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오기륭
여시들이 인조편을 재밌게 봐 줘서 답례로 인목왕후 편 가지고 왔음여. ^*^
우리는 흔히 인목왕후를 인목대비라고 부르지만 인목은 왕후의 시호이고 대비로 부를때는 소성정의왕대비 라고 부르는게 맞아.
인목이라는 시호는 죽고나서 더해진 왕후의 시호거든. 그러니까 살아있을때 대비로 진봉(왕비에서 대비로↑)되면서 광해군이
소성과 정의의 시호를 올려준거야. 그래서 대비일때는 소성정의왕대비가 맞고, 죽고나면 우리 보통 사극에서 '대행대왕' 혹은
'대행왕후' 라고 칭하지? '대행대비' 라는건 업떠여. 죽은 왕을 대행대왕, 죽은 왕후를 대행왕후라고 하는거야.
그래서 저 대행왕후일때 인조가 추가로 내린 시호가 '인목' 이기 때문에 왕후일때는 인목왕후라고 불리는거지.
실제로는 살아있을때 인목왕후라고 안 불려.
그냥 중궁마마, 곤전마마 이런식으로 불리는거지. 대비때도 소성정의왕대비마마 이게 아니라 그냥 대비마마 혹은 자전마마.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인목왕후 이야기는 야사가 90%라고 보면 됩니당.
말 그대로 '추측' 혹은 '썰' 이에영. 그냥 재미로 보는거니까 개그에 다큐로 응시하면 나 글 지워버림(...)
난 유리심장에 쿠크다스심장이니까... 한번 부서지면 다시 굽기 힘드로... ☞☜
우선 인목왕후는 김씨야. 본관은 연안.
연흥부원군인 김제남과 그 부인 노씨 사이에서 1584년 출생. 임진왜란이 터지던 1592년엔 겨우 8살.
왜란이 종전되고 아버지인 김제남은 현감을 거쳐 이조좌랑에 올라있던 상태.
그러다가 선조의 정비였던 의인왕후 박씨가 승하하지.
그리고 계비를 맞아들이는 과정은 선조가 하도 미친놈이라 몇몇 여시들은 알거야.
의인왕후 승하 후, 신하들이 선조에게 '전하, 곤전의 자리는 하루라도 비워둘 수 없으니 새 곤전을 맞으시옵소서.' 라고 고함.
선조가 '지랄들 마라. 내 나이가 오십하고도 하나인데 처녀장가를 들라고? 미친놈들.' 이러는 바람에 신하들이 강제 셧업.
그랬더니 사흘뒤에 불호령이 떨어짐.
선조가 '야 이 정신나간 것들아 니들은 군주가 신하들 간언에 한번에 좋다고 하는거 봤든?'
그제서야 눈치를 깐 신료들이 다시 중궁을 간택하시라 빌었다지. 그래서 전국에 간택령이 떨어지는거야.
사실 이 당시에 선조는 후궁이었던 인빈김씨를 총애했고 그 아들이었던 신성군도 전에 총애했었는데 신성군이 의주행궁에서
뙇!하고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 이후로 부터는 선조하고 인빈 관계도 또이또이 해졌다는 말들이 있더라고.
그런데 항간에는 인빈이 선조에게 처녀장가를 들라며 소근소근 했다는 말도 많아.
세자였던 광해군을 견제하려면 왕후가 낳은 '적자' 가 필요한데 아무래도 후궁중에 누구 하나 올리는 가능성 보다는 처녀장가
드시라고 고해서 하는 편이 낫다고 머리를 썼는지도 모르지.
뭐 어찌됐든 선조의 계비로 김제남의 딸인 19살의 김씨가 간택이 되는거지.
야사에는 어머니인 노씨는 늙은 왕에게 시집 보내느니 단체로 죽자며 했다지만 김씨 본인이 자청했다는 말도 있더라고.
이 야사가 사실이라면 어렸을때부터 야망 쩌는 언니였었던둡.
여하튼 가례 당시 선조는 51세, 인목왕후는 19세. 31세의 나이차이를 뛰어넘었지. 지금으로 따지면 이슈감이다.
여하튼 입궁한 중궁김씨는 입궁하고 바로 회임한뒤 1년만에 선조의 적녀인 정명공주를 낳아.
그리고 다시 3년 뒤에 유일한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까지 낳지.
계축일기에는 회임한 중궁을 유산시키기 위해 세자인 광해군 측에서 선조의 승은을 입은 상궁 개시(개똥이)와 세자빈 유씨가
작당하고 중궁을 모해했다는 부분이 있어. 그런데 사실 계축일기의 작가 자체가 인목왕후를 모시던 궁녀가 쓴 거라서 날조 되었을
가능성 100%임. 광해군 일기 자체도 인조반정 일으킨 서인들이 쓴거라서 날조확률이 높은데 계축일기는 더 할거야. 분명.
