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동 출발 콜을 잡고 눈썹 휘날리며 뛰어갔더니 손님이 저에게 그냥 가라네요.
왜그러냐 이유를 물었더니 외발전통휠을 안타고 왔다며 자기는 오륜동에서 대리시킬 때는
반드시 외발휠 기사가 와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더군요. 차바퀴 4개 플러스 외발 1개,
도합 오륜이 돼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징크스가 있다면서 상황실에 "내가 분명히 외발휠 기사
보내 달라고 했건만 왜 엉뚱한 기사 보냈느냐." 전화로 따지는 걸 제가 겨우 그를 진정시키려
나의 은가락지를 빼서 그에게 보여주며, 심지어 땅바닥에 또르르르 굴리기 까지 했어요.
"손님, 이제 됐죠? 오륜이 됐으니 그만하고 가십시다요."
첫콜부터 펑크가 나서 일을 그르칠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제 말을 듣고 일산으로 출발했어요.
운행하면서 물었죠. "다른 손님들은 전동휠, 전동킥 기사들 싫어하는데 손님은 왜 좋아하세요?"
그러자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아까 말했잖소... 오륜동에서 부를 때만 그런다고... 아... 기사 양반,
말이 나온 김에 외발산동 경유해서 갑시다."
그 말에 저야 별로 나쁠 게 없었죠. 가는 길에 잠시 빠졌다 가면 되고, 더구나 경유비 듬뿍 쳐 준다고
호언장담하니 믿고 따를 수 밖에요.
"외발산동엔 왜요... 누구 태우러 갈 겁니까?" 나의 물음에 그가 말하더군요.
"계속 외발휠 얘길 했더니 외발산동이 급땡기네요?"
외발산동 도착해서 한쪽에 차를 세우곤 그가 밖에서 담배를 태웁니다. 왠지 저는 꼼수를 부려보려고
차에서 내려 그의 옆에 서서 "아... 발이야. 요즘 너무 무리했더니 발이 아프네요. 내발...."
그러자 그는 "건강 조심하세요. 요즘 다들 힘든데 건강까지 해치면 안되죠."
저는 손님의 입에서 내발산동 경유합시다 라는 말이 나오길 고대했지만 손님은 나의 의도를 모르고
건강에 대한 설교만 하더군요. 나의 꼼수는 실패하고 다시 도착지 일산 식사동으로 향합니다.
가는 중에 누군가와 통화하는 손님, "야, 내가 살 께. 식사동으로 넘어와서 곡차나 즐겨보세........"
그가 얘기해주는데 통화한 친구는 스님이라고 하더군요. 중산동에서 살다가 지금은 파주 어딘가에서
사는데 중산동이 왜 중산동인고 하니 자기 친구 중이 살았던 동네라고 해서 중산동이라나...?
식사동에 도착하니 때마침 그의 동문이라고 하는 스님이 택시에서 내리더군요.
"야 임마 중더러 술마시자고 하는 넘이 대관절 어딨어? 나 술 끊었으니까 알아서 해!"
"아 아, 알았어 짜식아. 식사동이니까 술 말고 식사나 한끼 하자."
그런데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데요... 밥을 적게 담아준다고 식당 측과 싸우더니 고봉동으로 가자네요.
고봉동에서 고봉밥을 시키고서야 만족하는 손님과 스님....
그런데 여기에서도 사단이 벌어졌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국을 청국장으로 해주셨는데 고기가 안 들어갔다고,
자기는 청국장에 고기가 들어가야 먹는다고, 주인 측과 실랑이를 벌이더니 기분 나쁘다며 저를 찾더군요.
"기사 양반, 고기동으로 갑시다. 고기 먹으러..."
"네에? 거기까지 갔다오려면 시간이 너무 걸려요."
"경유비 얼마든지 드릴 테니 갑시다. 까짓거... 다 먹자고 하는 짓인데."
아무리 돈이 좋아도 고기동 까지 갔다오려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 저는 식당 아주머니께 정중히 부탁했죠.
"고기 먹고 싶다는데 갈비탕이라도 해주세요."
저는 식당 주인과 손님을 번갈아 설득하며 겨우겨우 갈비탕으로 고기를 섭취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네요.
그런데 손님과 식당 측 간에 또 시비가 붙고 말았어요. 이번에는 갈비탕에 잡채사리가 안 들어갔다고
화를 내는 손님!
결국 사리현동으로 차를 돌렸죠. 사리현동에서는 다행히 갈비탕에 사리가 들어 있었어요.
하지만 또 버럭 소리를 지르는 손님... 무슨 이유인가 했더니
"주인 양반, 갈비탕에 잡채사리를 겨우 한 가닥 넣어 주는 데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습니까?
이 동네가 사리원동이라 그런 겁니까!?"
그러자 식당 주인도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이보쇼! 먹기 싫으면 조용히 가던가, 왜 성질을 내고 그래? 그리고 말야! 사리원동이 아니라 사리현동일쎄!"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 스님은 "맞아 맞아. 사리현동이야. 사리원은 황해도이고."
