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팬으로서 경기 외적인 면에 대해 느낀 점을 썼습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살다살다 이런 올스타전은 처음 본다. 아니, 사실은 안 봤지만.
망해버린 올스타전
개인적으로도 확 망해버리기를 기원했던 바르셀로나 초청 2010 K리그 올스타전이 진짜로 망해버렸다. 6만 석이 넘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는 절반인 3만 2천여 석만 채워졌는데, 그마저도 후반전 들어 재미가 없어지자 중간에 나가버렸다던가. 표값이 11만원, 제일 싼 표가 5만 5천원이나 했는데 말이다. '반응이 좋으면 내년에도 추진하겠다'던 연맹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이례적으로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려 팬들에게 사과하고 바르셀로나에게 유감을 표했다. 사과를 받아준 팬은 아무도 없지만. 주관사인 스포츠앤스토리 측은 금전적 손해와 팬들에게 먹은 욕으로 전 직원이 공황 상태라던가. 경기를 본 사람들의 환불 요구도 6일까지 받아준다던가.
경기 직전까지도 기사와 칼럼을 통해 이런 말도 안 되는 올스타전을 비판하던 기자들은 이제 타산지석을 이야기한다. 축구웹진 스포탈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100여 명의 축구팬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67%가 '이전처럼 중부 올스타 대 남부 올스타로 하자'고 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하련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K리그 팬으로서 말이다.
이번 올스타전은 실패를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어떻게 보면 씁쓸한 일이지만, 미래를 향해서는 하나의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성공을 통해서는 교훈 대신 안일함을 얻을 수도 있지만, 실패를 통해 얻는 것은 그야말로 쓰디쓴 교훈 뿐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득일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가장 큰 이득은, 앞으로 이런 어리석은 기획을 하는 간 큰 회사가 당분간은 없을 것이란 점이다.(그런데 확신은 못하겠다.) 2004년 바르셀로나, 2007년 맨유 방한까지는 좋았다. 소위 축구팬이라는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누구의 팬이건 간에 상업적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획기적인 이벤트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올스타전은 말할 것도 없고, 몇 주 전에 왔던 박주영의 소속팀 AS모나코도 그리 좋은 꼴은 못 봤다. 경인일보의 주관으로 인천 유나이티드와 친선경기를 열었지만, 비싼 입장권 때문에 관중으로부터 외면받은 것이다. 뜻밖의 관중 수에 충격을 받은 주최측은 급기야 후반전에 빈 좌석을 무료로 개방하기에 이르렀단다.
몇 년 사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2007년의 맨유도 사실상 1.5군이었고, 친선경기였기에 힘을 빼고 경기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몇 년 사이에 팬들의 눈은 더욱더 높아졌을 지도 모른다. 이제 박주영이 있을 뿐인 프랑스의 중위권 팀, 주전이 빠진 바르셀로나 정도로는 가치를 높게 매기지 않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정확한 내용은 뒤에 가서 말하겠지만, 아무튼 스포츠앤스토리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회사는 적지 않을 것이다.
프로축구연맹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인터넷 상에서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항상 있었지만, 이번 것은 정말 차원이 달랐다. 연맹 측에서도 부랴부랴 사과문을 올린 것도 이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변명 뿐이고, 비난 여론만 없었다면 5억원을 벌고 히죽거렸을 것이 뻔하지만, 결과적으로 '아 이건 안 되겠구나' 정도는 깨달았으리라 믿어본다. 두고 봐야겠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손실
손실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K리그 일정을 뒤로 연기하면서까지 바르셀로나를 대접한 연맹의 치명적인 오판, 바르셀로나에게 바친 30여 억원의 대전료(메시 문제로 일부는 받겠지만), 주전 2~3명만 얹은 스페인 3부리그 팀(스페인 팀의 2군은 2군리그가 아닌 하위리그에서 뛴다)과 싸워 구겨진 K리그의 자존심 등등 셀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얘기로 끝이면 글 안 썼다. 어차피 난 경기도 안 봤으니까. 그보다, K리그 팬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남들 다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번 바르셀로나 방한 일정을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다. 처음 바르셀로나 초청 올스타전이 기획됐을 때, 소수인 건 반대자였다. 다수로서 환호한 것은 유럽축구 팬들이었고, 축구경기장의 원래 주인인 K리그 팬과, 일부 축구기자들만이 '빼앗긴 올스타전'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이어 스페인대표팀 주전의 결장이 발표됐을 때, 반대자 그리고 환불자의 수가 '조금' 늘었다. 표값은 비싸지만,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다니 알베스, 무엇보다 메시에 위안삼는 팬들이 아직 더 많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메시의 결장을 발표했을 때, 비로소 반대자가 다수가 되었고, 환불 창구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위의 문단에서 'K리그 올스타'를 찾아볼 수 있었는가?
가장 큰 손실 - 끝까지 K리그 올스타는 들러리였다
올스타팀의 감독으로 초빙된 최강희 감독은 며칠 전부터 '바람직한 경기가 아니다'며 비판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결국 해야만 하는 경기임을 깨닫고, 바로 3일 전 경기를 치른 선수들을 모집해서 이틀간 열심히 훈련했고, 결국 경기에 임했다. 그 사이에 여론은 바뀌었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르셀로나 측이고, 바르셀로나에 지급한 대전료의 금액이고, 사실 20세 이하 여자월드컵 선수들에게 돌아갈 포상금 액수도 조금 영향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K리그 올스타와 K리그 팬들의 영향은, 없었다.
