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5 날이 저물 때에
아브라함에 이어서 롯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에 대한 이야기의 정황이 유사하기는 하지만 꼭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에 관한 말씀들에서 많은 유익을 얻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롯에 대한 말씀에서도 많은 유익을 얻습니다. 경계의 말씀도 얻고 소망의 말씀도 얻습니다.
1. 본문 1절은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왜 세 천사들 가운데 한 천사는 갑자기 사라졌을까 하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천사들 가운데 한 천사는 소돔을 멸망시키려고 왔으며 다른 천사 하나는 롯을 구하려고 왔다고 아는 체 하면서 주장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말 가운데는 그런 주장은 어리석은 것으로밖에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두 천사 모두가 롯을 해방시키는 때에 돕고 있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천군들 가운데서 아브라함에게 두 사자를 보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친근한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을 그에게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의 아들 안에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현현하셨다는 것은 특이한 호의로 베풀어진 것입니다. 사자들 가운데 한 사자는 위엄면에서 다른 천사들보다 월등한 자로서 주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가 언제나 중재자이시긴 하지만 그래도 그분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보다 롯에게는 더 모호하게 그분 자신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그 두 천사는 오직 소돔을 멸망시키려고 왔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모세가 언급하고 있기를 롯이 저녁 때쯤 되어 성문에 앉아 있었다고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롯은 손님들을 자기 집에 모시려고 날마다 하던 습관대로 그렇게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앉아있는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확실한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일인 듯합니다. 롯이 게을러빠진 사람들이 곧잘 하듯이 그런 상태에서 앉아 있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양떼들을 우리에 들어가게 할 때에 그 일에 함께 참여하기 위하여 목자들을 만나려고 나왔다는 추측은 그다지 가능성이 적은 것은 아니라고 우리는 인정합니다. 모세가 그는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며 아주 정중하게 손님들을 초청했다고 표현하고 있는 사실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왜 그 성문에서 있었는가는 분명치 않습니다. 롯이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나그네들이 그곳에 오게 되면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렇게 나그네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유가 아니면 그 동기는 알 수 없습니다.
2. 본문 2절은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입니다.
그 천사들은 그 거룩한 사람의 의향을 더 떠보려고 그렇게 선뜻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그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려는 것은 단지 저녁을 대접하는 것만 아니라 그 도시 사람들의 폭력과 그들이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부터 두 사람을 보호하려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두 천사는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것이 안전한 것처럼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자기들이 그곳 사람들의 구제 불능한 절망적인 죄악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었습니다.
만약 들짐승들이나 적군들의 침략을 예방하기 위해서 성문이 닫혀 있는데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밖에서 들어오는 위험보다 더 비통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잘못된 일미여 모호한 사실입니까? 그러므로 천사들은 그곳 사람들의 죄악을 더 지독하게 나타내려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롯도 그 천사들을 그곳 사람들의 공통적인 횡포에서 보호하려고 자기 집으로 오시라고 간청하고 있는 사실에서 그 두 천사가 행여라도 수치스런 일이나 피해를 입을까봐서 그 손님들에게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 본문 3절은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입니다.
이 말과 다음에 계속되는 말들로 모세는 그 천사들이 일반적인 손님들보다는 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롯이 무차별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환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그들의 태도와 의복의 차림에서 롯이 그들이야말로 범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떡을 하고 풍성한 잔치를 마련했던 것입니다.그리고 다시 모세는 그들이 먹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느 것이 필요해서 먹은 것이 아니고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있다가 그들의 하늘 나라의 신분을 나타내려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먹었던 것입니다.
4. 본문 4절 상반은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입니다.
여기 간단한 범죄 가운데서 모세는 소돔의 생생한 상태 묘사를 우리 앞에 제시합니다. 그것은 이 묘사에서 그 사람들이 이 가장 가증스런 범죄를 그토록 쉽사리 서슴치 않고 지으려고 공모했으므로 그들이 모든 악한 일들에 얼마나 악마적인 혼연일체가 되어 행동하고 있는가를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죄악과 방탕이 막대하다는 사실은 하나의 군대처럼 집합이 되어 적군들처럼 몰려와서 롯의 집을 포위하고 에워쌌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욕이 얼마나 맹목적이며 격렬합니까? 전혀 수치도 모르고 마치 짐승 떼처럼 몰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그 뿐 입니까?
그 거룩한 사람을 책망하듯이 위협하면서 모든 극단적인 방법으로 악한 짓들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그들이 광포하며 잔인한 자들입니까? 이 사실에서 우리는 또한 그들이 단지 한가지 악으로 감염된 것이 아니고 모든 범죄의 격렬한 상태에 완전히 빠져 있어서 그들에게는 수치감이라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에스겔도 그를 이런 최극단적인 타락으로 나아왔던 죄악의 시발점에서부터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겔16:49).
