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처음 배운건 국민학교3학년 쯤일겁니다. 그때는 어린이용 자전거 같은 여유가 시골에는 없었서 페달이 발에 제대로 닿지 않아 앞 부분으로 겨우 디디면서 논 두렁에 몇번 쳐박으면서 배웠습니다. 형이 뒷 안장을 잡아 주다가 어느 정도 가면 손을 떼는 전통적 교육법에 충실히 따라 배우고 나니 아버지 막걸리. 담배 심부름. 옆동네 경조사 부고. 청첩장 돌리기 같은 임무가 주어지는게 시골 아이들 생활이었죠.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시내에 있는 12킬로 떨어진 학교까지 교통수단이 되었습니다.첫 3일간만 길을 익히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가는 사치가 주어졌습니다.학교가기 바로전에는 큰 고개가 있어서 저학년들은 끌고 올라가는 학생도 많았어요. 한겨울에도 자전거 페달을 밟아 고개를 넘어가면 입에서는 증기기관차처럼 김이 뿜어져 나오고 숨이차서 한참 쌕쌕거리다 짧은 경사지를 브레이크 좀잡으면서 내려가면 학교정문입니다. 거기는 선도부나 기율 담당 선생님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어서 언손의 장갑을 벗고 교복 호크를 잠금니다.거울을 안보고 잠겼겠지 하다가 가끔 잘 안 잠겨서 선도부에 잡히는 재수 없는 날 도 있습니다.자전거 보관대에 자전거를 세우고 25원의 보관료를 내는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죠.저보다 훨씬 윗골짝에서 하루 50리를 통학하는 윗골짝 애들이 줄지어 달려내려 오는것은 하나의 장관이었죠 . 아랫 동네에는 사과 과수원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전국체전 은메달도 땄고 나중에 프로선수까지 했는데 이친구에게도 제 자전거 타기는 밀리지 않는 속도였죠. 그러다 봄이 오면 이제 검정색 두꺼운 교복이 큰 애로사항입니다.춘추복이 없어서 더위로 애를 먹었어요. 길가에는 뱀들이 축늘어져 낮잠을 즐기고 있고 대지는 달아올라 춘추복이 없는 당시는 보통고역이 아니었죠. 모자는 책가방 중간에 쑤셔 넣고 교복웃통을 벗어 자전거 앞에 매달기가 보통이고 여름 비오고 나서 길에 모래. 자갈을 깔면 평소 4~50분 걸리는 통학길이 한시간 반쯤걸려 아침잠을 설치거나 밥을 대충먹고 나서야 하죠. 더울땐 제방 옆 찬물내기에서 멱을 감기도 하죠.
70년대말 혼란기에 가끔 농고다니는 불량한 형들이 자전거 세워두고 길막고 돈을 걷는 경우도 있습니다. 숫자도 여럿에 낫을 가지고 다니니 어쩔 수 없이 그형들 갈때까지 멀치감치 기다려 두어시간 늦게 귀가하거나 논두렁을 타고 둘러서 집에 가는 일이 매년 두세번 연례 행사처럼 있었죠.비가 세계 오면 그날은 자전거를 세워두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갑니다.그날은 마음에 담아둔 이쁜 여학생을 가까이 볼 수 있는 날이라 아침부터 가슴이 설레었죠. 이 여학생네 집은 방앗간에 젖소도 여러마리 키우는 유복한 소녀라 그런지 살결이 뽀얀 새침한 미소녀였어요.자전거 통학을 할때도 이 여학생이 버스를 타려고 제방위 길에 나오는 시간에 맞추어 저기 뒤에 오는 버스를 힐끔힐끔 보며 속도를 조절하며 달리는데 속 모르는 친구들은 "야.학교 늦겠다 좀 밟아라 " 버스가 가까우면 그 여학생이 버스에 타기전 얼굴을 보고 지나가야 하니 전속력으로 달립니다.친구들은 "야. 아직 시간 있는데 왜그래 세게 달리니 숨좀 쉬자."하면서 불평을 해댔죠. 이 여학생의 사촌이 같은 또래인데 중학교는 다르고 고등학교는 축구 선수 체육특기자로 입학해서 같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 이 친구는 고3때는 시내 같은 자취집에 살았는데 밤 12시가 되면 쿵 하고담넘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운동선수인데도 담 넘을때 매양 쿵소리가 나는것은 항상 술먹고 만취해서 입니다.중학교때 3.1절 행사하러 학교에 오라는데 꾸어먹고 버드나무숲에 자전거 세워두고 냇가에서 그 추운데 멱을 감고 막걸리를 마시는 별종이었죠.나중에 세월이 지나 부산을 가려고 새벽열차타러 역 앞 분식집에 있는데 경찰관 명찰을 손가락으로 툭툭 퉁기면서 "니들 이거 진짜맞나? "하면서 시비를 거는데 자세히 보니 이친구입니다 .경찰들이 뭐 이런자식이 있어 하면서 반발하자 "어허 ,민중의 지팡이라는 자식들이 민중을 칠려고 하네" 너스레를 떨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경찰들과의 시비도 그만두고 반갑게 인사하고 내게 옵니다.00일보라는데 사이비 기자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친구는 모르는 내가 몰래 이친구를 미워한 이유가 바로 내가 마음에 담은 여학생을 고2 초등학교 동창회때 뺨을 때렸다는 것이랍니다 이친구는 다른 사람말은 안듣는 자기 동네 개구신인데 제 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듣습니다.지금도 시골에서 홀아비로 늙어가면서도 술버릇은 못 고쳤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고등학교때 이미 자전거를 버리고 오토바이 술먹고 타다가 갈비뼈 몇대 해먹은 요새는 찾기힘든 동네 건달입니다 .자전거 타고가다가 자전거 체인이 벗겨지면 지나가는 여학생을 잡아서 내 자전거 고쳐라 . 안고치면 집이고 학교고 못간다는 행패를 부리는건 기본이고 여학생들을 잡아두고 가슴도 사정없이 때리고 중학생이 자전거 타며 담배를 물고 도넛츠 만들기 시범을 보이면서 다니던 옛 학생시절의 추억에서 아직도 깨지 못한.
그런데 요새 자전거를 타보니 안장이 불편해서 30분타기도 힘드네요.전에는 구미.상주.거창까지 자전거타고 갔다오곤 했는데.
(이 여학생이 숙명 여대 다니는대학2학년때 대학생이 희소한 시골 면단위 동네라 국민학교가 다르지만 우리는 시내 나가는 버스에서 자연스럽게 몇번 만났고 데이트를 몇번하면서 나의 베아트리체 환상은 깨지게 되었지만 그 추억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추억을 풀고계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좀더 보기 쉽게 줄띄어쓰기좀 해주시면 좋을듯합니다
캬... 저는 왜 미성년 학창시절에 핑크빛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