이 영창대군은 태어나서 죽는날까지 세자인 광해군의 자리를 위협해. 선조는 사실 광해군이 똑똑하기는 하지만 후궁소생인걸
늘 불만으로 여겼어. 왜냐. 선조는 평생을 '신분 컴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는데, 선조 이전의 이성계 제외 12대 왕들은 모두가
왕후의 소생이었어. 이러쿵 저러쿵 해도 어쨌든 왕후가 낳은 아들들이었는데 선조만 중종의 후궁인 창빈안씨 소생의 덕흥대원군
의 아들이었지. 왕의 손자이긴 하나 후궁이 낳은 왕의 손자 였던거야. 그래서 선조는 '조선 최초의 방계승통 임금' 으로 불려.
이랬던 컴플렉스 때문에 선조는 늘 광해군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왕후가 낳은 영창대군을 싸고돌기 시작해.
그러면서 '소북파' 라고 불리는 영의정 유영경을 비롯해 그 파벌에서 광해군을 폐하고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자는 말이 나와.
그런데 이런 상황을 중궁 김씨는 '난 아무것도 몰라요' 했을까?
인목왕후를 비롯해 남편과 51세의 차이가 나는 정순왕후 등의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왕후들의 입궁 목적은 분명 '정치적' 인
것이었지. 이 왕후들도 그런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들과 자신들의 집안에 유리한 베갯머리송사도 한게 꽤 많다고 해.
그런데 여기서 아들까지 낳은 중궁 김씨의 위세는 더 했겠지. 게다가 세자인 광해군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지아비라.
아마 꽤 해 볼만하다고 느꼈을거야. 물론 선조가 살아있을때에는.
그러다 갑자기 선조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얼마 안 지나서 승하하게 돼.
선조는 원래 소화불량이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다 중풍까지 온거지. 사인은 상궁이었던 개시가 올린 찹쌀로 만든 약밥 때문
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인목왕후 측은 이걸 들어 광해군을 폐위할때 선조를 독살했다고 하지.
그런데 사실 선조의 독살설은 그저 '설' 이라고 해. 선조가 원래 소화불량으로 내내 고생했기 때문에 찹쌀같이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물은 까딱하다간 죽음에 이를수도 있거든.
선조가 승하하자 영창대군을 지지하던 유영경은 똥줄이 탑니다. 그래서 대비 김씨를 부추기게 되는거지.
'마마, 영창대군께서 두살 이시오나 우선 보위에 올리시고 마마께옵서 수렴청정을 하시면 되는것 아니겠사옵니까.'
라고 고하지만 사실 이때만해도 소북파 보다는 대북파의 힘이 더 세져서 상황을 읽은 대비는 포기하게 되는거야.
결국 광해군이 왕위에 올라.
이후 대비로 진봉 된 김씨는 궁에서 계속 지냈지만 대북파가 화근이 될 수 있는 대비김씨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그냥 둘리 없지.
광해군의 친 형인 임해군까지도 죽여버렸는걸.
결국 역모의 죄를 쓰고 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은 사약을 받고 죽어. 어머니인 노씨와 어린 동생인 천석은 제주도로 노비형을
받고 떠나게 되지. 그리고는 영창대군마저 대비와 떨어뜨려 강화도로 유배를 보내버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축일기는 대비가 억울하다 라고 적고있지만, 대비가 자신의 아들과 얌전히 살기를 원했다면 과연
이렇게까지 죽임을 당했을까. 사실 임해군도 자기가 더 형이고 장자이니 광해군보다 자기가 더 왕에 맞다며 하도 떠들고 다녀서
대북파에서 죽인것도 크거든. 그런데 대비가 영창대군이 왕재네 뭐네 이러고 다니지 않았고 몸사리고 얌전히 살기를 원했다면
아홉살 난 영창대군이 귀양지 방 안에서 불에 쪄죽는 참사는 없었겠지. 사실확인이 불가능 한건, 광해군일기 조차 서인세력에서
집필했기 때문에 분명 영창대군의 죽음에 있어서도 날조가 있었을 거라는거야.
광해군의 실수 중의 하나라면 어찌되었든 서모인 대비를 경운궁(덕수궁=서궁)에 유폐하고 그 시호를 다 거두었다는 점이
겠지. 대비의 칭호마저 폐하고 선조와 가례를 올릴때 받았던 패물이나 옥책, 그 외 다른 물품들까지 다 거둔채 폐비를 시킨 뒤
'폐비마마'도 아닌 '서궁' 이라 칭했으니.
