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고통을 받고 있다. 아버지가 어떤 이유인지 감옥에 있다. 나머지 가족들은 어머니의 노동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 상태가 위태롭다.
국가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정도로 그 가정을 돕고 있다.
그 가정은 다시 집세 문제로 고통을 받는다.
이 아이는 예수님을 믿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도움으로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할아버지를 만난다.
이 아이는 참으로 훌륭하다. 이 위기 가운데 예수님을 찾고 올바로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으니.
이 시련은 아이를 단련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는 훌륭하게 성장할 것이다.
그런데 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룬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가 감옥에 간 것도 복이고,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던 것도 복이다. 그의 어머니가 술병으로 인하여 몸져 누운 것도 복이다.
국가가 이 아이를 챙겨주지 못하는 것도 복이다.
이런 고통을 통해 이 아이는 시련을 견디며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아이는 영양 실조에 걸릴 가능성이 많다. 정신적으로도 왜곡될 수 있다. 흔히 알콜 중독자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그렇게 되는 것처럼.
영양 실조에 걸리면 또다시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나게 해주실 것인가?
그러니 염려할 필요가 없는가?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 내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서는 안되는가?
또 '나'들이 모여 사는 국가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서는 안되는가? '나'들이 십시일반하여 내는 세금으로 편성되는 국가의 예산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서는 안되는가?
'나'들이 합의하여 만드는 법을 통해 이런 아이들을 보호해주면 큰 일 나는가?
동화 작가 할아버지의 역할을 정치인이 감당하면 천벌을 받게 되는가? 오로지 선한 양심을 가진 시민 개개인이 선행을 해야만 하는가?
그 아이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는 동화 작가 할아버지가 계시다면 왜 그 아이의 글을 일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 정치가는 존재해서는 안되는가?
국가 예산을 가지고 이런 아동들의 생계와 학업을 지원한다면 그 아이가 성장하여 그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인가?
그 아이가 국가의 예산으로 영양 실조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힘이 세어져서 남에게 해를 입힐 것이 두려워서 국가는 이 아이를 돌보지 않는 것인가?
이 아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 멋지게 예배당을 건축하는 교회들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서는 안되는가?
교회 예산을 가지고 이런 아이들에게 사용하면 예수님이 진노하실 것이 두려워서인가? 또 그 교회의 목사님이 이런 아이들은 도우라고 그 교인들에게 설교를 한다면 당장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내리실 것인가?
그 교회에 정치가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예산을 제대로 편성하고,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 이런 아이들을 보호해주라고 말한다면 그는 천하에 못된 목사님이 되는 것인가?
자기 아들에게 목사직을 세습하는 일에는 목숨을 거는 분이 이런 아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외치고 행동할 수는 없는가?
이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대통령이다. 그는 법도 만들 수 있고, 법도 거부할 수 있으며 예산도 편성하고 집행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돈과 권력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 선한 사마리아인이 앉으면 이 나라가 거덜나고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인가?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이토록 정치에 무관심함으로써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으려는 것인가?
이 아이의 지역구에서 뽑힌 국회의원과 구로구청장과 시의원과 구의원은 또 무엇을 하고있으며 아이가 다니는 학교 교장 선생님,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들이신가?
왜 이 아이는 가까운 데서 사마리아인을 만나지 못하고 먼 데서 만나게 되었는가?
아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은 어떤 분이신가?
강도 만난 사람은 결국 레위인과 제사장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이 운명인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사마리아인, 레위인과 제사장이 더러운 놈이라고 욕을 해대는 사마리아인밖에 쓸 수 없으셨던 것인가?
우리는 구원받은 죄인들이다. 즉 욕을 먹는 죄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마리아인이다. 그러니 우리는 고통받는 이 아이들을 충분히 책임질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려는 일에 도우실 것이다.
사마리아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직업이 정치다. 정치의 목적이 공공의 복지이기 때문이다.
고통받고 있는, 인생에서 강도를 만난 '용욱이'들의 복지를 위해 우리는 정치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