는다
그러고 싶다
머물고 싶다
일박 이일?
아니 삼박 사일?
아니 이 가을 동안 쭉 계속?
붙잡아 주는 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돌아 갈 집을 잃어버리는 치매가 한 일주일 내 몸에 머문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그런 꽃 가루를 뿌려주는 천사는 없었다 명덕리 동화책 삽화속에는.
세상에 우짜면 이렇게도 아름다울까?
가야 하는 시간위로 햇살은 더욱더 마지막 빛을 발하며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마치 가지 말라고 있는 힘을 다해서 잡는 것 같았다.
다시 내려야 하는데, 더 있다가 가야 하는데
버스는 달린다, 잘도....달린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였을 담배창고의 고전적인 색감이
노랗게 물든 황금들녘의 수많은 울렁거림들의 속삭임이
잡아보자고 잡아보자고 매달려 보지만
질서라는 이성이 그들의 손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한작품 한 작품 실을 꼬이고 꿰매서
명덕리의 가을이란 동화책을 만들어보면 오랜시간 동안 가슴에 남을까나?
잊히지 않고 남을까나?
저리도 불타오르는 열정이 머금은 명덕리의 가을 맞이
다시는 두번 다시는 오늘같은 풍경이 그대로 있지 않을 명덕리 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아쉬움과 미련의 끈을 끊어 놓지 못한채 헤어지고 말았다
어떤식으로든 변할테고 어떤식으로든 흘러갈테지.......세월이란 바퀴위에서.
대추와 감과 밤
어느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던 하루
가을의 전령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만났던 천안 명덕리
길고도 먼 여정의 하루였지만
피곤함이 아닌 충만함을 한아름 안고 돌아 왔다
순간의 선택을 너무도 잘 해서
너무도 너무도 아름다운 작품들을 볼수 있었으니
이제는 저만치 등 보이며 가는
가을이에게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 보내줄수 있을 것 같다
잘 가라고...또 보자고....내년에도 부탁한다고..라며..
차 한잔 마시며
정겨운 수채화와 그리고 음악에 .....
함께 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멋진 작품 실제로 볼수 있어서 너무도 좋았습니다
제주 연휴사생때뵙겠습니다
첫댓글 명덕리에 취하고,
작품에 취했던 하루가,
남옥쌤 글속에 영화필름 처럼 들어있네요.
긴시간 지하철안에서,
잘 보며~
추억의 한장이 되어버린 아름답던 하루를
떠올려 봅니다~~~♡
글이 있어 작품들이 돋보입니다
한획 한획 주옥같은 단어들이
이리도 많은지 심심하면
작품감상 하면서 읽고 또 읽어 보렵니다
비록 참석을 못 했지만
대리 힐링이 되는것 같아요
아름다운 마을이 상상이 되네요
기회되면 찾아 가 보고 싶어져요 ~
가으내내 쭉~~~ 같이 머물고 싶다고
얘기나눈 일인이네요!
어디를 둘러봐도
맘이 벅차 현기증까지
났다면~~~~
안달병이 도졌다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