인조반정 후 인목왕후는 광해군을 잡아다가 본인이 적은 광해군의 36가지 죄목을 하나하나 적어서 그것을 광해군더러 직접
읽으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선조 독살설 등을 비롯해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더 많았어. 결국 읽다가 열뻗친 광해군은 피토하고
그 자리에서 실신. 대비는 그 이후 대왕대비가 되고 다시 복권되어 창덕궁에서 지내다가 49세로 승하했어.
뭐 여하튼 이 글의 요지는 인목대비=나쁜년 이 아니라 역사는 다른시각으로도 봐야한다는 거.
하지만 계축일기는 뻥카가 너무 많다고 평해주고 싶으다.
한중록이 혜경궁 본인이 본인 집안을 복권하기 위해 엄청 억울하게 써 놓은것 처럼.
다른 탑3중의 하나인 인현왕후전도 인현왕후=착한년, 장희빈=나쁜년 이래놔서 좀 짜증나.
그럼 이만 끗.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나도 만화로 봤었즤.... :-) 그래서 그거 보고 아 존나 광해군 저새끼는 나쁜놈이구나 싶었는데.. 머리크고 나니 계축일기가 날조된거라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빡쳤나 몰라.
ㅋㅋㅋㅋ 광해군과 인목왕후는 서로의 시선에서보자면 평가가 180도 달라져서 정사도 들어봐야되고 야사도 들어봐야되고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적서차별등.. 복잡하다 ㅋㅋㅋㅋ
진짜 인목 개같은 년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난 솔직히 중립외교한 광해하르방 편이라 그런지 몰라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광해하르방 너무 불쌍해서 나 지금 울고 있음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자라에서 피를 토하고 실신을 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솔직히 지가 죽은 듯이 있었으면 영창대군 그렇게 죽고 그렇게 폐서인됐을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도 광해군 불쌍해 죽겠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들인 폐세자 질 얘도 지 애비 닮아서 존나 똑똑했다고 하던데 씨발!!!!! 인조 개새끼!!!!! 인목도 존나 싫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시 장가 든 선조도 존나 개새끼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이버 조선왕조인가 거기서 광해군한테 혜종이라는 시호 올렸던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엉엉 광해 ㅠㅠㅠㅠㅠ
인조나 그 세력들때문에 광해군이 패륜이다 어쩐다 말이 많았지 백성들한테는 진짜 좋은 왕이였다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역사의 피해자 중 한명임 광해군은.. 그래도 최근 들어 재조명돼서 다행이긴 하지만
오히려 전란 끝나고나서 분조 이끌면서 선조 병석 누워있을때도 조정 돌본건 광해군이었어. 대동법 시행 제일 처음해서 백성들한테 부담 덜어주려고 한것도 광해군이야! 근데 서인 이 씨발놈들 진짜 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오 글쿠낭.. 잘 읽고간다!! 광해군 안쓰러ㅠㅠ
선조나 인조나 진짜 싫어 아들한테 열폭하는 찌질한 아버지임ㅡㅡ
잘 읽었어!! 그 놈의 정치가 뭐고 권력이 뭐길래.. 쯧쯔
아 안타까운 광해군.... 난 조선이 광해군폐위하고 인조가 등극하면서 망테크탔다고 생각하기때문에.. 인목왕후 영창대군 그 지지세력 싹다 죽였어야 했다고 생각해...영창대군에게 미안하긴하지만... 청나라랑 잘 지내면서 근대화만 잘 받아들였어도 일본한테 그렇게 당하진 않았을텐데...ㅠ
광해군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운 인물이야.. 아버지가 고따구만 아녔다면 광해군은 어쩌면 더 큰인물이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는지라
왜란 터지고 나서 전장을 뛰어다는것도 광해군이고 왕실에 떠난 민심 수습하고 다닌것도 광해군이였는데 그런 지아들 의심만하고 질투하고 존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인목대비보다 난 선조가 더 시르다 시불노무 시끼ㅠ 어릴땐 똘똘하던게 늙으면서 아집만 생겨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폐모한 것도 아마 광해군의 의지는 아니였을거야;;; 광해군에 대한 역사적 책을 읽었을때는 이미 광해군의 측근 강홍립이라던가 그런 사람들은 인목왕후라던가 그런 사람들을 몰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고 광해군은 그걸 막을 힘이 없었던 거 같아. 아마도 대북파의 힘이 쎄니 막을 여력이 없었겠지. 나라 살림으로 힘든데, 그런 것까지 하는게 참.... 나는 조선왕조 왕들 중에서 진짜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왕은 세종, 광해군, 정조 이 셋밖에 없다고 봐;;
조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