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8일(토)
요한복음 19:14~22
십자가에 못 박히신 만왕의 왕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몇 가지를 느낍니다.
첫째, 예수님의 체포부터 사형까지의 과정이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목요일 밤 대략 9시부터 자정에 체포되신 예수님이 금요일 정오(제육 시)에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매달리십니다. 대략 27시간 만에 체포부터 사형까지 집행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무엇이 두려워서 이토록 빨리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빈틈없이 준비했던 것 같고, 이 작전에 실수란 허용되지 않는 집요함을 보였습니다. 저는 이런 유대인들의 태도에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을 느낍니다.
둘째, 사도 요한의 증언은 예수님의 육체적(혹은 심리적) 고통보다는 재판이 이루어지는 형식적 과정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에서 보듯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겪어야 했던 폭력성과 고통에 진절머리를 느낍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것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예수가 어떠한 법적 절차를 통해 처형당했는지를 나타내고자 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셋째, 사도 요한의 신학적 주장은 “과연 누가 왕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빌라도에게 외쳤던 것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국가나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이용하여 자기 야욕을 채우려는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기의 왕이라고 주장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이 정치화되었을 때, 얼마나 거짓말을 서슴없이 늘어놓는지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십자가에 붙인 패의 기록처럼, ‘나사렛 예수는 유대인의 왕’입니다. 빌라도는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는 유대인의 압력을 이겨내고,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주장을 당시 통용되던 언어(문화)를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넷째, 한 사람의 죽음이 온 세상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자기 죽음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온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제가 믿고 섬기고 있는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일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고 믿을 때 저에게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제가 사순절 기간 예수님의 죽음과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하며, 사람들에게 그 은혜를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