바울 사도께서도 똑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악을 행하면 그들은 소경의 상태에 던져버리시고 그들이 그런 상태에서 자기들의 가증스런 정욕에 노예가 되게 하며 그들의 몸을 치욕스럽게 하심으로 불경건함을 벌하신다고 합니다(롬1:18). 그러나 수치감이 정복되면 그 다음에는 정욕에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사악성과 횡포를 부리는 야수성들이 반 듯 수반됩니다. 그리고 또한 모든 종류의 죄들이 함께 뒤범벅이 되어 결국은 가장 혼동된 무질서가 야기되는 것입니다.
소돔사람들은 모두 자기들의 격분에 불타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모든 죄악을 닥치는 대로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반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죄가 그다지 용서받을 만한 것이 적다고 해서 그만큼 온후하게 취급을 받기는 거의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에게는 더 분명하게 제시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하고 조금이라도 죄악을 행했다면 그것은 더욱 더 가혹한 형벌이 내릴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5. 본문 4절 하반은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입니다.
모세는 신자들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많은 사건 진상들을 언급하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 무리들이 누구의 사주를 받고 그렇게 몰려왔는가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사실에서 그들이 죄악을 짓는 일에 기쁨 마음으로 자유 자제로 날뛰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호가 주어진 것처럼 즉시 그들은 집결됐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은 그들이 털끝만큼 남아 있는 수치감마저 완전히 결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늙은 사람들을 제재시킬 신중성이 결여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연령에 적합하게 어울리는 온건함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제재시킬 온건성도 전혀 볼 수가 없이 철저하게 무가치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마지막으로 모세는 영예에 대한 모든 것은 사라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나 늙은이나 한 가지로 그 도시의 모든 곳에서 함께 몰려 왔다고 그가 묘사할 때 자연 질서가 완전히 외곡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6. 본문 5절은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입니다.
비록 나그네에게 광포한 성질을 충족하기 위하여 수치스럽게 욕설을 퍼붓고 학대하는 것이 그들의 의도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 말로 그들은 그들의 목적이 다르다는 사실을 가장하고 있습니다. 마치 롯이 자신도 나그네로 살면서 알지 못하는 자를 도시에 들어오게 허락한 일에 잘못을 범했다는 것처럼 그 사람들은 손님들을 자기들 앞에 끌어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알다’는 말을 육욕적인 의미로 주해합니다. 그리고 헬라 해석자들도 그 말을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이 여기서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네가 우리 도시에 손님들로 데려온 자들을 알고 싶다고 말한듯합니다 성경은 정말로 ‘알다’ 라는 말로 수치스런 행위를 온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소돔 사람들이 천박한 언어로 그런 행동에 대하여 말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추론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악한 계획을 은익시키려고 그들은 여기서 롯이 알지 못한 사람을 그의 집에 맞아 들였다는 이유로 그 거룩한 사람과 거만하게 타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만약 소돔 사람들에게 나그네들이 오면 괴롭히는 습관이 있었다고 하면 이런 방법으로 모든 낯선 사람들을 그렇게 괴롭혔다면 과연 그들이 그 나그네들에 대하여 어떤 행동을 했겠는가를 상상해 낼 수가 있겠는가? 입니다. 롯이 지금까지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그들도 역시 언제나 욕정에 탐닉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롯은 자기의 손님들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의 딸을 그들에게 내놓겠다고 각오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성격의 사람들의 격노가 충족되지 않으면 전에도 얼마나 자주 자기 딸들을 그들에게 내어 주면서 사정했겠습니까? 지금 사실상 롯이 그런 위험이 지금도 임박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적당한 때에 그 손님들을 빠져 나가게 해야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견으로는 비록 롯이 그 도시의 상태를 알았다고 하지만 그들이 자기 집에까지 공격해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그에게는 처음 겪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천사들이 그 도시 사람들의 상태를 조사하려고 파송되었을 때 그들은 그처럼 가증스런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오랫동안 죄악가운데 자신들을 즐기면서 만끽한 끝에 결국에는 악한 자들이 격노에 찬 질주를 하여 도달하므로 그들의 멸망을 더욱 더 단축시키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소돔 사람들을 불러내심으로 그들의 사악스런 생활의 극단적인 행위를 드러내시려고 의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완전히 탐닉되게 하는 정신으로 그들이 죄를 짓게 담력을 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잔악한 행위는 그곳의 멸망을 더 이상 연기하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 거룩한 사람 롯의 대접이 두드러진 보상으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부지중에 사람들 대신에 천사들을 영접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의 집에 손님들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더욱 격심한 형벌로 다른 사람들의 수치스런 욕정에 보복하셨습니다.그들은 천사들에게까지 난폭한 행위를 저지르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의 모든 능력을 발휘되는 데까지 그들의 신성모독적인 분노로 인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하늘 나라의 영광을 멸시하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