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받은 자이니 저도 사랑을 베풀기를 기도합니다.
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가 백 데나리온 때문에 이를 가는 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용서하고 용서받아 마음에 앙금이 남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으로 오늘도 제 영혼이 새롭게 되길 원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9.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본문 주해)
29~33절 : 아합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악한 왕이 탄생한다.
그의 평가는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기록의 경신(更新)이다. 그 아버지 오므리가 이전의 왕들보다 더 악하다고 하는데 그 아들 아합은 오므리보다 더 악하다는 평가이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22년 통치하는 동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아합은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바알을 섬겨 예배했다.
여로보암보다 훨씬 더 나간 것이다.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렀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으며, 더 나아가서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였다.”(31절, 새번역)
이제는 우상 숭배로 모자라서 엣바알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이다. 바알신의 제사장이었던 엣바알의 딸 이세벨은 얼마나 바알종교에 충실한 여자였겠는가?
그러므로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22년 통치하는 동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이때 아합의 철권통치에 대항했던 선지자가 바로 엘리야이고, 그래서 아합의 이야기는 북이스라엘 왕조에서 가장 많은 양(16:29~22:40)이 기록된다.
34절 : 열왕기 기자가 아합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갑자기 끼워 넣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합의 시대에 얼마나 가치 없게 여겨졌는지, 또 바알 종교가 성하니 백성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무시하게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사건이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수6:26)
‘여리고 성을 건축하지 말라’라는 이 말씀이 제대로 선포가 되었다면 여리고성을 재건하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아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도 않은 실정이었다. 온 나라가 바알숭배로 가득하니 여호와의 율법을 전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고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히엘이라는 사람이 여리고 성을 재건하려고 터를 쌓을 때 맏아들 아비람이 죽고 성문을 세울 때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된 것이다.
(나의 묵상)
오므리와 아합은 하나님 앞에 최고로 악한 자들, 바알을 숭배하는 ‘나쁜 놈들’이라고만 알았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묵상을 하면서 여러 주해를 읽으니 이들의 시대가 북이스라엘 역사상 최고 부국강병을 이룬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오므리나 아합이 이룬 업적 같은 것은 성경에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왜? 성경에 기록될 가치가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지 역대지략에나 기록될 내용들이라는 것이다. (역대지략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영적인 면을 다루지 않는 역사적인 기록물로 알려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백성들은 부국강병으로 나라를 튼튼히 하는 왕들을 환영했으리라.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를 함께 반기며 섬기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기록될 가치가 없는 내용이지만 인간들에게는 언제나 환영받는 내용인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 하겠는가?
어찌하든지 이 나라를 잘 살게 하여 국민들을 잘먹고 잘살게 해 주는 지도자가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라든 개인이든 예수님 없이 풍요로워지면 타락의 길을 가게 되어 있다. 악한 인간의 본성이 죄짓는 일 말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오므리나 아합의 그 시대가 잘 살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철저히 외면당한 시대였다.
하나님 말씀을 외면함으로 어떠한 불행을 당하는지 또 말씀이 얼마나 엄중하게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오늘도 본문에서 보여준다.
바로 34절 말씀이다.
아합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말씀이 뜬금없이 나온 것이다.
‘여리고 성을 건축하지 말라’라는 여호수아를 통한 말씀이 제대로 선포가 되었다면 여리고성을 재건하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아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기는커녕 알지도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온 나라가 바알숭배로 가득하니 하나님의 말씀은 철저히 외면당한 것이다.
그 결과 히엘이라는 자는 두 아들을 잃고 만 것이다.
그런데 아합의 업적은 역대지략에나 있지 성경에는 다루지도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악하디 악한 왕에 대해 성경은 많은 지면(16장~22장)을 할애한다.
그 이유는 꼭 해야 할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지적하는 선지자(엘리야, 미가야, 엘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돈, 성공, 권력, 명예 등과 자기 사랑이 우상시 되는 오늘날에, 그와 같은 것들은 주님 앞에 다 배설물로서 역대지략에나 기록될 것들이지만, 여호수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최고로 악한 왕의 시대를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지자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는 것임을 오늘도 보여주시는 것이다.
생명책에 기록된 나의 이름을 생각해 본다.
그것은 살면서 행한 시답잖은 나의 행실 때문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주님로 고백하며 예수님께 연합되어 살기를 원하는 믿음 때문이다.
(묵상 기도)
주님,
성경에 기록된 말씀만이 마음에 심겨지게 하시고
성경에 기록된 믿음만을 본받게 하옵소서.
세상에는 인간들의 공적을 치하하는 무수한 기록들이 있으나
주님 앞에는 다 배설물이니,
‘나는 이런 쓰레기를 모압네’ 하고 자랑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허무한 입김이요, 곧 사라질 안개와 같은 인간사에 골몰하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