"어서 가! 경찰 부를 꺼야!" 주인 측의 맹공에 결국 쫒겨나 차에 올랐는데 이번엔 갑자기 쌍문동으로
가주면 안되냐고 하네요.
친구 스님이 "쌍문동엔 왜 갑자기... 거기 누구 있어?" 묻자
"응, 민숙이... 민숙이가 생각 나서...."
"민숙이라면 장터 살던 민숙이?"
"아니 그 민숙이 말고 아랫마을 살던 민숙이."
"아하... 3학년 때 서울로 전학 갔던 민숙이?"
"그래 짜샤... 서울로 나를 초대해서 걔 엄마가 맛난 음식도 해주시고 얼마나 좋았는데."
외곽으로 해서 쌍문동 도착하는 내내 그가 옛 추억을 회상하며 스님과 다정히 말을 주고 받더군요.
"쌍문동 민숙이 집은 대문이 쌍문이었지. 하늘색 쌍문이 어찌나 안 잊혀지는지..."
그렇더군요. 쌍문동에 도착하니 그의 여친이 아직도 사는지 쌍문이 곱게 우리를 반기더군요.
그러나 그는 용기를 못내고 "그냥 갑시다." 하곤 다시 일산으로 향했습니다.
일산으로 향하면서 이번엔 계속 빵타령만 합니다.
"아니 이보세요, 손님... 고봉밥에 고기, 배터지게 먹고 빵 먹을 여유는 있나요?"
"왠지 빵이 급땡겨요. 기사양반, 장발장이 훔친 빵집으로 고고합시다!"
"장발장이 훔친 빵집요? 거기 갔다오려면 경유비 3천 만원 듭니다."
"이 양반이... 쯪쯪... 무슨 3천...? 6만원이면 되지.... 자.... 좋다. 8만원 추가! 갑시다."
"프랑스까지 어떻게 8만원 추가입니까? 3천 만원은 줘야 하지만 최소 2천 까지는 생각해 볼께요."
"의정부에 누가 2천을 줘? 8만도 잘 쳐준 건데. 자 그럼 10만원, 오케이?"
"의정부에 있다고요?" 제가 스마트폰을 집어들어 지도 검색을 해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빵 생각이
달아났다고 계속 가던 길로 가잡니다.
그의 동문인 스님을 동문 아파트에 내려주고, 그의 거주지로 향했죠.
"기사양반, 요금 총 얼마요?"
"잠시만요... 머리 속으로 계산좀 해볼게요."
저는 20만원을 부르고 싶었지만 혹시 많다고 시비 붙으려나? 15만원만 받을까...?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 그 때 그가 지갑 속에서 돈을 꺼냅니다.
30만원 주면서 "저로 인해 오늘 고생 많았어요. 이거면 되겠지요? 더 드리고 싶은데 요즘 시국에
형편이 어려워서 이해해 주세요." 하고 웃음을 지어 보이더군요.
손님 집에 도착해서 주차하고 돌아서는 찰나, 저를 붙잡는 손님,
"잠시만요. 5분만 기다려 줄래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그... 핸드폰 속에서 웬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오네요.
"뭐하다 인제 겨들어와! 꺼져!"
잠시후 손님과 저는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잠실쪽이 직장이니 잠실 가까운 모텔에서 잠을 실컷 자고
다음날 오후에 출근하면 된다고 하네요. 저야 속으로 쾌재를 불렀죠. 복귀까지 꿀이었으니...
추가요금 얼마 더 주면 되냐고 묻기에 마지막 건 서비스니 그냥 됐다고 했는데요.
어른이 말하면 말을 잘 들어야지. 왜 추가요금을 안 받겠다고 그러느냐. 버르장머리 없다고 막 화를
내네요. 그러던지 말던지 저는 "저보다 열 살 정도 위인데 그냥 형님이라 부를께요. 형님! 됐습니다.
이미 많이 주셨잖아요. 됐으니 잠실에서 잠 실컷 주무세요." 하곤 냅다 달아났습니다.
그렇군요. 잠을 실컷 잔다고 해서 잠실인가...?
다음날 저는 여전히 어제의 그 손님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머리가 고팠습니다.
"버르장머리 없이!..... 버르장머리....버르장머리..."
당장 저는 동네에 있는 버르장머리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았지요.
"버르장 여사님! 여름이나까 짧게 짧게 시원하게 깎아주세요."
*위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 많이 첨가된 글입니다. 어디까지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가...
첫댓글 글을재미있게잘쓰셨네요!난진짜인줄알았어요,아무튼재미나게읽었어요,종종글올려주세요 ㅎㅎㅎ
재밌네요...ㅎ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외발전동킥 와야 간다는
오륜동고객..^^
외발산동 이야기도 재밌고..
아침부터 웃음을 선사해서
감사합니다..
재치 만점인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식사동부터 싸해지던데요? ㅎㅎㅎ
어디까지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가...
올 픽션 이네요~~
소설가로 하시던가~~
드라마 작가로
대리기사로 썩히기 아까운 글재주시네요..이정도면 신춘문예 대상감입니다.