세계적인 팀과 경기한 K리그 올스타에게는 득이 있었는가? 마침 베스트일레븐에서 좋은 기사가 올라왔는데, 기사에 따르면 푸욜의 팬을 자청하며 푸욜의 출전을 바라던 김형일(포항) 선수는 "K리그 올스타로서 자존심이 상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밖에 이동국(전북) 선수는 "바르셀로나전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정성룡(성남) 선수는 "바르셀로나의 방한이 확정됐다면 출전하는 선수에 대한 변화도 없었어야 한다. 준비과정이 미흡했다." 김두현(수원) 선수는 "이겨야 하는 경기인지 아니면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플레이를 펼쳐야하는지, 선수들도 종잡을 수 없었다"고 밝혔단다. 선수들에게도, 영광스럽고 즐거워야 할 올스타전은 침울하고 허탈하기만 했다.
결국 과거가 된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우리는 오늘 K리그 올스타를 상대로 5-2 대승을 거뒀다. 이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지만, 조직력이 생명인 축구에서 3일 모인 팀을 상대로 이긴 건 자랑이 아닐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약간의 돈을 얻은 대신 한국 팬을 잃었고, 프로축구연맹은 푼돈을 얻고 사건의 공범이 되었으며, 주관사인 스포츠앤스토리는 돈도 잃고 이미지도 잃었다. 경기를 보러 간 팬들은 돈과 시간을 잃었는데, 올스타전을 위해 휴가를 냈다는 회사원의 슬픔은 누가 위로해 줄 것인가. 무엇보다 선수는 사기를 잃었고, K리그 팬들은 분노를 얻고 올스타전을 잃었다. 한국 말고도 팬이 많은 바르셀로나를 제외하면, 승자는 없다.
사실 여론에 따라 안티팬만 얘기했지만, 바르셀로나를 위해 '카탈루냐 이즈 낫 스페인'을 내걸려던 작자들이 끝까지 존재했다는 사실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도 파행으로 끝난 올스타전이지만, 그들은 3년 전 '히어 이즈 어나더 올드 트래포드' 사건으로부터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실패가 준 교훈을 받아들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능한 연맹도, 개념없는 사대주의자(혹시 모를 오해를 위해, 모든 유럽축구팬을 칭하는 말이 아님을 밝혀둔다. 경기장에 간 사람 모두를 말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도, 힘없는 K리그 팬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칼럼 하나 쓴다고 2시간을 소모한 편입 준비생도, 여전히 갈 길...은 멀구나.
<참고자료>
스포탈코리아 "싸늘했던 바르사전, K리그 올스타전 앞으로 운영은?"
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00805135748&key=&page=2&field=§ion_code=10
김정남 K리그 기술위원장(전 울산 감독)의 인터뷰.
OSEN "김정남 위원장, 팬들이 원하면 올해처럼 올스타전"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7270090
K리그 홈페이지 "FC 바르셀로나 초청 K리그 올스타전 2010 관련"
http://www.kleague.com/news/news_k_news.aspx?select=&search=&ord=no&page=1&no=320
스포츠조선 "바르셀로나전 주관사 대표, 정신적 공황 상태다"
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ut=1&name=/news/sports/201008/20100806/a8f74128.htm
베스트일레븐 "선수들 '이구동성' 올스타전 변해야 한다"
http://besteleven.com/Country/news_01_view.asp?iBoard=6&iIDX=28290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번 사건이 터져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네요 만약 메시 불출전 예고가 없었거나 올스쿼드로 왔다면 이런 비난하는 분들은 정말 K리그 팬밖에는 없을것이고 즐거워하는 유럽츅빠들을 보고 연맹은 다음해에도 진행을했을지도 몰랐을 지도...지금 일부 비판도 k리그 자존심문제나 잃어버린 올스타전 보다는 바르셀로나의 2군으로 경기를 진행해 흥미를 잃어 시작된 비판이 있어 씁쓸하네요
애시당초 '해외 유명 구단'초청경기 자체가 가질수밖에 없는 한계죠. 차라리 돈 몇푼 더 들여서 예전에 일본이 8~90년대에 인터콘티넨탈컵(도요다컵)을 유치한 것처럼, 최고의 경기력(명문팀이건 아니건간에)을 보장할수 있을 대회를 유치할바 아니라면, 안하는게 낫습니다. 이거 전에 AFC쪽에서도 국내리그에 악영향을 줄수 있다며 한번 클레임 걸었을거에요. 자기나라의 축구문화가 약하다는걸 전 세계 만방에 보여주는꼴 아닙니까.
과연 바르셀로나가 한국팬을 잃었을까요? 그렇게는 생각안되네요. 그리고 몇 푼 되지도 않는 위약금 주고, 메시 등의 주요선수들을 리그나 대륙대회에 출전시키는게 금전적으로 훨씬 이득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